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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 재보궐 선거는 18대 총선 이후 처음으로 치러지는 국회의원 선거다. 선거구는 5개 지역이다. 영남(경북 경주, 울산 북구)이 2곳, 호남(전주 덕진, 전주 완산갑)이 2곳, 수도권(인천 부평을)이 1곳이다.

 

선거는 구도다. 게다가 재보선은 원래 집권당에 유리할 게 없다. 한나라당은 일찌감치 '경제 살리기'를 내세웠다. 박희태 대표조차 '경제 살리기 올인'을 명분으로 출마를 포기했다. 반면에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 1년 평가'를 선거구도로 삼고 있다.

 

한나라당은 영남 2곳과 수도권 1곳 중에서 2~3곳을 이겨야 체면을 세울 수 있다. 반면에 민주당은 호남 2곳과 수도권 1곳에서 이겨야, 여세를 몰아서 오는 10월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를 기대할 수 있다. 양당 모두 '텃밭 지키기+수도권 1석'을 목표로 한다.

 

그런데 양당 모두 텃밭 공천에서 고약한 변수가 생겼다. 고향(전주 덕진) 출마를 선언한 정동영 변수와, '친박'을 간판으로 경주에서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정수성 변수가 그것이다. 민주당 최고위원회의 정동영 공천 불가 방침 천명으로 정 전 장관도 무소속 출마 가능성이 커졌다. 자칫하면 양당 모두 텃밭에서 구멍이 뚫릴 지경이다.

 

정 대 정, 동지에서 정치적 재기와 당권 강화의 걸림돌로

 

정동영 변수의 대립점에는 정세균 대표가 있다. 정 대표는 공천권이라는 칼을 쥐었다. 정 대표 체제의 최고위원회의는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쏘아올린 다음날인 6일 기습적으로 '정동영 전주 덕진 공천불가' 방침을 발표했다. 그리고 7일에는 전주 덕진 공천자로 김근식 경남대 교수를 사실상 확정했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걷는 정 대표의 스타일에 비추어 놀랄 만한 속전속결이다. 공천 배제 방침을 전해 들은 정 전 의장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불교 경전의 말씀이 마음에 와 닿는다"고 말했다. 무소속 출마를 강하게 시사하는 발언이다. 정-정 대결은 치킨게임으로 가고 있다.

 

두 정씨는 순창(정 전 장관)과 진안(정 대표) 출신으로 전북을 대표하는 정치인이다. 두 사람 모두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본인의 노력으로 자수성가한 정치인이다. 1996년 15대 총선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의원으로 나란히 정계 입문해 13년 동안 같은 배를 탔다.

 

16대 국회에서는 '바른정치모임'을 만들어 정풍운동을 함께 했다. 2002년 재집권 뒤에는 함께 민주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두 사람 모두 노무현 정부 시절에 집권여당 의장과 장관을 역임하면서 대선후보 수업을 받았다. 이런 인연으로 두 사람은 사석에서 '선배' '정 장관'이라 부르는 친한 사이다.

 

그러나 지난해 총선을 계기로 두 사람은 다른 길을 걷게 됐다. 정 전 장관은 대선과 총선에서 연패한 뒤 도피하듯 미국으로 떠났다. 그와 경쟁했던 손학규와 김근태 등 다른 후보들도 낙선의 쓴맛을 봤다. 반면에 정 대표는 통합민주당 대표로 선출돼 차기의 꿈을 키워왔다. 그리고 지금 두 사람은 서로에게 정치적 재기와 당권 강화의 걸림돌이 되었다.

 

스스로 퇴로를 차단한 두 정씨

 

칼자루는 정 대표가 쥐고 있다. 그는 '선당후사'(先黨後私)의 명분을 내세운다.

 

그는 최근 사석에서 정 전 장관 공천문제를 묻자 "그 문제는 개인 정세균이 결정할 문제가 아니고 공인(당 대표)로서 당을 우선해서 결정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공천은 사천과 다르다"는 정 전 장관의 발언을 의식한 발언이다. 이번 일로 '정 장관'이 혹여 '선배'한테 인간적으로 서운한 감정을 갖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6일 정 대표는 '정동영 공천 불가'라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그는 이날 기자들을 만나 "내 인생에서 이렇게 어려운 일은 없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그는 "정동영을 공천하면 정세균도 죽고 민주당도 희망이 없지만, 공천을 하지 않으면 정세균은 죽어도 민주당은 산다"고 말했다는 전문가의 충고를 전했다.

 

"공천을 하지 않으면 정세균은 죽어도 민주당은 산다"는 것은 정 전 장관의 무소속 출마와 당선까지를 염두에 둔 발언이다. 설령 승산이 없는 공천 잘못으로 책임질 일이 생기더라도 정면 돌파하겠다는 결의다. 스스로 퇴로를 차단한 셈이다.

 

당장 오는 재보선에서 민주당의 텃밭인 전주 덕진을 무소속 정동영 후보에게 내주고 인천 부평을에서도 패배하는 상황이 오면 정 대표는 설 땅이 없다. 이른바 전국 정당화와 수도권 승리를 내걸고 자기당의 대선 후보까지 공천에서 배제했는데 실패하면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기 때문이다.

 

퇴로를 차단당하기는 정 전 장관도 마찬가지다. 아니, 정 전 장관 스스로 퇴로를 차단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그가 미국에서 고향 출마를 선언하고 태평양을 건너는 순간부터 사실 그에게는 퇴로가 없었다.

 

 

"정 대표와 일전 불가피" vs "김근식 교수로 표적공천"

 

정 전 장관의 한 측근인사는 "정 의장은 퇴로의 여지를 전혀 고민하지 않고 있다"며 "불출마할 가능성은 제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인사는 "그 순간이 언제일지 시간이 문제였을 뿐이지 정 의장이 현실정치에 복귀하는 순간에 정 대표와의 일전은 불가피한 것 아니냐"면서 "문제는 누가 실점을 덜 하냐의 싸움이다"고 말했다.

