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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 게임기 같은 것을 초등학생들이 많이 가지고 있고 한 명이 사면 따라 산다고 하더라. 이런 것들을 개발해볼 수 없겠느냐?"

지난 4일 지식경제부 과천 청사를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한 말이다. 정재훈 지경부 무역정책관으로부터 수출입 현황을 보고받는 자리에서였다.

이 발언에 대한 누리꾼들의 반응이 대단하다. 인터넷엔 '닌텐도DS' 게임기를 패러디한 '명텐도MB'가 등장했고, 이 대통령 말의 문맥은 유지한 채 말만 바꾼 패러디로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이런 내용이다.

코카콜라 같은 음료수 만들어라. 전 세계에서 안 먹는 사람 없더라.
질레트 같은 면도기 만들어라. 전 세계 남자들 중 그거 안 쓰는 사람 없더라.
윈도우 같은 운영체제 만들어라. 전 세계 PC에 그거 안 쓰는 PC 없더라.

"게임기 만들라고? 소프트웨어가 있어야지"

인터넷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명텐도' 패러디
 인터넷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명텐도' 패러디
ⓒ 인터넷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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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현재 IT 업계에 다니고 있다. 이 대통령의 말은 최근 가뜩이나 힘든 IT 종사자들의 어깨를 더 무겁게 했다. 한 동료는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우리들은 생각도 안하고, 대통령이 헛소리만 한다"며 한숨을 쉬었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정보통신부를 없애고, 과학기술부를 교육부와 통합했다. 지식경제부 소관 올해 IT예산은 1082억원으로 작년에 비해 31%(488억원)나 줄었다. 올해 IT분야와 관련한 신규 사업도 전혀 없다.

그것도 모자라 대통령은 여러 차례 "IT가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안 된다"는 말로 IT 종사자들의 사기를 꺾어놓았다.

닌텐도DS 같은 게임기 산업은 소프트웨어가 든든히 뒷받침되어야 하는 전형적인 '콘텐츠 산업'이다. 우리나라는 소프트웨어 개발자에 대우가 굉장히 열악하다. 이런 환경 닌텐도DS 같은 게임기는 절대 나올 수 없다. 특히 IT 산업을 홀대하는 현 정부에선 더욱 그렇다. 

실제로 국내에서 자체 개발한 휴대용 게임기인 GP2X(게임파크홀딩스)는 고성능 사양에 국내 유저 및 일부 해외에서도 호평을 받았지만 뒷받침해주는 소프트웨어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지금은 일부 마니아들만 사용하는 기기가 됐다.

GP2X의 실패는 시사하는 바는 크다. 아무리 좋은 하드웨어라도 소프트웨어를 개발 할 수 있는 환경과 인프라 구축이 선행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위기의 IT 업계 "연봉 삭감만 아니면 고맙지"

미국 발 금융위기 및 경기악화 속에서 올 상반기 IT 업계는 더욱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힘들다는 것을 굳이 언론매체를 통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주변의 친구와 동료들 중 구조조정으로 퇴직한 사람들이 꽤 많기 때문이다.

IT 분야의 투자가 줄고 신규 프로젝트도 점점 취소되고 있다. 다른 업체로 재취업을 하고 싶어도 경력 2~3년 정도의 초급 개발자는 뽑아주지도 않을 뿐더러, 일부 IT업체는 아예 다른 분야의 사업으로 등을 돌리고 있어 재취업은 '하늘의 별따기'다.

핵심 분야의 개발자만 몇 명 남겨두고 나머지는 비정규직인 아웃소싱으로 해결하려는 회사들도 늘어났다. 취업이 되더라도 언제 나가야 할지 모르는 판국이다. 연봉 인상은커녕 삭감만 아니면 회사에 고마워해야 할 정도다.

컴퓨터를 전공한 나는 대부분의 대학 동기들이 IT 업계에 근무하고 있다. 친구들에게 올해 연봉이 올랐냐는 물음을 할 때면 5명 중 4명은 동결이거나 삭감이다.

게임기는 기계만 팔아서는 유지가 되지 않는다. 소프트웨어인 게임을 팔아야 수익이 난다. 소프트웨어는 IT다. 게임 산업은 이런 IT 분야의 총 집약체다. 또한 게임 같은 창의적인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려면 풍요롭고 자유로운 사회 풍도가 자리 잡아야 한다. 

IT에 대한 예산을 늘리고 기반을 잡아야 한다. 안정적으로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돼야 한다. 그런 후에 우리도 닌텐도 같은 게임기를 만들자고 해도 늦지 않는다. 앞뒤가 안 맞는 이런 얘길 더 이상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혹 다시 그런 얘길 한다면, 나도 한마디 해주고 싶다.

"우리나라에 오바마 같은 대통령 만들어 주세요. 그 사람 참 인기 좋던데…."


태그:#명텐도 , #닌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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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사진, IT기기를 좋아하는 소심하고 철 없는 30대(이 소개가 40대로 바뀌는 날이 안왔으면...) 홀로 여행을 즐기는... 아니 즐겼던(결혼 이후 거의 불가능) 저 이지만 그마저도 국내or아시아지역. 장거리 비행기를 타고 유럽이나 미국,남미쪽도 언젠가는 꼭 가볼 수 있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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