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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세대', '4050세대', '7080세대' 표현은 달라도 이 말들은 모두 60년대에 태어나 70~80년대를 성장기로 보낸 세대를 지칭하는 단어들이다. 기자도 이 세대에 속한다.

 

이 세대에 속하는 사람치고 대학가요제에 열광하지 않았던 사람이 있을까. 물론 요즘에도 매년 대학가요제는 열리고 있지만, 예전만 못하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비단 기자뿐이 아닐 것이다.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에 걸쳐 대학가요제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중요한 문화적 아이콘이었다. 변변한 볼거리가 마땅찮던 그 시절, 연말이면 꼭 빼놓을 수 없었던 중요한 프로그램이 바로 대학가요제였던 것이다. 

 

반가웠다. "지금 그대로의 모습"(86년 대학가요제 대상곡)으로의 유열과 "난 아직도 널"(87년 대학가요제 대상곡)의 김정아, 그리고 "밀려오는 파도 소리에"(78년 대학가요제 대상곡)의 김성근이 <오마이뉴스> 스튜디오에 나타났다.

 

22일 낮 1시 탁현민 한양대 문화컨텐츠학과 교수가 진행한 오마이TV 생방송 '4050 중년의 문화는 안녕하십니까?'에 출연한 것이다.

 

유열이야 가수이자 방송진행자로 한 시대를 풍미했고, 지금은 창작 뮤지컬 제작자로 잘 알려진 인물이지만, 여성 듀엣 '작품하나'의 김정아와 부산대학교 남성 중창단 '썰물'의 일원으로 활동했던 김성근은 노래만 잘 알려진, 드러나지 않았던 가수였다. 지금이야 대형 연예 기획사들이 키워낸 스타들이 빛을 발하지만 당시만 해도 풋풋하고 건강한 아마추어리즘이 존재할 수 있었을 때다.

 

한국에서 최초로 세대의 문화가 확고한 자기 정체성을 드러냈던 4050세대, 암울한 정치적 상황과 공존했던 서정적 청년문화를 선도했던 세 가수를 통해 중년에 이른 4050세대의 문화의 현주소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그 시대 살았던 사람들 모두 격변기 산다고 느꼈겠지만, 특히 우리는 그랬다"

 

[탁현민] "세 분은 모두 대학가요제 수상자들인데, 어떻게들 지내왔는지 궁금하다."

 

[김성근] "부산대 다니던 78년도에 대학가요제 나가서 수상하고, 그 뒤부터는 공연기획 일을 하고 있다. 70~80년대 부산시내 DJ들 모아 놓고 공연하는데 어떤 음악이 좋겠냐고 물어보았더니 '대학가요제 말고 뭐 있나?' 하더라. 몇 년 전 향수에 젖어서 대학가요제 출신자들 모아서 공연을 만들었는데, 관객들이 '왜 이런 공연을 이제야 만들었냐'고 난리더라. 실제로 대학가요제 출신 중에 유열, 노사연, 배철수, 임백천 정도 빼고는 (연예인으로 활동한) 사람이 거의 없다. 노래는 있는데 사람은 없었던 셈이다."

 

[유열] "시위도 많았고,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모두 격변기에 살고 있다고 느꼈겠지만 특히 우리는 그랬던 것 같다. 강변가요제는 밝고 경쾌했고 겨울에 열렸던 대학가요제는 여러 가지 서정들이 농축된 서정적인 곡들 위주였다. 그것이 우리 추억 속에 남아 있어서 그 부분을 건드릴 때 반응하는 것 같다. 요 근래 몇 년 사이에 공연을 열다섯 차례 이상 했다. 그때마다 (관객들 반응이) 참 목말라 있었구나 하고 느끼게 된다."

 

[김정아] "학교 다닐 때 시위하고 서클실 간 것밖에 기억이 없다. 공부를 한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모두들 캠퍼스에 앉아서 기타치고 노래 부르고, 생활이 음악에 젖어 있는 시절이었다."

