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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거기 존재했을 뿐인데" 소년이 겪어야 할 상처는 많다. 어머니가 전철역에 버렸던 것도 그렇거니와 새어머니의 어떤 협박을 받아야 했던 것도 그렇고 결정적으로 의붓 여동생을 성추행했다는 누명을 쓴 것도 그렇다. 말을 더듬던 소년은 단지 거기 있었을 뿐인데 세상은 그에게 상처를 주고 있었다.

 

새어머니의 악다구니를 피해, 성추행범이라는 누명을 쓴 채 도망가던 소년은 평소에 자주 들르던 빵집으로 피신한다. 그곳은 24시간 영업을 하는 '위저드 베이커리'다. 단골이기 때문일까.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소년을 숨겨준다. 그리고 소년이 마음먹을 때까지 지내게 해준다. 그런데 소년은 알고 있었을까? 그곳이 마법의 세계라는 것을?

 

제2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위저드 베이커리>는 독특한 빛을 내고 있다. '판타지'적인 것이다. 어떤 판타지인가. 소년이 들어간 그곳은 마법사가 있는데 특별한 빵들을 만들고 있다. 누군가의 소원을 들어주는 물품이다. 예컨대, '악마의 시나몬 쿠키'라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골탕 먹일 수 있다. 포만 상태에서 먹으면 괄약근 조절을 실패해 옷에 실례할 수도 있고 공복 상태에서 먹으면 지속적인 구역질을 일으키게 만든다.

 

'메이킹 피스 건포도 스콘'이라는 것은 화해를 시켜주는 힘이 있고 '도플갱어 피낭씨에'는 먹고 잠들면 도플갱어가 나타나 하기 싫은 일을 대신 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또한 시간을 되돌리는 머핀도 있다. 하지만 판타지를 구성하는 것은 단지 이러한 소재에 국한되지 않는다. 인간이었다가 파랑새로 변하는 아이와 마법사 등이 말하고 행동하는 면면들이 위험한 꿈과 환상으로 가득한 판타지적인 분위기를 농후하게 만든다. 우리나라 청소년 문학에서 상당히 보기 드문 모습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하나의 '장치'에 불과하다. <위저드 베이커리>의 매력은 한 소년의 성장에 관한 이야기다. 소년은 '위험한 것'들을 보면서 자신이 살아왔던, 자신이 행동했던 것들을 돌아보게 된다. 그곳에서 소년은 어떤 순간들을 마주한다. "단지 거기에 존재했을 뿐"이라는 생각으로 상처를 애써 치유하려 했던 소년이 정면으로 상처를 마주해 성장통을 겪어야 하는 것이다.

 

소년은 이겨낼 수 있을까? 쉬운 방법은 많다. 시간을 되돌리는 머핀을 먹는 방법도 그 중 하나다. 하지만 그걸 먹고 단지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서 상처가 치유될 리는 없다. 소년도 그것을 알고 있다. 차라리 새어머니에게 복수하기 위해 위험한 음식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또한 위험한 선택이다. 소년은 그것을 알고 있다. 동시에 모른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그래서 '위저드 베이커리'에서 움츠리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소설은 소년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 극한으로 끌고 간다. 새어머니가 자신을 저주하기 위해 물품을 주문한 걸 안 것이다. 소년은 어찌해야 할까? <위저드 베이커리>가 보여주는 것은 어쩌면 이제껏 문학이 자주 묻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소설이 건네는 말은 가슴을 자극한다. 왜 그런가. 스스로의 힘으로 통증을 견디고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아름답기에 그렇다. 그것은 언제 보더라도 진부하지 않은, 문학의 본질적인 즐거움인데 <위저드 베이커리>는 그것을 간직하고 있다. 소설의 매력은 그곳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좋은 성장소설이란 청소년뿐만 아니라 어른들, 특히 '아직 성장하지 않은' 어른들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위저드 베이커리>는 그렇게 하고 있다. 성장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위저드 베이커리에 방문하면 좋을 것이다. 위험한 빵이 많지만, 그만큼 소중한 빵을 얻을지 모르는 일이니까.


위저드 베이커리 - 제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구병모 지음, 창비(2009)


태그:#청소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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