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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된 백운수석 60대 노부부는 돌과 이야기 나누며 평생을 보냈다. 사람들도 돌처럼 착했으면 바라면서.
▲ 35년된 백운수석 60대 노부부는 돌과 이야기 나누며 평생을 보냈다. 사람들도 돌처럼 착했으면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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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북구 인수동 북한산 자락 범골 계곡 입구, 청수탕 건너편 151번 정류장 앞에는 작은 수석집이 있다. 60대 후반의 노부부가 운영하는 소박한 가게다. 서리 낀 유리문 너머로 돌을 닦거나 수석 받침대를 다듬는 두 어른을 만날 수 있다. 우직해 보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올해로 35년째 수석을 다듬는 외길을 걸어오셨다. 경기를 심하게 타는 수석 일 특성상 힘든 고비가 여러 번 있었지만, 가게에 딸린 단칸방에서도 세 딸을 야무지게 키웠다. 지금은 딸들을 모두 시집보내고 두 분이 오순도순 때로는 티격태격 살고 계신다.

사는 이야기 들으러 왔다고 인사 드렸을 때 두 분은 다른 반응을 보이셨다. 할아버지는 현 시국에 대해 이런 저런 견해를 펼치셨고, 할머니는 나는 저런 정치 이야기하는 게 싫다고 가게 안쪽으로 들어가 버리셨다. 할아버지는 할머니 뒤에 대고 "기록으로 남겨야 하는 겨. 그래야 역사가 되는 거지" 하신다. 할머니는 말없이 일하신다.

인수동 사람들이 주로 보는 마을신문에 이야기하는 것도 역사에 기록하는 것이라고 인정해주시는 것 같아 마음 속으로 할아버지를 응원했다. 그러나 정작 들어야 할 이야기는 할머니에게서 나왔다.

자꾸 싫다고 하시던 할머니 마음을 어떻게 열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따님이 초등학교 시절 받은 상장을 이야깃거리로 꺼냈다. 벽에 걸린 상장은 1983년에 큰 딸이 서예전에서 받은 상이었다. 할머니 목소리에 조금씩 힘이 실렸다. 딸의 재능은 어려운 시절을 버틸 수 있는 희망이었다.

수석하는 사람이 환경 파괴한다고?

백운수석 할머니 취재를 한다고 하자 한사코 사진도 찍지 말고 쓰지 말라고 하셨다. 어렵게 설득해서 한컷 찍었다. 그런데 사진이 흔들리고 말았다.
▲ 백운수석 할머니 취재를 한다고 하자 한사코 사진도 찍지 말고 쓰지 말라고 하셨다. 어렵게 설득해서 한컷 찍었다. 그런데 사진이 흔들리고 말았다.
ⓒ 주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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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본래 자리로 되돌려 놓으려고 "그럼 그 때도 수석 일을 하셨느냐"고 여쭈었다. 할머니는 "몇 번 고비가 있었지만, 평생을 수석 일에만 바쳤다"고 하셨다. 가까운 사람들이 다른 일을 권하기도 하고, 수석이 경기를 심하게 타는지라 다른 장사에 마음이 솔깃하기도 했다. 그래도 끝내 움직이지는 않았다. 할머니는 미련해서 그랬다고 했지만, 후회하는 낯이 아니다. 한우물만 평생 파온 사람의 굳은 심지 때문인지 눈빛이 번득였다.

사람들은 수석하는 이들이 환경을 파괴한다고 말하는데, 할머니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변론했다. 아무 곳에 가서 아무 돌이나 캐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좋은 돌을 찾으려고 마구 파헤치는 일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 것은 욕심에 찌든 낮은 급수의 사람이나 하는 짓이라고 했다.

탐석, 그리니까 돌을 찾으러 가는 일은 할아버지 몫인데, 주로 여름 장마가 끝날 무렵 움직이신다. 강과 내가 넘치면서 땅도 한번 뒤집히고 그 통에 물속에 잠겼던 돌들도 드러난다. 수천 년 물살을 맞아가며 다듬어진 돌을 들여다보고 좋은 것은 가져오고, 아닌 것은 놓아준다고 하셨다.

아니 잠깐, 돌을 물고기 다루듯 하시네요? 돌아오는 할머니 대답이 점입가경이다. "돌처럼 착하고 순하고 변함없는 게 어디 있겠어. 사람은 기껏해야 백 년이나 살까. 돌은 천 년을 넘게 살면서 물과 바람에 다듬어지며 아름다운 자태를 가꿔가는 거야. 돌에는 사람이 헤아릴 수 없는 세월이 담겨있어. 그러니 맑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 거지."

