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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듣고 문득 궁금해진 것이 있었다.

"<조선> <중앙> <동아> 편집국 분위기는 어땠을까? 그 회사 간부들, 기자들은 순간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우선 인터넷을 접속해 봤다. 참여정부 내내 십자포화를 쏟아부었지만 '조중동'도 어차피 사람이 만드는 신문, 우선 인터넷에서는 망자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모양새다. <조선> <동아>는 사이트 제호 옆에 국화 한 송이를 배치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합니다"라는 문구를 붙였다. <중앙일보> 사이트인 조인스닷컴은 제호에 별다른 변화를 주지 않았다.

고인에게 '할 말' 다하는 조중동, '일관성' 지키기?

이번에는 노 전 대통령 서거 다음날인 24일치 신문을 봤다. 노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빈다고 하고는 있지만 한편으로 '할 말'은 다 하고 있다. 고인 서거 상황을 맞았다고 낯빛 하나 안 바꾸고 그동안 부정해 왔던 것들을 어쩔 수 없이 순간 긍정해 버리는 것도 고인에게 몹쓸  짓, 그래 차라리 '일관성'이 나아보인다.  

지난 5월 1일 '조선만평'. 청와대 경호처에서 지원한 방탄 버스를 타고 대검찰청으로 향하고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전두환 전 대통령과 단순비교하고 있다. 전 전 대통령이 '저 양반은 호강하네'라고 말하고 있다.
 지난 5월 1일 '조선만평'. 청와대 경호처에서 지원한 방탄 버스를 타고 대검찰청으로 향하고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전두환 전 대통령과 단순비교하고 있다. 전 전 대통령이 '저 양반은 호강하네'라고 말하고 있다.
ⓒ 조선일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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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3일 '조선만평'.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상문 비서관이 세고 있는 돈을 쳐다보며 침을 흘리고 있다.
 지난 5월 13일 '조선만평'.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상문 비서관이 세고 있는 돈을 쳐다보며 침을 흘리고 있다.
ⓒ 조선일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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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는 24일 사설에서 "노 전 대통령 시절부터 홍위병에 가까운 세력들이 시민단체를 가장해 대통령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언론에 대한 전방위 공격을 퍼부었고 언론의 대통령 권력에 대한 감시도 기대하기 힘들만큼 악화됐다"면서 "그 결과 대한민국 대통령 권력은 감시 견제 비판으로부터 해방되면서 결국은 권력 자체의 비리의 무게로 붕괴되기까지 위태위태한 모습을 연출했다"고 주장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비판언론의 감시 견제 비판으로부터 해방되었고, 대통령 권력에 대한 감시도 기대하기 힘들만큼 악화됐다'는 주장은 참여정부 지지 여부를 떠나 동의하는 이가 많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조선일보>는 이명박 정부 들어 숱한 언론인들이 체포되고 심지어 구속당하는 일까지 생기는 등 '언론탄압' 주장이 거센 마당인 데도 이에 대해선 전혀 지면 할애를 하지 않아왔다. '신영철 사건' 등을 통해서는 스스로 비판의 칼날을 무디게 하거나 거둬들이고 있지 않은가?

<중앙일보>는 24일 <중앙선데이>를 통해 "'검찰 책임론'을 몰아붙이거나, 책임지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갈등을 부추기는 것"이라며 "정당했던 언론의 비판을 감정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욕 너머로 떠난 노무현 전 대통령'이란 사설을 내보낸 <동아일보>는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이 애석한 일이긴 하지만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직접적인 원인은 어디까지나 권력 비리"라면서 "일부 세력은 마치 그의 죽음에 이명박 정부와 검찰이 책임이 있는 양 선동하고 나섰다. 우리 국민은 그런 억지에 결코 흔들리지 않을 만큼 성숙하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동아>는 "검찰의 무리한 수사가 비극을 불렀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노 전 대통령은 수사과정에서 전직 대통령으로서 배려와 예우를 받을 만큼 받았다", "전직 대통령이라고 해서 비리 혐의가 있어도 묻어두는 것은 법치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주장을 폈다.

검찰의 노 전 대통령 망신주기 사례의 전형인 '고가 시계'를 만평의 주제로 삼아 다시금 공격하고 있다. 만평에서 나타난 노 전 대통령의 표정과 말풍선 멘트가 극히 비현실적이다.
 검찰의 노 전 대통령 망신주기 사례의 전형인 '고가 시계'를 만평의 주제로 삼아 다시금 공격하고 있다. 만평에서 나타난 노 전 대통령의 표정과 말풍선 멘트가 극히 비현실적이다.
ⓒ 조선일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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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7일 '조선만평'.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사의 옷깃을 잡고 말을 쏟아뱉고 있다. 전 대통령은 커녕 시정잡배 혹은 깡패처럼 표현했다.
 지난 5월 7일 '조선만평'.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사의 옷깃을 잡고 말을 쏟아뱉고 있다. 전 대통령은 커녕 시정잡배 혹은 깡패처럼 표현했다.
ⓒ 조선일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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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동아>도 법조팀에 여러 명의 출입기자들이 있을테니 잘 알 것이다. 검찰과 언론의 핑퐁게임으로 각종 피의사실이 연일 시시콜콜 독자들의 아침밥상에 올라왔는데도 노 전 대통령이 배려와 예우를 받을만큼 받은 것일까? '검찰의 무리한 수사'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일까? "정당했던 언론의 비판"이라는 <중앙일보>의 주장 역시 낯뜨겁긴 마찬가지다.

