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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면서 처리해야 할 제일 귀찮은 일이 결혼식이었다. 식을 치르지 않고 살면 좋겠다는 마음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들락날락했다. 제일 아까웠던 건 밥값이었다. 1인당 2만 원짜리 음식이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상태였지만 어쩔 수 없다.

 

기존 메뉴가 아쉬워 한두 가지 추가하면 단가는 치솟는다. 100명, 200명이 몰려가도 절대 깎아주는 법이 없다. 대량구매하면 깎아주는 게 당연한 자본주의 세상에서 이런 상도덕이 어디 있나 싶다. 하지만 이미 봉이 되어버린 신혼부부는 이리저리 휘둘린다.

 

신혼여행을 떠났을 때 계산하면서 뒤늦게 정신 차려봐야 어쩔 수 없다. 기분만 나쁠 뿐이다. 그곳에서 또 다른 사냥꾼들이 '봉'을 기다리고 있으니 또 당하기 십상이다. 엎친 데 덮친 격, 설상가상은 이럴 때 쓰는 말이렸다!

 

머리를 굴렸다. 우리 결혼식에는 밥을 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축의금 냈는데 밥도 안주냐고 억울할 것 없었다. 축의금도 내지 말라고 했으니. 대신 아내와 내가 지원하는 대안운동 단체들을 소개하는 안내지를 놓고 후원금을 받았다. 물론 내고 안 내고는 자율이고 눈치 하나 주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결혼식 시간도 오후 3시로 잡았다. 밥과 상관없는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뜻을 관철하지 못했다. 전라도 해남과 충청도 청원에서 올라올 양가 분들에게 너무하는 것 아니냐고 부모님들 반발이 심했다. 축의금을 안 받는 대신 식사는 부모님들이 대접하는 선에서 '합의'를 보았다.

 

결혼에서 돌까지...'돈' 잔치다

 

손님과 함께 '아빠표 성장앨범' 보는 가족들. 비싸고 고급스런 성장앨범은 보암직하지만 정이 덜 간다. 그렇지만 아빠표 사진은 아이의 삶이 닮겨서 좋다.

아내가 임신하고 출산을 하니까, 이제는 다른 사냥꾼들이 우리를 기다렸다. 돌잔치는 어떻게 하느냐고 주변에서 먼저 바람을 잡았다. "다들 결혼식 피로연 수준으로 치르는데 너희는 왜 소식이 없느냐"는 거다. 다른 친구들 돌잔치를 가보아도 그렇다. 이건 돌잔치가 아니라 '돈잔치'다. 형편이 조금 어려워도 사람들 하듯이 따라가게 만드는 논리가 있다. "평생 한 번 뿐인데."

 

대부분 이런 말에 넘어간다. 자신이 누리지 못한 과거가 많을수록, 그렇게 살아온 게 '억울'하고 한스러울수록, 자식에게 자신의 삶을 대물림하고 싶은 않은 게 부모들 심정이다. 사냥꾼들은 이런 부모의 마음을 후벼 파면서 돈잔치를 기어코 성사시킨다. 게다가 주변에서 더 떠들어주니 바람꾼을 고용할 필요도 없다. 그렇지만 속지 말자. 어디 인생에 단 한 번 뿐인 순간이 그 때 뿐이던가.

 

이번에는 조금 더 단호해지리라 마음먹었다. 미리 양가에 "그런 돌잔치는 없다"고 말씀 드렸다. 살짝 서운한 낯을 보이셨지만, 결국 동의하셨다. 그래도 가족끼리 밥은 먹고 싶다는 말씀에 조촐하게 외식을 했다.

 

대신 마을에서 어울려 사는 친구들이 잔치를 벌여주었다. 이모 삼촌들이 공연을 준비했고, 우리는 떡과 과일을 내놓았다. 돌잡이도 마을에 사는 이모 삼촌들이 마련했다. 첫째 별은 공을 집었고, 둘째 솔은 숟가락을 들었다. 참고로 별이 친구 자연이는 많고 많은 물건 제쳐두고 옆에 있는 친구 별을 껴안았다.

 

아기 사진은 주부우울증도 날리더라

 

이런 순간을 카메라에 담고 싶은 건 부모들의 한결같은 마음이다. 조금 극성을 부리면 동영상도 촬영하지만, 우리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대신 꼬박꼬박 사진을 찍어두었다. 임신한 아내 배가 나올 때부터 출산하고 육아하는 장면들을 찍다보니 꽤 많은 사진이 모였다. 첫째가 처음으로 뒤집기하는 모습을 연속 촬영했는데, 당사자를 비롯해 우리 가족 모두가 좋아하는 사진이다.

 

 엄마와 둘째가 나간 사이 잠자는 아빠와 별. 보기에는 별 것 아닌데, 두 사람이 동시에 원래 위치에서 180도 회전해서 자고 있는 중이다.

첫 아이때 1년간 육아휴직을 했는데, 아이와 하루 종일 보내는 삶이 권태로울 때가 있었다. 아이 얼굴조차 제대로 못 보고 똥기저귀 빨고 밥상 차리느라 하루를 훌쩍 보내다보니 행복하면서도 한편으로 '내가 지금 뭐하나' 싶은 우울증 초기 증상이 몰려왔다. 그때 나를 위로했던 건 우리를 방문한 마을 이모 삼촌들이다. 그리고 그들이 아이와 행복하게 노는 모습을 촬영하는 일.

