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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 손두부구이 특징은 들기름과 산초기름을 쓴다는 점이다
▲ 손두부구이 이 집 손두부구이 특징은 들기름과 산초기름을 쓴다는 점이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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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는 길목, 강원도 횡성에 가면 횡성 맛 삼총사에 하나를 더해 맛 사총사로 끼워주지 않으면 서운해 할 정도로 이름 난 손두부 집들이 몇몇 있다. 이들 손두부 집들은 거의 다 주인이 손수 키운 우리 콩으로, 옛날 방식 그대로 손두부를 빚고 있다. 그래서일까. 어느 집에 들어가더라도 부드럽고 고소하게 감기는 손두부 맛은 비슷하다.

사실, 강원도 횡성을 빛내는 맛 삼총사는 한우, 더덕, 찐빵이다. 근데 몇 해 앞부터 횡성 맛 삼총사에 또 하나 새로운 맛을 보태는 조리 삼총사가 있다. 강원도 횡성을 고집스럽게 지키며, 횡성 땅에서 직접 농사지은 유기농 콩으로 하루도 쉴 틈 없이 손두부를 정성스레 빚고 있는 할머니와 아들, 며느리가 그들이다.

강원도 횡성군 우천면 정금초등학교 맞은편에 자리 잡고 있는 손두부 전문점. 이 집에 가면 칠순 할머니가 직접 손두부를 빚는 모습을 쉬이 볼 수 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열여섯에 이 마을로 시집을 와서 지금까지 50년을 넘게 손두부를 빚고 있다"는 김정숙(70) 할머니 곁에 서서 커다란 바가지에 담긴 콩물을 마치 우유처럼 꿀꺽꿀꺽 마시고 있는 꼬마다.

나그네가 꼬마에게 다가가 "그 콩물이 맛있느냐?"라고 묻자 주저 없이 "네" 하며 콩물을 쪼옥쪽~ 소리를 내가며 마신다. 잠시 뒤 꼬마가 입에 허연 콩물을 묻힌 채 방긋 웃으며 또 콩물을 뜨러 간다. 김 할머니는 "이젠 그만 먹어, 배탈 날라!"하면서도 콩물을 자꾸 떠먹는 손자가 몹시 귀여운지 잔잔한 미소를 그치지 않는다.

이 마을로 시집을 와서 지금까지 50년을 넘게 손두부를 빚고 있다"는 김정숙(70) 할머니
▲ 횡성 손두부 이 마을로 시집을 와서 지금까지 50년을 넘게 손두부를 빚고 있다"는 김정숙(70) 할머니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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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바가지에 담긴 콩물을 마치 우유처럼 꿀꺽꿀꺽 마시고 있는 꼬마
▲ 손두부 커다란 바가지에 담긴 콩물을 마치 우유처럼 꿀꺽꿀꺽 마시고 있는 꼬마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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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고프면 쪼르르 달려와 콩물을 꿀꺽꿀꺽 마시곤 했지"

"애들 키우느라 일을 얼마나 많이 했던지 허리가 다 꺾였어. 8남매가 한창 자랄 때는 어찌나 잘 먹던지 양식이 모자라 별 걸 다 해먹였지. 쟤(조카) 애비도 어릴 때 쪼르르 달려와 바가지에 콩물을 가득 떠서 꿀꺽꿀꺽 마시곤 했지. 그리곤 소매로 입을 한번 쓰윽 훔친 뒤 쪼르르 달려나가 놀다가 배가 고프면 또 쪼르르 달려오곤 했어."

김 할머니가 손두부를 만드는 방법은 옛날 손두부를 만드는 정통 방식 그대로다. 먼저 맷돌에 콩을 간 뒤 허연 콩물을 시커먼 가마솥에 가득 붓고 끓인다. 이어 팔팔 끓은 콩물을 자루에 넣어 힘차게 비틀어 비지를 완전하게 걸러낸 뒤 거른 콩물을 다시 가마솥에 넣고 약한 불에 끓이며 간수를 조금씩 붓는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콩물이 제 짝 찾아 얼싸안듯이 서로 엉기기 시작한다. 이렇게 엉긴 콩물이 우리가 시내에서 흔히 먹는 '순두부'다. 손두부를 빚기 위해서는 엉긴 콩물(손두부)을 바가지로 떠서 삼베를 깐 틀에 부어 그 위에 삼베를 다시 덮고 10여 분쯤 눌러야 한다. 그래야 만병을 이기는 보약이라는 고소한 손부두가 태어난다. 

