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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경복궁
ⓒ 임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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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수십만 시민들이 오가는 번잡한 종로 거리에는 우뚝 솟은 고층 건물과 꽉 막힌 출퇴근 차량이 전부인 듯 하지만, 지난 100년간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던 조선시대의 기억, 경복궁이 있다. 늘 가까이에 있어 우리가 무심코 지나친 그 곳에는, 궁궐 담장 밖에서는 쉬이 보이지 않는 새로운 것들이 가득하다.

서울에서 접근성이 좋은 왕궁인 탓일까.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가장 많이 머문다는 이곳을, 유럽에서 방문한 우리회사 바이어에게 소개시켜주기 위해 지난 9일 외국인들을 위한 경복궁 일일 관광 코스에 합류했다. 외국인 바이어나 VIP들이 주로 이용하는 '궁' 관광 코스라서 그런지, 가이드가 설명도 영어로 해주고 또 우리 일행 말고도 다른 외국인 관광객들과 함께 둘러볼 수 있어서 나름 즐거운 시간이었다. 우리에겐 익숙한 그러나 외국인 관광객들에겐 색다른 경복궁의 매력을 짚어본다.

"경복궁, 왕 한 사람을 위해 지어진 공간? 우린 꿈도 못 꿀 일"

경복궁을 찾은 외국 관광객들
 경복궁을 찾은 외국 관광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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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왕은 참 대단한 존재군요. 왕 한 사람을 위해 이렇게 많은 궁들이 지어지고, 대규모 인력(궁녀들과 내시들)이 돌아가다니. 우린 지금도 왕정국가지만 생각도 못할 일이에요."

우리 팀과 함께 10개 남짓의 크고 작은 궁궐들로 이뤄진 경복궁을 둘러본 벨기에 출신 관광객 에릭 바이슨(38)씨의 소감이다. 모 기업과의 수출입 업무 때문에 방한했다는 바이슨씨는 오늘날까지 왕정제도가 존재하는 나라인 벨기에에서 와서 그런지 새삼 조선의 왕권과 그 절대성에 대해 감탄을 금치 못했다. '임금이 곧 하늘'이란 아시아 정서에 익숙해서였을까? 왕이 사는 곳이니 으리으리한 것이 당연하다며 무심히 넘긴 경복궁의 규모와 아름다움을, 우리와는 다른 문화권의 그는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눈치다. 

일본이나 유럽 궁전에는 있는데, 경복궁에만 없는 것은?

문화적 차이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일행 중 일본인 관광객 한 명은 "일본은 물론 유럽의 왕궁들을 보면 모두 만약을 대비한 비밀 통로나 방 하나쯤은 갖춰놨다"며 "그런데 왜 유독 경복궁은 그런 통로가 없느냐"고 의야해 했다.

우리 일행을 안내 한 외국인 VIP 의전관광 전문여행사 '코스모진'의 최진영씨에 따르면 일본이나 유럽의 왕들은 전쟁이나 적에게 포위돼 목숨이 위태로울 때 백성들보다 먼저 비밀통로를 통해 달아나지만, 조선의 왕들은 살아도 백성들과 함께 살고, 죽어도 함께 죽는다는 책임감으로 혼자만 도망칠 비밀통로 자체를 애초에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다른 나라의 왕궁과 달리 우리 왕궁에만 비밀 통로가 없는 이유는 신하, 혹은 시민들과 위기 상황에도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당시 절대권력이었던 '왕'의 배려이고 애민(愛民)사상의 결과였던 것이다. 안내원의 설명을 들은 외국인들 모두 감탄하며 "대단하다"는 표현을 아끼지 않았다.

관악산의 '화기(火氣)…해태로 잠재우다

경복궁에 있는 해태석상
 경복궁에 있는 해태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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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정전 앞 명수당을 지나 계단을 올라서던 우리 일행은 난간 위 해태 석상 앞에 잠시 머물렀다. 동글동글한 얼굴 모양과 독특한 몸통 문양에 지나는 관광객 모두 한번씩은 해태석상을 쓰다듬거나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계단을 내려가는 길에 그 모습이 눈에 밟혀 석상을 한번 더 살펴보는데, 자세히 보니 한 마리가 아니다. 큰 어미 해태의 몸통 오른편에 아기 해태가 달라붙은 두 마리의 모자(母子)상이었다.

해태상은 조선시대 경복궁 재건 당시, 궁내 곳곳에서 발생하는 잇따른 화재사고가 관악산이 지닌 불의 기운이 강해서라고 판단, 물을 관장하는 해태를 세워 화기(火氣)를 잠재우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고개를 돌려 관악산을 쏘아보고 있는 해태석상의 머리 방향도 바로 이 때문이다.

