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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마침 우리 큰 애와 또래로 보이는 여학생들이 나란히 앉았습니다.
 지하철에서 마침 우리 큰 애와 또래로 보이는 여학생들이 나란히 앉았습니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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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예배시간을 알리는 아잔 소리에 잠을 깼습니다. 잠자리에 누운 채 주의를 기울여 들어봤습니다. 한국에서 들었던 염불소리와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습니다. 가성이 아니라 배에서 나오는 소리도, 일정한 운율을 가진 것도 그렇고, 슬픔, 경건함, 그리고 맑은 느낌도 비슷했습니다.

마음을 파고드는 소리였습니다.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비치는 창문을 통해 들려오는 아잔소리는 내가 누워있는 이곳이 이슬람 국가 이란이라는 걸 일깨워주었지요.

아잔 소리는 이슬람 지역을 여행하면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소리입니다. 무슬림은 하루에 5번 기도를 하는데 그 예배시간을 알리는 소리가 이 아잔 소리로 무슬림 국가에서 동시에 시작다고 합니다. 사람이 직접 모스크 첨탑에 올라가 외친다고 하네요.

"알라는 지극히 크시도다. 우리는 알라 외에 다른 신이 없음을 맹세하노라. 예배하러 오너라. 구제하러 오너라. 알라는 지극히 크도다. 알라 외에 다른 신은 없느니라."

날이 환하게 밝아 창문을 열었을 때 새벽에 나를 깨운 아잔소리의 근원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우리 숙소와는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이름 없는 동네 모스크였지요.

단순한 이란의 지하철 노선도 앞에서 작은 애가 한 컷을 찍었습니다.
 단순한 이란의 지하철 노선도 앞에서 작은 애가 한 컷을 찍었습니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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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란에서 보내는 첫날입니다. 밤에는 이란 북부 카스피 해 연안 도시 아르다빌 가까이 있는 샤레인 온천으로 떠나기 위해 야간버스를 탈 것입니다. 떠나기 전에  하루 동안 이란의 수도 테헤란을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그 나라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곳은 시장과 지하철이라고 생각하면서 애들에게 오늘 하루는 지하철을 타보고 이란의 가장 큰 시장인 테헤란 바자르를 둘러보자고 말했습니다.

지하철 노선은 참 단순했습니다. 이란 사람들이 서울에 와서 거미줄이 엉킨 것처럼 복잡한 지하철을 타게 되면 무척 혼란을 느끼게 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시골에 사시는 시어머니는 다른 건 다 이용할 수 있어도 지하철만은 겁내하시거든요. 미로 같은 지하철에 갇히면 영원히 길을 잃을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시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시어머니도 이란 지하철은 마음 놓고 다니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여자 칸으로 가서 탔습니다. 지하철의 앞 칸과 뒤 칸은 여자 칸이라서 남자는 탈 수 없습니다. 이렇게 여자 칸이 적은 이유는 여자는 원한다면 남자 칸에 타도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남자는 여자 칸에 절대로 탈 수 없다고 하네요. 외부에서 봤을 때는 여자가 차별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래저래 보면 오히려 남자들이 차별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자만 타는 칸에 타니까 마음이 편하고 좋았습니다. 우리나라도 이렇게 여성 전용 칸이 따로 마련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특별하고 좋은 느낌이었습니다.

이란 여자들은 정말 예뻤습니다. 이리 봐도 모델 저리 봐도 모델, 우리나라에 오면 연예인 못잖은 미인들입니다. 이란에 오기 전에는 더운 지방이라 여자들 피부가 검을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하얀 피부였습니다.  거기다 뚜렷한 이목구비, 차분한 눈길, 세련된 감각까지 갖췄습니다.

아줌마들은 주로 차도르를 하고 있지만 젊은 여자들은 일반 옷을 입었습니다. 차도르가 의무적인 건 아니고 선택사항인 모양입니다. 머리와 엉덩이, 목덜미는 어쨌든 가려야하지만 검고 치렁치렁한  차도르로 가릴 필요는 없다는 뜻이지요.  젊은 아가씨들은 머플러로 머리를 가렸는데, 오히려 머플러를 이용해 멋을 부리고 있다는 인상까지 주었습니다.

머플러가 미처 가리지 못한 조금 보이는 앞머리는 갖은 정성을 다 기울여 치장했습니다. 최대한 부풀리고 거기에 브릿지까지 넣었더군요. 전체적으로 멋을 많이 부린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내가 탄 지하철이 테헤란 지하철이니까 이란에서 가장 멋쟁이들이겠지요.

이란의 지하철 티켓. 편도와 왕복이 있는데, 왕복도 한 티켓으로 끊을 수 있는 게 편리하게 생각됐습니다.
 이란의 지하철 티켓. 편도와 왕복이 있는데, 왕복도 한 티켓으로 끊을 수 있는 게 편리하게 생각됐습니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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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녀들의 눈빛에는 호기심이 가득했습니다.

'여자 애 두 명과 저 아줌마는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일까?'

물론 우리나라 사람들도 외국인을 보면 호기심이 발동하고, 저 사람은 어디서 왔고, 여기 뭐 하러 왔을까, 하고 생각하지만 부끄러워서 아무 말 못하고, 무관심한 척 외면합니다. 그런데 이란 여자들은 적극적으로 호기심을 내보였습니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은 말을 시켰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을 우리 가족에게서 거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눈이 마주치면 환하게 웃어주는데 웃는 얼굴이 좋았습니다. 우리에게 마음을 열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하는 그런 따뜻한 미소였지요. 처음 타는 지하철과 낯선 도시 테헤란에 대한 두려움이 슬그머니 사라지게 하는 미소였습니다.

우리가 탄 지하철이 다음 정거장에 서자 잡상인이 올라왔습니다. 차도르를 한 여자가 물건이 가득 담긴 가방을 들고 빠른 속도로 사람들 사이로 침투해 들어왔습니다. 그녀가 파는 물건은 팬티와 브레지어였습니다. 신성해 보이는 차도르 안에 어떻게 저런 걸 입지, 할 정도로 야한 스타일이었지요.

한편 팬티 파는 아줌마가 지나간 자리에는 연이어 머리핀을 파는 아줌마가 차지하고, 이어서 마스카라나 루즈 등 여자들 화장품을 파는 사람이 들어왔습니다. 물건 파는 사람은 하나같이 차도르를 입었고, 또 그들은 여자 물건만 팔았습니다. 이들이 물건을 사고파는 걸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하철을 죽은 시간으로 생각했습니다. 목적지로 가기 위해서 참아야 하는 무료한 시간이었지요. 그런데 이란의 지하철은 여자들만 있는 공간이 갖는 특별한 분위기가 좋았고, 여자들에게만 소용되는 물건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고, 또 그걸 구매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도 좋았습니다. 아마도 이란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꼽으라면 지하철 여자 전용 칸을 들게 될 것 같습니다. 


태그:#이란, #지하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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