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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만들지도 않았는데 다른 사람이 자기 것으로 인정해주고 평생 자기가 갖고 사는 것은?

바로 이름이다. 이름은 좋건 싫건 자기를 나타내고, 남이 자기를 인식하는 수단이 된다. 사람들은 보통 한 가지 이름으로 평생을 살아간다.

'김구라', '노숙자', '신문지'처럼 '튀는' 이름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야 하는 연예인들에게는 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의 본명이라면 어떨까. 아마도 '글쎄'하며 고개를 갸웃거릴 것이다.

방귀O, O십원, O주택, 성병O, 피O자, 엄청O, 조O년, (대학교 이름과 같은) 한O대, 서O대.

실제 이름들이다. 이런 이름은 발음이나 어감 때문에 놀림감이 되기 십상이다. 어떤 이름은 남자와 여자의 성(性)을 착각하게 만든다. 이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부모가 지어준 이름 대신 자기 모습에 걸맞은 세련된 새 이름을 찾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이름을 얻을 수 있을까. 개명 허가를 결정하는 법원은 어떤 기준으로 개명을 허가하고 있을까. 개인이 이름을 선택할 권리, 즉 '성명권'을 법원은 인정하고 있을까.   

놀림감 되는 이름, 바꿀 수 있을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법원은 개명 허가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 이름을 쉽게 바꾸는 것은 사회 생활에 혼란을 준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래서 태어난지 얼마 안 된 어린이들이나 아주 특별한 사유가 있는 사람이 아니면 이름을 잘 바꿔주지 않았다.

[사례 1] 자식들과 재롱을 떠는 손자들을 보는 낙으로 살고 있던 김정숙(가명, 60세)씨는 평생 처음 법원을 찾았다. 행복한 가정생활을 하던 김씨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 있었으니, 그건 큰며느리와 자신의 이름이 같다는 것. 고부 사이가 동명이인이라서 다른 가족들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법원은 김씨의 개명신청을 받아주지 않았다. 대법원도 "큰며느리의 이름과 같다는 사정만으로는 호적상의 이름을 바꾸어야 할 상당한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1,2심은 정당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위 사건(대법원 89스 10 사건)은 20년 전의 사건이긴 하지만 개명에 대한 법원의 태도를 잘 보여준다. 이처럼 법원은 "이름이 사회성을 띠고 있는 만큼 개명은 아주 특별한 경우에만 허용해야 한다"는 신중한 태도를 견지해 왔다.

그러던 법원의 태도에 변화가 온 것은 2005년이다. 개명을 개인의 관점에서 전향적으로 바라본 대법원의 판례(2005스 26결정) 때문이었다.

[사례2] 2005년 이분희씨(가명, 남 35세)는 자신의 이름을 여자 이름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고, 한자가 너무 어렵다는 이유로 개명신청을 했다. 그러나 1심과 2심 모두 개명을 허가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종심인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이씨의 이름 중 '분(泍)'자가 '본'자로 잘못 읽히거나 컴퓨터를 이용한 문서작성에 어려움이 있고, 여자 이름으로 착각되는 등 일상생활에 불편이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다른 불순한 의도가 있거나 개명신청권을 남용했다고 볼 수 없다"며 이씨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 2005년 이름에서 '행복추구권'을 찾아내다

이 결정은 법원의 개명 허가 기준에 일대 혁신을 가져왔다. 대법원은 사람의 이름에서 행복추구권, 인격권이라는 헌법적 권리를 찾았다. 그동안 법원이 개명 허가의 기준으로 사회성·공공성에 중점을 두었다면, 이 사건에서는 개인의 권리 보호 측면을 중시한 것이다.

