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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북부 지방의 항구도시 칼레(Calais). 화창한 날이면 도버해협 건너편의 영국 땅이 보이기도 하는 곳. 프랑스와 영국을 배로 가장 빠르게 연결시키는 장소다.

 

영국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이곳은 외국인 불법체류자들이 일시적으로 머물다 가는 도시이기도 하다. 이들은 도시의 변두리나 한적한 해변, 아니면 고속도로의 후미진 장소에 임시방편으로 허술한 천막촌을 형성하고 영국으로 떠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3월 11일 프랑스에서 개봉된 한 영화가 프랑스 내에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칼레를 무대로 한 필립 리오레의 영화 <웰컴(Welcome)>. <웰컴>은 항구도시 칼레가 '나치의 시대'를 재현하고 있다고 고발한다.

 

이기적 프랑스 중년남과 이라크인 불법체류자의 만남

 

칼레의 실내 수영장에서 수영강사로 밥벌이를 하는 시몽. 그는 아내와 이혼 수속 중이며, 인생에서 별다른 목표도 이상도 없이 그저 매일 똑같은 일상을 아무 감흥 없이 보내는 중년남이다.

 

시몽은 매일같이 거리에서 마주치는 외국인 불법체류자들에게도 전혀 관심이 없다. 아내가 이들을 위해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지만 시몽에겐 관심 밖. 이들의 이혼도 남편 시몽의 무관심을 아내가 참아내지 못해서 불거졌다.

 

그러던 어느 날, 17세의 이라크 청년이 칼레에 도착한다. 쿠르드족인 빌랄은 갖은 고생 끝에 결국 칼레에 도착하는데 그의 목적지는 영국이다.

 

빌랄은 국외탈출 안내인에게 500유로를 내고 영국행 트럭에 몸을 숨긴 채 얼굴을 플라스틱 봉지에 감춘다. 그러나 국경이동을 감시하는 국경경찰이 트럭수색을 시작했을 때, 빌랄은 숨을 참지 못하고 봉지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가 발각된다. 통관원이 트럭 속으로 집어넣은 탐지기에 빌랄의 CO2가 감지된 것. 같이 트럭에 탔던 한 청년은 플라스틱 봉지를 얼굴에 쓴 채 질식사한 상태였다. 빌랄과 남은 일행은 칼레로 재수송된다.

 

트럭을 통한 영국행이 좌절되자 빌랄은 수영을 배울 결심을 한다. 그가 향한 곳은 시몽이 일하는 실내수영장. 빌랄의 강습을 맡게 된 시몽은 그의 손등에 적힌 숫자를 보고 빌랄이 불법체류자임을 알게 된다.

 

영국으로 탈출, 좌절... 목숨을 건 헤엄

 

"물살이 험한 도버해협을 수영으로 건너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야. 국가대표 수영 선수조차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지."

 

그러나 수영 초보자인 빌랄의 열정은 식지 않는다. 오매불망 자신을 기다리는 여자 친구가 영국에 거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로지 여자 친구를 만나기 위해 밤낮으로 수영을 배우는 빌랄은 시몽에게 신선한 존재였다. 시몽은 그에게 우정을 느끼며, 피자를 대접하거나 잠자리를 권하게 된다. 그러나 시몽의 아랫집 이웃의 신고로 그들은 위기에 처한다. 영화의 제목인 <웰컴>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이웃집 문 앞 발털이개에 쓰인 '웰컴'에서 나왔다.

 

경찰의 감시를 받게 된 시몽. 빌랄은 도버해협을 건널 결심을 한다.

 

정상급 수영선수가 9시간에 걸쳐 겨우 도착할 수 있다는 도버해협. 수영 초보자인 빌랄은 급박한 사정을 뒤로한 채 물에 뛰어든다. 오로지 여자 친구를 생각하며 헤엄치는 빌랄. 드디어 영국 땅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희망의 땅에 발을 딛는가 싶었는데 영국 해안 감시 선박이 빌랄을 발견하고 만다. 영국 땅이 800미터 남았을 뿐인데. 감시를 피해 잠수와 수영을 반복하던 빌랄은 어느 순간 더는 물 위로 올라오지 못했다.

