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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옥자 아주머니와 큰딸. 다시 만나칼국수집을 열면 꼭 찾아오라고 수줍게 말씀하신다.

인수동에 있는 청수탕을 끼고 북한산으로 향하는 언덕을 오르다 보면 언덕 중간 즈음, 겉보기에는 허름하지만 나름대로 정감 넘치는 아담한 칼국수집이 있었다. 사람 좋은 아주머니와 큰 딸이 이 '만나칼국수'집을 함께 운영했다. 칼국수 말고도 김밥과 잔치국수도 파는 자그마한 동네 분식집이었다. 몇 개 안 되는 테이블이었지만, 아주머니 손맛 덕분에 손님으로 붐볐고, 둘째 딸까지 동원되는 일도 흔했다.

 

외식하려고 마을 밖 패밀리레스토랑 대신 이곳을 찾는 마을 사람이 제법 됐다. 나와 친구들도 별미가 생각나면 아주머니네 칼국수집 문을 열었다. 아주머니가 직접 반죽해서 만든 손칼국수 맛을 잊을 수 없다. 이렇게 봄비가 내리거나 싸늘한 날에는 깔끔한 국물에 쫄깃쫄깃한 면발을 자랑하는 만나칼국수집이 더욱 그립다.

 

그런데 왜 아주머니는 나름 잘나가는 칼국수집 문을 닫았을까. 우리에게 아무런 말도 없이. 단골을 이렇게 무시해도 되는 건가.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아쉽다가도 부아가 나고 그러다가 걱정되었다.

 

갑자기 문 닫은 '잘나가는' 분식집

 

하여튼 만나칼국수는 작년 4월 10일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부동산중개소가 들어섰다. 우연히 아주머니네 칼국수를 맛본 후 단골이 되었다는 최우원씨(55)는 "내 집 같은 느낌이 들었고, 담백한 칼국수 맛이 일품이었다. 비좁은 공간이었지만, 우리가 음식을 주문하면 우리 눈앞에서 요리하는 아주머니 정성이 고마웠다"고 말했다. 최씨는 "맛을 보면 국물이나 면을 미리 정성껏 준비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며 어느 날 사라진 칼국수집을 추억했다.

 

만나칼국수를 기억하는 어린이도 있다. 양권진 어린이(11)는 "부모님 심부름으로 김밥을 종종 사갔어요. 칼국수도 맛있게 먹었는데, 없어져서 아쉬워요. 다시 음식점이 생겨서 먹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회사원 송향미씨(36)는 "비빔냉면이 좋았어요. 손으로 직접 비벼서 주셨는데 남편과 함께 즐겨먹었죠"라고 말했다. 한편 마을에 사는 이명숙씨는 "맛이 무척 좋았다. 굳이 아쉬운 점을 꼽자면, 아토피가 있는 아이들도 가리지 않고 먹을 수 있도록 유기농 재료를 썼더라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고 '과도한' 바람까지 전했다.

 

만나칼국수 아주머니 만나다

 

아주머니가 일을 쉰 지 1년이 차 간다. 마을에서 큰 딸과 함께 산책을 하거나 시장에 다녀오는 아주머니를 종종 마주친다. 붙잡고 문을 닫은 사연을 묻지 못 했다. 숫기가 없어서다. 그래도 나를 움직이게 한 것은 우중충한 날씨와 만나칼국수를 그리워한 마을 사람들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런 저런 날씨를 탓하며 칼국수집를 추억하고 왜 문을 닫았는지 설왕설래한다. '그래, 내가 나서보자.' 마을 사람들을 대신해서 아줌마를 만나보겠다고 오랜만에 용기 아닌 용기를 냈다. 아주머니께 만나칼국수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대신해서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요청했다. 오호라! 만나칼국수의 주인이며 요리사였던 정옥자씨(55)가 흔쾌히 "좋다"고 했다. 일단은 성공!

 

정씨는 2004년 1월 10일에 칼국수집을 시작했다. 맛깔스런 요리 솜씨에 비하면 엄청나게 짧은 음식점 나이다. 며칠 전에 개점한 음식점도 저마다 30년 전통이니, 40년 전통이니 자랑하는데. 역사 내세우는 집보다 5년밖에 안 된 만나칼국수집에서 훨씬 깊은 맛이 났다. 맛의 비결을 물었더니, 쑥스러워하는 아주머니가 짧게 "가족"이라고 말한다. 정씨는 슬하에 두 딸을 둔 평범한 가정주부다. 단지 남편 입맛이 까다로워 요리에 신경쓰다보니 맛있었나보다고, 남편에게 고마워해야 한다고 웃는다.

