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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프펌프> 이시현 작가와 <마리아마리아> 이태경 작가
 <펌프펌프> 이시현 작가와 <마리아마리아> 이태경 작가
ⓒ 임민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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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만화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부천만화산업종합지원센터에 둥지를 틀고 밤낮 작업실에 파묻혀 그림에만 몰두하고 있는 작가들을 차례로 만났다.

이번에는 만화 스토리도, 실제 삶도 '엽기적인 그녀' 이시현 작가와 만화계에서 보기 드문 '절세미녀' 이태경 작가가 꾸미는 유쾌한 수다 속으로 빠져봤다.

만화를 좋아한 왈가닥 이시현과 우등생 이태경

편안한 친구처럼 보이지만 나이도 데뷔도 10여년 차이가 나는 언니, 동생인 그녀들. 서로에 대해 너무나 잘 아는 탓인지, 자신에게 주어진 질문에 대한 답보다 상대방에 대한 피알(?)에 더욱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시현 작가는 93년도 '댕기'라는 잡지 신인만화 공모전을 통해 데뷔했다. 당시만 해도 윙키, 보물섬, 챔프 같은 잡지 공모전에서 수상을 해야 정식 작가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고 한다. 99년 정식으로 책을 출간하기 전까지 일본에 가서 애니메이션을 공부하는 등의 외도를 하기도 했지만 그녀가 결국 택한 길은 '만화'였다.

2002년 시공사 '오후'라는 격월간지 공모전에서 아쉽게 떨어졌지만, 당시 인연이 됐던 기자의 권유로 신문을 통해 데뷔할 수 있었다는 이태경 작가는 신인이지만 신인답지 않은 실력으로 수입이 제법 짭짤했다고 한다.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허브라는 월간지에 연재할 때는 대기업에 입사한 애들 부럽지 않았어요"라고 말할 정도.

이시현 작가는 학창시절 쾌활하고 서슴없는 성격에 친구들을 우르르 몰고 다니며 사고도 치곤했지만, 언제나 사랑 받는 아이였다고 한다. 그에 비해 이태경 작가는 전교 1~2등을 다툴 정도로 공부 잘하는 우등생이었다고. 다리 좀 떨고, 논다는 친구들을 보면 '나랑은 레벨이 틀려'라고 외치며 공부만 했었단다.

이시현 작가는 만화에 대한 열정 하나로 고등학교 졸업 이후 대학 등록금과 기숙사비를 통틀어서 서울에 작업실을 얻는다. 부모님을 완벽하게 속인 채... "나는 결국 만화를 할 사람인데 대학 공부를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했었죠. 부모님은 아직도 대학을 무사히 졸업한 줄 아신답니다"라며 멋쩍은 듯 웃어보였다.

반면에 이태경 작가는 자신을 당당하게 '엘리트'라 칭하며 "만화도 좋지만, 학벌 좋은 만화가가 돼야겠다고 생각했어요"라고 새침하게 말한다. 공부를 잘 했지만 부모님께서 만화 그리는 것을 반대하지 않으셨고, 만화를 하기 위한 준비를 한다는 생각으로 성균관대 국문과에 입학하게 된다.

만화를 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이시현 작가는 부모님을 속이고 작업실을 마련할 만큼 만화에 대한 애착이 대단했다. 일단은 무조건 차성진 작가의 문하생으로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에 밤낮 차성진 작가의 '풀꽃반지'를 그리고 또 그렸다고 한다. "차 선생님의 풀꽃반지 그림이 정말 예뻤어요. 우유를 마시면 바로 탈이 나는 체질인데 초등학교 때 우유를 신청해서 먹으면 차 선생님의 만화 단행본을 줬었거든요. 그 만화를 보려고 매번 우유를 신청해 먹었어요"

그렇게 이시현 작가는 '풀꽃반지'를 수도 없이 똑같이 그려서 차 작가를 찾아갔고 결국 꿈에 그리던 '그분'의 문하생이 된다.

반면 이태경 작가는 대학에 입학한 후에도 꾸준히 습작을 만들어가며 독학으로 만화를 공부했고, 운이 좋게도 바로 데뷔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 그녀를 보고 이시현 작가는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은 독특한 만화를 그려내는 작가'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이태경 작가는 데뷔작부터 그림체나 스토리가 남달라 주목을 받았었다고.

그도 그럴 것이 학생들이 티격태격 사랑싸움이나 하는 학원 순정물에 익숙해져 있던 독자들에게 성인 여성의 당당한 이야기를 거침없이 그려냈던 것이다. 그 작품이 바로 <마리아마리아>. 이태경 작가는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마리아마리아>를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으로 꼽았다.

