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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g 5 뉴스 리포트 09년 1월 8일
 King 5 뉴스 리포트 09년 1월 8일
ⓒ King 5 News 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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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인턴 사진기자로 2개월 째 근무하고 있는 곳은 미국 워싱턴 주 시애틀에 단 두 곳뿐인 일간지 중 하나인 <시애틀 포스트-인텔리전서>(Seattle Post-Intelligencer, 이하 PI) 이다. 1863년에 설립된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서북미 지역의 대표 신문이며 하루에 12만7천부를 발간하고 있다.

지난 1월 8일 오후, 필자가 막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여기 저기 사진을 찍으러 다니다가 사무실로 들어와서 마감을 하고 있던 중, 갑자기 옆자리에 앉아있던 포토 에디터 롭이 느닷없이 소리를 질렀다.

"어?!, 이게 뭐야, 전부다 와서 이거 봐!”

King 5 뉴스 보도 이후 기자들이 긴급 회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
 King 5 뉴스 보도 이후 기자들이 긴급 회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
ⓒ 김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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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사무실 천정에 매달려 있는 텔레비전의 음량을 키우며 동료들을 불러모았다. 화면에는 채널 5번 King 5 뉴스 앵커가 속보라면서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출처를 밝힐 수 없는 소스에 따르면 시애틀의 대표 일간지 시애틀 포스트-인텔리전서를 소유하고 있는 허스트 미디어 그룹이 신문사를 매각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다들 전혀 모르고 있던 눈치였고 몇몇 기자들은 어디론가 급하게 전화를 걸거나 편집장 실로 뛰어가거나 아니면 그저 말없이 넋 놓고 텔레비전만 쳐다보고 있었다. 뉴스 리포트가 끝나자 사무실 내의 직원이란 직원들은 혼란스러워하며 어떻게 된 일인지 서로에게 묻고 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근거 없는 소문이라는 생각이 회사 내에 지배적인 것 같았다.

"폐간, 루머가 아닌 사실입니다"

다음날, 허스트 미디어 그룹의 부사장이 뉴욕에서 급하게 시애틀의 우리 사무실로 찾아왔다. 스태프 미팅에서 그는 전 직원들은 3층에 불러모아 놓고 말하기 시작했다.

"어제 채널5번에서 보셨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것은 루머가 아니라 사실입니다. 지난 9년 간 우리 신문은 너무 많은 독자들을 잃어버렸고, 그간 경영진은 그 손실을 메우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경기침체가 오랜 기간 지속되면서 더 이상 신문사를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판단을 내리고 매각하기 위해 회사를 내놓았습니다.

오늘부터 60일 이내에 회사가 매각되지 않을 경우에는 두 가지 옵션이 있습니다. 하나는 종이 신문은 더 이상 찍어내지 않고 온라인 신문으로 전향하는 경우입니다. 다른 하나는 영원히 신문을 폐간하는 것입니다만, 아직 우리 경영진은 결정한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직원 여러분들은 평상시대로 업무에 임해주기 바랍니다."

건물 위의 18.5톤의 회전식 지구본은 신문사의 오랜 상징이었지만 막대한 유지비용 때문에 문제가 되고 있다.
▲ 시애틀 포스트 인텔리전서 본사 건물 위의 18.5톤의 회전식 지구본은 신문사의 오랜 상징이었지만 막대한 유지비용 때문에 문제가 되고 있다.
ⓒ 김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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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설마하던 직원들의 우려가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100년이 넘은 역사 깊은 시애틀시 대표 신문이 폐간 위기에 처한 이유는 이러하다.  PI 경영 부서의 기록에 따르면 PI는 지난 9년간 5만7천~8천명의 기존 정기 구독자들을 잃었다. 신문 판매부수는 해가 갈수록 급감했고 이제는 조판 신문을 찍어내면 회사가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시애틀 시민들이 더 이상 신문을 읽지 않는 것일까? 아니다. 대다수의 많은 독자들은 신문을 온라인 판으로 열심히 구독하고 있었다. 특히 PI가 가지고 있는 인기 섹션 중 하나인 Big Blog(기자 블로그)에 올라오는 다양하면서 알찬 기사들의 온라인 조회수는 기사 건당 하루 20만 건이 넘을 정도이다.

