메뉴 건너뛰기

close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 청와대 제공

관련사진보기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시민분향소가 마련된 덕수궁 대한문 앞. 국화를 손에 든 시민들이 눈시울을 붉히고 분향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그 행렬은 덕수궁 돌담길을 휘어 감고 있다. 길바닥에 누군가 깔아놓은, 수십미터 되어보이는 누런 천에는 하늘나라로 가신 전직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들이 빼곡이 적혀 있다.

25일 심야, 그것들을 찬찬히 읽어보았다. 가장 많은 문장 중의 하나는 이것이었다.

"노무현 대통령님,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고인이 되어서야 국민과 제대로 통하는가? 노무현 16대 대통령도 임기말인 2007년 9월 인터뷰에서 "나 때문에 구박받은 지지자들에게 미안하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내가 고향 사람들이나 동창을 가끔 청와대에 초청해 만날 때 제일 처음 하는 인사가 '나 때문에 힘들었지요'입니다. 내가 (지지자들에게) 제일 미안한 게 그 점입니다. 나하고 친하다는 이유로, 또 옛날에 나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지금 여러분이 이 자리 저 자리에서 구박받고 있는 것이, 또 대통령인 내가 구박당하는 것을 보고 마음 상해할 것이고, 그 점이 제일 힘듭니다. 아주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대통령 노무현, <화려한 휴가> 보고 내내 울다

<인물연구 노무현> 연재를 다시 시작한다. 나는 이 인물연구를 위해 2007년 9월과 10월 청와대에서 3일간 13시간에 걸쳐 노무현 대통령을 심층 인터뷰했다. 2명의 <오마이뉴스> 기자와 함께. 이 연재는 노무현 16대 대통령의 임기말인 2007년 10월 8일 <오마이뉴스>에 처음 실렸고, 10월 22일 6회가 실린 이후 중단된 상태였다. '너무 젊을 때 퇴임한'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어느 정도 합의된 적절한 시점에 재개할 작정이었다. 그런데 인물연구 대상은 '자살'이라는 충격적인 선택으로 이 생을 정리했다. 이 연재는 오늘부터 10회 이상 연재될 예정이다. 독자들은 이 글을 먼저 읽어도 좋고, 첫 회부터 읽어도 좋을 것이다.

인간 노무현은 경남 김해의 봉하마을에서 태어났지만, 정치인 노무현은 '광주의 아들'이다. 5.18 광주민주항쟁(1980)의 영향을 받아 '운동권 변호사'가 되었고, 200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때 광주시민이 경남 출신인 그를 선택함으로써 이후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청와대의 바쁜 일정 가운데서도 광주항쟁을 다룬 영화를 챙겨 보았다.

- 어제 <화려한 휴가> 보셨다면서요.
"예." 

- 우셨다고 하던데.
"아 그거 뭐…. 그거 안 우는 사람 없을 걸요, 아마. 그런 역사적인 사건을 개인사로 그려놓으니까 참 정말 그거 실감이 나더구만. 다 운 것 같더라고, 보니까." 

- 대통령님은 어떤 대목에서 더 눈물이 나던가요.
"아이, 그 뭐 시종 목이 메서 못 보겠어.  (영화) 마지막에서 (주인공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고심할 때……. 거기서 죽음으로써 자기 마감을 해야 된다는 그것을 납득을 못하지, (영화를 먼저 본 우리) 집사람도, 며느리도." 

지난 2007년 9월 2일 환담중인 노무현 대통령과 오연호 대표기자.
 지난 2007년 9월 2일 환담중인 노무현 대통령과 오연호 대표기자.
ⓒ 청와대 제공

관련사진보기


"나는 나를 사랑한다, 그래서 세상에 분노한다"

인간 노무현은 스스로를 사랑했다. 그것도 지독히. 그래서 그의 자살은 충격적이다. 나는 <인물연구 노무현>을 준비하면서 당시 논란이 되고 있던, 노대통령의 참여정부평가포럼 연설을 다시 읽어봤다. 4시간에 걸친 그 연설내용에서 인간 노무현을 이해하게 해주는 가장 핵심적인 문장 하나를 고르라면 이것이었다.

"자신을 사랑하면 세상을 사랑하게 되고, 세상을 사랑하면 세상에 대한 분노를 하게 된다." 