돌도 생명이라는 말씀에는 그럴 수 있겠다 싶었는데, 어느 돌이 착한 돌인지, 어느 돌이 순하고 아름다운 돌인지 어떻게 가리는 걸까.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간단하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들고 천천히 들여다보면 보여.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들고 '무슨 형상을 품고 있나' 생각하다보면 돌 안에서 무언가가 내게 다가오지."

경기 어려우면 더욱 힘든 직업이지만…

백운수석 집에서 가장 값나가는 돌 그럴듯해보이는 돌도 제법 많았지만, 백운수석집에서 가장 좋은 돌은 다른 곳에 있었다. 내가 바도 모르겠다고 하자, 할머니는 차분하게 설명해주셨다.
▲ 백운수석 집에서 가장 값나가는 돌 그럴듯해보이는 돌도 제법 많았지만, 백운수석집에서 가장 좋은 돌은 다른 곳에 있었다. 내가 바도 모르겠다고 하자, 할머니는 차분하게 설명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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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돌과 대화하는 사람들에게 자연을 파괴하는 누명을 씌웠으니 분개할 수밖에. 두 분은 전국을 돌며 돌을 채집하지만 한 번도 자연을 거스른다고 생각한 적 없다. 그저 자연에서 아름답고 착한 놈을 불러내 인간 세상에 선보이는 일밖에는. 그러니 돌이 모두 자식 같다.

찾아서 헤매고, 만난 뒤에는 정성껏 닦고 받침대를 만들어주고, 돌이 살아나도록 주변 환경을 꾸며준다. 그리고 새끼 같은, 분신 같은 돌을 알아보는 주인을 기다린다. 이 대목에 오면서 돌 전문가 할머니 할아버지도 자신감 대신 어두운 그늘이 진다.

"요즘 같은 인터넷 시대에 홈페이지 하나 없이 이런 구석에 쬐끔한 가게 하나 차려놓으면 누가 오겠냐. 어쩌다 오는 손님에게는 180도 허리를 굽혀 인사해야지. 손님이 매기는 대로 받을 수밖에 없어. 그게 어디야. 이렇게 우리를 찾아준다는데…."

경기가 어려우면 취미 생활부터 정리한다. 수석이야 오죽할까. 정말 돌을 사랑하는 사람 아니면 이런 불경기에는 돌아보지도 않는다. 할아버지 할머니 가게에 온 손님 중에는 "뭐가 나온다고 돌덩어리에 돈을 들이냐"는 말을 쉽게 던지고 가는 이들도 있다. 또 어느 때는 "꽃이 좋지, 저런 칙칙한 돌을 누가 좋아하겠냐"고 핀잔 아닌 핀잔을 들은 일도 있다. 돌을 좋아하는 친구를 따라 가게에 들렀거나 선물을 사러 왔다가 무심코 뱉은 말이리라. 그렇지만 그 말은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비수로 날아와 꽂힌다. 

돌 어루만지며 위로 얻는다

백운수석 예쁜 돌들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그렇지만 경기가 바닥을 치고 있는 요즘 돌에 돈을 쓸만큼 사람들은 여유가 없다. 할머니 할아버지 시름도 늘어만 간다.
▲ 백운수석 예쁜 돌들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그렇지만 경기가 바닥을 치고 있는 요즘 돌에 돈을 쓸만큼 사람들은 여유가 없다. 할머니 할아버지 시름도 늘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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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수상하고 사람이 야속할 때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돌에게 위로를 받는다고 한다. "돌을 만지면 시간 가는 줄 몰라. 어우만지고 다듬다보면 내 마음이 차분해져. 거짓도, 욕심도 사그라져. 그러고 나면 돌과도 대화를 할 수 있는 거지."

할머니는 한 시간 넘게 이것저것 묻는 나에게 돌 고르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집 안에 둘 거면 부드러운 돌을 고르고, 집 밖이라면 깎인 돌이 좋다고 했다. 부드러운 돌은 가족이 오순도순 화목하게 하는 기운을 북돋고, 깎인 돌은 거칠어도 기백을 품고 있어 힘을 준다고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같은 마을에 살아서 좋다고, 지나가다 또 놀러오겠다고, 힘내시라고 인사했다. 깊은 한숨과 함께 "칠십 되기 전에는 졸업해야지. 힘들어서" 하는 인사가 돌아온다. 그렇지만 곧이어 "또 놀러와. 다음에는 아기들도 데려와서 돌 구경해줘" 하신다. 돌도 좋지만, 돌과도 이야기 나눌 수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우리 아이들에게 소개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서울 강북지역에서 활동하는 시민운동단체 생명평화연대 홈페이지(www.www.welife.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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