문제는 이 뉴스 서비스가 종이 신문과는 다르게 완전히 무료라는 것인데, 이 점이 한국 내의 온라인 미디어 시장과 많이 다른 점이다. 구글이 'Google.com' 뉴스섹션에 AP나 AFP, Reuters, Getty Images 등 뉴스 통신사의 기사들을 비용을 지불하고 전제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기본적으로 미국 내에는 한국의 N사나 D사, 그 외 다수의 포털 사이트가 가지고 있는 뉴스 제공 서비스가 없다. 미국 독자들은 각 신문사가 독립적으로 가지고 있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무료로 뉴스를 제공받고 있다.

신문사 자체 사이트의 온라인 광고 수입이 있지만, 전체 지면 광고 수익의 10%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한국의 온라인 신문 유통 방식과는 차이가 있다.  독자들은 신문 기사를 포털 사이트 뉴스 섹션에서 구독한다.

수많은 네티즌들은 뉴스를 접하기 위해 포털 사이트를 방문하게 되고 이것은 자연히 포털 사이트의 수익이 된다. 포털 사이트는 전국 각지의 다양한 신문사에서 기사를 제공받고 그것에 상응하는 대가를 신문사에게 지불한다. 어느 정도 윈윈할 수 있는 구조로 자리 잡은 것이다.

하지만 미국 내에는 이와 같은 시스템이 아직 형성되지 않았을 뿐 더러 이러한 미디어 시장이 생성되기도 힘든 환경이다.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이라는 한 나라의 뉴스를 개별 신문사가 다루기에는 너무 광범위하다는 것이다.

온라인판으로 간다도 하지만...

  금일 자 1면을 보면 지역 기사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금일 자 1면을 보면 지역 기사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 김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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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가지고 있는 전국판 일간지는 단 하나 USA Today 뿐이고 다른 모든 신문사들은 지역 신문사들이다. 단일 신문사 하나가 50개 주의 거대한 미국이라는 나라의 뉴스 전체를 제한된 지면에 다루기에는 지면 수, 인력에서 한계가 있다.

따라서 신문사들은 주로 로컬 뉴스를 우선적으로 다루고 있다. 각 신문사의 오프라인 혹은 온라인판 신문을 보면 지역 뉴스와는 달리 전국 뉴스는 정말 중요한 헤드라인 기사들을 제외하고는 서브 섹션에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한국처럼 개별 신문사가 전국 뉴스 전체를 다루기가 어려운 것이다.

현재 PI 내의 기자들은 온라인 신문으로 바뀌어 명맥을 이어간다 해도 전 직원의 60% 이상이 해고 당할 것이라는 사실에 불안해 하고 있지만, 몇몇 기자들이 주축이 되어 새로운 신문사를 만들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가칭 시애틀 뉴미디어라고 하는 이 온라인 매체는 그들의 강점인 다양한 주제의 블로그를 그대로 가져가면서 브레이킹 뉴스를 이전 보다 더욱 중점적으로 다루는 형태의 온라인판 신문이 될 것이라고 한다.

편집장부터 일선 취재, 사진 기자들은 새로운 형태의 온라인 신문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궁리하면서 지난 달부터 퇴근도 제때 하지 않고 사무실에 상주하고 있다. 자료 보존팀 직원들은 100년간 축척 되어 온 그들의 방대한 데이터들을 기존 서버에서 하드 디스크로 옮기는 작업을 밤낮없이 하고 있다.

남은 기간 42일, 고민은 계속된다

신문 폐간까지 42일을 남겨둔 시애틀 포스트 인텔리전서
 신문 폐간까지 42일을 남겨둔 시애틀 포스트 인텔리전서
ⓒ 김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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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의 인터액티비티 에디터 던 스미스씨는 말한다.

"언젠가는 했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넷이 종이 신문을 위협하고 있는 지금, 이것은 PI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미디어 매체가 가지고 있는 고민일 것 입니다.

단지 우리에게 그 변화를 요구하는 시기가 다른 매체들보다 조금 일찍 찾아온 것이죠. 어떤 형태의 미디어가 미국의 온라인 뉴스 공급 시장에 적합할 지 매일 고민하고 있습니다."

시애틀 시간으로 오늘은 2월 5일이다. 동료 기자들이 사무실 한 가운데에 D-day를 적어 놓은 것에 따르면 이제 마지막 날인 3월 18일까지 42일 남았다. 42일이 지나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오늘도 이들은 자신이 기자임을 잊지 않고 사무실 안팎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태그:#인터넷 신문, #뉴미디어, #신문위기, #미국,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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