그래서 이렇게 여쭤봤다.

- 대통령님은 대통령님을 사랑하고 있지요?
"예." 

- 굉장히 자부심이….
"그렇지요. 자기를 사랑하지 않으면……. 자기를 끊임없이 이겨야 되는 자기와의 싸움을 해낼 수가 없지요.

근데 그게 그래서 사랑하는 건지,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건지 모르지만은 극단적인 이기심이라고 말할 수도 있죠. 자기를 사랑한다는 말이 극단적인 이기심일 수도 있고, 또 극단적인 자부심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그렇죠. 

그러다보면 오류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 끊임없이 생각해야 하고, 또 이제 그 결과가 틀리지 않기 위해서 절제해야 되고, 또 자기가 가치라고 생각하는 것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되고 그런 것 같아요. 결국 중심엔 자기가 있는 것입니다.

근데 자기를 충족하는 것이 개인의 쾌락이나 탐욕을 충족하는 것으로선 자기가 충족이 안 되는 것인가 보죠? 그것으로는 자기 만족을 할 수 없으니까 자기 삶의 가치가 뭔지를 자꾸 생각하고, 그러면서 가는 것이 결국은 자기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자기를 사랑한, 그래서 세상에 분노한, 그래서 임기를 몇 달 앞둔 상태에서도 정부 출입기자실을 '개혁'하겠다고 기자들과 집단으로 한판 붙었던 노무현. 그래서 그의 자살은 더욱 충격적이다.

- 근데 자기가 자기를 사랑하면서도 적절한 선에서 '아이 타협하자' 이런 순간이 있는 것 같거든요? 저도 그럴 때가 적지 않게 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님 요즘(2007년9월) 모습 보면 임기 말에도 계속 뭔가를 추구하고 하시는 걸 느끼는데, 그러니까 자기 사랑에 대한 욕심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강하거나, 훨씬 지속적이거나 그러신 거 아닌지요. 
"글쎄요, (임기말인데) 안 되는 일을 왜 하냐, 안 될 것 같은 일을 왜 하냐, 좀 피할 땐 피하지 왜 하필이면 그렇게 집착하냐, 이런 것이죠. 근데 안 되는 일이라는 게 없지요. 어떤 일이라는 것은 일시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언제나 작은 씨앗이 변화를 수용하면서 그 안에 작은 싹을 키우고, 자라고 그렇게 해서 마지막에 열매가 맺는 것이지요."

노무현의 자기사랑은, 역사에 대한 믿음과 연결돼 있었다. 

"열매가 그렇게 맺는 것이기 때문에…… 그 수많은 싹이 다 열매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수많은 싹이 있어야 하나의 열매가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것이 결실이 있는 일인지는 우리가 너무 그리 간단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내가 지금까지 말하고 안 되는 것같이 보이는 많은 일들이 다 하나하나 싹을 틔우고…… 말하자면 물주고 키우고 꽃을 피우기 위해서 노력할 가치가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안 된다고 전제하는 것은 인과관계를 너무 단순하게 보는 것이고, 멀리 보면 결국은 다 그렇게 가게 돼 있는 일 중에 내 몫이 얼마인지 몰라서 노력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안 된다는 것은, 우리가 너무 시야를 짧게, 인과관계를 너무 단순하고 시야를 짧게 보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이지 안 되는 건 없다, 하물며 노력할 가치조차 없는 것은 정말 없다, 나는 그렇게 보는 것입니다."

"언론과의 싸움은 역사가 내게 준비한 것... 회피하지 않겠다"

ⓒ 청와대 제공

관련사진보기

노무현의 자기사랑은, 그를 "역사와의 만남에서 회피하지 않"게 만들었다. 그것은 세상에 대한 분노로 이어졌고, 그래서 그는 승부사가 되었다. 

"왜 조금 연기하고 회피하고 할 수 있는데 하필이면 그 일에 승부를 거느냐, 인생을 거느냐?

지금 요새 언론하고의 싸움이 제일 큰 것입니다. 근데 그것은 좀 뒤에 할 일이면 뒤로 미룰 것입니다만 좀 뒤로 할 수가 없어요. 하필이면 역사적인, 역사의 변화과정에서 내 자리가, 내 위치가 거기에 부닥쳐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많은 우연이 있고 또 역사적 필연이 있는 가운데, 내가 대통령이 된 이 시점에 와서 딱 그게 걸려버린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 문제와) 마주쳐 버린 것이죠. 

