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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다변화되고 세분화되면서 음식도 다변화되고 세분화되고 있다. 예전과 같은 재료를 쓴다고 해서 같은 음식이 나오는 것도, 예전에 쓰지 않았던 재료를 더 넣는다고 해서 그 음식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맛을 잃어버리는 것도 아니다. 세상이 아무리 달라져도 세상은 늘 저만치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음식이 거듭나고 있다. 맛을 찾아 이곳 저곳 기웃거리다 보면 예전에는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이름을 단 음식이 숱하게 많다. 그렇다고 그 음식을 만드는 재료나 맛이 아예 달라진 것은 아니다. 음식 재료와 고유한 맛은 그대로이지만 조리하는 방법이 예전과는 많이 다르다. 서로 궁합이 맞는 음식들을 하나로 묶어 색다른 맛을 더해주는 것이다.

 

예전에 만들었던 그 흔한 된장찌개에 우렁을 넣으면 우렁된장찌개, 여러 가지 해물을 넣으면 해물된장찌개가 되어 색다른 맛을 더해주듯이, 요즈음 음식은 흔히 쓰던 재료에 어떤 재료를 덧붙여 조리하느냐에 따라 그 이름도 조금씩 달라진다. 음식궁합만 잘 맞추어 조리한다면 누구나 새로운 이름표를 단 음식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복닭도 마찬가지다. 복닭은 찬 성질을 지닌 복어와 더운 성질을 지닌 닭을 한데 묶어 백숙, 찜, 튀김, 샐러드 등으로 오물조물 조리한 음식이다. 숙취해소에 으뜸인 바다에 사는 복어와 보양식으로 사람들이 즐겨 먹는 뭍에 사는 닭이 한데 어우러져 음식으로 태어나 서로 상생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식탁엔 '복닭복닭'... 실내는 '복닥복닥'

 

"복조리를 오래 하다 보니까 하루는 문득 기존의 복조리에 다른 재료를 첨가하면 새로운 음식이 나오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복이 찬 음식이니까 여기에 더운 음식인 닭을 첨가하면 음식궁합도 맞아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음식을 만들어 보았지요. 처음에는 복닭 백숙을 만들어 보았는데 국물이 너무 시원하고 개운했습니다."

 

지하철 1호선이나 7호선을 타고 가산디지털단지에 내려 4번 출구로 나와 왼편으로 걸어가다 보면 IT미래타워 2층에 '뽁이랑 닭이랑'이란 독특한 이름표를 붙인 음식점이 하나 있다. 어찌 보면 복조리 전문점 같기도 하고, 다시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바라보면 닭조리 전문점 같기도 하다.

 

들머리에 '복닭복닭'이란 글씨가 '복'이란 크고 굵은 글씨를 빼곡히 에워싸고 있는 이 집에 들어서면 그야말로 실내가 '복닭복닭'이 아니라 '복닥복닥' 정신이 하나도 없다. 15평 남짓한 실내에 손님들이 빼곡이 들어차 식탁 위에 놓인 커다란 양푼에 푸짐하게 들어 있는 복닭을 먹느라 복닥복닥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경남 거제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영덕에서 자랐다는 이 집 주인 원성광(55)씨는 중학교를 졸업한 뒤 곧바로 식당에 취직해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조리업계를 지키고 있다. 원씨는 "옛날에는 하도 못 살았기 때문에 배가 너무 고팠습니다. 식당에 취직하면 배는 곪지 않을 것 같아 식당에 취직했지요"라며 실웃음을 날린다.

 

 

접시 위에 갓 피어난 봄꽃처럼 예쁜 복닭 샐러드

 

"복닭은 고기가 부드럽고 쫄깃한 것이 특징입니다. 특히 복어나 닭 특유의 비린 맛이 나지 않고 국물이 시원하고 깔끔하지요. 고기를 다 건져 먹고 나면 손님이 원하는 대로 면을 넣어줍니다. 칼국수를 넣으면 복닭칼국수, 수제비를 넣으면 복닭수제비, 불린 쌀을 넣으면 복닭죽이 되지요."

 

4월 16일(목) 저녁 7시. 시인 이적, 김상현 등과 함께 찾은 복닭 전문점. 주인 원씨에게 복닭을 시키자 가장 먼저 나오는 음식이 복닭 샐러드와 태운 복껍질을 소주와 함께 끓여 만든 복주 한 주전자다. 밑반찬은 따로 없다. 식탁 위에 놓인 고추냉이를 푼 간장과 초고추장, 복닭간장은 복닭 맛을 더해주는 일종의 액세서리다.

 

뜨거운 김이 무럭무럭 올라오는 복주 한 잔 따르자 옅은 노랑 빛이 참 곱고 예쁘다. 복주 한잔 입에 털어넣고 복닭 샐러드 한 점 입에 넣는다. 아삭아삭 씹히는 향긋한 채소 향과 함께 토독토독 터지는 날치 알과 철갑상어 알, 그리고 부드러운 복어 살과 쫄깃한 닭고기가 어우러지면서 입 속에 사르르 녹아내린다.