 

빌랄의 시체를 보고 오열하는 시몽. 여자 친구에게 주라고 빌랄에게 선사했던 그의 결혼반지도 같이 되돌아왔다. 시몽은 그 반지를 들고 아내에게 간다.

 

"그(빌랄)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기 위해 4000킬로미터라는 먼 길을 달려왔는데 나는 당신을 잡기 위해 길거리 하나도 건너려고 하지 않았소."

 

한 불법체류자의 희생이 결국 이기적이고 타인에게 냉담했던 시몽에게 또 한 번의 기회를 준 것이다.

 

 

영화가 된 현실, 불법체류자와 도우미의 수난

 

영화 <웰컴>이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이것이 현실의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영국으로 향하는 불법 체류자들이 칼레로 대거 몰려들자 프랑스 정부는 1999년 칼레 근교에 있는 상가트 마을에 '상가트 집단수용소'를 설치하고 이들을 수용했다. 이들은 대부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사람들이다.

 

유럽에선 정착할 나라를 선택할 수 없다?

더블린 규정에 의하면 유럽에 망명을 신청하고자 하는 외국인들은 정착하고자 하는 나라를 선택할 수 없다. 처음으로 발을 딛는 유럽국가에 정착하도록 한 것.

 

이라크 인이나 아프간 인들은 주로 터키를 거쳐 그리스나 이탈리아로 들어온 후 프랑스를 거쳐 영국으로 향한다. 터키나 그리스는 외국인 노동자를 받아줄 사회 인프라가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기를 쓰고 영국으로 가고자 하는 것이다. 

 

불법체류자들에게 영국은 '엘도라도'이다. 대부분의 불법체류자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돈 한 푼 없이 가난한 자들이 아니다. 자국에서 중산층에 속하는 이들로 영국에 이미 가족이 나가 있는 경우도 많다. 이전에 비해 상황이 다소 달라지긴 했지만 영국은 망명자로서 행정수속이 간편한 편이며 불법적으로 일을 찾는 것도 수월하다는 평판 때문에 많은 이들의 목표가 되고 있다.

 

그러나 더블린 규정에 따라, 이들은 자신들이 통과하는 모든 유럽국가에서 불법체류자라는 신분을 감수해야 한다. 불법체류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 더블린 규정부터 수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외국 노동자들이 정착하고 싶은 나라를 선택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 수용소는 2002년 12월, 당시 내무부장관이었던 사르코지에 의해 해체됐다. 집단수용소를 없애면 불법체류자들이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로 취해진 조치였지만 이로 인해 불법체류자들은 도시 주변으로 분산됐다.

 

'상가트 집단수용소'가 해체된 지 7년째가 되는 지금도 칼레에는 불법체류자들이 끊이지 않는다. 이들은 소그룹으로 나뉘어 도시의 변방이나 한적한 해변 구석에 허술한 텐트를 설치하고 영국으로 들어갈 방법을 모색한다.

 

이들이 주로 이용하는 방법이 영화에 소개된 것처럼 트럭 잠입이다. 경찰은 이를 막기 위해 역시 영화에서처럼 트럭 내 CO2 검사를 실시한다. 이 검사를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얼굴에 커다란 플라스틱 봉지를 뒤집어쓰는 것이다.

 

영화의 젊은 주인공 빌랄처럼 경찰에게 영국행 도주가 발각되면 경찰의 불법체류자 등록 리스트에 올라가게 되고 손등 위에 지워지지 않는 커다란 등록숫자를 새기게 된다.

