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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9일 일본 문부과학성의 교과서 심의검정을 통과한, 이른바 지유샤 판 우익교과서 '중학 역사교과서'가 한국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일본 언론들은 과거 2005년의 '새로운 역사교과서' 출간 당시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단신으로만 취급하고 있다.

 

언론만 그런 게 아니다. '어린이와 교과서 전국네트워크21' 등 대표적인 시민단체들도 과거 2차례에 걸친 반대 운동에 비해 조용한 분위기다. 지난 5일에는 북한의 자칭 '위성' 발사도 있었으니, 꽤나 화젯거리가 될 만한 소재임에도 이런 '듣보잡' 취급을 당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일본 언론이 '지유샤판 우익교과서'에 주목하지 않는 이유

 

먼저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하 '새역모')의 내부분열이다. 한국에서는 제대로 보도된 바가 없지만, 지난 2005년 이후 새역모는 출판사였던 후소샤(후지산케이그룹 산하)와 판권 및 저작권 문제를 둘러싸고 상당한 내홍을 겪었다.

 

당시 후쇼샤는 교과서 채택률이 불과 0.39%에 그치자 그 원인으로 "교과서의 내용이 너무 우익적이다, 조금 부드럽게 바꿀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약 1년간의 줄다리기 끝에 2007년 2월 26일, 후소샤는 "새역모와의 관계를 끊겠다"는 내용증명 통지문을 발송했다.

 

그 후 후소샤는 자신들이 100% 출자한 '이쿠호샤(育鵬社)'라는 교육서적 전문 출판사를 만들고, 대표이사로 후소샤의 가타기리 마쓰키 사장을 앉혔다. 당시 자본금은 3억 엔으로, 신규 출판사로서는 상당한 거액을 투입한 것이었다. 이후 가타기리 사장은 "새로운 교과서 서적을 출판할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이쿠호샤가 공식적으로 간판을 내걸자 새역모의 몇몇 이들도 '노선 차이'를 이유로 새로운 단체 '교과서 개선의 모임'(정식명칭은 '개정교육기본법에 기반한 교과서 개선을 추진하는 유식자들의 모임', 이하 '교개모')을 만들고, "우리들이 만드는 새 교과서는 이쿠호샤에서 발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첫 번째] 후소샤-새역모 결별 ... 새역모 내부 분열

 

이러한 후소샤의 '절연' 통지문과 이후의 행적에 대해 새역모 모 인사는 당시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만든 사람들의 의사와 전혀 관계없이 일방적으로 관계를 끊고, 또 새로운 출판사를 통해 우리들이 일구어낸 업적을 가로챈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냐"면서 법적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새역모는 약 4개월이 지난 6월 21일, 일치단결을 생명으로 여기는 일본의 보수우익으로서는 이례적으로 "10년에 걸쳐 우리들과 관계를 맺어온 후소샤의 행위는 신의를 저버린 것으로 저작권법 위반 소송을 내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이로 인해 후소샤가 2005년에 낸 '새로운 역사교과서'는 저작권 효력이 끝나는 2010년 3월 이후부터는 판매중지가 된다.

 

후소샤는 이러한 상황을 예상하고 발 빠르게 새로운 출판사를 설립, 새역모의 중추적 인물이었던 야기 히데쓰구(47, 일본교육재생기구 이사장)가 중심으로 있는 교개모를 끌어들인 것이다.

 

새역모에 의하면 "(같은 후지산케이 그룹의) <후지TV> 히에다 히사시 회장은 '돈은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으니 (새역모와 상관없이) 새롭게 다시 만들어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하니 후지산케이 그룹의 교과서에 대한 집념이 얼마나 대단한지 엿볼 수 있다.

 

 

[두 번째] 지유샤는 사회주의 계열의 소규모 '듣보잡' 출판사

 

이번 새역모 역사교과서가 주목받지 못한 두 번째 이유는 출판사에 있다.

