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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불황으로 프랑스 실업률이 고공행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설상가상으로 기업들이 인원 감축이나 비용 절감을 이유로 아시아 국가로 공장을 이동하거나 공장을 폐쇄하겠다는 등의 조치를 잇달아 내놓자 노동자들이 기업주를 감금하거나 간부에게 계란을 투척하는 등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프랑스 실업률은 현재 8%로 증가해 실업자 수 220만 시대를 열었다. 이는 1980년대 이후 최고치다. 특히 1월 신규실업자 8만6천명, 2월 8만600명 등을 기록하고 있어 조만간 300만 명이 실업으로 고생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이 프랑스 내 신규채용을 통해 실업률을 줄이기는커녕 기존 사업장 규모마저 축소하거나 폐쇄하고 아시아 시장으로 이전하려 하자 노동자들의 반발이 극에 달한 것.

"흑자 봤으면서 감원?"... 성난 노동자들, 기업주·간부 감금 잇달아

3월 12일, 소니-프랑스 기업주 세르즈 포셰(Serge Faucher)는 랑드 지방의 공장 가동 중지 발표를 한 직후, 노동자들에 의해 하룻밤 동안 감금됐다.

노동자들에게 의해 감금됐다가 풀려난 프랑스 3M의 간부. <USIENNOUVELLE> 보도.
 노동자들에게 의해 감금됐다가 풀려난 프랑스 3M의 간부. <USIENNOUVELLE> 보도.
ⓒ Usiennouvel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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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에는 프랑스 중부지방 루아레에 위치한 약품회사 3M에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3M 노동자들은 회사 측이 공장 근로자 235명 중 110명을 감원하겠다고 발표하자 3월 20일부터 파업에 돌입했다. 그러나 사측으로부터 아무 반응이 없자 파리 근교 세르지에 위치한 본사로 찾아가 회사 간부를 감금했다.

3M은 2008년에 8.2%의 매상을 올려 많은 이익을 냈음에도 직원 감원 계획을 발표했다가 위와 같은 일을 당했다. 노동자들은 감원 예정 직원에게 24개월 휴가 인정, 장기근속 직원에게 추가 보상금 지급, 종업원 신분보장 등을 요구로 내걸고 협상을 제안했다.

감금됐던 간부는 24시간 만에 풀려났는데, 풀려난 뒤 의외의 진술을 남겼다.

"이들은 나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 놓여있다. 여기로 오면서 이런 일이 있으리라 짐작했다."

그르노블에 위치한 미국계 엔진 제조업체 카테르필라(Carterpillar)에서도 3월 31일, 회사 간부 5명이 감금됐다. 이 업체는 지난 2월 13일, 전년도 주문이 55% 감소돼 총 종업원 2500명 중 733명을 감축하겠다고 발표했다가 노동자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노조는 해고수당과 자발퇴직수당, 부분실업 보상금 금액을 놓고 노사 협상을 벌였으나 타협점을 찾지 못하자 3월 30일 파업에 돌입한 데 이어 31일, 프랑스 디렉터 등 5명의 간부를 사무실에 감금했다. 회사간부들을 감금하면서 노동자들이 남긴 말은 이랬다.

"우리는 깡패도 아니고 파괴자도 아니다. 우리는 사주의 경영방식과 아이디어에 맞서 싸우고는 있지만 사람들은 존경한다. 우리가 간부들을 가두고만 있는 것은 아니고 동시에 보호하고 있기도 하다."

30여 명의 경찰이 현장에 출동하고, 회사 측은 "협박 하에 이뤄진 계약은 아무 법적 효력이 없다"고 맞섰으나 노조는 "작년에 350억 달러(260억 유로)의 이익을 낸 회사가 거의 30%에 해당하는 프랑스 종업원 인원 감축을 시행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분노했다. 감금된 간부 중 심장마비를 앓고 있는 한명의 간부를 제외한 나머지 4명은 이날 사무실 바닥에서 밤을 지새운 뒤 풀려났다.

이밖에 4월 7일 저녁, 프랑스 중부지역 벨갸르드에 있는 영국계 회사 스카파(Scapa)에서도 4명의 간부들이 감금됐다가 풀려났다. 4월 9일에는 디종에 있는 스위스계 초콜릿 회사에서 노동자들이 해고에 반대하며 공장장을 감금하려 했다가 노조에 의해 보류되는 일도 있었다. 이유는 초콜릿 수요가 많은 부활절 연휴를 피하자는 게 이유였다.

쁘렝땅백화점 소유주는 택시에 감금, 공장장 얼굴엔 계란 투척

콩티낭탈 공장장이 노동자들이 던진 계란을 피하고 있다.
 콩티낭탈 공장장이 노동자들이 던진 계란을 피하고 있다.
ⓒ desourcesu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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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주나 사측 인사들을 향한 노동자들의 분노표출은 감금뿐이 아니었다. 3월 30일, 타이어 제조공장 콩티낭탈 노조는 사측이 1120명 직원들에게 공장 폐쇄를 발표하자 즉각 파업에 돌입, 이들을 설득하기 위해 연단에 올라온 공장장에게 계란을 투척했다.