 

프랑스 정부는 이들을 위한 어떤 정책도 내지 못하고 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이 내전 중이기 때문에 이들을 자국으로 돌려보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영국행을 허가할 수도 없기 때문. 그러나 이들의 임시 거주지가 되고 있는 칼레시는 불법체류자들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이들의 슈퍼마켓 출입을 금지하는가 하면 이들을 도와주는 시민에게 5년의 징역형과 3만 유로의 벌금을 부과시킨다. 영화에서 시몽이 경찰의 감시를 받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빌랄처럼 헤엄을 쳐서라도 영국에 도착하겠다는 이들도 늘고 있다. 그러나 도버해협의 강한 물살로 인해 결과는 장담하기 어렵다. 운이 좋으면 벨기에 해안에 표류하기도 하지만, 운이 나쁘면 영원히 바다의 이슬로 사라지게 된다.

 

프랑스인들도 몰랐던 '나치시대'의 칼레

 

리오레 감독은 몇 년 전 우연히 칼레에 들렀다가 이들 불법체류자들의 현실을 목격했다고 한다.

 

정부가 이들을 마치 나치정부가 유대인 취급하듯 하는 것도 참기 어려웠지만 무엇보다 그를 분노하게 만든 것은 이들을 돕는 시민들에게 가해지는 처벌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사실은 칼레시민을 제외한 프랑스 인들에게 알려지지 않고 있었다.

 

리오레 감독이 이 영화를 제작한 첫 번째 목적도 바로 이런 상황을 프랑스인들에게 알리자는 것이었다.

 

리오레 감독은 불법체류자들의 비인간적 생활상 고발이라는 불편한 주제를 거침없이 다루면서도 여기에 로맨틱한 픽션을 알맞게 버무려 넣음으로써 재미있으면서도 감동적인 영화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 영화는 개봉 전에 불법체류자 자원봉사자들에게 먼저 상영됐는데 이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영화가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찬사가 쏟아졌다. 이 영화를 반기지 않는 사람은 에릭 베송 이민부장관뿐.

 

베송 장관은 한 라디오 방송에서 "이 영화는 불법체류자들을 독일 점령 당시 표적이 되었던 유대인과 비교함으로써 옐로우 선을 넘어섰다"라며 이 영화를 비판했다. 그러나 리오레 감독은 즉시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불법체류자를 도왔다는 이유로 고발을 당하고 형을 받는 상황은 우리 역사의 어두운 시기를 상기케 한다."

 

결국 베송 장관의 뜻밖의 광고에 힘입어 이 영화는 개봉 2주 만에 60만 명이라는 관객을 끌어들임으로써 흥행에 성공했다. 사회비판 영화의 흥행이 드문 프랑스 영화계에서 이 사실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

 

프랑스에선 불법체류자 돕기만 해도 '소환'

2010년 불법체류자 추방 수치 할당 : 2만8천명

2010년 불법체류자 도우미 시민 심문 수치 할당 : 5500명

 

2009년 프랑스 재정법에 기록된 수치다. 모든 것을 쿼터제로 실시하는 사르코지 정부는 이렇게 불법체류자 추방도 미리 숫자로 정해놓았다. 프랑스 정부는 불법체류자 추방에만 심혈을 기울이는 게 아니라 이들을 도와준 시민에게까지 그 활동영역을 넓히고 있다.

 

불법체류자들에게 끼니를 제공하고 옷가지를 제공하는 등의 활동을 펴고 있는 '엠마위스' 등 협회의 자원봉사자들이 종종 경찰에 소환되는 경우도 늘고 있다. 현재로서는 불법체류자들에게 숙박을 제공한 자에게만 경찰이 집중하고 있지만, 어느 날 병든 불법체류자를 치료했다는 이유로 의사가 창살신세를 지고, 불법체류자에게 우편물을 배포했다는 이유로 우편배달원이 벌금을 물고, 불법체류자의 아이들에게 수업을 했다는 이유로 교사들이 징역살이를 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가난한 자들에게 중고품을 헐값으로 넘기는 엠마위스 프랑스는 올 4월 8일 오전 10시 파리, 릴, 마르세이유, 스트라스부르그, 리용 등 프랑스 대도시의 법원 앞에서 이 쿼터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일 예정이다.

 


태그:#프랑스 칼레, #영화 웰컴, #불법체류자, #도버해협, #더블린 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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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자유기고가, 시네아스트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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