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경제 강국 아일랜드에 '국가부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적신호가 들어왔다. 미국 발 금융위기로 아일랜드 경제가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 세계 6위'라는 순위가 무색할 정도다. 주요 은행들은 부실규모가 커지면서 정부의 지원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고, 실업자는 급증하고 있다.

더욱이 아일랜드 정부는 노동자들에게 고통 분담을 요구하는 등 '불공평한' 정책을 펼치고 있어 강한 저항에 직면해 있다. 지난 22일에는 공무원을 주축으로 한 무려 12만 명이 수도 더블린의 한복판에서 시위를 벌였다.

아일랜드 정부의 무능한 정책에 항의하는 공무원과 시민들의 대규모 시위를 보도한 <타임>.
 아일랜드 정부의 무능한 정책에 항의하는 공무원과 시민들의 대규모 시위를 보도한 <타임>.
ⓒ 타임

관련사진보기



'구걸하는 거지'에서 '켈틱의 호랑이'로 승승장구

아일랜드는 어떤 나라인가. 신자유주의 모델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그토록 자랑하던 성장 모델 국가다. 아일랜드는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농업이 중심이 된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다. 당시 아일랜드는 "구걸하는 거지" "절름발이 오리"로 불릴 정도였다.

그러나 아일랜드는 1994년부터 눈부신 경제 성장을 시작했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크게 적극적인 개방정책과 사회협약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먼저 아일랜드는 1973년에 유럽연합(EU)에 가입하면서 매년 20억 아일랜드 파운드(약 28억 달러)의 지원을 받았다.

당시 EU의 원조금은 농민 보조금과 유럽회원국가 내 불균형 해소 자금으로 지급됐다. 이는 당시 아일랜드 경제 발전의 토대를 이루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아일랜드는 이 지원금을 가지고 교육시스템과 농업을 선진화시키고 제조업을 강화하는 등 경제의 기간을 탄탄히 했다. 또한, 유럽연합을 통해 유럽의 거대한 시장에 수출할 수 있게 되었다.

1990년대에 아일랜드 정부는 한발 더 나아가 법인세를 10%대로 파격적으로 내리고 기업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보조금과 투자 지원정책을 펼쳤다. 이를 통해 델, 인텔,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유수의 다국적 기업들이 아일랜드로 몰려들었다. 일자리가 생기고 외국 자본이 흘러넘쳤다. 다국적기업이 제조업 부분의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70%를 넘기도 했다. 아일랜드는 1994~1998년까지 평균 9%에 달할 정도의 고공성장을 기록하며 '켈틱의 호랑이(Celtic Tiger)'라는 칭호를 얻었다.

아일랜드 은행의 자금 스캔들을 보도한 <BBC>.
 아일랜드 은행의 자금 스캔들을 보도한 <BBC>.
ⓒ BBC인터넷화면캡처

관련사진보기


경제위기 앞에 무너져 내린 금융시스템, 국가 부도 위기

그러나 대규모 외국자본에 개방된 경제체제와 이를 통해 성장한 금융시스템은 이번 금융위기에 극도로 취약했다. 지난해 10월, 아일랜드는 유럽에서 가장 먼저 '침체'에 진입한 국가가 됐다. 부동산 시장의 거품이 빠지기 시작했고, 내수도 극도로 위축됐다. 특히 외국자본에 의존하는 금융시스템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아일랜드 정부는 지난해 10월 예금 등 자본의 이탈을 우려해 유럽국가 중 가장 먼저 "정부가 전액 예금을 지급보증하겠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은행들의 주가는 폭락하기 시작했다. 부실채권의 증가와 자금 이탈 등으로 인해 은행들은 속속 문을 닫을 상태에 처했다.

현재, 아일랜드의 주요 3대 은행은 정부의 '수혈'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정부는 최근 2대 은행인 '얼라이드 아이리시 뱅크'와 '뱅크 오브 아일랜드'에 70억 유로(약 90억 달러)의 공적자금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3대 은행인 '앵글로 아이리시' 은행은 오래 전부터 고전을 면치 못했다. 임원들의 실적 부풀리기 등 대규모의 자본 스캔들마저 발생해 지난 1월, 아일랜드 정부에 의해 국유화 대상이 된 상태다. 

<선데이 타임스>와 <월스트리트 저널>은 "아일랜드 정부가 은행에 지나친 지원을 하면서 국채가 늘었다"며 "재정이 너무 악화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아일랜드 은행의 부채 총액은 아일랜드 경제규모의 11배를 넘고, 은행권에 대한 자금 지원도 국내총생산(GDP)의 2배를 웃도는 수준이다. 실제 <BBC> 방송은 유럽연합의 자료를 근거로 "올해 아일랜드의 재정적자는 마이너스 9.5%"라며 유럽에서 가장 재정이 악화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아일랜드 정부의 디폴트, 국가부도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상황이 이처럼 다급해지자 아일랜드 정부는 복지관련 예산과 공무원 임금 삭감 등 공공부문의 지출을 대폭 줄이겠다고 밝혔다. 향후 5년간 150억 유로의 비용절감을 하겠다는 것. 또 최근에는 공무원들의 연금 부담액을 늘리고, 임금은 동결하겠다고 발표했다.

공무원들은 아일랜드 정부의 이런 조치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공무원들은 "민간 은행들이 잘못해서 생긴 금융부실 때문에 왜 우리가 희생양이 되어야 하느냐"며 반발하고 있다. 시민들도 "정부가 이런 식으로 나라를 운영하는 것은 정말 구역질이 날 지경"이라고 말하고 있다.

코엔 아일랜드 수상이 "아일랜드 경제가 크게 후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는 내용을 보도한 <아이리시 타임스>.
 코엔 아일랜드 수상이 "아일랜드 경제가 크게 후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는 내용을 보도한 <아이리시 타임스>.
ⓒ 아이리시타임스

관련사진보기


공무원 "왜 우리가 희생양?"... 국민들 "정부에 구역질"

지난 22일,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의 메리언 광장에는 12만여 명의 시민들이 아일랜드 정부의 무능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대부분 교사, 경찰관, 소방원 등 '현직공무원'들이다. 공무원들은 조만간 군인까지 포함해서 각 근무지 파업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져 파장이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럼에도 아일랜드 정부는 금융의 부실을 '은행가들의 도덕성 문제' 등으로만 볼 뿐, 근본적인 시스템 개혁은 고민하지 않고 있다. 일간 <가디언>은 "아일랜드 정치인들은 은행이라는 거위가 다시 황금알을 낳도록 하는 것 외에는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는 집단 같다"며 "아일랜드의 경제가 어떤 토대에서 세워져야 하는지에 대해 전혀 논의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일랜드는 사회대타협과 대화를 통해 복지 관련 예산을 증액시켜왔지만, 미국 다음으로 빈부격차가 큰 국가다. 특히 어린이 빈곤 등은 유럽에서 바닥권이다. 그런데도 아일랜드 정부는 재정긴축을 이유로 복지 예산을 더욱 축소할 계획이어서 서민들의 고통은 더욱 가중될 것으로 우려된다.

외국자본에 지나치게 개방, 의존하는 국가의 경제가 '금융위기' 한방에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아일랜드와 지난 아이슬란드의 경험이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신자유주의 개방정책으로 치닫고 있는 한국의 상황이 앞의 두 나라와 별로 다르지 않게 흘러가고 있다는 점, 그게 한국정부가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태그:#아일랜드, #국가부도, #신자유주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