김 할머니 아들 김동근(44)씨는 "밭 4천 평에 우리 콩을 심으면 25가마니 정도 수확할 수 있다"고 귀띔한다. 김씨는 "예전에는 그 콩을 장터에 나가 팔거나 농막에 쌓아두고 조금씩 팔았는데, 요즘은 모두 손두부를 만들어 팔고 있다"며 "요즈음 손님이 갑자기 많이 늘어나 이웃 집 콩까지 사서 쓰고 있다"고 미소 짓는다.
  
맷돌에 갈아놓은 콩물
▲ 손두부 맷돌에 갈아놓은 콩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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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팔 끓은 콩물을 자루에 넣어 힘차게 비틀어 비지를 완전하게 걸러낸다
▲ 손두부 팔팔 끓은 콩물을 자루에 넣어 힘차게 비틀어 비지를 완전하게 걸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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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 생산에서부터 손두부 소비까지 모두 '원 스톱 시스템'

"두부는 만병을 다스리는 보약 같은 음식이지요. 특히 100% 우리 콩으로 만든 손두부는 다른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여러 가지 성인병과 당뇨, 골다공증, 고혈압, 콜레스테롤 감소 등에 일반 두부보다 훨씬 더 효과가 있다고 봐야지요. 게다가 손두부는 소화가 아주 잘 되고 열량이 낮아 여성들 다이어트 식품에도 그만이지요."

2월 22일(일) 찾았던 큰터 손두부. 이 집 특징은 김씨가 밭에 나가 직접 콩 농사를 지어 콩을 거두고, 어머니는 그렇게 거둔 콩을 물에 불렸다가 맷돌에 갈아 손부두를 만들고,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직접 만든 손두부를 조리해서 손님들에게 내놓는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콩 생산에서부터 손두부 소비까지 모두 3총사 손 안에서 다 이루어진다.

횡성농업경영인(농업인 후계자)이기도 한 이 집 주인 김씨는 아내 최명화(37)씨와 함께 손두부 전문점을 꾸리고 있다. 김씨에게 횡성 손두부 맛의 비결을 묻자 "농사지은 콩 그대로 꾸밈없이 조리하는 것"이라고 짤막하게 답한다. "왜 하필 콩 농사를 짓기 시작했나"라는 물음에는 "대농을 하다 보니까 콩이 가장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빙그시 웃었다.   

김씨가 6년 앞, 이곳에서 손두부 집을 열게 된 까닭은 따로 있다. 김씨는 그동안 고향 횡성에서 벼와 감자, 옥수수, 고추, 여러 가지 채소 등 안 지어본 농사가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뼈 빠지게 농사를 지어도 먹고 살기가 늘 빠듯했다. 그런 어느 여름날, 어머니 김 할머니가 농막에서 올갱이 국수를 팔다가 '무허가'에 걸렸다.

그때 김씨 머리를 스친 것이 손두부였다. 기왕 콩 농사도 짓고 있겠다, 어머니께서 50년을 훨씬 넘게 손두부를 만들어 오셨겠다, 정식 허가를 내 손두부 전문점을 열면 장사가 될 것만 같았다. 김씨는 그렇게 "밑져봐야 본전"이란 생각으로 손두부 집을 열었던 게 그대로 딱 들어 맞아버린 것이다.   

밑반찬으로 김치, 무채나물, 도라지무침, 콩나물, 무와 오이로 담근 오색장아찌와 함께 양념간장을 식탁 위에 올린다
▲ 밑반찬 밑반찬으로 김치, 무채나물, 도라지무침, 콩나물, 무와 오이로 담근 오색장아찌와 함께 양념간장을 식탁 위에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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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두부, 표고버섯, 팽이버섯, 느타리버섯과 여러 가지 채소와 양념이 들어간 손두부전골
▲ 손두부전골 손두부, 표고버섯, 팽이버섯, 느타리버섯과 여러 가지 채소와 양념이 들어간 손두부전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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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긋한 향 감돌며 부드럽고 고소하게 녹아내리는 손두부구이

"처음에는 손님이 별로 없었어요. 어쩌다 오는 손님들도 그저 지나치다 저희 집에 들르곤 했지요. 그러다가 한번 다녀간 손님들이 입소문을 내기 시작하면서 점점 손님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어요. 요즈음은 학교 선생님들이 많이 와요. 경기가 어렵다 보니까 값싸고 건강에 좋은 손두부를 많이 찾는 것 같아요." 

"두부간을 새로 지으려 한다"는 김씨에게 손두부구이(5천원)와 손두부전골(5천원), 손두부찜(6천원)을 골고루 시키자 밑반찬으로 김치, 무채나물, 도라지무침, 콩나물, 무와 오이로 담근 오색장아찌와 함께 양념간장을 식탁 위에 올린다. 백옥처럼 하얀 도자기 위에 쬐끔 쬐끔 올려진 밑반찬이 첫눈에 보기에도 깔끔하고 맛깔스럽게 보인다.

