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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른 새벽 자택 뒤쪽의 산에 올라 절벽에서 투신자살했다. 한국정치사는 물론, 세계 정치사에도 그 유례가 드문 일이다.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정치적 성장 과정이 드라마틱했던 그는 죽음마저도 많은 사람들의 상식과 상상을 뛰어넘는 비극적 방식으로 세상을 떠났다.

 

사람이 죽으면 생전의 공과나 시비는 모두 뒤로 한 채, 고인의 명복을 비는 것이 인간적인 상례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은 평범한 사인(私人)이 아니다. 바로 직전에 국가를 운영한 최고지도자였다. 일반적인 조문 예절에만 머물 수 없는 이유다.

 

노 전 대통령은 임기 초 시민사회단체 인사들과의 접견 자리에서 "대통령직 못해먹겠다"고 한 바 있다. 임기 중반에는 대선 때 치열하게 맞서 싸웠던 한나라당에게 권력(정권)을 통째로 내주겠다고도 했다. 임기 말에 이르러서는 자신은 정권을 재창출할 책임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퇴임 후 그는 가족에게만 짧은 유서를 남긴 채, 국민에게 남기는 유서 한 장 없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대통령직을 시작했을 때부터 퇴임 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가 보여주었던 모습은 국가와 국민, 그리고 역사에 대한 무책임함이었다.

 

나는 이번에 국장이나 국민장 기간에는 언론에서도 고인에 대한 경건한 애도 분위기를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 법으로 정해져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개혁진보 언론은 물론이고, 노 전 대통령의 생전에 그를 그렇게 비판해마지 않았던 소위 조중동을 위시한 보수 언론마저 추모 일색이다. 모든 공영방송 역시 마찬가지다.

 

국가 최고 공인에 대한 공과는 뒤로 한 채, 심지어 그의 마지막 모습에서 보여졌던 반사회적 행위에 대해서도 침묵한 모든 언론의 천편일률적인 보도행태가 우려스럽다. 언론은 특정한 분위기를 유도하는 듯한 감상적 보도경향을 지양해야 한다. 보다 냉정하고 차분한 보도자세를 보여줘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은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마치 대중연설을 하듯 이명박 대통령, 검찰, 조중동에 대한 비난을 퍼부었다. 그리고 노 전 대통령의 지지자로 알려진 사람들은 김해의 분향소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노 전 대통령과 대립하는 위치에 있었던 관계와 정치권의 주요 인사들의 조문을 물리적으로 거칠게 저지하고 있다.

 

이런 모든 모습들은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의 모습 만큼이나 대단히 우려스러운 행태들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가볍게 여겼던 무책임한 모습 중의 하나로 재신임을 받겠다는 것이 있었다. 대선자금이 문제가 되자, 자신이 대선 때 썼던 돈이 한나라당에서 쓴 돈의 10분의 1이 넘는다면 임기 도중에 국민에게 재신임을 받겠다는 것이었다. 그간의 우리나라 정치풍토와 상대가 있는 싸움임을 감안할 때, 위법한 정치자금 사용행위가 있었더라도 그것은 이해해줄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 자살의 직접적 원인이 된 뇌물수수는 전혀 차원이 다른 문제다. 노 전 대통령은 적극적으로 기업인에게 거액의 돈을 요구했고, 그 돈은 가족들을 위한 사적인 용도로 쓰여졌다. 노 전 대통령과 그의 가족은 검찰 조사 과정에서 "계약서는 찢어버렸다" "선물로 받았던 1억원짜리 시계 두 개는 논두렁에 버렸다" 라는 식으로 시종일관 불성실한 태도를 보였다. 그것은 검찰만이 아니라, 국민을 우롱하고 무시하는 행태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명박 정권의 탄압에 쓰러진 정치적 희생양이 아니다. 대통령 재임기간 사적인 용도로 쓰기 위해 거액의 뇌물을 수수했던 파렴치한 행위가 드러나고, 그것이 범죄사실로 확정되는 것에 대한 수치심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일 뿐이다.

 

대통령도 인간이다,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실수할 수 있다. 그러나 잘못한 것이 있었다면 국민에게 진솔하게 용서를 구했어야 했다. 그리고 겸허하게 죄값을 치르며 사죄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 물론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최대한의 사죄를 하려 한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직 대통령이 재임중의 개인적 비리와 관련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남긴 것은 가족들에게 전한 몇마디 말이 전부였다. 국민들에게는 한마디 말도 없었다. 재임중의 모습들과 마찬가지로 죽는 그 순간까지도, 과연 그가 국가와 국민에 대한 일말의 책임감이라도 가지고 있었다는 말인가.

 

세계 어느 나라의 전직 국가원수가, 그것도 임기를 끝낸 직후에 자살한 적이 있었는가. 이 것은 명백히 국가적 불명예이며, 역사적 얼룩이다. 이 나라 국민인 것이 수치스럽다. 전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수백만 해외동포들의 민망한 처지는 또 어찌할 것인가. 

 

대통령을 지냈던 한 사람의 비극적 죽음 앞에 모두가 냉정하고 차분해져야 한다. 이번 일을 교훈 삼아 이 나라와 이 사회가 성숙해지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태그:#노무현 , #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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