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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후 소록도에서 열린 보고대회에서 한`일`대만 등 각국의 관련법과 인권실태가 발표됐다.
▲ 소록도 한센병 보상청구소송 보고대회 14일 오후 소록도에서 열린 보고대회에서 한`일`대만 등 각국의 관련법과 인권실태가 발표됐다.
ⓒ 최경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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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향살이 몇해던가 손꼽아 헤어보니
고향 떠난 십여 년에 청춘만 늙어
부평 같은 내 신세가 혼자도 기막혀서
창문열고 바라보니 하늘 저 쪽 고향 앞에
버드나무 올 봄도 푸르련만 버들피리 꺾어 불던
소록도 내 고향

이 노래는 한많은 소록도의 한센인들이 부르는 가요 '타향살이'로 소록도에서 청춘을 다 보내고 이제는 휠체어에 의지한 채 남은 여생을 보내고 계신 김용덕 할머니가 들려준 소록도판 '타향살이' 가사입니다.

반주도 없이 애절하게 불러주는 이 노래는 전국노래자랑이나 노래방에서 부르는 가요와는 확연히 다르게 듣는 이의 가슴에 송곳처럼 꽂힙니다.

봄은 왔지만 시샘하듯 꽃샘추위와 찬 바닷바람이 소록도를 휘몰아친 14일 오후, 지난  5년간 일본정부를 상대로 벌여온 '소록도 한센병 보상청구소송 보고대회'가 열렸습니다. 그동안 소록도를 거쳐 간 전국의 한센인들은 일본정부와 눈물로 힘겨운 싸움을 벌였습니다. 그 선봉에는 양심에 따라 무보수로 헌신해온 한일 양국 변호사들이 있었고 시민단체들이 연대했습니다.

일본 법정투쟁 당시 인연으로 다시 만났습니다.
▲ 반가운 조우 일본 법정투쟁 당시 인연으로 다시 만났습니다.
ⓒ 최경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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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행사장에는 한일 양국의 변호단 일행과 일본후생노동성 미요시 히데후미(三好 央又) 질병대책과장보좌, 일본국립감염증연구소 이시이 노리히사(石井 則久) 생체방어부장, 주한일본대사관 우에라 겐야(上原 姸也) 일등서기관 등이 참석했고 한빛복지협회 임두성 회장(국회의원, 한나라당 비레대표)을 비롯한 전국 각지의 한센인들이 자리를 채웠습니다.

이날 보상금을 받은 남모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 소록도에 강제 수용된 한센병력자는 5천여 명이 넘었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런데 현재까지 일본정부가 보상해준 소록도 한센인들은 얼마나 될까요?

일본 구마모토 판결을 계기로 제정된 '한센병보상법'에 따라 지난 2004년 8월 16일 소록도 한센병력자 124명은 일본 정부를 상대로 보상청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2005년 10월 26일 그 소송은 기각됐습니다.

저는 당시 소록도주민을 위한 위안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기각이 결정된 다음날로 잡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공연은 정말 그분들의 분노를 위로하는 공연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때 올린 기사 제목이 "기각… 그래도 소록도는 울지 않는다"였습니다. 분노를 삼키며 함께 한 소록도 위안공연을 그래서 더 잊을 수가 없습니다. 기사가 오른 날 모방송국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그날 분위기를 라디오 생방으로 전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저에게 그 방송은 고문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후 한일 양국의 변호단과 시민단체의 연대활동으로 마침내 지난 2006년 법이 개정됐고 당연한 보상의 길도 열렸습니다. 2006년 3월 27일 최초로 소록도 청구인 2인의 보상이 결정된 것을 시작으로 지난 2월 9일 43명이 인정되는 등 이달 14일 현재 보상청구인 448명 중 426명이 보상결정을 받았습니다.

임두성 한빛복지협회 회장은 '계란으로 바위치기'같은 싸움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하지만 이들 중 상당수가 사망해 겨우 10%정도만 실제 보상금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또 보상금을 받아 놓고 한 푼도 써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분들도 많습니다. 아직도 관련기록이 미비해 22명은 보상결정을 받지 못했고 17명이 대기자로 남아 있습니다.

국립소록도병원에 보관된 관련기록이 소실돼 어려움을 겪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기록물을 찾아낸 병원직원들의 노력도 큰 몫을 했습니다. 일본 후생노동성 미요시 과장보좌는 이날 병원직원 오은정씨를 직접 불러 감사를 표했습니다.