이태경 작가는 "아직도 <마리아마리아>를 보면 그때의 감수성이 날카롭게 전달되는 것 같아요. 20대의 내 가치관과 세계관이 가장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라며 "출판만화 시장이 어려워지면서 연재하던 잡지가 폐간되는 바람에 마무리도 짓지 못하고 단행본도 나오지 못한 상태라 더욱 안쓰럽고 여운이 남아요"라고 말한다.

이시현 작가는 <펌프펌프>를 통해 많은 것을 경험했고 많은 것을 얻게 됐다고 말한다. 당시 만화책을 1만권 판매한다는 것도 대단한 일이었는데 <펌프펌프>로 3만권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인기를 얻었다고. 댄스와 접목한 '펌프'라는 오락실 게임이 유행하던 때였는데 마침 가수 HOT와 GOD가 최고의 인기를 얻으면서 그들의 춤과 의상 등을 만화로 옮겨 대박을 치게 된 것이다.

이시현 작가는 "HOT 팬이라고 했다가 GOD 팬들한테 테러메일을 받았던 기억이 나네요. 아마 HOT 팬들이 책을 다 사준 게 아닌가 싶어요"라며 에피소드를 들려주기도 했다.

내가 본 이시현, 내가 본 이태경은

이시현 작가가 본 이태경 작가는 어떤 매력을 가졌을까. 이태경 작가가 그린 만화의 여주인공은 항상 시니컬하고 자유연애를 실행하는 매력적인 캐릭터로 20~30대의 여성이 흥미를 가지고 볼 수 있는 작품을 그려낸다는 것. <마리아마리아>를 보면 이시현 작가의 이면에 숨겨져 있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귀띔한다.

이태경 작가는 이시현 작가의 경쟁력을 '엽기적인 캐릭터'와 '새로운 소재에 대한 도전'으로 꼽았다. 기본적으로 한 여자가 괜찮은 남자를 만나 이루어내는 신데렐라 스토리가 깔려있지만 여주인공은 흔히 볼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닌 엽기적인 인물이라는 것. 남자 때문에 우는 여자가 아니라 남자를 울리고 웃기는, 마치 실제 이시현이 투영된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태경 작가는 한 가지 빼먹을 수 없는 숨은 매력을 공개하기도 했다. 각자의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일상탈출'이라는 극단에서 공연 기획·연출은 물론이고 배우로서 무대에 올라가 연기를 한다는 것. 정말 못하는 게 없는 팔방미인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포털 사이트에 할 말이 많은 그녀들

이시현 작가와 이태경 작가가 한목소리로 아쉬움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만화계의 대세가 웹툰이니 안 할 수는 없고, 시대에 편승해서 웹툰을 하고 있지만 점점 만화가 '공짜'로 즐길 수 있는 문화로 인식되어져 불만이라는 것.

이시현 작가는 "어떤 문화든지 대가를 치르고 즐겨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포털 사이트에서 웹툰을 너무 쉽게, 그것도 공짜로 접할 수 있다보니 점점 작가들의 처우는 열악해지고 있어요. 대여점에서 만화책을 빌려서 읽을 때가 차라리 나은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이에 질세라 이태경 작가 또한 "집에도 제대로 못 들어가고 몇날며칠을 밤새 일을 해도 한 달에 받는 고료 수준이 200만원도 채 안 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나마 일찍 시작해서 자리를 잡았다는 사람들의 얘기고 신인들은 한 달에 70만원도 못 버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라고 전한다.

이처럼 생계유지조차 힘든 작가들을 생각한다면 포털 사이트와 독자들의 인식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만화를 그리는 사람들의 열정과 사랑을 대단히 높이 평가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인 차원에서 좋은 컨텐츠를 발굴하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시현 작가가 외쳤다. "공짜 만화는 없어져야 된다!"

이시현, 이태경 "많이 사랑해주세요"

이태경 작가는 4월 20일 오픈하는 코믹타운에서 <언제나 순정만화>라는 작품을 연재할 예정이다. 특징은 부천만화종합지원센터를 배경으로 만화계에 몸담고 있는 작가와 어시스트들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연애담이란 것.

이시현 작가는 미디어 다음에 호러물 <루아>를 연재하고 있다. 여자주인공과 남자주인공의 사랑과 질투를 소재로, 순정만화 마니아들이 좋아하는 그림을 그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시현 작가는 그런 법칙을 깨고 늘 새로운 도전을 할 것을 약속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부천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시현, #이태경, #순정만화, #부천만화정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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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랩 이유 대표 협동조합 커뮤니티플랫폼 이유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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