 

[탁현민] "우리 사회에서 70~80년대는 치열한 시대였다. 한쪽에서는 화염병과 최루탄이 난무했는데, 포크와 서정이라니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다."

 

[김정아] "표현의 수단이 달랐을 뿐이다. 시위를 통하여 자신의 의견을 표출한 학생들도 있었고, 우리는 음악을 통해서 표현했다. 그 많던 금지곡들이 다 뭐를 뜻하겠는가. 표현 방법의 차이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김성근] "당시에는 대학만 나오면 취직은 다 됐다. 내가 대학 다닐 때 썰물에서 뽑는 신입생이 한 해 신입생이 3~4명밖에 되지 않았는데, 요즘에는 10명 이상 뽑는다더라. 중간에 다 취업 공부하러 나가버리니 졸업할 때까지 활동하는 친구들이 얼마 안 되는 것이다. 세상이 이렇게 각박해졌다." 

 

[탁현민] "캠퍼스 스타들이었는데, 그 시절 얘기를 듣고 싶다."

 

[유열] "당시 대학가요제는 대학생들뿐만 아니라 여중생, 여고생들도 1년에 한 번 기다리던 프로그램이었다. 내가 대상 받았던 10회 때는 이정석도 나왔는데, 학교에 가면 난리도 아니었다. 열이 오빠 팬, 정석 오빠 팬으로 나뉘어서…. 요즘 태진아, 송대관 팬들처럼 말이다. 그런 식으로 라이벌처럼 공개방송에 다니고 그랬다."

 

[김정아] "우린 여성 듀엣이었는데, '리듬 앤 블루스'란 장르에 첫 노크를 한 셈이었다. 그래서인지 기대 이상으로 많이 부각되었던 것 같다. 대학가요제에서 상을 탄 게 4학년 때였는데 졸업할 때 공로 장학금도 받았다. 학교를 빛냈다고. 몇 년 전에 모교에서 초청해서 축제 심사위원도 하고 노래도 불렀다. 대학가요제가 평생을 두고 (의미 있는) 점을 찍은 셈이다."

 

"다양함이 존중 받는 사회, 그런 배려가 있었으면 좋겠다"

 

[탁현민] "우리나라의 중장년들은 스스로가 중장년임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 같다. 그 시대의 문화 핵심 아이콘 세 분이 나왔는데 이런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유열] "우리 문화의 큰 힘이자 아쉬움이 바로 문화의 집약(현상)이다. 무서울 정도로 몰린다. 다양한 문화, 다양성이 인정받을 수 있는 그런 문화가 아쉽다. 지난 것이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라 다양함이 존중받는 사회, 그런 배려가 있었으면 좋겠다."

 

[김정아] "시대의 정서는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이 가장 잘 표현해내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신세대들의 진취적으로 발전해가는 것을 수용하고, 신세대들은 옛날 것에 대한 촌스러움, 촌스러움에서 나오는 구수함을 수용할 때 문화는 발전해 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김성근] "문화는 자연적으로 서로 수렴되어 가는 것이다. 10년 전 들었던 음악은 이해를 못 했는데, 지금 나오는 음악들은 이해가 가능하다. 자기 것에 충실하게 열심히 해가다 보면 전체적으로 균형이 맞아가는 것, 그것이 문화라고 생각한다."

 

[탁현민] "대학가요제 출신들을 보면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다. 요즘 같으면 연예 기획사에서 바로 픽업해서 스타 시스템 안에 편입될 텐데…. (대학가요제 수상을 계기로) 연예 활동하는 것은 생각해 보지 않았나?"

 

[김정아] "부산에서 대학을 다녔기 때문에 오가기가 정말 힘들었다. 하루에 4번 정도 방송을 했는데, 그런 생활을 1년쯤 했다. 갑자기 프로 세계에 들어 왔더니 무섭기도 하고, 적응도 안 됐다. 활동은 했지만 연예인이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방송국 식당에서 연예인들 보면 연예인 봤다고 좋아하고 그랬다. 그런 생활을 1년쯤 하다가 자연인으로 돌아갔다. 그 뒤에도 음악이 너무 좋아서 아쉬움이 있었는데, 얼마 전부터 두 분이 좋은 무대를 만들어 주셔서, 마치 친정 가는 것처럼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음악을 하고 있다."