그러니까 이것은 역사적 인연이기 때문에 피할 수 없다는 것이죠. 역사적 인연이 아니면 뭐 피해 가버리면 되는데. 근데 한국 민주주의 발전사에 있어서, 언론에 있어서의 어떤 변화, 이것은 역사적 필연이기 때문에 거기에 내가 인연을 맺어, (약간 웃음) 말하자면 역사적 조우를 한 게 된 것이죠.

물론 이것이 어느 정도 성과를 이룰 수 있는 것인지는 모르고, 더 좋은 방법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겠지만 내가 이 언론과 부닥쳐 왔던 역사적 인연의 고리로 봐서는 이 길밖에 없게 돼 있기 때문에, 여기서 부닥쳐 그것을 회피를 못하는, 피하질 못하는 것이죠."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 말은 김영삼,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과는 달랐다. 그들은 아들비리가 드러나면서 임기 말을 거의 식물대통령으로 보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그의 표현대로 "짱짱하게" 임기 말을 보냈다.

- 그 '짱짱한 임기말'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입니까.
"우선… 이거는 좀 조심스러운 이야기인데, 내가 행운아라고 봐야겠죠. 역사의 과정에서 (정치인이) 친일을 한다든지, 독재를 한다든지, 분열정치를 초래했다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한국 정치의 문화와 전통에 누를 끼친 적이 없습니다. 나는 적어도 정치인이 지켜야 할 도덕적 명분에 관해서는 철저히 한 치의 오류 없이 지금까지 오고 있다, 그 점에서는 자신이 있습니다.

두 번째는… 정권방어와 자기방어에 성공한 것이죠. 김대중 대통령은 큰 업적을 가지고 있지만 임기말에 성을 방어하고 있는데 (아들문제로) 북문이 뚫려버린 거죠, 그래서 언론에 의해 짓밟혀 버렸거든요. 그래서 뭐 견뎌 나갈 수가 없었죠.

그런 것이 그 분 개인의 역량의 문제라기보다는 시대 풍토가 방심할 수밖에 없는, 말하자면 그동안의 우리 문화가 '뭐 그런 정도는' 하는 주변의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에 그걸 방어할 수가 없었던 것이죠.

나는 이제 그 앞의 분들이 다 그렇게 해서 무너지는 골병드는 모습을 봤기 때문에 그 부분에 있어 방어할 준비가, 결정적 약점에 대해서 방어할 준비가 돼 있었던 것이죠.

그리고 주변 상황도 많이 달라졌고요. 참모들의 자세도 많이 달라졌고. 그 환경적인 차이 때문에 말하자면 마지막 방어선이 뚫리질 않은 것이죠. 그래서 그 두 가지 점에선 뭐 분명히 저도 자신 있게 마지막까지 밀고 갈 수 있고, 그 이후에 있어서도 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 좀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죠."

"나는 청와대에서 송장이 돼서 나가지 않겠다" 임기말까지 자신감

대통령 노무현은 그렇게 임기말까지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그는 퇴임을 6개월 앞둔 그 시점까지 정치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스스로를 '성공한 대통령'으로 여기고 있었고 그 자신감을 바탕으로 아직 전의에 불타고 있었다. 그는 특히 보수언론과의 싸움에서 자신감을 나타내면서 "나는 송장이 돼서 안 나가고, 걸어서 나가겠다"고 했다.

"까놓고 이야기해서 대한민국에서 '정치인'하면 김대중, 김영삼 두 분 아닙니까? 언론을 다루는 데도 두 사람이 달인 아닙니까? 그런데 그 두 분은 (임기말에 언론에) 맞아죽었고, 나는 살아남았으니까 내가 잘한 거 아닙니까?(웃음). 나는 그 분들 스스로에게 큰 잘못이 있다고 보진 않지만 방어를 못했거든요. 방어를 못해서 (임기말에 정치적으로) 타살당한 것이거든요. 나는 방어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만큼이라도 해야 나갈 때 걸어나갈 거 아닙니까, 기어나가지 않고. 나는 송장이 돼서 안나가고 걸어서 나갈 거거든."

