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노무현 전 대통령 측이 밝힌 노 전 대통령 유서 내용 보도자료.
 노무현 전 대통령 측이 밝힌 노 전 대통령 유서 내용 보도자료.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상고 졸업→인권변호사→국회의원→낙선→국회의원→장관→낙선→대통령후보→대통령 당선→퇴임·낙향….'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최후도 극적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23일 오전 가족들에게 짧은 유서를 남기고 뒷산에서 투신자살함으로써 60여년 삶을 마감했다.

특히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 검찰이 노 전 대통령의 사법처리를 앞두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가 검찰수사에 극도의 부담감을 느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 아니냐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이를 간접적으로 증명이라도 하듯 노 전 대통령은 유서에 "그동안 너무 많은 사람에게 신세를 졌다"고 적었다.

박연차 게이트를 수사해온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공식 확인됨에 따라 이날 그와 관련된 모든 수사를 종결했다.

연이은 측근들 구속, 친노그룹의 세력붕괴 위기로 이어져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 이광재 민주당 의원(사진),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 장인태 전 행정자치부 2차관, 서갑원 민주당 의원 등이 잇따라 소환조사를 받거나 구속됐다.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 이광재 민주당 의원(사진),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 장인태 전 행정자치부 2차관, 서갑원 민주당 의원 등이 잇따라 소환조사를 받거나 구속됐다.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애시당초 검찰의 박연차 게이트 수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겨냥하고 있었다. 검찰은 '표적수사 의혹'을 전면 부인했지만, 지방기업인 태광실업의 탈세사건을 '거악 척결의 중추기관'인 대검 중수부에 배당한 것은 그런 의혹을 강하게 뒷받침해주었다.

일각에서는 "정권교체 이후 권력 핵심부가 서울지방국세청 조사 4국과 대검 중앙수사부를 통해 박연차 게이트를 강도높게 수사했고, 정권 실세들의 로비까지 물리친 것은 결국 노 전 대통령을 잡기 위한 목적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검찰은 지난 몇 달 동안 노 전 대통령 측근 인사들과 일가를 대상으로 '먼지털이'에 가까운 저인망 수사를 진행해왔다. 

부산·경남(PK) 출신인 이정욱 전 해양수산개발원장과 송은복 전 김해시장이 먼저 구속되긴 했지만, 본격적인 신호탄은 노 전 대통령의 오른팔인 이광재 민주당 의원의 구속이었다. 결국 이 의원은 지난 3월 25일 구속되는 과정에서 "인생을 걸고 정치를 버리겠다"며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같은 날 '영남의 친노인사'였던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장인태 전 행정자치부 2차관도 구속된 데 이어 노 전 대통령의 '386 핵심측근'인 서갑원 민주당 의원도 두 차례에 걸친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았다.

재기를 꿈꾸던 친노그룹의 세력붕괴 위기가 시나브로 현실로 다가온 셈이다. 하지만 검찰이 정권 실세인 천신일·이상득·정두언 등이 등장하는 '세무조사 무마 로비 의혹'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아 민주당 야당 등으로부터 '표적수사'라는 비판이 강하게 제기됐다.

부인이 100만불 받고 최측근이 공금 횡령하자 '자멸 선언'

뛰어난 승부사였던 노 전 대통령에게 '세력붕괴 위기'는 견딜 만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검찰수사가 노 전 대통령 일가로 확대되면서 분위기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검찰은 '박연차 비자금의 저수지'인 APC(태광실업 홍콩 현지법인) 계좌를 확보·분석한 뒤 조카사위인 연철호씨와 장남 건호씨를 수차례 소환조사했다.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500만 달러를 받아 투자명목으로 운용한 혐의였다. 오랜 후원자인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마저 조세포탈과 횡령 혐의로 구속됐다.

특히 부인인 권양숙씨가 박 전 회장에게 '개인채무 변제' 명목으로 100만 달러를 받은 사실이 드러나자 결국 노 전 대통령이 고개를 숙였다.

"저와 제 주변의 돈 문제로 국민 여러분의 마음을 불편하게 해 드리고 있습니다. 송구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더욱이 지금껏 저를 신뢰하고 지지를 표해주신 분들께는 더욱 면목이 없습니다. 깊이 사과드립니다."(4월 7일)

권씨가 100만 달러 수수와 관련 비공개 소환조사를 받은 데 이어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청와대 특수활동비 횡령 사건'까지 터지자 노 전 대통령은 무너지고 말았다.

"더 이상 노무현은 여러분이 추구하는 가치의 상징이 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이미 민주주의, 진보, 정의, 이런 말을 할 자격을 잃어버렸습니다."(4월 22일)

특히 이런 과정에서 박연차 전 회장이 노 전 대통령에게 회갑 선물로 2억원대 명품시계(2개)를 선물했다는 얘기까지 흘러 나와 노 전 대통령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결국 노 전 대통령은 4월 30일 '포괄적 뇌물'인 600만 달러를 받은 혐의로 10여 시간 동안 조사를 받았다. 역사는 퇴임 이후 검찰조사를 받는 세 번째 전직 대통령으로 기록하겠지만, 그에게는 '치욕의 날'로 기억될 것이다.