노동자들이 이렇게 분노하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2년 전, 콩티낭탈 노사는 노조가 '주당 40시간 근무조건'을 받아들이는 대신, 사측은 '매달 100유로의 월급인상과 130명 신규채용, 지속적인 공장가동' 등을 약속한 바 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공장폐쇄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공장 측은 '근거 없는 소문'이라고 일축해 오다가 3월 30일 갑작스레 공장 폐쇄를 발표한 것.

공장을 계속 가동시키기 위해 공장 측에서 제안한 모든 조건을 받아들였던 노동자들에게 이건 하늘이 무너지는 배반이었다. 콩티낭탈 공장은 2006년 5600만 유로, 2007년 4700만 유로, 2008년 2800만 유로의 수지를 낸 바 있다.

또 31일, 구치, 프낙, 쁘렝땅 백화점, 콩포라마 대가구점 등의 소유주인 PPR 기업주 프랑수아 피노는 1시간 동안 택시에 감금되기도 했다. 지난 2월 PPR이 발표한 1800명 인원감축안에 따라 프랑스 대형서점 프낙에서만 400명, 콩포라마 대가구점에서 2010년까지 800명 감원이 예정되자 이에 불만을 품은 노동자 50여명이 벌인 일이었다.

펄쩍 뛰는 사르코지와 여당... 나머지는 "노동자들 이해한다"

노동자들에 의한 기업주 감금 사례가 연이어 일어나자 정치권도 술렁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정치인은 세골렌 루아얄 전 사회당 대선후보.

루아얄은 4월 초, <주르날 뒤 디망슈>와의 인터뷰에서 "사장 감금은 힘없고 짓밟히고 무시당하는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전달하는 방법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정계에 파문을 일으켰다. 그러나 루아얄은 "(그 일이) 합법적인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여당인 UMP(대중운동연합)의 크자비에 베르트랑은 루아얄의 발언에 대해 "받아들일 수 없는 발언"이라며 강하게 반박했다. 그러나 중도파인 프랑수아 바이루는 "진짜 폭력과 노동자들이 절박한 상황에서 간부를 감금하는 사태를 동격으로 취급하면 안 된다"며 루아얄 측을 지지했다. 사회당수 오브리도 "사회적 폭력과 야만성이 이런 행동을 불러일으켰다"고 말함으로써 여당을 제외한 정치권 모두가 노동자들의 편에 섰다.

반면, 사르코지 대통령은 펄쩍 뛰었다.

"사람을 감금한다는 게 무슨 얘긴가? 우린 지금 법의 국가에서 살고 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

그러나 사르코지의 이 같은 발언은 대중들로부터 외면 받았다. 왜냐면 그가 대선 후보였던 지난 2007년 4월, 성난 어부들 앞에서 다음과 같은 연설을 했었기 때문.

"누구나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면 폭력을 사용하게 된다. (중략) 우리 공화국에선 어떤 폭력도 용서할 수 없지만 경제적, 사회적 죽음을 당하지 않으려는 어부들의 폭력과 깡패들의 아무 이유 없는 폭력이 같지 않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프랑스인 다수도 "있을 수 있는 일"

"공장폐쇄 반대"
 "공장폐쇄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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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수의 프랑스 인들도 노동자들의 이런 행위에 공감을 표했다.

"최근에 공장 폐쇄 발표나 사회적 경제 플랜으로 인해 회사 사장들이 감금당하는 사례가 여러 군데에서 발생했다. 이 사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누벨옵스>가 4월 1일과 2일에 걸쳐 1012명의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45%가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답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답한 50%와 근소한 차이를 기록한 것.

이들을 직업군으로 구분해보면 생산직 노동자 56%와 사무직 노동자 50%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대답한 데 비해 간부와 자유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40%만 가능한 일이라고 대답했다.

주간지 Paris Match의 여론조사 결과는 더 파격적이었다. 여론조사기관 Ifop에서 같은 주제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30%가 '동의한다', 63%가 '이해한다'고 밝힌 것.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밝힌 사람은 7%에 불과했다.

사업주를 감금하거나 계란을 투척했던 노동자들의 요구는 3M을 제외하고는 상당 부분 수용됐다. 이들은 이를 위해 최소 24시간 이상 사업주나 간부들을 감금했지만 많은 프랑스인들은 합법․비합법을 떠나 이들이 '어떤 처지'에서 이런 극단적인 행위를 하는지에 대해 먼저 이해하려 했다. 이전까지 노동자들의 감금이 벌어진 사업장에 무장경찰을 투입했던 경찰 또한 성난 노동자들을 무리하게 진압할 경우, 더 큰 저항을 불러올 수 있다고 보면서 관망하는 듯하다.

어찌 보면 프랑스이기에 가능한, 너무나 프랑스적인 모습이다.


태그:#프랑스, #사업주 감금, #계란투척, #경기 불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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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자유기고가, 시네아스트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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