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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2일 자택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 탤런트 故 최진실의 영결식
 지난해 10월 2일 자택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 탤런트 故 최진실의 영결식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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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연예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며칠 전에는 사채를 갚으려고 술집에 나간 딸을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한 아버지의 사연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세상살이가 힘들고 도저히 앞이 보이지 않을 때 사람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떠올린다. "자살은 결코 해결수단이 될 수 없다"는 말로 절박한 심정을 헤아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삶의 의욕을 북돋아주기는커녕 오히려 자살을 부추기거나 도와준다면 그건 사람으로서 할 짓이 아니다.

법은 자살을 돕거나 자살의 원인을 제공한 자에게 엄중한 책임을 묻는다. 이는 군대, 교도소 등 국가기관에서 발생한 자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동반자살 시도, 가까스로 목숨은 건졌지만...

우선, 형법 252조를 보자.

①사람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그를 살해한 자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②사람을 교사 또는 방조하여 자살하게 한 자도 전항의 형과 같다.

1항은 촉탁·승낙에 의한 살인죄, 2항은 자살방조·교사죄이다. 그 중 실의에 빠진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대표적인 죄가 자살방조죄이다.

[사례 1] 삶의 의욕을 잃은 ㄱ씨는 인터넷 자살 카페에 가입하였다. 회원들과 '정보'를 공유하던 그는 고통 없는 자살을 몇 차례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그러던 중 카페 회원인 ㄴ씨가 "자살하는 법을 알고 있다. 난 장애인이라 혼자서는 실행할 수 없으니 나를 끼워준다면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제의하자 또다른 회원인 ㄷ씨와 함께 동반자살하기로 뜻을 모았다.

ㄱ씨와 ㄷ씨는 몸이 불편한 ㄴ씨를 차에 태운 채 대관령으로 향했다. 인적 드문 곳에 차를 세운 세 사람은 ㄴ씨가 시키는 대로 특정 화학약품 두 가지를 절반씩 섞은 후 여기서 발생하는 가스를 들이마셨다. 잠시 후 ㄴ씨와 ㄷ씨는 사망했으나 고통을 참지 못한 ㄱ씨는 차에서 뛰쳐나왔다.

ㄱ씨는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지만 법의 심판을 피할 수는 없었다. 특히 신체적 결함 때문에 삶을 포기하려던 장애인을 가족 몰래 자살 장소로 안내하고, 그에게 자살 약품까지 제공한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행위였다.

"자살도구 제공하거나 조언·격려했다면 자살방조 처벌"

[사례 2] ㄹ씨와 ㅁ씨는 직장동료였다. 친하게 지내던 두 여성은 동성애 관계로 발전했다. 그러던 어느날 ㄹ씨는 ㅁ씨에게 다른 남자와 결혼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한다. 충격을 받은 ㅁ씨는 "헤어질 수 없다. 차라리 우리 자살하자"고 말했고, ㄹ씨도 "알았다"고 답했다. 둘은 야산으로 향했는데 앞서 가던 ㅁ씨는 목을 매어 숨졌다.

법원은 ㄹ씨에게 자살방조의 책임을 물어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ㄹ씨는 "ㅁ씨가 말릴 사이도 없이 자살을 시도했으므로 억울하다"고 항소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ㄹ씨가 동반 자살에 동의했으며, 현장에까지 따라가서 자살 도구를 사용하는 모습까지 보여준 점에 비추어볼 때 자살을 도운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한 것이다.

판례는 자살방조죄를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자살방조죄는 자살하려는 사람의 자살행위를 도와주어 용이하게 실행하도록 함으로써 성립되는 것으로서, 그 방법에는 자살도구인 총, 칼 등을 빌려주거나 독약을 만들어 주거나 조언 또는 격려를 한다거나 기타 적극적, 소극적, 물질적, 정신적 방법이 모두 포함된다" (대법원 2005도 1373 판결 등)

실제로 ㄹ씨와 ㅁ씨처럼 현실에서 사랑의 결실을 맺지 못하거나 돈 문제, 가족문제 등으로 세상의 장벽이 너무 높다고 느껴서 동반자살을 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인터넷이 자살의 통로가 되기도 한다. 혼자서는 두렵게 느껴지는 자살을 여럿이 힘을 모아 결심하는 공간으로 악용되는 것이다.

법원 "자살 실패한 사람 엄벌하면 삶의 의욕 꺾을 수 있다" 감형

동반자살은 일반 범죄와 달리 복잡한 성격을 띤다. 우선 성공(?)한 사람은 처벌할 수 없고, 실패한 사람에게만 책임이 돌아간다. 또한, 자살을 부추겨 함께 실행한 사람을 가볍게 처벌하는 건 용납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자살에 실패한 이후 마음잡고 살아보고자 노력하는 사람에게 엄한 처벌을 하는 것도 어렵다.

작년 서울고등법원의 판결(2008노 657호 재판장 이기택)은 이러한 고민의 흔적이 드러난다. 이 사건의 피고인은 독약을 구입한 후 자살을 망설이다가 인터넷 사이트에서 알게 된 피해자들에게 독약을 제공한 죄로 1심에서 중형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판결에서 "자살은 도덕적 사회적 비난을 피할 수 없고, 하물며 자살방조 행위는 방치할 경우 생명경시 풍조가 만연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비난 가능성과 처벌 필요성이 매우 높다"고 전제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오늘날 자살방조의 행태는 동반자살을 시도하였다가 살아남은 경우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서로 상대방의 자살에 대한 방조행위가 됨에도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처벌되는 면이 없지 않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어서 "이미 자살을 포기하고 삶의 의욕을 불태우는 사람을 너무 엄하게 처벌하는 것은 다시 한 번 삶의 의욕을 꺾는 것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하며 피고인의 형을 감형했다.

