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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 취임 1년을 맞은 25일 오전 서울 청와대 부근 청운동 동사무소 앞에서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 주최로 열린 '청년실업 해결 촉구 기자회견'에서 대학생들이 이명박 정부가 청년실업 정책에서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삽질'만 하고 있는다 내용의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1년을 맞은 25일 오전 서울 청와대 부근 청운동 동사무소 앞에서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 주최로 열린 '청년실업 해결 촉구 기자회견'에서 대학생들이 이명박 정부가 청년실업 정책에서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삽질'만 하고 있는다 내용의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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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싸게 부려 먹자는 거 아니야?"

25일 오후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취업준비생 김성진(가명·26)씨의 목소리에는 허탈함과 씁쓸함이 묻어났다. 그는 이날 오전 30대 대기업의 대졸 초임 삭감 발표에 대한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듯 "신입사원이 무슨 죄냐?"고 언성을 높였다.

지난 20일 졸업식을 끝으로 '대학 5학년생'에서 실업자가 된 김씨는 최근 몇몇 공기업 서류전형을 통과했다. 하지만 그는 "취업해도 마냥 좋을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회사는 서류합격 소식과 함께 '신규 임용직원 초임 (20~30%) 삭감 예정 통보문'도 보내왔기 때문이다.

이처럼 신입사원 임금 삭감에 대한 김씨와 같은 청년 취업준비생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전문가들도 "신입사원뿐 아니라 노동자의 생활수준이 후퇴될 수 있다"며 "친기업 정책의 결정판"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투자 위한 사내유보금을 쌓아두고 구직 기회가 늘어난다?

정병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이 25일 "고용 안정을 위한 경제계 대책 회의 결과 30대 그룹이 대졸 신입사원의 연봉을 최고 28%까지 차등 삭감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히고 있다.
 정병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이 25일 "고용 안정을 위한 경제계 대책 회의 결과 30대 그룹이 대졸 신입사원의 연봉을 최고 28%까지 차등 삭감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히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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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청년실업 해소를 위한 '일자리 나누기'의 주요한 수단으로 신입사원 임금 삭감을 내놓고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이미 공공기관은 신입사원의 임금을 최대 30% 깎기로 했다. 올해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신입사원은 작년 신입사원보다 1155만원 적은 연봉(2695만원)을 받는다.

25일 전국경제인연합회(아래 전경련)가 "30대 대기업의 대졸 초임을 삭감한다"고 밝히면서 신입사원 임금 삭감이 민간기업에도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임금을 줄인 만큼 얼마나 많은 취업준비생이 일자리를 얻게 될지는 미지수다.

전경련은 이날 "대졸 초임을 삭감하고 기존 직원의 임금 조정을 통해 마련된 재원은 고용 안정과 신규채용, 인턴채용에 사용하고자 한다"며 "청년실업자들의 구직 기회를 넓히고, 장기적으로는 경쟁력 회복을 통해 고용 여력을 확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개별 기업이 줄인 임금만큼 고용 확대를 강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대기업들은 구체적인 고용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정병철 전경련 부회장은 "일자리 나누기의 전체적인 규모에 대해 지금 현재로서는 파악이 안돼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고용 확대가 생색내기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 23일 노사민정 대타협에 참가한 한국노총조차 "대기업은 초임 삭감 추진이 아니라 근로시간을 단축하고 사내유보금을 풀어 일자리 창출에 나섬으로써 '제 욕심만 챙기는 기업'이라는 불신을 털어내야 한다"고 비판했다.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고통분담엔 순서가 있다, 사회적 타협이 먼저"라며 "기업이 재무상태·공장 가동률·비상계획 등 현재 기업경영 상태를 먼저 투명하게 공개한 후, 노조와 협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입사원 임금 삭감'을 주도하고 있는 정부 역시 뾰족한 고용 창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부가 녹색 뉴딜이라며 토목공사만 벌리고 있는데, 청년실업자의 취업과는 관계없는 대책"이라고 강조했다.

'인턴·비정규직 임시직' 줄게, '값싸게 인력 부려먹고 해고하게' 해다오

기본적인 스펙인 토익 점수를 조금이라도 더 올리기 위해 많은 취업 준비생들이 매달린다.
▲ 대학의 한 도서관 기본적인 스펙인 토익 점수를 조금이라도 더 올리기 위해 많은 취업 준비생들이 매달린다.
ⓒ 이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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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기업에서는 임금 삭감이 기업과 노동자 모두가 사는 길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노동자에 대한 일방적인 고통 전가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많다.

전경련은 이날 "우리나라 신입사원의 임금 수준이 경쟁국보다 높다"는 자료를 뿌리며 대졸 초임이 2600만원 넘는 기업에 한해 임금을 최대 28% 삭감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2600만원 이하인 기업도 (대졸 초임을) 전반적으로 하향 조정하겠다"는 입장을 숨기지 않았다.

경제사정이 좋아질 경우, 삭감된 신입사원의 연봉이 환원될지 알 수 없다. 이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정병철 부회장은 "논의는 했지만, 경제 회복 동향 및 속도, 고용의 수요 공급 밸런스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며 확답을 피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일자리 나누기가 기업에는 노동자의 임금 수준을 낮추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현재의 일자리 나누기는 기업의 인건비를 낮춰주는 친기업 정책 드라이브"라는 이병훈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기업과 정부가) 극심한 취업난을 악용해 인턴·비정규직 등 임시직만 늘린다. 이어 기존 노동자에게도 '고통 분담하라'는 화살이 돌아가고, 전체 노동자들의 임금이 내려간다. 여기에 비정규직법·최저임금제·정리해고제 완화되면서, 기업들은 값싸게 인력을 부려 먹고 해고할 수 있게 된다. 노조가 약해 경기가 나아져도 떨어진 임금 수준을 회복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진짜 일자리 나누기는 임원까지 포함해 모두가 고통 분담하면서 정규직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재선 자유선진당 의원은 "사장, 감사 등 공기업 임원의 월급을 20%만 줄이면 대졸 초임을 삭감하지 않아도 정규직을 많이 뽑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회사와 노동자 모두 손해"

신입사원 임금 삭감에 따른 동일 직장 내 이중임금 구조(Two-tier system)는 기업에게 유리하지 않다는 비판도 많다. 조성재 연구위원은 "경기가 좋아지면, 저임금에 만족 못하는 우수한 인력이 나가고, 기업으로서는 또 다른 채용·훈련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전했다.

실제 취업준비생들의 생각도 비슷했다. 취업준비생 염정우(가명·27)씨는 "사람들의 기를 북돋아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짜게 해야지, '일단 싸게 부려먹자'고 하면 누가 열심히 일하겠느냐"고 따졌다.

중견기업에 다니다 최근 대학 교직원으로 자리를 옮긴 이동훈(가명·28)씨는 회사와 노동자 모두 '윈윈(Win-Win)'이 아닌 '루즈루즈(Lose-Lose)'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처음엔 취업시켜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다. 하지만 자기 처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회사 일보다는 이직만 생각한다. 지금도 신입사원 이직률이 높은데, 신입사원 임금 삭감하면 이직률이 더 높아진다. 회사와 노동자 모두 손해만 본다. 정부와 기업이 아무런 검토도 없이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실업대책을 내놓는지 모르겠다."


태그:#대졸 초임 삭감, #일자리 나누기, #신입사원 임금 삭감, #청년 실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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