"이름(성명)은 특정한 개인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식별하는 표지가 됨과 동시에 사회적 관계와 신뢰가 형성되는 등 고도의 사회성을 가지는 일방, 다른 한편 인격의 주체인 개인의 입장에서는 자기 스스로를 표시하는 인격의 상징으로서의 의미를 가지는 것이고, 나아가 이름에서 연유되는 이익들을 침해받지 아니하고 자신의 관리와 처분 아래 둘 수 있는 권리인 성명권의 기초가 되는 것이며, 이러한 성명권은 헌법상의 행복추구권과 인격권의 한 내용을 이루는 것이어서 자기결정권의 대상이 되는 것이므로 본인의 주관적인 의사가 중시되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개명 허가 여부를 결정할 때는 "이름의 사회적 의미와 기능, 개명으로 발생할 사회적 혼란과 부작용 등 공공적 측면 뿐만 아니라, 개명신청인의 주관적 의사와 개명의 필요성, 효과와 편의 등 개인적인 측면까지도 함께 충분히 고려되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대법원은 ▲ 부모가 일방적으로 만든 이름에 대하여 불만이나 고통을 느끼는 경우 평생 그 이름을 가지고 살아갈 것을 강요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고 ▲ 이름이 바뀌더라도 주민등록번호는 그대로 존속하므로 법률관계의 불안정은 그리 크지 않으리라고 예상되는 점 ▲ 개명을 엄격하게 제한할 경우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는 점 등에 주목했다. 따라서 불순한 목적이 없다면 원칙적으로 개명을 허가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로써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만 이름을 바꿀 수 있다"던 법원의 태도는 2005년을 기점으로 "특별한 장애 사유가 없으면 이름을 바꿔준다"로 180도 선회했다.

이러한 추세를 반영하듯 법원에 접수된 개명신청은 해마다 늘고 있다. 2006년에 10만9567건이었다가 2007년 12만4364건으로 늘었으며 작년에는 14만6773건에 이르렀다. 2년 사이 34%나 증가했다.  

올해 접수된 사건을 보면 증가세는 더욱 가파르다. 올해 4월까지 넉 달 동안 개명신청을 한 사람은 6만3856명인데, 같은 기간 대비 2007년(4만4684명), 2008년(5만2240명)보다 상당히 늘어났음을 알 수 있다. 이 추세대로라면 올해 이름을 찾기 위해 법원을 찾는 사람은 20만명이 훌쩍 넘을 것 같다. 

범죄 목적·잦은 개명... 이럴 땐 이름 바꿀 수 없다

하지만 법원이 개명신청을 무조건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범죄를 기도 또는 은폐하거나 법령에 따른 각종 제한을 회피하려는 불순한 의도나 목적이 개입되어 있는 등 개명신청권의 남용으로 볼 수 있는 경우"(대법원 2005스 87 결정)에는 개명할 수 없다.

법원은 개명 신청이 들어오면 우선 수사기관에 전과조회,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출입국사실조회, 전국은행연합회에 신용정보조회 등을 한다. 조회 결과는 개명허가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판단자료가 된다. 따라서 성범죄 등 중대한 전과자, 교도소 복역자, 거액의 신용불량자, 부정출입국 전력이 있는 사람은 개명이 어렵다. 

또한 이름을 여러 차례 바꾸는 것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잦은 개명은 사람의 정체성에 혼돈을 주게 되어 건전한 사회생활을 방해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사례 3] 6개월 전 진은미라는 이름 대신 새 이름을 얻은 진선미(가명)씨는 다시 법원을 찾았다. 이름을 바꾸지 않으면 대학교수가 될 수 없다는 작명가의 '조언'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씨는 이름을 진선미에서 다시 '진선숙'으로 바꾸어달라며 개명신청을 했다가 취하했다. 진씨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후 한 철학관에서 다시 감명을 받은 결과 진선미라는 이름을 계속 사용할 경우 본인은 물론 가족들도 아프게 된다는 말을 듣고 첫 이름인 진은미로 다시 개명해 달라고 신청했다.

