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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한 봄의 햇살이 비치는 4월은 대학생이라면 남녀가 삼삼오오 모여서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에 놀러가기 딱 좋은 날이다. 엠티 시즌이라고 불릴 정도로 4월 초순에 관광지에 있는 숙소에는 빈방이 없다.

내가 활동하고 있는 인문학회 '카르마'라는 모임에서도 엠티를 갔다. 도시에서 매일 살아가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에 갈 생각을 하니 지난 한 주가 너무 즐거웠었다. 그리고 올해 모임에 들어온 09학번 새내기들과 함께 술을 마시며 날밤을 샐 생각을 하니 엠티 전 날에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경치 좋은 곳에 엠티를 가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모임에 회장을 할 때는 운문사, 송정 등 경치 좋은 곳에 찾아가서 하루 재미나게 놀고 오는 것이 엠티였다. 하지만 이번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형, 이번 엠티는 이전 엠티랑 달라! 경치 좋은 곳에 가서 회원들이랑 술 먹고 노래 부르고 노는 것도 좋지만 이번에는 다른 것도 할 것 같아. 부산 연제구 연산동에 물만골 공동체라고 알지? 철거민들이 직접 토지를 사버려서 철거 투쟁에서 승리했던 그 곳 말이야. 거기로 갈꺼야."

물만골 공동체와 만나다

10일 저녁 인문학회 카르마 회원들과 부산에 있는 물만골 공동체로 갔다. 마을 간사님의 이야기를 듣기 전엔 단지 산동네의 공기 좋은 마을 같았다. 어릴 때 내가 살았던 부산 범일동 안창마을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마을에 도착하여 마을회관에서 마을 간사님을 만날 수 있었다. 처음 뵙는 분이었지만 학생들의 방문을 매우 환영하셨다.

"마을에 학생들이 올라온 경우는 정말 오랜만인 것 같아요. 한창 재개발 이야기가 돌고 철거투쟁이 진행될 때 학생들이 많이 찾아왔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2000년대 접어서 학생들이 이렇게 온 경우는 드물었어요. 정말 반가워요. 여러분들 보니 내가 여러분인 시절이 생각나네요. 노동 현장에서 노동운동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네요. 그 때 대학생 친구들이랑 맑스, 정치철학 등 불온서적이라고 불리는 책을 많이 공부 했었는데 요즘은 그런 책 안보죠?"

"요즘에도 그런 책 봐요. 저희가 좀 구식이죠? 인문학 학습한다고 모인 친구들이라 책을 가리지 않고 이런저런 책을 많이 봐요."    

마을 간사님과 짧은 담소를 나누고 함께 하루를 머물게 될 숙소로 이동했다. 카르마 집행국에서 준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전에 간사님이 마을에 대해서 짧게 소개해주셨다.

"물만골 공동체는 용산 철거민 사태와 비슷하게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어 철거 투쟁을 치열하게 진행했던 곳이었습니다. 1991년부터 2000년 초반까지 죽기 아니면 살기로 싸웠던 기억이 납니다. 2000년대 초반에 주민들이 여기 토지를 공동 매입하여 철거 투쟁에서 승리했습니다. 투쟁이 승리하고 '전체 주민의 참여로 가꾸는 지역이 중심이 된다'라는 정신을 가지고 마을을 가꾸기 시작했습니다. 2002년도에 환경부에서 생태마을로 지정될 정도로 전국적으로 유명한 마을이 되었어요. 얼마 전 MBC 드라마 '신데렐라맨'을 촬영하기도 하고 영화 <1번가의 기적>의 촬영 장소이기도 해요."

마을에 대해 소개하시다가 간사님은 여러분의 시간을 너무 많이 뺏는 것 같아 짧게 한 마디 하고 가겠다고 하셨다.

