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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바보 노무현답다. 바보처럼 또 다시 무모한 승부수를 뒀다. 자기 목숨을 버리면서 까지. 살가운 애칭 '바보 노무현' 이라는 별명은 그가 역경을 딛고 대통령이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단언한다. '약삭빠른 노무현' 이었으면 절대 대통령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노무현이 바보라는 사실은 그의 인생 역정에 잘 나타난다. 그는 서른 살에 사법고시에 합격, 판사의 길을 걷다 "적성에 맞지 않는다"며 7개월 만에 그만두고 변호사로 전직했다. 이후 변호사로 잘나가던 그는 1981년 이른바 '부림사건'을 맡으면서 재야 운동에 뛰어들고 6월 항쟁 뒤 정치권에 들어온다. 7개월 만에 법복을 벗고 '인권 변호사' 길로 접어든 순간부터 그는 이미 '바보 노무현' 이었다.

 

정치인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기까지 많은 시련이 있었다. 시련은 1990년 3당 합당을 거부하면서 시작됐다.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가 민정당 노태우 대통령, 공화당 김종필 총재와 함께 3당 합당을 해서 민자당을 만들었다. 그러자 당시 노무현 의원은 노태우와 손잡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며 민자당 행을 거부하게 된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고난이 시작된다.

 

91년, 민주당에 입당, 92년 총선에서 민주당 간판으로 자신의 지역구인 부산에 출마 하지만민자당 후보였던 허삼수에게 패하고 만다. 3년 후, 노무현은 부산시장에 출마하지만 역시 낙선한다. 민주당은 호남당 이라는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한 탓이다.

 

96년 총선에서는 부산을 버리고 정치 1번지라 불리는 서울 종로로 출마, 또 다시 낙선한다. 당시 종로 터줏대감이자 5,6공 핵심인물이었던 국민회의 이종찬 의원과 현대건설 회장 출신인 이명박 신한국당(구 민자당) 의원(현 대통령)과 격돌해서 3위로 낙선했다.

 

하지만 98 이명박 현 대통령이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해 치러진 종로 재. 보궐 선거에서 승리, 10년 만에 다시 금 배지를 달게 된다.

 

2000년 총선에서 노무현은 지역주의 타파를 주장하며 다시 부산에 출마 했지만 지역주의라는 높은 벽에 가로막혀 패배한다. 비록 선거에서 졌지만 그의 소신은 '바보 노무현'이라는 애칭을 만들어냈다. 또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바람과 2002년 대선을 뒤흔든 '노풍'을 일으키는 기폭제를 만들어 냈다.

 

친구 같은 대통령이 되고자 했던 '인간 노무현'

 

 

대통령직에서 물러 난지 1년 4개월 만에 그는 다시 '바보 노무현' 으로 돌아왔다. 이번엔 죽음으로 '바보 노무현' 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약아빠진 노무현' 이었으면 결코 목숨을 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쿠데타로 헌정파괴하고 수천억 검은 돈 챙겨서 감옥까지 다녀온 전직 대통령들도 아직까지 잘 살고 있다. 또 일부 국민은 이들에게 기념공원까지 세워주며 업적(?) 을 기려준다고 한다. 참으로 뻔뻔하고 약아빠진 일 아닌가?

 

하지만 노무현은 그러지 못했다. '바보 노무현' 이기 때문이다. 지금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애도하는 많은 국민들은 바로 그런 '바보 노무현' 을 사랑했던 것이다. 나 또한 그 우직함을 좋아 했다.

 

난 노사모가 아니다. 노사모 활동을 하는 몇몇과 친분을 맺고 있기는 하지만 노사모는 아니다. 오히려 재임 기간 중 정치 활동에 툭 하면 쓴 소리를 던지기만 했다. 특히 이라크 파병과 한미 FTA 에는 극렬하게 반대 했던 국민 중 하나다. 또 부동산 정책 등, 많은 정책에 반기를 들었다. 한때는 서민들이 뽑아준 대통령이 어째서 반 서민 정책으로 일관 하는지 원망도 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대통령 노무현' 을 다시 생각 하게 됐다. 나름대로 훌륭했다고 평가한다. 이명박 정부처럼 국민을 힘으로 억누르려 하지도 않았다. 또 부자들만을 위한 정책을 펴지는 않았다.

 

특히, 국민을 무시하지 않고 친구 같은 대통령이 되기 위해 노력했던 점을 높이 평가 한다. '바보 노무현' 이었기에 가능 했던 일이었으리라 생각한다.

 

힘들었을 것이다. 우리사회 기득권 세력들이 갖추고 있는 '스펙' 을 하나도 갖추지 못했기에. SKY 라는 명문 대학 근처도 가보지 못했고 잘 나가는 집안 출신도 아니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스스로 대학 진학도 포기해야 했고 군대도 육군 졸병으로 다녀온 우리시대 대표적인 비주류 였다.

 

그래서 더 잘 되길 바랐다. 비록 도덕성에 흠집이 났을 때는 실망스럽기도 했지만. 검찰 수사가 시작되고 일부 보수 언론에서 연일 입방아를 찧어대도 꿋꿋이 버텨서 모든 의혹을 벗어 던지고 환하게 웃어 주길 바랐다. 그래서 비주류 출신이 당당하게 승리하는 것을 보여 주길 바랐다.

 

인간 노무현은 죽음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비록 비주류 출신이지만 결코 뻔뻔하지도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타락 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렇게 노무현은 죽음으로 '바보 노무현' 이 되어 우리 곁에 돌아왔다.

 

 

 

 

 

덧붙이는 글 | 안양뉴스 유포터 뉴스


태그:#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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