어린 자식과 동반자살 시도했다면 살인죄

자살방조가 자살을 결심한 사람의 자살 실행을 돕는 것이라면, 자살교사는 자살 의사가 없는 사람에게 자살을 결심하게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빚쟁이가 "자살해서 보험금으로 빚을 갚으라"고 하는 식으로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유도했다면 자살교사죄가 인정될 수 있다.

만일 죽을 생각이 없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동반자살을 거짓으로 제의했다면 어떻게 될까. 이때는 위계에 의한 살인죄가 성립하여, 일반 살인죄와 똑같은 형벌(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을 받는다.  

어린 자식들과 함께 동반자살을 시도한 사람 역시 죄가 무겁다. 판단능력이 없는 어린이들에게 자살을 유도한 것은 명백한 살인죄에 해당한다.

살인 충동을 느끼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이들의 심리를 이용한 사기 범죄도 기승을 부린다.

[사례 3] ㅂ씨는 인터넷 상에서 이른바 '자살 사이트'를 알게 되었다. 그는 피시방에서 자살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청산가리를 보내주겠다고 속여 1인당 10만-20만 원 가량을 받았다. 하지만 ㅂ씨는 청산가리를 전혀 갖고 있지 않았고, 구할 능력도 보내줄 의사도 없었다. 자살을 결심한 사람들을 상대로 사기를 친 것이었다.

ㅂ씨는 쇠고랑을 찼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며칠 사이 ㅂ씨의 말을 믿고 송금한 사람만 수십 명에 이른다는 사실이다. 자살용 독약의 수요가 의외로 많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이다. 한편으론, ㅂ씨의 죄질은 나쁘지만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자살을 막은 것은 아닌지 엉뚱한 생각도 든다.

"자살과 군대생활 인과관계 있다면 국가가 손해배상"

지난해 10월 14일 국무총리행정심판위원회(행정심판위)는 군 복무 중 구타나 가혹행위로 자살한 경우라면 국가유공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 결정으로 96년 10월 22일 선임대원들의 가혹행위 등으로 자살하게 된 박정훈 이교가 국립묘지에 안장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14일 국무총리행정심판위원회(행정심판위)는 군 복무 중 구타나 가혹행위로 자살한 경우라면 국가유공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 결정으로 96년 10월 22일 선임대원들의 가혹행위 등으로 자살하게 된 박정훈 이교가 국립묘지에 안장되고 있다.
ⓒ 장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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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나 교도소 등 국가기관에서 발생하는 자살사건에 대해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판결도 나오고 있다.

[사례 4] ㅅ씨는 대학을 휴학하고 군에 입대했다. 그런데 상급자들은 "근무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 "군기가 빠졌다"는 등의 이유로 ㅅ씨를 상습으로 폭행, 협박했다. 부모들이 부대를 방문하여 항의까지 하였으나 달라진 것은 없었다. 결국 그는 군생활 넉 달만에 죽음을 택했다.

이 사건으로 상급자들은 처벌을 받았고. 지휘관들은 징계를 받았다. 이와는 별도로 법원은 ㅅ씨의 유족들에게 국가가 손해배상을 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ㅅ씨의 자살이 군대생활과 인과관계가 있다고 본 것이다.

법원은 ▲부대의 지휘관들이 ㅅ씨가 폭행당한 것을 알면서도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으며 ▲자살 등 극단적인 행동을 할 가능성에 대비하지 않는 등 감독을 소홀히 하였고 ▲폐쇄적인 군대 사회의 폭행, 협박의 의미가 일반사회와는 크게 다르다는 점 ▲ㅅ씨가 자살할 다른 원인을 발견할 수 없는 점 등을 그 근거로 제시했다.

비슷한 사례는 교도소에서도 있었다.

[사례 5] 소년범인 o군은 같은 방의 재소자와 몸싸움을 했다는 이유로 독방에 수용되었다. 더구나 교도관은 o군을 수갑과 포승줄로 묶은 채로 가두었다. 식사을 하거나 대소변을 볼 때도 그 상태였다. 소년은 혼자서 수갑과 포승을 풀은 후 포승을 이용하여 자살하였다. 무려 27시간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법원은 "별다른 소란 없이 조사에 응하고 식사를 하는 등 더 이상 계구를 사용할 필요가 없었는데도 그가 자살한 상태로 발견되기까지 무려 27시간 동안이나 계구를 사용한 것은 필요한 한도를 넘은 것"이라며 "이러한 위법한 조치에 국가가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고 장자연씨, 무엇이 자살을 부추겼나

고 장자연씨 자살 사건을 두고 수사가 한없이 더디기만 하다. 수사기관이 진실을 밝혀낼 의지가 있는 것인지 끊임없이 의문이 제기된다. 최근에는 조선일보사가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 공개를 문제삼아 이종걸 의원 등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면서 사건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만 같다. 

장씨에게 술자리와 잠자리를 강요한 사람이 누구인지, 또한 접대를 받은 사람은 누구인지, 또한 이러한 강요가 장씨의 죽음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밝혀져야 한다. 아울러 관련자들은 법에 따라 엄하게 처벌해야 할 것이다. 목숨을 끊어서 자신의 심정을 드러냈던 젊은 연기자의 안타까운 죽음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일이다.

도대체 무엇이 장씨의 자살을 부추겼을까. 유사한 비극이 또 생기지 않게 하려면 살아 있는 사람들이 진실을 밝혀야 한다.


태그:#자살, #장자연, #법원, #동반자살, #자살방조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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