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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눈높이를 맞춰요 2'(KBS 2TV <스타 골든벨>)를 진행하는 정니콜의 통통 튀는 화법과 상식을 깨는 발상이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독 안에 든 쥐'를 '독(毒)' 안에 든 '미키마우스'로, 피부의 분비물인 때를 '지우개처럼 생긴 것'으로 표현하는 니콜식 화법은 정니콜 어록으로 불리며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다.

이렇게 문법에 구애됨 없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단어를 분절(分節)하고 조합하는 니콜식 화법은 언뜻 보면 유치하고 무질서해 보이지만 정답을 유추하는 과정 속엔 나름의 규칙성이 존재한다. 나쁜 남자, 나쁜 강아지, 미키마우스가 놈, 개, 쥐를 대신하는 관용적 표현으로 사용되는가 하면(나쁜 남자 = 놈, 나쁜 강아지 = 개, 미키마우스 = 쥐) '박스 옆에 사다리 = 매, 영어 대문자 E 옆에 사다리 = 태' 같이 한글과 영어를 그림이나 기호처럼 조합해서 단어를 만들기도 한다.  

만약 문법적 사고에 익숙한 한국인이나 주한 외국인이 '눈높이를 맞춰요 2'를 진행한다면 '낭랑' 18세를 '나라 밑에 안경'으로, 까마귀를 '블랙(black) + 귀(ear)'로, 실랑이를 '남편(신랑)이 두 명'으로, 멱살을 '미역(생일에 먹는 국) + 살'로 표현할 수 있을까? 십중팔구 기존 문법의 틀에 얽매어 되도록 사전적 정의에 가깝게 설명하려고 애쓸 것이다.

이처럼 한글과 영어, 기표(말의 소리에 해당)와 기의(말의 의미에 해당)가 마구 뒤섞인 니콜식 화법은 주어진 단어의 의미만을 포괄적으로 설명하던 기존의 틀을 깨고 한층 다채로운 말놀이(끝말잇기, 빈칸 채우기 등), 나아가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언어게임 개념에 좀더 근접한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비트겐슈타인에 의하면 언어 활동은 일종의 놀이이거나 인간적인 행위의 방식, 나아가 인간적인 삶의 방식이다. 그에게 있어 언어 활동은 언어 게임을 위한 행위요 역사와 문화는 언어 게임이며 어휘나 문장은 언어 놀이를 위한 도구(장기알)이다.(남경희, <비트겐슈타인과 현대 철학의 언어적 전회> 참고)

따라서 움직이지 않는 장기알이 무용지물에 불과하듯 실제로 사용되지 않는 어휘나 문장 역시 무의미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꽃' 중에서)는 김춘수의 시구가 의미하는 바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간단한 한글과 영어 단어만으로 복잡한 의미를 지닌 어휘나 문장(단어, 속담, 영화, 노래 제목 등)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니콜식 화법은 가장 원초적인 언어게임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니콜식 말놀이가 거창한 철학적 명제들 - 예컨대 세계는 언어로써만 이해 가능하다거나 그럼에도 세계는 언어와 일대일로 대응하지 않는다는 따위 - 과 부합하기 때문이 아니라 유년기의 아이들처럼 언어를 창의적으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비트겐슈타인의 말대로 세계와 언어 사이에 밀접한 상관관계가 존재한다면 창의적인 언어 능력은 분명 긍정적 유산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자녀들에게 긍정적 유산을 더 많이 물려주기 위한 방법으로 닌텐도 게임기를 사주는 것보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다양한 말놀이(끝말잇기, 빈칸 채우기, 단어 맞추기 등)를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태그:#정니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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