 

[유열] "공연은 팬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 스스로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마치 동창회처럼. 대학가요제 동창생 같은 온갖 끈끈하고 짠한 감동이 있다. 사실 관객까지도 동창생이었던 셈이다."

 

[탁현민] "공연 활동 빼고 요즘 어떻게들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유열] "독일 동화를 가지고 창작 뮤지컬 '브레멘 음악대'를 만들었다. 한국에서는 4년 동안 11만 명 정도가 관람했고 올해에는 독일 브레멘주 정부로부터 초청도 받았다. 큰돈은 안 되지만, 꼭 좋은 공연을 독일 엄마, 아빠, 어린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반응이 좋으면 독일뿐 아니라 유럽 투어도 가능할 것 같다."

 

[김정아] "학교에 다닐 때 공부를 안 해서 그런지 늦게 상담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사람이 살면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산다는 게 참 힘든 일인데, 자기 내면보기 뭐 이런 것이다. 나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의 가족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공부를 하고 있다."

 

[김성근] "그동안 공연은 여러 번 했는데, 좋은 일은 못했다. 그래서 6월 27일 부산 사직 실내체육관에서 자선공연을 기획하고 있다. 서울과 부산에 있는 '소년의 집' 후원 공연인데, 이번에 공연 수익금 전액을 후원금으로 내놓기로 하고 공연을 준비 중이다."

 

[탁현민] 마지막으로 정치적으로는 암울했지만 문화적으로 풍요롭던 시대를 살았던 세 분들이 요즘 젊은 세대에게 한마디씩 조언을 해준다면. 

 

[유열] "정보는 전보다 훨씬 많고 공연도 많아졌는데 오히려 아날로그적인 접근이 필요한 것 같다. 친구랑 여행도 가고, 좋은 공연도 많이 보고 그런 것들이 삶을 풍요롭게 해줄 거라 생각한다.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잃지 말고 문화를 즐기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창조적 발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정아] "정말 다양한 세상이 되었다. 모든 것이 풍요한 세상이지만 그 속에서 빈곤을 느끼는 부분이 많다. 사람은 (순간순간) 선택하면서 살아간다. 정말 중요한 것은 자기에게 주어진 것들을 어떻게 올바르게 선택하면서 살 수 있는가이다. 그런 가치기준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김성근] "요즘 대학생들은 취업문제 때문에 너무 공부, 공부하는데 40~50대가 되면 그게 정답은 아니란 것을 알게 된다. 취미 생활이 없으면 그 사람은 불행한 삶을 사는 것이다. 내 얘기가 참 웃긴다 할지도 모르지만 돈은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고, 그렇게 되려면 먼저 인성이 풍부해야 한다."

 

[탁현민] "이야기를 듣다 보니 문화적 풍요가 물질적 풍요까지 낳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미국에서는 1960년대가 전후 세대 간의 문화를 처음으로 만들어 낸 시대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선 4050세대가 그랬던 것 같다. 세 분의 얘기를 들어보니 중년의 문화는 안녕하신 것 같다.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들을 만날 수 있는 공연에 가볼까 싶어진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하다."

 

다음 달 2일, 서울 올림픽 공원 88잔디 광장에서 열리는 '스프링 페스티벌'에는 유열, 작품하나, 썰물, 샌드 패블스, 노사연 등 역대 대학가요제 출신 추억의 인기가수들이 출연하는 공연이 마련된다.

 

▲ 탁현민의 이매진 - 중년의 문화는 안녕하십니까? 1부
ⓒ 김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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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탁현민의 이매진 - 중년의 문화는 안녕하십니까? 2부
ⓒ 문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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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탁현민의 이매진 - 중년의 문화는 안녕하십니까? 3부
ⓒ 김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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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유열, #작품하나, #썰물, #대학가요제, #탁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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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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