그러나 "송장이 되지 않고" 청와대에서 나온 그의 시련은 퇴임 후에 본격적으로 찾아왔다, 그는 이명박 정권과 보수언론의 공격에, 그의 표현대로라면 서서히 "골병이 들어갔고", "북문이 뚫리고", 결국 "방어를 못해서 타살당한" 것이다. 봉하마을 부엉이바위에서 투신자살하는 방식으로.

그날의 인터뷰에서도 참모나 가족과 관련한 비리가 향후 드러날 가능성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 그런데 지금이 2007년 9월인데  임기를 마치려면 2008년 2월 말까지 하셔야 되는데, 적어도 DJ 정권 때처럼 참모의 비리문제라든가 가족문제라든지 이런 것 때문에 정권이나 대통령 개인이 흔들리는 그런 일은 없을 것 같습니까, 앞으로도? 
"지금 뭐 그……."

- 요즘 신문에 하도 (청와대 비서관 연루 의혹 등이) 나와서…….
"(비서관) 정윤재씨 문제가 하나 있는데, 저는 낙관하고 있습니다.  그냥 나도 100% 장담이야 못하지만, 사람 일이니까."

ⓒ 청와대 제공

관련사진보기

노무현 대통령은 그렇게 낙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인터뷰 중에 이런 말을 했다.
"대통령은 전능이 아니다."

정치인 노무현은 자기를 너무나 사랑했고 그래서 세상을 사랑했고, 세상에 분노했다. 그랬던 만큼 평가에 민감했다.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의 가치에 대한 평가에.

"정치인의 소망은 자기의 가치를 최대한 실현하는 것이죠. 거기에 대해서 평가를 받고 싶어합니다. 좋은 평가를 받고 싶어 하는 것이 정치인의 소망입니다. 평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죠. 지금도 좋은 평가를 받고 싶고, 후대의 역사적 평가도 잘 받고 싶은 것이죠."

그는 덧붙였다.

"그런데 그 두 개의 평가가 서로 일치하지 않은 경우가 아주 많이 발생하죠. 그럴 때 결국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 사람은 결국 역사의 평가를 선택하게 됩니다."

그렇게 자신을 사랑했던 이가 왜 자살을?

퇴임 직전까지 자신에 대해, 역사 앞에 떳떳해했던 16대 대통령 노무현. 현재의 평가가 녹록치 않음을 잘 알고 지지자들에게 "나 때문에 구박받아 미안합니다"라고 말해야할 정도가 되면서까지도 "나는 나를 사랑한다"고 자부심에 충만해 있었던 정치인 노무현.

그랬던 그가 보수야당에게 정권을 내주고 청와대를 떠난지 1년 3개월 만에 자신의 고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왜?

그토록 자신을 사랑했던 이가 왜?

현재의 평가에서 '타살'당해도, 그가 더 중요시한 역사의 평가가 남아있는데 왜?

전직 대통령 노무현은 검찰수사를 받으면서 나온 혐의들을 보고, 역사가 해줄 평가에서마저 자신을 잃어버렸던 것일까? 아니면 역사로부터 제대로된 평가를 받기 위해 기다려야하는 긴 세월이 너무 고통스럽게 느껴졌던 것일까?

유서는 적고 있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

인간 노무현은 자신이 받는 고통보다, 자신에 의해 받게 될 여러 사람의 고통을 참을 수 없어했다. 그런 점에서 그는 마지막까지 자유인이 되지 못했다. 정치인이었다. 마지막까지 승부사였다. 이명박 대통령과 검찰과 보수언론에게 온몸으로 말하지 않았을까? '이제 그만, 나로 끝내라.'

그래서 그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긴, 고시공부하면서 꿈을 키우던 토굴 근처에 있는 부엉이 바위에서 몸을 던졌다. 45미터 낭떠러지 아래로.

역사 속으로.


태그:#노무현, #그래 내도 사랑한다, #서거, #인물연구 노무현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76,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OhmyNews 대표기자 & 대표이사. 2000년 2월22일 오마이뉴스 창간. 1988년 1월 월간 <말>에서 기자활동 시작. 사단법인 꿈틀리 이사장.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