한국, 일본, 대만 등 3국 대표들이 '차별과 편견을 넘어 평등한 세상을 향해' 채택한 결의문을 낭독하고 있다.
▲ 결의문 낭독 한국, 일본, 대만 등 3국 대표들이 '차별과 편견을 넘어 평등한 세상을 향해' 채택한 결의문을 낭독하고 있다.
ⓒ 최경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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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센 회복자인 미야자토 신이치씨의 노래공연
▲ 축하연에서 한센 회복자인 미야자토 신이치씨의 노래공연
ⓒ 최경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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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번 소록도 한센병 보상청구소송 보고대회는 미완의 상태로 산자와 영령들에게 보고하는 행사였습니다. 이날 한·일·대만 등 3국 공동으로 결의문도 채택됐습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한센, 그 이름은 차별과 편견의 또다른 이름이었다. 우리는 이제 우리의 간절한 염원을 모아 '인권'의 새로운 이름, 평등한 세상의 이름이길 희망한다.(중략)
오늘, 그동안 한국, 일본, 대만 등지의 한센 회복자들의 인권회복을 위하여 노력해온 변호사들은 3국 정부와 사회에 다음과 같이 우리의 간절한 염원을 담아 요구하고 선언한다.
-한센병은 유전되지도 않으면 전염성도 극히 미약하고 완치가 가능하다.
-한국과 일본, 대만의 한센 입소자들은 한센병 환자가 아니라 완치된 회복자일 뿐이다.
-국가와 사회는 그동안 한센병에 대한 무지와 편견에 따른 차별을 반성, 사죄하고 이에 합당한 보상, 명예회복, 사회적 치유절차 등을 이행하여야 한다.
-한국 정부는 실효성 없는 현행 한센피해자법을 즉각 개정해야 한다.
-3국 변호사들과 참가자들 일동은 각국 한센 회복자들의 평등한 세상을 향한 노력을 지지하고 연대하며 함께 할 것을 결의한다.

이날 행사는 한국변호단 박영립 단장이 소송경과보고를 했고, 조영선 변호사와 일본 도쿠다 야스유키(德田 靖之) 변호사, 대만 수후이칭(蘇惠卿) 교수가 자국의 한센관련보상법과 인권실태 등에 대해 발표했습니다.

풍물패의 길놀이에 이어 한센인들의 소망을 적은 4개의 현수막을 리본으로 연결해 행사가 열린 우촌복지관(옛 공회당 건물) 앞에 이 현수막을 걸고 먼저 간 분들의 넋을 비는 추모행사를 가졌습니다.

축하하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애써준 모든 분들과 함께 하는 축하공연도 펼쳐졌습니다. 일본 한센인 출신인 미야자토 신이치(宮里新一) 변호사가 직접 기타를 들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영상을 통해 어린 시절 그의 한센병 회복과정이 소개됐습니다. 잘린 손가락으로 치는 기타음과 노래는 국경을 넘어, 편견을 넘어 함께 공감하는 우리 모두의 노래였습니다.

이어진 박종강 변호사의 창(唱). 이 분은 일본에서 버스 위에 올라가 구호를 외쳤던 겁 없는(?) 분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분이 부르는 사철가는 지난날 모 정치인이 부르는 그 사철가보다 진실했고 대구에서 온 풍물패의 민요가락과 앉은반 사물놀이도 분위기를 올렸습니다.

한센인들도 가만있지 않았습니다. 안동에서 온 한센 회복자들로 구성된 4인조 밴드의 공연에 이어 휠체어에 기댄 김용덕 할머니가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회복단계에서 입은 제 모양이 아니지만 무반주에 듣는 고운 목소리는 모두의 가슴을 울렸습니다. 14살 무렵에 배웠다는 일본가요, 그리고 타향살이까지 한이 서린 노래는 아직도 여전히 슬펐습니다.

시력을 잃은 우종선 할아버지는 하모니카를 들고 나왔습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을 저렇게 하모니카로 달랬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마지막은 신나는 곡으로 분위기를 전환시켜주는 멋진 분이십니다.

소록도에는 지난 2일부터 다리가 개통돼 편하게 갈 수 있습니다. 멀쩡한 섬을 둘로 갈라놓은 개발이 암울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그곳은 관광지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편견의 잣대로 외면했던 아직도 그대로 섬입니다.

그래서 '구경'이 아닌 반성과 송구한 마음으로 찾아가 가득 찬 욕망과 편견을 씻어내고 '평등'과 '사랑'을 가득 담아 와야 할 삶의 교육장입니다. 소록도 풀 한 포기에도 그들의 땀과 한숨이 서린 것임을 명심하십시오.

덧붙이는 글 | 소록도 입장은 오전 9시~오후 6시(1시간 전 입장까지), 야간은 출입이 안됩니다.



태그:#소록도, #한센인, #임두성, #고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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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서 어용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하다 세월호사건 후 큰 충격을 받아 사표를 내고 향토사 발굴 및 책쓰기를 하고 있으며, 은퇴자들을 대상으로 인생을 정리하는 자서전 전문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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