신경무 만평, 사흘에 한 번 꼴로 '노무현 풍자'

생각이 이쯤 이르자, 순간 또 스쳐 지나가는 인물이 있었다. 신경무 <조선일보> 화백.

신경무 화백은 노 전 대통령의 재임 동안 그야말로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마음껏 누린 언론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했던' <조선>의 사설, 칼럼 못잖게 신 화백은 참여정부 집권 내내 노무현 대통령을 비난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듣고 신경무 화백은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신경무 화백의 노무현 대통령 표현 변천사. 후보자 시절(맨 왼쪽) 그런대로 캐리커쳐의 모습을 보이다가 2004년을 거쳐 2005년에는 일자눈섭과 깍두기 머리로 노 대통령의 이미지는 고정됐다.
 신경무 화백의 노무현 대통령 표현 변천사. 후보자 시절(맨 왼쪽) 그런대로 캐리커쳐의 모습을 보이다가 2004년을 거쳐 2005년에는 일자눈섭과 깍두기 머리로 노 대통령의 이미지는 고정됐다.
ⓒ 조선일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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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화백이 얼마나 노 대통령에 '집착'했던지, 이를 연구한 학자와 연구 결과까지 있을 정도다. 신병률 경성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지난 5월 16일 "신경무 화백의 '조선만평'이 노 전 대통령을 어떤 소재와 방식으로 재임기간(2003년 2월 25일∼2008년 2월 24일)에 풍자했는지 분석한 결과"를 내놓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조선만평'의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프레임을 한 마디로 압축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무자격' 프레임이 될 것이다. 능력과 성격 등 모든 부분을 통틀어 '무능한 이미지'가 관통하고 있다"

신 교수에 따르면 신 화백은 3일에 한 번 꼴(1401개 가운데 467개, 약 33%)로 노 전 대통령을 소재로 다룬 만평을 그렸다. 노 전 대통령이 풍자의 직접 대상이 된 경우는 467개 가운데 399개였고, 이외에 부정적 인물이나 집단을 비판할 때 조연으로 노 전 대통령을 '끼워파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대통령 측근들, 총리를 포함한 장관들, 검찰, 이명박 당시 대선후보, 김정일 등이 풍자의 주된 대상인데도 노 전 대통령을 등장시켜 싸잡아 비판한 만평이 전체의 14.6%(467개 가운데 68개)였다.
      
신 교수의 조사결과 신 화백이 노 전 대통령을 긍정적으로 묘사한 경우는 예상대로 '없었다'. 노 전 대통령은 97.9%(457개)에 이르는 '조선만평'에서 부정적 모습으로 묘사됐다. 나머지 10개는 중립적이거나 모호하게 묘사됐다는 게 신 교수의 주장이다.

대상을 표현하는 방식이야 작가의 재량이겠지만 신 화백이 노 전 대통령을 표현했던 방식은 알려졌다시피 '일자 눈썹'과 이른바 '깍두기 머리'였다. 매우 부정적인 형상화였으며 심지어 레임덕을 상징하는 오리 모자를 씌우기도 했다.

신경무 화백은 2006년 9월경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의 머리에 '레임덕'을 상징하는 오리 모자를 씌운채 만평에 등장시킨다.
 신경무 화백은 2006년 9월경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의 머리에 '레임덕'을 상징하는 오리 모자를 씌운채 만평에 등장시킨다.
ⓒ 조선일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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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1월 10일 '조선만평'. '레임덕'을 상징하는 오리모자를 쓴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을 위로하고 있다.
 2006년 11월 10일 '조선만평'. '레임덕'을 상징하는 오리모자를 쓴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을 위로하고 있다.
ⓒ 조선일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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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뿐인가. 만평의 60%에 이르는 271건이 노 대통령이 화를 내거나 당혹해 하거나 비굴한 표정을 짓거나 혹은 발길질 주먹질 몽둥이질 등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신 교수는 "대통령의 행위를 정책적 관점에서 해석하고 비판하는 노력은 필요하지만 개인적 행위로 축소해 묘사하는 것은 풍자를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하더라도 언론의 사회적 책임 면에서 꼭 바람직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었다.

신 화백의 노 대통령 공격 프레임은 퇴임후에도 이어졌으며 특히 노 전 대통령이 소환조사 이후인 5월에는 특히나 많았다. 

하지만 신 화백은 그동안 '저주'에 가까와 보일 정도로 밉게 그리던 노 전 대통령이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자 25일 검은 먹컷에 국화 한 송이를 만평에 그려 그에게 바쳤다.

신 화백은 여백을 검은 색으로 채워나가면서, 그리고 저 국화 한 송이 이파리들을 하나하나 뽑아 그려가며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동안 그려오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영정 속 노 전 대통령의 웃는 낯을 보며 순간 그에겐 무슨 생각이 스쳐갔을까.

5월 25일 '조선만평'. 신경무 화백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국화 한 송이를 바쳤다. 그는 고인의 서거 소식을 듣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5월 25일 '조선만평'. 신경무 화백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국화 한 송이를 바쳤다. 그는 고인의 서거 소식을 듣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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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신경무, #조선일보, #노무현, #조선만평, #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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