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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련(아래 전국경제인연합회) 소속 30대 그룹들이 신입사원의 연봉을 최대 28%까지 삭감해 신규 채용인원을 늘리는 데 사용하겠다고 합니다. 공기업들이 고통분담 차원에서 신입사원 초임을 최대 30%까지 깎겠다고 밝힌 데 이어 사기업들도 정부 지침에 발맞춰 '초임 삭감'에 적극 동참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한편에서는, 공·사기업을 불문하고 당초 계획에도 없었던 임시직 청년인턴을 대폭 확대해 뽑겠다며 대대적인 선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20대 친구들에게 묻습니다. 위 소식들을 듣고 어땠나요. 젊은 실업자를 위한다는 10개월 '알바' 자리, 만족할 수 있습니까? '알바' 자리 말고 확정된 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강행될 초임 삭감, 안 그래도 바늘구멍 뚫느라 하루하루가 고통인 우리에게 또다시 고통과 책임을 전가하려는 지금의 논의들,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이번에도 얌전히 두 손 놓고 받아들이기만 해야 합니까?

 

일파만파로 퍼지고 있는 '초임 삭감'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움직임이 과연 무엇을 뜻하는 걸까요? 한마디로 20대가 받을 임금을 미리 깎아 우리 20대들 일자리 비용, 그것도 대다수가 이름만 번지르르한 '인턴채용' 비용으로 충당하겠단 말 아닙니까?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지적처럼 "구조화될 임금 삭감과 일시적인 청년 인턴제를 맞바꾸자는, 거래로 말한다면 지독히 불공평한 거래"가 아닌가요?

 

신입직원 초임 우선적으로 깎는 게 고통분담입니까?

 

거품 낀 고액연봉을 깎겠다는 취지, 틀린 구석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정확히 짚어봅시다. 정작 혜택을 삭감할 필요가 있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위기 시 고통분담은 평상시에 가장 많은 부와 혜택을 쌓아놓은 이들부터 먼저 양보하고 나누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 정석 아닌가요?

 

실제 유럽과 미국 등 해외에서는 상위층의 최고세율을 인상하고, 주주들의 배당금을 삭감하며, 경영진의 보수를 제한하는 형태로 고통분담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각종 규제완화에 부자감세도 모자라, 임원·경영진 임금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면서 고통분담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상대적 약자이자 다루기 쉬운 신입직원들의 초임 삭감을 통해 고통을 나누겠다고 합니다.

 

본말이 전도된 상황입니다. 아직 사회에 진입하지도 않은 신참들의 얇은 지갑을 털어 고통분담에 나서라고 요구하는 지금, 가장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할 위치에 있는 기성세대들의 고통분담 논의는 도대체 어디서 진행되고 있는 것일까요? 경제 위기를 자초한 금융권 대주주들의 '돈놀이'식 고액 배당금 삭감 논의는 시작이나 된 걸까요?

 

자유선진당 이재선 의원이 내놓은 분석 자료를 보면, 철도공사의 경우 2급 이상 임원 총급여액(605억원)에서 20%를 줄이면 연봉 3천만 원을 받는 신입직원 403명을 뽑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국토해양부 산하 20개 공기업은 임원급 임금은 거의 그대로 유지한 채, 초임 삭감과 감원만을 단행하는 구조조정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는 고통분담이 아닙니다. 만만한 신입직원을 향한 책임전가입니다.   

 

전경련이 내놓은 대책도 답답하긴 마찬가집니다. 초임을 깎는 당위성만 장황하게 늘어놨을 뿐, 깎인 초임으로 마련될 재원 규모와 향후 활용대책은 전혀 마련해놓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기존 임직원은 관행이 있어서 임금을 깎기 어렵고, 그나마 조정이 가능한 신입사원부터 임금을 깎겠다는 것"입니다. 3살 어린아이 사탕 빼앗아 놓고 아무런 이유도, 아무런 뒷수습 계획도 밝히지 않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만만한 게 20대냐" 따질 자격, 우리에겐 충분히 있습니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10대 그룹의 한 임원조차 "노조 상대하기 껄끄러우니까 만만한 취업 준비생들을 상대로 임금 수준을 미리 못 박아 두겠다는 정치적 행위"라고 비판했다고 합니다. 이렇듯 우리 20대는 항상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만만하고 쉬운 대상이었습니다. 젊고 발랄한 의견과 목소리를 내보기는커녕, 강요받은 갑갑한 틀 안에서만 쥐죽은 듯 지내왔습니다. 

