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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온 뒤끝이라 그런가? 아침햇살이 눈부시다. 나뭇가지에 모여 흉내 내기도 어려운 소리로 아침인사를 건네는 새 소리가 참 듣기 좋다. 뒷산에서 불어오는 신선한 공기는 찌뿌드드한 몸을 한결 가볍게 한다.

 

아내는 파릇파릇한 잔디밭에서 맨손체조를 한다. 아내가 붙이는 구령소리에도 신이 나 있다.

 

"하나 둘! 하나 둘!"

 

아침 공기만큼이나 아내는 기분이 좋은가 보다.

 

"여보, 이번 내린 비가 단비야! 우리 밭에 묻은 씨앗들도 이제 기지개를 켜겠죠?"

"그럼, 애태우지 말고 빨리 올라오면 좋겠어."

 

씨 뿌려놓고 가물면 밭에 나와도 재미가 없다.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는데 감감무소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봄비가 찔끔 내렸다. 양은 작았지만 그래도 밭작물에는 해갈이 될 듯싶다. 아내 말마따나 단비였다. 이번 비로 씨앗이 잘 트면 좋겠다. 며칠 진득하게 기다리면 고개를 내밀지 않을까?

 

더덕 밭에서 힘이 솟는다!

 

올 봄에 뿌린 씨앗은 아니지만 우리 밭에도 푸른 싹이 자라고 있다. 더덕이다.

 

"여보, 더덕이 언제 이렇게 자랐을까? 당신, 벌써 지주를 박았네!"

"지주를 해줘야 타고 올라가지!"

 

 

더덕 새싹들이 파랗다. 어느새 자라 키 재기를 하고 있다. 같은 밭에서 자라면서도 형님 아우 키가 제각각이다. 뿌리에서 올라온 놈은 키가 크고, 씨앗에서 눈을 뜬 녀석은 아직 어리다. 형님은 하늘을 향해 팔을 벌리고, 아우는 몸집 불리기에 부산하다. 올망졸망 모여 맑은 향기를 뽐내며 소곤소곤 정담이라도 나누는 듯싶다.

 

 

비를 맞아서 그런가? 더덕 순이 한결 싱그럽다. 좀더 자란 더덕 잎은 물방울을 보듬었다. 햇살을 받은 물방울이 보석처럼 빛난다.

 

더덕 밭에 반갑지도 않은 풀들이 섞여 자라고 있다. 아내가 주저앉아 풀을 뽑는다. 그러다 호들갑이다.

 

"더덕 순을 건들자 더덕 냄새가 나네. 아! 무슨 조화로 이런 향을 내뿜지!"

 

더덕 향이 참 좋다. 더덕은 잎이나 줄기를 자르면 끈적끈적한 하얀 액체가 나오는데, 이것에서 더덕의 독특한 향을 풍기는 모양이다. 더덕 뿌리를 깔 때 느끼는 냄새와 다름없다.

 

더덕은 가꾸면서 많은 것을 즐길 수 있다.

 

비비꼬며 감아 오르는 줄기를 보면 신비감이 느껴진다. 더덕 줄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기어오른다. 아마 1년에 2m 가까이 자라는 것 같다. 오른쪽, 왼쪽 방향으로 모두 감는데, 한 번 방향을 정해서 감으면 감는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

 

 

또 팔구월에 피는 더덕꽃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꽃의 겉모습은 흐린 연둣빛이다. 꽃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짙은 갈색이 점점이 박혀 있다. 꽃잎 끝을 뒤로 젖혀 보라색을 자랑하는 폼이 멋지다. 더덕꽃은 끝 부분이 다섯으로 갈라진 통꽃으로 종 모양이다. 슬쩍 건들면 딸랑딸랑 소리가 날 것 같다. 더덕 향기를 풍기면서….

 

"더덕 밭이 부럽네!"

 

우리 집을 찾는 손님들 중에는 더덕 밭을 보고 많이 부러워한다. 어떤 이는 더덕을 처음 봤다며 신기해 하기도 한다. 귀한 약초라도 본 것처럼 냄새를 맡아 확인한다.

 

 

우리가 텃밭에 더덕을 심은 지 올해로 3년째이다. 모를 얻어다 심었는데, 올 봄에 더 많이 퍼진 것 같다. 작년 가을에 맺힌 씨앗에서 저절로 새싹이 올라왔다.

 

엊그제 우리 집에 놀러온 옆집아저씨도 우리 더덕 밭을 탐냈다.

 

"가을엔 더덕 씨를 받아서 좀 주라구? 우리도 더덕 밭을 만들어 보게!"

"씨 받을 때까지 뭐 하러 기다려요. 모를 옮겨 심으시지!"

"모를? 그러면 더 좋고!"

"어린 모를 솎아 옮기면 일년이 빠른데요."

 

내 말에 아저씨가 기뻐하신다. 더덕은 씨를 뿌려 가꾸지만 새싹을 옮겨 심어도 잘 자란다. 아저씨는 농사일에 관해선 선생님이지만, 우리가 더덕 키우는 것은 신통방통하다고 한다. 당신네 밭을 정리하고, 한 차례 비가 더 오면 모를 옮겨가겠다고 하였다. 아저씨도 조그마한 더덕 밭을 가꿀 재미에 기대를 부풀렸다.

 

가을에 더덕이 밑을 들면 뭐 해먹을까?

 

더덕 밭에서 꼼지락거리다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아침 준비를 위해 손을 떨고 일어서며 아내가 말을 건넨다.

 

"작년, 더덕 잎을 따 삼겹살을 상추쌈과 함께 먹었던 생각이 나네. 씁쓰레한 맛이 좋았는데 좀 자라면 기대해도 되겠지?"

"그럼, 당신도 그 맛을 기억하네!"

 

우리는 어린 더덕 잎을 따서 씹어본다. 맛과 향이 참 좋다. 어디서 이 맛을 느낄 수 있을까? 봄에 따먹는 더덕 어린 잎은 나물로 최고이다.

 

아내가 입맛을 다시며 다시 말을 한다.

 

"여보, 올 가을엔 더덕 밑이 통통하겠죠?"

"글쎄, 3년이면 캔다고 그러던데, 그야 모르지!"

"밑이 실하게 들면 좋겠다!"

"뭐 해먹으려고?"

 

아내는 더덕을 까서 고추장 발라 구워먹을 생각에 입맛을 다신다. 양이 많으면 더덕장아찌도 만들어보고 싶단다.

 

아내 말을 가로막으며 내가 물었다.

 

"더덕 술은 안 담가?"

"그거야 당신이 알아서 하셔! 술하고는 나와 상관이 없으니까!"

 

우리는 캐보지도 않은 더덕을 가지고 입으로 맛난 반찬을 해먹는다. 오는 가을에 통통하게 밑이 들 더덕을 기대하면서….


태그:#더덕, #더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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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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