법원은 진씨의 요구를 받아주지 않았다. 진씨가 개명을 여러 번 신청한 데다 사람의 이름에 따라 건강이 좌우된다거나 대학교수 채용이 결정된다는 것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법원은 진씨에게 "자신의 운명이 이름에 달렸다는 집념에서 하루속히 벗어나 운명을 개척하는 노력에 집중하라"고 충고했다. 

이밖에도 8살 아이 '강철수'(가명)에게 진정한 남녀평등 의식을 심어준다는 이유로 부모 양쪽의 성(姓)을 붙인 이름 '강 박철수'로 개명해달라는 부모의 신청이 기각된 사례가 있다. 법원은 "신청인은 아직 자유롭게 의사결정을 할 나이가 아니며, 훗날 성장하여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판단할 무렵이 되었을 때 다시 판단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지적했다.

참고로 고 최진실씨가 자녀의 성을 최씨로 바꾼 것처럼. 성을 바꾸고 싶다면 '성·본변경신청'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름에 불만이 있다면 바꾸는 것도 권리이다. 하지만 이름을 두 번 세 번 바꾸는 건 사회생활에 바람직하지도 않거니와 법원에서 바꿔주지도 않는다. 이 점을 반드시 기억하자. 
 
이름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개명절차 안내
이름을 바꾸려면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개명신청은 일반 소송 절차에 비하면 비교적 간단하다. 따로 법정에 나갈 일도 없기 때문에 조금만 노력을 기울인다면 법무사, 변호사 등 법률전문가의 도움을 얻지 않고도 개명신청을 할 수 있다. 개명 절차를 소개한다.

1. 법원에 개명허가신청서를 제출한다.
주소지 가정법원(또는 지방법원)에 개명허가신청서를 내야 한다. 성인은 본인이 직접 신청하고, 미성년자의 경우 부모가 대신 신청할 수 있다. 신청서 양식은 대법원 홈페이지(http://www.scourt.go.kr)를 이용하거나 법원 접수 창구에 비치된 서류를 활용하면 된다. 신청서에는 각종 기재사항을 빠뜨리지 않고 꼼꼼하게 적는다. 특히 개명을 하려는 이유를 상세하고 정확하게 적는다. 신청이유가 타당해야 개명허가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2. 첨부서류를 꼼꼼하게 챙겨 붙인다.
신청서에는 수입인지(1천 원)와 함께 송달료(우편요금) 납부서를 붙여야 한다. 비용은 약 2만 원 정도가 든다. 또한 신청서 뒤에는 첨부서류로 동사무소에서 발급한 기본증명서(옛 호적등본), 가족관계증명서, 부모의 가족관계증명서, 성인의 경우 자녀의 가족관계증명서 등을 덧붙인다.

그밖에 개명에 유리한 자료가 있다면 함께 제출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친족간에 동명이인이 있어서, 또는 항렬자를 따라 이름을 바꾸고자 하는 때에는 족보, 친족증명서 등을 내면 된다. 가정이나 일상 생활에서 불리는 이름으로 바꾸고자 한다면 편지, 일기, 생활기록부 등을 제출하고 이름으로 놀림을 받고 있다면 주변 사람들의 진술서 등을 붙이는 것도 좋다.  법원은 대부분 서류심사만을 통하여 결정을 내리기 때문에 유리한 자료 제출은 그만큼 중요하다.
 
3. 개명허가결정을 받은 후 한 달 내에 신고한다.
법원은 당사자가 낸 신청서와 신용조회, 전과 조회 등의 결과를 통해 개명 허가 여부를 결정한다. 결정문은 당사자에게 우편으로 보내준다. 법원에서 개명허가를 받았다면 한달 안에 시.읍.면 사무소(구청이 있는 시는 구청)에 신고해야 한다. 신고할 때는 신분증과 개명허가결정문을 지참하고 개명신고서를 작성하면 된다.


태그:#개명, #이름, #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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