검찰이 사법처리 미루는 동안 '모멸의 시간들' 보냈을 것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소환조사가 예정된 30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앞에서 '구속수사'를 촉구하는 보수단체 회원들과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경찰 저지선을 사이에 두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소환조사가 예정된 30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앞에서 '구속수사'를 촉구하는 보수단체 회원들과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경찰 저지선을 사이에 두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관련사진보기


그런데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을 소환조사한 지 20여일이 지나도록 사법처리 수위를 결정하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사법처리를 못한 게 아니라 안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뒤늦게 수사를 시작한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을 구속한 다음에 '부담없이' 노 전 대통령을 사법처리하려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검찰이 이렇게 사법처리를 늦추는 동안 노 전 대통령은 견디기 어려운 '모멸스러운 시간들'을 보냈을 것으로 추정된다. 노 전 대통령이 유서에서 "그동안 너무 힘들었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고 토로한 것도 그런 추정을 뒷받침한다. 

그 사이에 권씨가 40만 달러를 추가로 수수한 사실이 확인됐고, 딸 부부마저 검찰 소환조사를 받았다. 노 전 대통령으로서는 더 이상 숨조차 쉴 수 없는 막장에 몰린 셈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수사 일지

2008년 11월 25일 국세청,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탈세 혐의고 검찰 고발 / 대검 중수부 본격 수사 착수
▲12월 12일 박연차 회장 구속: 290억원대 세금포탈-정대근 전 농협 회장에 20억원 뇌물공여 혐의
▲12월 29일 검찰, 노무현 전 대통령 15억원 차용증 확보

2009년 3월 14일 박연차 회장 정관계 로비 의혹 본격 수사
▲3월 19일 이정욱 전 한국해양수산개발원장 구속: 5억원 수수 혐의
▲3월 20일 송은복 전 김해시장 구속: 3억여원 수수 혐의

▲3월 21일 이광재 민주당 의원 소환조사
▲3월 22일 이광재 민주당 의원 2차 소환조사
▲3월 22일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장인태 전 행자부 2차관 체포

▲3월 25일 박정규 전 수석 구속: 특경가법상 뇌물수수 혐의 / 장인태 전 차관 구속: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3월 26일 이광재 민주당 의원 구속: 박연차 회장 등으로부터 15만달러-2000만원 수수 혐의 / "정계를 떠나겠다" 선언
▲3월 28일 서갑원 민주당 의원 소환조사: 수만달러 수수한 혐의

▲3월 30일 서갑원 민주당 의원 2차 소환조사
▲3월 31일 장인태 전 차관 기소
▲4월 2일 박정규 전 수석 기소

▲4월 3일 이정욱 전 원장-송은복 전 시장 기소
▲4월 6일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 소환조사(대전지검 특수부) / 검찰, 홍콩현지법인 APC 계좌 자료 확보 및 분석 시작
▲4월 7일 정상문 전 총무비서관 체포: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수억원 수수한 혐의 / 노무현 전 대통령, 개인 홈페이지에 사과문 올려: 권양숙씨 100만 달러 수수 관련 / 김원기 전 국회의장 소환조사

▲4월 9일 정상문 전 총무비서관 영장기각
▲4월 10일 노무현 전 대통령 조카사위 연철호씨 체포: 500만 달러 수수 혐의 / 이광재 의원 기소 / 강금원 회장 구속 수감: 횡령(266억) 및 조세포탈(16억) 혐의
▲4월 11일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씨 비공개 조사(부산지검): 100만 달러 수수 관련 / 노무현 전 대통령 장남 건호씨 귀국

▲4월 12일 노건호씨 1차 소환조사: 500만 달러 운용 관련 / 연철호씨 석방
▲4월 13일 연철호씨 2차 소환조사
▲4월 14일 노건호씨 2차 소환조사 / 연철호씨 3차 소환조사

▲4월 16일 노건호씨 3차 소환조사
▲4월 17일 노건호씨 4차 소환조사
▲4월 19일 정상문 전 총무비서관 긴급 체포 / 검찰 "권양숙씨, 3억원 거짓진술"

▲4월 20일 노건호씨 5차 소환조사
▲4월 21일 정상문 전 총무비서관 구속 수감: 뇌물수수(2억) 및 청와대 특수활동비 횡령(10억)
▲4월 22일 대검 중앙수사부, 노무현 전 대통령에 '서면질의서'(7쪽) 발송

▲4월 25일 노무현 전 대통령, 검찰에 '답변서' 제출
▲4월 26일 검찰, 노무현 전 대통령측에 30일 소환조사 통보
▲4월 30일 노무현 전 대통령 소환조사

▲5월 1일 노무현 전 대통령 귀가
▲5월 4일 대검 중수부 노 전 대통령 수사기록 검토보고서 임채진 검찰총장에게 보고
▲5월 8일 정상문 전 청와대 비서관 구속 기소

▲5월 11일 노무현 전 대통령 딸 정연씨 부부 소환조사
▲5월 12일 검찰 "노 전 대통령 딸 정연, 박연차에게 수십만 달러 수수 추가확인"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 뒷산 등산 중 추락, 서거


태그:#노무현 서거, #박연차 게이트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