 

여전히 우리를 위한 배려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지금, 왜 우리는 이번에도 "또 우리인가?"라는 질문을 못 던지는 걸까요? "만만한 게 20대냐?"고 따질 자격이 우리에겐 없는 걸까요?

 

우리 20대들, 할 만큼 했습니다. 사회와 기성세대들이 요구하는 것, 싫은 소리 없이 묵묵히 해왔습니다. '신자유주의의 자식들' 어쩌고 하는 비아냥도 들었고, '이기주의로 똘똘 뭉친 경제동물'이란 혹독한 공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오직 기성세대가 요구하는 인재상, 그거 하나만을 위해 피터지게 경쟁하며 살아왔습니다.

 

대학 졸업장 없으면 사람 취급 못 받는다는 말에 터무니없이 비싼 등록금을 대출까지 받아가며 바득바득 학교 다녔습니다. 영어가 중요하다기에, 토익·토플·회화, 심지어 거액을 들여 해외어학연수까지 필수코스처럼 다녀왔습니다. 공모전·인턴이 취업에 필수적인 요소란 소리를 듣고는, 그거 한번 해보고자 깜깜한 밤 새하얗게 지새며 매진했습니다.

 

기업에서 "따뜻한 사람이 돼라"고 요구했을 때는, 마음에도 없는 봉사활동 시간 채우기 위해 발발거리며 돌아다니기도 했습니다. 취업을 위한 거라면, 사회가 요구하는 거라면, 각종 사교육부담 마다않고 부여받은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뒤도 안 보고 정진해왔습니다. 인류역사상 우리만큼 '고 스펙'에 유능하고 많이 배운 세대도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정부에서는 10개월짜리 '알바'를 인턴이란 이름으로 포장해 불쌍한 사람 빵 하나 던져주듯이 청년실업대책으로 내놨습니다. 이것도 모자라 공·사기업 할 것 없이 우리들 얇은 지갑만을 축내는 것을 '고통분담'이라고 설파하고 있습니다. 이런 불공정한 거래가 우리 장래를 위해 바람직할까요? 또한 소득분배 개선에 제1의 박차를 가해야 할 국민경제를 위해서도 옳은 방향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2006년 프랑스와 2009년 한국

 

이기적이라고 욕먹는 우리,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퍼부은 노력에 기초한 '내 권리 찾기'에는 대단히 소극적입니다. 그래서 항상 동네북처럼 당했습니다. 한쪽에서는 "더 스펙 쌓고, 더 치열해져라"는 요구를 받아야 했고, 한쪽으로부터는 "정치·사회의식 없는 무뇌아"란 맹비난을 들어야 했습니다. 우석훈 박사의 지적처럼, 세대 특징이 약한 '덩어리'로서, 정치주체이기는커녕 '정치 마케팅'을 위한 도구로 철저히 이용당하기만 해왔습니다.

 

지난 2006년 프랑스의 젊은이들이 거리에서 외쳤던 "우리는 크리넥스(일회용 휴지)가 아니다"란 구호가 뇌리에 아른거리는 요즘입니다. 당시 프랑스 정부에서는 26세 미만 젊은이의 첫 취업에 한해서, 2년간은 특별한 사유 없이 해고할 수 있는 최초고용계약법을 내놨습니다. 이에 맞서 200만 이상의 프랑스 학생들과 노동자들은 폭동에 가까운 격렬한 시위를 벌였고, 결국 정부 계획을 철회시켰죠. 한국의 비정규직법보다 훨씬 강도가 낮은 내용을 담고 있었는데도 말이죠.

 

시민·사회적 권리에 기초한 강력한 연대의식, 프랑스뿐 아니라 지금의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합니다. 젊은층 절반 이상이 기회가 되면 해외로 이민 가서 살고 싶다는 말이 들리는 지금, 여기서 더 물러나면 뒤는 어디겠습니까? 뒤가 있기는 한 걸까요?


태그:#초임 삭감, #청년실업, #20대, #일자리 나누기, #신입직원 초임 삭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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