 

정씨가 가게를 시작하게 된 배경은 이렇다. 큰딸이 정신지체 2급 장애인인데, 우리 마을에 있는 국립재활원에서 기술을 배워 의정부 쪽에서 일했다. 그러다 사정이 생겨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대신 작은딸이 대학 졸업과 함께 취업이 되면서 정씨도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쉬게 된 큰 딸과 함께 가게를 시작했다. 정씨는 요리를 하고 큰 딸은 음식을 날랐다.

 

큰딸은 올해 서른넷이다. 정씨도 어려서 큰 딸의 정신지체를 보며 많이 힘들었다. 그러다 큰딸이 재활원에서 기술교육을 받으며 생각이 크게 바뀌었다. 재활원엔 큰 딸보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많았다. 정씨는 "몸만이라도 건강한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절감하게 되었다"며 "마음을 높은 데 두는 게 아니라 낮은 데 둘 때 감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가게 문을 열자마자 손님이 많이 찾아왔다. 정씨 손맛도 손맛이지만, 손님을 배려하는 정성 때문이기도 했다. 정씨네 칼국수 맛은 깔끔한 스타일이다. 이런 맛을 좋아하는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다. 여기에 취향에 따라 국물을 진하게 내주기도 했다. 진한 국물은 주로 나이든 어른이 좋아한다. 수제비를 좋아하면 수제비를 만들어주었고, 칼국수와 수제비를 섞어 달라고 하면 섞어주었다. 많이 달라고 하면 많이 주고, 적은 양을 원하는 손님은 원하는 만큼 주었다. 음식 재료도 가족들이 먹는 것을 그대로 내놓을 정도로 신경 썼다. 정 씨는 일을 그만두고 다른 가게에 가서 보니, 자기만 이렇게 장사했나 싶을 정도로 좋은 재료를 쓰려고 노력했다고 자부한다.

 

맛과 배려, 좋은 재료가 더해져 손님이 늘 붐볐다. 멀리서 오는 단골들까지 생겼다. '잘나가'면서 처음 2년간은 배달도 했다. 그 바람에 정씨의 무릎이 많이 상하게 되어 수술까지 했다. 이후부터는 배달은 하지 않았다. 이번에 일을 그만두게 된 것도 남편 성화 때문이다. 제발 몸 생각 좀 하라고.

 

그렇게 만 4년을 일을 하고 다시 평범한 가정주부로 돌아왔다. 갑자기 남편 분이 야속해졌다. '당신 혼자만 맛보지 말고 이웃에게도 맛난 칼국수 먹게 해 주세요.'

 

올 봄, 만나칼국수 다시 문 연다

 

요즘 정씨는 북한산에 오르고, 작은숲속(영락기도원과 가르멜수녀원 사이 숲. 동네 아이들이 지은 이름) 산책도 하며 쉬고 있다고 한다. 큰딸은 일을 하지 않고 주로 집에서 지내고 있다. 그런데 그게 좀 문제다. 큰딸이 주로 집에만 있다보니 입맛이 떨어져 잘 먹지 않는다. 일을 즐겁게 하던 사람이 쉬게 되었으니 힘들 수밖에. 갑자기 응급실로 간 것이 벌써 네 번. 큰딸을 위해서라도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도 왜 좋은 솜씨 썩히느냐며 다시 일을 하라고 권유하는 게 힘이 된다. 남편은 다시 일하는 것을 반대하다가 요즘엔 특별한 말이 없다. 그래서 올 봄에는 다시 일할 맘을 "80% 정도 먹고 있다".

 

최근에는 음식점 장소를 물색하러 다닌다는 후문이다. 만나칼국수 단골로서 무척 반가운 소식이다. 가능하면 우리 마을에서 음식점을 차리기를 바랄 뿐이다. 나처럼 만나칼국수가 다시 문을 열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부탁하겠단다. "찾아와주니 고맙고, 최선을 다했다. 다시 문을 열 때 찾아와주면 좋겠다." 듣고 보니, 부탁이 아니라 감사 인사네.

덧붙이는 글 | 이글은 서울 강북지역에서 활동하는 시민운동단체 생명평화연대 홈페이지(www.www.welife.org)에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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