횡성 막걸리 한 잔 부어놓고 잠시 기다리자 주인 김씨가 까만 불판 위에 하얀 손두부를 표고버섯, 팽이버섯과 함께 올린다. 치지직 소리와 함께 까만 불판이 눈처럼 하얀 손두부를 노릇노릇 구워내기 시작한다. 언뜻 까만 불판이 포근한 안식을 주는 어둠처럼 어른거리고, 그 어둠 속에서 안식을 취하고 있는 하얀 손두부가 새로운 생명으로 움트는 듯하다.  

이 집 손두부구이 특징은 들기름과 산초기름을 쓴다는 점이다. 그래서일까. 노릇노릇 익어가는 손두부구이 한 점 양념간장에 살짝 찍어 입에 넣자 향긋한 향이 감돌면서 부드럽고 고소하게 녹아내린다. 막걸리 한 사발 꿀꺽꿀꺽 들이킨 뒤 다시 손두부구이 한 점 입에 넣자 솜사탕처럼 사르르 녹아내리면서도 달거나 느끼하지 않고 뒷맛이 아주 깔끔하다. 

손두부찜에는 들기름으로 살짝 볶은 손두부와 돼지고기, 팽이, 표고, 느타리버섯 등과 여러 채소와 양념이 들어간다
▲ 손두부찜 손두부찜에는 들기름으로 살짝 볶은 손두부와 돼지고기, 팽이, 표고, 느타리버섯 등과 여러 채소와 양념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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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릇노릇 익어가는 손두부구이 한 점 양념간장에 살짝 찍어 입에 넣자 향긋한 향이 감돌면서 부드럽고 고소하게 녹아내린다
▲ 손두부구이 노릇노릇 익어가는 손두부구이 한 점 양념간장에 살짝 찍어 입에 넣자 향긋한 향이 감돌면서 부드럽고 고소하게 녹아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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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야! 두부가 쇠고기보다 더 맛날 수가 있다니..."

"히야! 두부가 쇠고기보다 더 맛날 수가 있다니. 그래, 바로 이 맛이야!"
"여기요! 손두부구이 한 접시 주세요"
"저기요! 두부전골 육수 좀 더 부어주세요"
"여기 밥 한 공기 더 주세요"

오전 11시. 아직 이른 점심 때였지만 손님들이 꽤 많이 있다. 하지만 차림새로 보아 이 지역 사람들은 아닌 듯하다. 막걸리와 함께 손두부구이를 거의 다 먹어가고 있을 때 이 집을 다녀간 손님들이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른다'는 입소문을 낼 정도로 맛이 좋은 손두부전골과 손두부찜이 나온다.   

이 집 손두부전골과 손두부찜이 인기가 높은 것은 맛국물에 있다. 손두부전골과 손두부찜에 쓰이는 맛국물은 대파와 마늘, 양파, 엄나무, 바지락, 다시마, 새우, 고추씨가 들어간다. 김씨 말에 따르면 손두부 조리를 위한 맛국물을 낼 때에는 고추씨가 들어가야 국물이 개운하면서도 뒷맛이 아주 깔끔하다는 것.

손두부, 표고버섯, 팽이버섯, 느타리버섯과 여러 가지 채소와 양념이 들어간 손두부전골 한 수저 떠서 입에 넣자 시원하면서도 산뜻하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쌀밥 한 수저 떠서 입에 넣은 뒤 손두부전골을 입에 넣자 매콤하면서도 개운한 맛 속에 깊은 감칠맛이 숟가락질을 자꾸 하게 만든다.

구수하면서도 은근히 당기는 맛이 그만인 손두부찜에는 들기름으로 살짝 볶은 손두부와 돼지고기, 팽이, 표고, 느타리버섯 등과 여러 채소와 양념이 들어간다. 손두부찜 한 수저 떠서 입에 넣자 얼큰한 맛 속에 사르르 부서지는 손두부가 주는 고소한 맛이 어우러져 씹을 틈도 없이 그대로 술술 넘어가버린다.     

손두부전골 한수저 떠서 입에 넣자 시원하면서도 산뜻하다
▲ 손두부전골 손두부전골 한수저 떠서 입에 넣자 시원하면서도 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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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박눈처럼 예쁘게 매달린 매화와 현기증 일도록 노오란 산수유꽃을 타고 저만치 새악시처럼 사뿐사뿐 다가오는 봄. 봄이 오는 길목, 강원도 횡성 손두부가 잃어가는 입맛을 톡톡톡 건드리고 있다. 어디선가 '가자! 횡성 손두부 먹으러, 오라! 내 한 몸 기꺼이 춘곤증 물리치는 보약이 되어주마'라는 말이 귓전을 자꾸 맴돈다.


태그:#손두부, #횡성, #손두부전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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