"마지막 한 마디만 하고 갈께요. 이번에는 마을에 대해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소개할 수 있는 시간이 마련되지 않아서 매우 아쉽네요. 하지만 이번 만남을 계기로 대학생 여러분들이 성장과 개발이 판치는 세상에 생태와 공동체에 대해서 실험하고 있는 우리 마을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았으면 좋겠어요"

"아직 많이 모르는구나"

뇌 구조 그림을 다 그리고 회장이 중간에서 뇌 구조 맞추기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뇌 구조 그림을 다 그리고 회장이 중간에서 뇌 구조 맞추기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 배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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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간사님은 일이 있으셔서 간단한 마을 소개 뒤에 내려가셨다. 시간이 8시가 되도록 저녁을 먹지 못해 밥을 먹고 준비된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이번 엠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프로그램은 '타인의 뇌구조 그리기' 였다. 어떻게 진행하는 게임이냐면 각자 뇌의 그림이 있는 A4 종이 한 장을 가진다. 그리고 제비뽑기를 통해서 다른 사람의 이름을 뽑는다. 마지막으로 뽑은 사람의 뇌에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뇌 그림이 있는 A4용지에 표현하는 것이다.

나는 저녁 먹었던 그릇을 설거지 한다고 참가하지 못했다. 하지만 다른 회원들이 참가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재밌었다. 많은 회원들이 뇌 구조를 그리는데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뭘 써야 하는지 고민만 10분 이상 하는 듯 보였다. 꼭 학교에서 시험 치는 모습 같았다.

15분쯤 지나 회장이 회원들의 뇌 구조를 걷어서 하나하나 읽고 보여주며 누군지 맞추는 시간을 가졌다. 어떤 회원은 다른 회원의 태도 하나하나를 기억하며 뇌 구조에 표현하기도 했다. 반면에 한 가지 특징으로 모든 칸을 메웠던 회원도 있었다.

뇌 구조 그리기를 하는 동안 분위기는 매우 화기애애했다. 하지만 끝나고 나서 회원들이 이런 애기를 했다.  

뇌 구조 그리기를 끝내고 자신의 뇌 구조 그림을 들고 있는 우XX  회원
 뇌 구조 그리기를 끝내고 자신의 뇌 구조 그림을 들고 있는 우XX 회원
ⓒ 배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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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회 카르마 이XX
"꽤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였는데 막상 뇌 구조 그리기를 하니까 '아 아직 많이 모르는 구나'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이 기회를 통해서 관심을 더 가져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인문학회 카르마 김XX
"이 게임을 하고 나니 그 친구에 대해 겉으로만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앞머리, 옷 등 그 친구의 겉모습만 기억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나 자신 스스로 주위에 있는 사람에게 조금 더 관심을 가져야 겠다는 반성을 하는 시간이었어요. 다음에 할 때는 겉모습뿐만 아니라 요즘 그 친구가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지도 꼭 표현 해 볼 꺼에요."

나와 다른 타인에 대해 알아갔던 카르마 엠티

물만골 공동체에서 빌렸던 숙소 앞에서 인문학회 '카르마' 회원들의 단체 사진
 물만골 공동체에서 빌렸던 숙소 앞에서 인문학회 '카르마' 회원들의 단체 사진
ⓒ 배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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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구조 그리기를 끝내고 인문학회 카르마 선후배들이 옹기종기 한 방에 모여서 맛있는 음식과 함께 술을 마셨다. 대학 엠티에 가면 술자리에 꼭 빠지지 않는 것은 술 먹기 게임이다. 하지만 카르마 회원들은 게임보다 이런저런 애기를 하며 술자리를 이어나갔다. 뇌 구조 그리기에서 다른 사람의 뇌 구조에 많은 것을 채워주지 못해서일까 카르마 회원들은 각자 타인을 알아가기 위해 밤새 노력하였다.

이번 엠티는 회장의 말대로 경치 좋은 곳에 놀러 가는 엠티가 아니었다. 나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빈민 공동체의 이야기를 듣고 나의 삶에 대해 고민하는 엠티였다. 그리고 개인의 안락함을 위해 살면서 놓치는 주위에 있는 사람에 대한 관심과 소통에 대해 성찰을 했던 엠티였다.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 단지 물만골 공동체에서만 가능한 경험이 아니다 라는 것을 카르마 회원들이 느꼈으면 좋겠다. 학교에 돌아가서도 카르마 회원들이 엠티 때 배운 값진 것들을 실천했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다음 블로그 뉴스에도 송고합니다.



태그:#엠티, #인문학, #물만골, #철거민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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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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