 

정 대표와 지도부는 '이명박 정부 1년 평가'로 설정한 4월 재보궐 선거 구도가 대선에서 패배한 정 전 장관의 정치 재기전으로 희석될 우려가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그러나 당내에선 대선후보까지 지낸 거물이 출마를 선언한 이상 공천이 불가피하다는 여론이 만만치 않았다. 정 전 장관에 대한 공천 배제가 협량한 당권 투쟁으로 비치는 것도 부담이었다.

 

실제로 지난 2일 전북 전현직 도·시·군의원 66명은 성명을 내고 "당 지도부가 현 정권 견제에 힘을 보태겠다는 정 전 장관을 뿌리치는 것은 협량정치의 극치다"면서 "이런 '밴댕이 소갈머리 정치'를 계속하는 한 (정 전 장관이) '소중한 자산'이라는 말은 한낱 사탕발림에 불과하다"고 정 대표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외부 환경도 불리하다. 선거를 앞두고 터진 검찰발 '박연차 리스트'로 어차피 'MB 1년 평가' 선거 구도는 깨졌다. 한나라당의 '경제 살리기' 구도도 헝클어지기는 마찬가지다. 박연차 리스트는 이광재-서갑원 의원 등 정 대표 체제를 지원해온 이른바 '친노 직계 386 세대'를 무력화시켰다. 이제는 노 전 대통령의 정치개혁과 정치자금 문제의 도덕적 우위마저 의심받기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서 정 대표는 정면 돌파라는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정세균의 승부수, '개나리 1호' 요격할 수 있을까?

 

6일 민주당은 '정동영 공천 불가'를 발표하면서 '속보이는' 민주정책연구원 여론조사 결과를 슬쩍 공개했다. 지난 1일 전주 덕진구 유권자 639명을 대상으로 "정 전 장관을 전주 덕진구에 공천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한다면, 정 전 장관은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 당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45.5%)가 ▲ 당의 결정에 따를 필요가 없다(37.2%)보다 더 많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같은 날 전주 민심을 탐문한 <오마이뉴스> 취재진은 그런 기류를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전주 중앙시장과 전주역 등지에서 만난 시민들의 십중팔구는 정 전 장관이 무소속으로 출마하더라도 찍겠다고 답했다(관련 기사 : [민심탐방] 4.29 재보선 앞둔 전주 덕진을 가다)

 

게다가 전주 덕진에 공천한 김근식 교수는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정책위원과 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 등의 경력을 지닌 대북전문가다(지난 총선 당시 손학규 대표측 권유로 비례대표 공천신청을 했으나 하위순번을 받자 비례대표 공천신청을 반납했다). 통일부장관을 지낸 정 전 의장의 출마를 겨냥한 일종의 '표적 공천'이다.

 

민주당의 한 중진의원은 "정동영 공천 문제가 노선싸움으로 가면 시끄럽더라도 당의 발전을 위해 좋은데 세력싸움으로 가면 둘 다 망한다"고 우려했다. 그런데 현실은 오히려 승패가 갈리는 세력싸움보다 더 풀기 어려운 감정싸움으로 번지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개성역에서 파리역 기차표를' 끊겠다는 '개성동영' 정 전 장관의 별명은 개나리 아저씨다. 개나리 아저씨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는 자신을 대선후보로 선출한 당을 떠나 홀로서기를 해야 할 처지다. 일부 신문 만평은 그의 홀로서기를 북한의 로켓 발사에 빗대어 '개나리 1호'의 발사에 비유해 묘사했다.

 

민주당은 이제 신예 미사일 '김근식호'로 개나리호를 요격해야 한다. 문제는 요격 가능성이 지극히 낮다는 점이다. 그것이 민주당의 또 다른 비극이다.

 

 

한쪽이 꼬리 내리기에는 판이 너무 커져 버린 '정-정' 대결

 

정수성 변수의 대척점에는 정종복 전 의원이 있다.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위원장 안경률 사무총장)는 지난 30일 정종복 전 의원을 한나라당 경주 선거구 후보로 확정해 발표했다. 정수성 예비후보는 31일 기자회견을 갖고 '이상득 의원이 친이계 이명규 의원을 보내 사퇴를 권유했다'고 폭로했다.

 

경주의 정-정 대결 또한 세력싸움을 넘어 감정싸움으로 번지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는 1일 "우리 정치의 수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이에 이상득 의원은 "나는 그렇게 약삭빠르게 정치를 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친이-친박계의 대리전 양상을 띤 경주의 정-정 대결 역시 치킨게임으로 가고 있다.

 

공교롭게도 4인이 모두 정씨다. 민주당의 전현직 당 대표(의장)끼리 맞붙은 앞의 두 사람은 '빅 정', 친이-친박계의 대리전이라는 점에서 뒤의 두 사람은 '스몰 정'으로 정리할 수 있다. 결국 이번 재보선의 핵심 관전 포인트는 '빅 정'과 '스몰 정', 4정의 치킨게임이다.

 

그 게임은 윈-윈보다는 제로섬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빅 정'이건 '스몰 정'이건 정-정 게임의 본질은 권력 투쟁이기 때문이다. 어느 한쪽이 꼬리를 내리지 않는 한 상생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어느 한쪽이 꼬리를 내리기에는 판이 너무 커져 버렸다.

덧붙이는 글 | 다음에는 '4.29 재보선 관전법 ② - 경주' 편이 이어집니다.


태그:#정동영, #정세균, #정수성, #정종복, #4.29 재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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