 

접시 위에 갓 피어난 봄꽃처럼 예쁜 복닭 샐러드. 이 집 복닭 샐러드에는 뜨거운 물에 살짝 데친 복어살과 포옥 익힌 닭고기 한 점, 싱싱한 날치 알과 철갑상어 알이 들어간다. 양배추, 치커리, 멜론, 오이지, 마늘, 마요네즈는 복닭 샐러드 맛을 향긋하고 고소하게 만들어주는 지원군이다.  

 

 

"어떤 음식이든 99% 만들 자신이 있다"

 

"어떤 음식이든 한번 먹어본 음식은 99% 그대로 다 만들 자신이 있습니다. 40여년 동안 조리업계에서 일하면서 거치지 않은 곳이 거의 없었지요. 포항에서 횟집, 경주에서 한식집과 호텔 주방을 거쳐 제주도에서는 일식집, 거제에서는 한식집을 했습니다. 얼마 전까지는 영덕에서 대게장사를 하다가 서울로 올라왔지요."

 

따끈한 복주 한 잔 다시 입에 털어넣고 복닭튀김 한 점 무채와 함께 입에 넣자 고소하면서 아삭아삭 씹히는 상큼한 맛이 젓가락을 자꾸 가게 만든다. 이 집 복닭튀김은 복어 살과 닭 가슴살, 채소를 함께 다져 따로 구운 뒤 녹말과 쌀가루를 살짝 입혀 지져낸다. 복닭튀김은 무채나 양파채와 함께 상추와 함께 싸먹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원씨가 "아이들 때문에 개발했다"는 복닭찜은 매콤하면서도 달착지근한 맛과 함께 어우러지는 시원한 감칠맛이 그만이다. 복닭찜은 복어와 닭고기를 한동안 재웠다가 녹말가루에 묻혀 1번 튀겨낸다. 이어 키위, 사과, 계피, 물엿, 양파 등과 함께 여러 가지 채소를 우려낸 맛국물을 은근한 불로 조려 만든 양념과 버무리면 끝.

 

"복닭을 이용해 30가지 정도 새로운 조리를 만들 수 있다"는 원씨의 이야기를 듣고 있을 때 이 집에서 가장 자랑하는 '뽁이랑 닭이랑'이 나온다. 엄청나게 큰 양푼 안에는 바다에서 달려온 복어와 뭍에서 퍼더덕거리며 달려온 닭이 서로 윙크를 하며 뽀글뽀글 끓고 있다.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침이 절로 꿀떡 넘어간다.

 

 

불황 쫓는 복닭 먹고 복 듬뿍 받으세요

 

한 잔 마시기만 하면 목이 확 뚫리는 복주 한 잔 커~ 하고 마신 뒤 국물 한 술 떠 입에 넣자 10년 묵은 체증이 쑤욱 내려 갈 정도로 시원하면서도 구수한 깊은 맛이 일품이다. 복주 한 잔 마시며 집어먹는 쫄깃쫄깃 부드럽게 씹히는 닭고기와 입에 넣으면 그대로 살살 녹아내리는 복어 살이 입을 환장하게 만든다.

 

'뽁이랑 닭이랑'은 계피와 여러 가지 채소를 오래 다려낸 맛국물에 닭 한 마리와 통감자 1개를 넣고 살짝 끓인 뒤 복어 한 마리와 가래떡을 넣어 포옥 끓이면 된다. 언뜻 생각하면 '뽁이랑 닭이랑'을 만드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인다. 문제는 맛국물이다. 기막히게 시원하고도 깔끔한 맛을 내는 맛국물에 들어가는 재료가 무엇인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복어와 닭고기를 다 건져 먹고 난 뒤 남은 국물에 칼국수나 수제비를 넣어 오랜 벗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슬슬 건져 먹는 맛도 새로운 즐거움이다. 혹 밀가루 음식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같이 앉아 있어도 걱정이 없다. 칼국수나 수제비를 넣기 전 국물을 따로 떠내 불린 쌀을 넣어 복닭죽을 만들어 먹으면 되기 때문이다. 

 

원씨는 "복닭으로 만든 여러 가지 음식에 대해 이미 상표등록을 마쳤다"라고 귀띔한다. 원씨는 "복닭에 관심이 있는 식당 주인이나 조리사가 있다면 언제든지 찾아오면 기술을 전수해 줄 수도 있고, 조리에 자신이 없다면 체인점을 내 줄 수도 있다"며 활짝 웃는다. 그 함박웃음 속에 복(福)이 절로 달겨드는 듯하다.

 

2~3만원이면 3~4명이 둘러앉아 허리띠 풀어놓고 즐길 수 있는 복닭. 오랜 경기 침체 속에 이 세상 모든 것들이 배고파 보이고, 마음까지 가난해지는 날이면 오래 묵은 벗들을 부르자. 가족들을 불러내도 좋고, 혼자 꼭꼭 숨겨둔 애인을 불러내도 좋다. 복도 주고 닭도 먹을 수 있는 복닭을 먹고 있으면 어느새 세상 시름이 저만치 사라질 테니까.

덧붙이는 글 | <유포터>에도 보냅니다


태그:#복닭, #복닭튀김, #복닭찜, #복닭셀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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