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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검찰수사에 대한 심리적 부담 때문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성정(性情)을 아는 사람들은 노무현의 존재 이유였던 도덕성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현실이 무엇보다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노 전 대통령은 명분을 중시하고 여론을 의식하는 정치를 해왔기에 검찰수사에 따른 법리적 논란 이전에 국민들에게 자신이 위선자로 비춰지는 것에 절망감을 느꼈을 것이다.

'노무현 게이트'가 불거진 이후 노무현에 대한 성토만 있을뿐 옹호론은 설 자리를 잃었다. 국민들은 인간 노무현에 대한 실망을 넘어 돈을 받는 과정에 전 가족이 동원된 파렴치함에 놀라움을 나타냈다.
 
이러한 여론의 쏠림현상 속에 간과된 것은 돈을 주고받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과 노무현 간의 특수한 관계다. 돈을 받은 경위와 액수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누구로부터 받았느냐 하는 점이다.
 
박연차가 누구인가. 노무현과 30년 전 인연을 맺은 이래 친형제와도 같은 사이를 유지해 왔고, 노무현이 정계에 입문한 이후에는 재정 측면에서 최대 후원자 역할을 해왔다. 속된 말로 노무현의 평생 '물주'이자 동반자다.
 
이러한 두 사람 간의 남다른 관계가 무시되고 돈을 받은 사실만 강조돼 검찰과 언론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막다른 길로 몰아갔다. 자금 제공이 대가로 이어지는 권력형 비리와는 분명 차이가 있음에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개인적 인연이 없는 기업인들로부터 수천억원의 뇌물을 받은 것과 같은 무게로 취급되었다.
 
검찰은 노무현의 혐의를 포괄적 뇌물수수로 간주했지만 노무현과 박연차의 인간관계를 감안할 때 뇌물보다는 증여에 가깝다. 자금수수가 대가성을 기대하기 힘든 노무현 임기 말과 퇴임 후에 이뤄진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박연차 역시 검찰 조사에서 "노무현을 보고 자식에게 돈을 줬다"고 말하면서도 대가성에 대해서는 극구 부인했다. 검찰 또한 서슬퍼런 수사에도 불구하고 대가성을 입증하지 못했다.
 
박연차는 정치인을 비롯한 주변사람들에게 대가성 없이도 통 크게 베푸는 인물이라는 것이 언론 취재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막대한 재력을 갖춘데다 도움을 청하면 거절을 못하는 스타일이어서 박연차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한번쯤 기대고 싶어하는 심리를 갖게 하는 특이한 존재다.
 
노무현의 도덕성에 대한 비난도 과한 측면이 있었다. 노무현이 성인(聖人)의 경지에 오르지 않은 한 형제와도 같은 사람에게 손을 벌리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었을 것이다.
 
노무현 참모들의 자금수수도 비슷한 맥락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불법으로 자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안희정 민주당 최고의원, 이광재·서갑원 의원,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 여택수 전 청와대 행정관 등은 모두 박연차 또는 또다른 노무현 후원자인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았다. 이들 역시 노무현을 고리로 해서 박연차·강금원과 오랫동안 유대를 맺어온 동지적 관계이자 호형호제하는 사이다.

정치를 하려면 돈이 필요한 것이 현실이다. 이를 잘 알고 있는 강금원은 평소 노무현 참모들에게 "돈이 필요하면 다른 데 기대지 말고 나에게 얘기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들 내부의 자금수수가 실정법에는 위배될지 몰라도 일반적인 뇌물수수와는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보수세력은 호재라도 만난 듯 노무현 참모들에 대해 "깨끗한 척 하던 자들이 더하다"는 식으로 무차별 공격하고 있다. 일반 국민들은 이들은 비난할 수 있어도, 일일이 설명할 수 없을 정도의 추한 비리를 저질러온 보수정치인들은 이들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
 
노 전 대통령이 모든 책임을 지는 자세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이번 사건 대응에 아쉬움이 남는다. 자신은 모른다는 식으로 대처할 것이 아니라 솔직하게 사실관계를 밝히고 박연차와의 특수한 관계를 들어 국민들의 이해를 구했어야 했다. 그게 우리가 알고 있는 노무현이다. 그랬으면 비극적 종말을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번에는 노무현의 특징인 진정성과 우직함이 발휘되지 못했다. 이 때문에 검찰 수사에서 사실관계를 진술하면 또다른 사람들이 다치게 되는 상황을 노 전 대통령이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다시 말해 본인만의 문제였다면 정공법을 택했을텐데 그럴만한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측근들이 줄줄이 사법처리되는 현실에 극도의 좌절감을 느꼈다고 한다.투신 직전 남긴 유서에서도 이러한 심경이 잘 드러난다.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자신이 모든 업보를 안고 가기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 같다. 정치적 고비마다 승부수를 던져온 노무현, 그는 죽음으로 마지막 승부를 한 것이다. 유사 이래 최초로 국민 위에 군림하는 통치자가 아니었던 '인간 노무현'의 죽음은 참으로 애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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