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5월의 백두산(해발 2744m, 중국명 '장백산')은 툰드라 같았다. 눈이 사람 키보다 더 높게 쌓여 있었고, 천지까지 오르기 위해서는 눈썰매를 타야만 했다. 천지는 거대한 얼음 덩어리로, 북극 빙하를 방불케 했다.

 

기자는 지난 7~10일 사이 중국 연길을 거쳐 백두산을 다녀왔다. 7일 '북파', 8일 '남파', 9일 '서파'로 해서 천지까지 올랐다. '동파'를 가장 오르고 싶었지만, 북한 땅이라 갈 수가 없었다. 천지까지 오를 수 있는 관문은 모두 4개가 있는데, 각 코스마다 네 방향에 '언덕 파(坡)'를 붙여 부른다.

 

대개 관광객들은 '북파'나 '서파'로 천지에 오른다. 북한 땅과 붙어 있는 '남파' 코스가 개발된 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올해도 지난 5월 1일부터 관광객들의 발길을 허용했다.

 

7일과 8일은 날씨가 좋았다. 천지의 전체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9일에는 비바람이 심했다. 눈썰매를 타고 겨우 천지까지 올랐지만, 서 있기조차 힘들 정도로 세찬 비바람이 몰아쳤다.

 

백두산에는 지난 1~2일 사이 많은 눈이 내렸다. 중턱부터 눈이 쌓여 있었다. 아직도 곳곳에서 제설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미처 눈을 치우지 못해 차량으로 이동하지 못하고 걸어야만 했다.

 

눈이 쌓인 백두산 모습을 휴대전화에 담았다. 그 사진을 아는 사람한테 보냈더니 믿기지 않는다는 답장이 왔다. 남부지방에는 섭씨 30도 안팎을 오르내리는 무더운 날씨인데, 같은 한반도에 눈이 쌓여 녹지 않는 곳이 있다니 믿을 수 없다는 것.

 

진달래도 지금부터 피기 시작했다. 진달래는 짙은 보랏빛을 띠고 있었다. 남부지방은 진달래가 '언제 피었나' 할 정도로 피고 진 지 오래되었는데 말이다. 계곡에는 실버들이 피어나기 시작했고, 자작나무며 전나무도 연초록색의 새 잎을 매달고 있었다.

 

 

첫날 '서파'를 통해 천지의 '천문봉'까지 올랐다. 석양에 비친 천지를 볼 수 있었다. 다행히 날씨가 맑은 탓에 건너편까지 뚜렷하게 볼 수 있었다. 천지는 얼음과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천지에서는 '괴물'이 아니라 에스키모인들이 썰매를 타고 나올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둘째 날 '남파'로 천지에 올랐다. 관광객들이 잘 가지 않는 코스다. 북한 땅과 붙어 있다. 압록강 발원지가 있는 방향이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철조망이 쳐져 있다. 개울만한 강 건너 북한 땅을 지키는 군인들의 초소가 보였다.

 

차를 타고 한참 오르니 북한 쪽으로 넓은 땅이 보였다. 그곳이 바로 개마고원. 같이 갔던 일행은 "초등학교 때 배웠던 그 개마고원이란 말이냐"거나 "건설 장비를 별로 쓰지 않아도 골프장 하기에 좋을 정도네"라는 반응을 보였다.

 

제설작업이 되지 않아 중간에 이동 차량을 갈아탄 뒤에야 천지까지 오를 수 있었다. 중국과 북한(조선)의 경계 표시인 '4호 경계비'가 있었다. 국경을 넘지 말라는 푯말에다 줄도 쳐져 있다. 역시 천지는 눈과 얼음뿐이었다. 백두산에서 제일 높은 '장군봉'이 손에 닿을 듯 앞에 보였다. 장군봉은 북한 땅이다. 북한 군인이 지키고 있지만, 일행이 갔을 때는 보이지 않았다.

 

 

3개 코스의 관문 사이를 대형버스로 이동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아침 일찍 출발했는데 돌아오면 어두운 밤이 되기도 했다. 중국 정부는 도로 확·포장공사를 하고 있었지만, 아직 비포장도로도 많았다. 또 겨우 버스 한 대만 지날 정도의 외길이 수킬로미터가 되기도 했다.

 

서파로 천지에 오르는데 날씨가 흐렸다. 중간에 버스에서 내려 전동 썰매를 타고 천지 입구까지 올랐다. 약간 스릴을 느낄 수 있었다. 계단을 오르는데 비바람이 몰아쳤다. 어렵게 천지에 올랐지만 서 있기조차 힘들었다. 정신을 놓았다간 강한 바람 때문에 천지 아래 낭떠러지로 떨어질 기세였다.

 

북한과 중국의 경계를 표시한 '5호 경계비'와 각종 안내판을 붙잡고 잠시 서 있었다. 백두산의 한겨울을 만끽하는 분위기였다. 인간은 백두산 천지를 쉽게 볼 수 없다는 신비감을 갖게 해서 더 좋았다.

 

백두산과 천지는 '북파', '남파', '서파' 모두 다른 느낌을 주었다. 지금은 갈 수 없는 '동파' 쪽으로 자꾸만 눈이 갔다. 해가 가장 먼저 뜨는 방향인 동쪽의 백두산이 더 힘 있을 것 같았다. 백두산에서,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장군봉'에 오를 그날이 빨리 오기를 기원할 뿐이었다.

 


태그:#백두산, #천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