경복궁, 익숙한 낯설음

중국인 관광객들에게 경복궁은 익숙한 풍경이란다. 배산임수를 기본으로 한 구도부터 팔작 형태의 지붕과 용마루, 악귀를 막기 위한 동상들의 배치까지 비슷하다. 우리의 풍수지리나 중국의 풍수지리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익숙함 이면에는 한국만의 또 다른 멋이 있다는 게 중국인 일행들의 평가다. 가령 중국의 궁궐들이 복을 기원하는 옥이나 황제를 뜻하는 황금색 일색이라면, 경복궁은 다채로운 색의 조합과 은은한 자태가 살아있다는 것이다.

곁에 있던 요르단 관광객도 "대체 어떤 화학 재료를 사용했기에 이렇게 색이 남아있느냐"며 우리 궁의 단아하면서도 은근한 근원을 궁금해했다. 안내원은 "한국의 궁은 나뭇잎이나 꽃잎을 섞어 만든 천연 재료로 색을 입혔던 결과 수백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색이 매우 자연스럽고, 지금 여러분이 보시는 것처럼 썩지 않고 보존됐다"고 답한다. 나뭇잎과 꽃잎을 갈아 물감을 만들어 사용하셨던 선조들의 지혜에 새삼 숙연해지는 순간이었다.

좋아하는 기념품도 국가별로 가지각색

한복을 입어보는 외국인들
 한복을 입어보는 외국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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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들의 발길이 어느새 기념품 가게로 머물렀다. 여행의 또 하나의 즐거움이 바로 기념품 구경 아니던가. 수줍은 20대 일본 여성은 전통 혼례복을 입은 조그만 신랑신부 열쇠고리를 만지작거린다. 영국에서 건너온 노부부는 손자손녀들에게 보낼 엽서들을 고르느라 여념이 없다. 중동에서 유전사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50대 아저씨는 기념주화 매대 앞에 머물다 이내 나가버린다.

가게 아주머니에게 외국인 관광객들이 선호하는 기념품을 물으니, 나라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다고 한다. 동남아 국가의 관광객들은 주로 조그맣고 아기자기한 전통 액세서리를, 유럽권 관광객들은 간단한 카드나 엽서 종류를 선호한다고 한다. 그에 반해 아랍권에서 비즈니스차 방문했다는 남성들은 기념품보다는 본인이 직접 전통 의상들을 입고 사진 촬영을 할 수 있는 '체감형' 행사 등에 더 관심을 보인다고 한다. 기념품 쇼핑 취향도 나라별로 가지각색이다.

궁,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다

걸음을 옮겨 흥례문에 도착하자 관광객들의 시선이 일제히 멈춘다. 조선시대 당시 수문장과 호위 군을 그대로 본 딴 '수문장 교대식' 재연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행사를 지켜본 인도인 샤르마지 발탁(52)씨는 "입구에서부터 궁내 곳곳에서 진행되는 재현 행사들 덕분에 가이드 입을 통해 전해 듣는 수동적 관광이 아닌 눈과 귀로 느낄 수 있는 관광인 것 같아 경복궁이 더욱 친밀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전통 의상을 직접 입어보고 사진촬영 할 수 있는 포토 존도 마련돼 있었다. 조선시대 왕후의 옷을 입고 한껏 포즈를 취하는 필리핀 여성 미쳉 가부요(28)씨는 한복의 고운 색과 날렵한 옷 매무새에 연신 감탄했다. 또한 이날 경복궁에서는 관광객들이 직접 조선시대 사람이 되어 실제 왕실의 생활 모습을 더 쉽고 역동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왕가의 산책'이란 행사도 인상적이었다.

시간의 흔적과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문화를 곳곳에 간직하고 하루에도 수백명의 관광객을 기쁘게 맞이하는 경복궁은, 낯선 외국인 관광객들로 하여금 그저 보고 듣기만 하는 관광지가 아닌 한국의 문화를 직접 느끼고 소통할 수 있게 하는 공간이다.

외국인 관광객들이나 바이어들에게 우리의 '궁'이 한국문화를 재발견할 수 있는 매력으로 다가가는 순간을 지켜보니, 왠지 모를 뿌듯함과 함께 갑자기 "대~한~민~국"을 외치고 싶어진다.

이번 주말엔 딸아이와 함께 초록잎으로 물든 우리 아파트 단지에 파란 나뭇잎들을 따와서 빻은 후 함께 우리의 선현들이 그랬던것 처럼, 물감 삼아 그림을 그려봐야겠다. 경복궁의 단아하고 고운 색감들을 떠올리며, 또한 그 정숙한 색감들에 반한 외국인 관광객들의 환한 미소를 떠올리며 말이다.


태그:#경복궁, #외국인 관광객, #기념품, #해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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