 

이렇게 한 해, 두 해가 지나면서 컴퓨터에 제법 쌓인 사진을 출력해 사진집을 만들기로 했다. 꼼꼼한 아내는 인터넷 이곳저곳을 서핑하러 다녔다. 기분 좋게 출발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가 또 '봉'이 되어가는구나 싶었다. 우리가 원하는 가격에 딱 동그라미 하나가 더 있는 가격표를 보고 또 보았지만 잘못 본 게 아니었다.

 

물론 아내는 우리에게 알맞은 상품 하나를 찾았다. 마침 무슨 기념행사를 한다고 왕창 세일하는 중이어서 5만원 가량을 지불하고 제법 괜찮은 앨범 두 개를 마련했다. 우리가 찍은 사진을 미리 정해놓은 형식에 맞게 꾸며서 인터넷으로 보내면, 그 회사에서 제작을 해주는 형식이다.

 

박제 같은 스튜디오 사진 대신 아빠표 사진을

 

 무엇보다 성장앨범들은 인위적인 자세와 웃음을 연출한 데 반해, 가족표 앨범은 삶이 담겼다. 한 스튜디오에서 돌 사진을 찍고 있는 아기.

우리처럼 성장앨범을 만드는 사람들이 제법 되는 모양이다. 수십 만 원에서 200만 원에 이르는 상품들이 즐비하다. 불황이라는데도 아기를 둔 부모는 '큰손'으로 대접받는다. 부모의 모성애를 공략한 상품을 앞 다퉈 출시한다. 가격도 만만치 않다.

 

게다가 성장앨범 경우는 크고 작은 문제로 분쟁이 급증하고 있단다. 올 초부터 지난 3월 23일까지 채 석 달이 넘지 않았는데, 소비자원은 251건의 고발을 접수했다. 작년 연간 142건을 훌쩍 넘긴 수치다. 그만큼 많은 가족이 성장앨범을 만들고 있고, 이들을 노리는 불량 업자들이 많다는 말이겠다.

 

고급스럽게 치장한 앨범을 장만하려다 낭패를 보느니 차라리 아빠 혹은 엄마표 앨범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사진사가 찍고 완벽한 포토숍까지 동원한 사진은 정이 덜 가지 않지 않나. 돈 발라 만드는 게 사실 그렇다. 질을 낮추더라도 정이 듬뿍 담긴 앨범이 더 의미 있을 것이다. 최소한 우리 집은 그렇게 판단했다.

 

엄마 아빠, 혹은 이모 삼촌이 찍으면 초점이 안 맞고 화질도 떨어진다. 그렇지만 '돈 바른 앨범'이 줄 수 없는 감동을 담을 수 있다. 무엇보다 성장앨범들은 인위적인 자세와 웃음을 연출한 데 반해, 가족표 앨범은 삶이 담겼다. 아이가 웃고 우는 생활을 고스란히 담을 수 있다. 평소 입는 옷에 밥 먹다 흘린 국물로 얼룩까지 졌지만, 아이의 살아 있는 표정과 삶을 엿볼 수 있다.

 

또, 스튜디오의 화려하지만 거기가 거기 같은 배경보다 우리 집과 마을의 정경이 그대로 드러나는 사진이 아이의 역사를 더 진실하게 담고 있다고 믿는다. 우리 집에 방문하는 손님들과 찍은 기념사진, 밥상을 난장판 만들고 해맑게 웃는 딸들, 젖을 먹다 곯아떨어진 딸과 아내, 갓 태어나 탯줄도 자르지 않은 둘째를 바라보는 가족들, 목욕하고 손톱 깎는 모습까지. 비싼 돈 내가면서 스튜디오에서 박제처럼 찍는 사진보다 훨씬 정감 넘치는 우리 가족사진, 성장앨범 아닌가.

 

 엄마의 밥톱깎기. 사실 아빠가 발톱깎아주는데, 사진을 주로 아빠가 찍기 때문에 엄마만 해주는 것 같아서 아빠는 억울하다.

그러서일까. 큰딸은 자기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돌이 지날 때까지 모습을 담은 두 장의 앨범을 무척 좋아한다. 맘에 드는 손님이 오면 꼭 앨범을 꺼내서 보여준다. 그리고 사진에 담긴 사연은 쏟아놓는다. 물론 엄마 아빠에게 주워들은 이야기를 언니, 이모, 삼촌, 할머니에게 들려주는 거다. 어떤 이모는 여러 번 들어서 지겨울 것 같은데, 신나서 이야기하는 모습이 기분 좋게 바라본다.

 

너무 자주 만지작거리니 가장자리가 해지고 이곳저곳에 낙서도 많이 해 놓았지만, 그것대로 운치 있다. 결혼식하면서 찍은 값비싼 앨범이 어느 책장에 처박혀 먼지만 쌓이는 것보다 훨씬 좋지 않은가.

 

 밥 먹다가 응아하는 별. 이런 행동은 습관이 되면 고치기 힘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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