 

'지유샤(自由社)'는 후소사의 상대가 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출판사다. 기업들의 매출매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놓은 <제국 데이터 뱅크>에 의하면, 지유샤의 2006년 매상고는 2천5백만 엔에 불과했다. 일본 출판업 업종에 등록되어 있는 2691개사 중 2445위밖에 안 되는 소규모 출판사인 것.

 

또 법적인 문제도 있다. 일본의 '의무교육제학교 교과서 도서의 무상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교과서 편찬에만 몰두할 수 있는 전임 편집자가 5인 이상 상주할 것"을 조건으로 달아 놓고 있다. 그런데 '도쿄 상공 리서치'에 등록된 지유샤의 최신기업정보를 보면 정규사원은 불과 2명뿐이다. 정식 직원이 아닌 아르바이트를 동원해 작업했거나, 새역모 인사들이 상주하면서 작업했을 경우, 엄밀하게 보자면 법을 어긴 것이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보수인사들의 신경을 거슬리게 한 것은 지유샤의 이념적 색깔 때문에 그렇다. 지유샤의 대표이사인 이시하라 호기(87)는 이념적으로 사회주의자로 분류되며, 지난 1979년부터 1993년까지 주일한국대사관의 홍보잡지 <한국문화>를 발간하는 등 대표적인 친한, 친중, 친러 인사이다.

 

그는 지유샤가 발행한 정기간행물 <자유>(2008년 2월 폐간)를 통해 몇 번이고 "태평양 전쟁 책임은 천황에 있다" "지금 일본은 미쳐가고 있다" 등의 좌파적 표현을 해왔음은 물론, 독도를 '다케시마'가 아닌 '독도'라고 표기하는 등 새역모의 이념과는 전혀 다른 입장을 보여왔다.

 

때문에 "지유샤가 과연 새역모의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발행할 자격이 있는가"라는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

 

[세 번째] 진짜배기 일본 우익교과서는 2013년에 나올 이쿠호샤판

 

마지막 이유로 이번 검정판이 2년제 시한부 인생이라는 점이다.

 

문부과학성은 지난 3월 28일 '신학습지도요령'(이하 지도요령)을 발표했는데 이에 따르면 중학교의 경우 2012년부터 새로운 학습요령이 시행된다. 즉 4년에 한번 있는 기존의 교과서 검정제도가 올해 실시되어 통과된다 하더라도 2010-2011년까지 2년간만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검정신청에 이쿠호샤 등 다른 기존의 출판사들이 신청을 하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결국 '새역모'의 이번 '지유샤'판 교과서 역시 채택을 바라고 신청한 것이 아니라 조직의 건재함을 과시하고, 검정통과의 기준을 재확인해 보려는 것이 불과하다는 것이다.

 

교육문제 평론가 아키하라 슈이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2012년에 신학습지도요령이 발표되고 난 뒤 있을 2013년 교과서 검정을 눈여겨봐야 한다. 지유샤가 과연 얼마나 지탱할지 의문도 있지만, 새역모 자체가 워낙 단단한 조직이라 2013년에도 교과서를 낼 것이다. 이쿠호샤도 물론 새로운 교과서를 출판할 것이니, 결국 보수우익적인 <대동아 공영권 긍정 사관>에 따른 새역모 교과서가 2종류 나온다는 것이다. 보통 8~9개 출판사가 신청을 하는데, 비율상 20-25%정도 되는 셈이다. 채택률도 당연히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일본의 교과서 왜곡에 제대로 대응하려면, 2013년을 대비한 장기 플랜이 필요하다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태그:#일본 우익교과서, #새역모, #후쇼샤, #지유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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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부터 도쿄거주. 소설 <화이트리스트-파국의 날>, 에세이 <이렇게 살아도 돼>, <어른은 어떻게 돼?>, <일본여친에게 프러포즈 받다>를 썼고, <일본제국은 왜 실패하였는가>를 번역했다. 최신작은 <쓴다는 것>. 현재 도쿄 테츠야공무점 대표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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