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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가 지난 31일 연쇄살인 용의자 강씨의 얼굴을 공개한 기사.
 <조선일보>가 지난 31일 연쇄살인 용의자 강씨의 얼굴을 공개한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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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서남부지역 연쇄살인 피의자 강모씨의 사진과 이름이 일부 언론사들에 의해 공개됐다.

그러나 강씨가 사생활 침해라며 이 언론사들에 손해배상 소송을 낸다면 어떻게 될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살인마에게 지켜줘야 할 권리가 있냐"고 분개할 만하지만, 결과는 강씨의 승소로 귀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신문의 사회면에는 강간·강도·사기·간통 등의 혐의로 경찰에 붙잡힌 피의자들의 이름과 나이·사진, 심지어 집 주소까지 적힌 기사가 버젓이 실렸다.

1990년대에도 언론이 피의자의 범죄 사실은 물론이고 신원을 보도하는 것이 당연한 일로 간주됐다. 1995년 붕괴된 삼풍백화점의 '부실공사' 혐의로 백화점 업주 이모씨 부자가 사법 처리될 때는 기자들이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도록 수사관이 피의자의 얼굴을 손으로 치켜 올려주는 '서비스 정신'을 발휘했다는 얘기가 전설처럼 전해오기도 한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는 이 같은 관행에 제동이 걸렸다.

피의자의 무차별적인 신원 공개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피고인은 무죄로 추정된다"는 헌법 27조와 "검찰·경찰 등이 피의사실을 기소 전에 공표하면 전에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형법 126조를 각각 위반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법조계에서 나왔고, 피의자들의 잇따른 소송으로 수사기관도 신원 공개에 소극적으로 돌아섰다.

2000년대 들어 피의자 신원공개 관행에 제동 걸려

<연합뉴스>와 <조선일보> 등 일부 언론은 지난달 30일부터 "2004년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을 계기로 모자와 마스크를 씌워주는 관행이 생겼다. 국가인권위도 2005년 피의자 호송 업무를 개선하라고 권고했는데 이때부터 경찰은 피의자들이 언론에 노출될 때 얼굴을 가려주게 된 것"이라고 보도했다. 다음날 경찰도 "얼굴을 공개하고 싶지만, 국가인권위가 얼굴 공개를 하지 말라고 시정 권고하고 있다"고 책임을 떠넘겼다. <조선>은 2일자에 피의자의 인권침해에 항의하는 인권위를 비꼬는 만평도 게재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그러한 주장은 명백히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김형완 인권위 정책총괄팀장은 2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2005년 6월 국가인권위원회가 피의자 호송 업무를 개선하라고 경찰에 권고한 사실은 있지만, 마스크를 씌우라는 식의 구체적인 지침을 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인권위와 사사건건 갈등 관계에 있던 경찰이 강제력이 없는, 인권위의 권고사항을 받아들여 마스크 씌우기 등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했던 것이다.

더구나 '마스크 현장검증'의 관행은 2000년 5월 경기도 과천 부모 토막살인 사건 때도 이미 있었다. 그해 5월30일자 <중앙>은 "검은색 모자와 흰색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피의자) 이모씨는 토막낸 시신을 쓰레기봉투에 담아 집 근처 중앙공원과 홍촌천변에 버리는 과정을 경찰에서 밝힌 그대로 재현했다"고 전했다.

 국가인권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 김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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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마스크 씌우라는 식의 구체적 지침 준 적 없어"

90년대를 풍미했던 지상파 방송사들의 '공개수배' 프로그램들이 2000년대에 들어서 하나둘 없어진 이유도 "방송이 인권을 침해한다"는 비판 여론과 무관하지 않다.

KBS의 <공개수배 사건 25시>는 2000년 10월 여권 위조 사기단에 연루된 조모씨를 공개 수배하는 방송을 내보냈지만, 경찰이 조씨가 범행과 무관하다는 것을 정확히 확인하지 않고 방송을 의뢰한 것이 밝혀지면서 이듬해 10월 국가와 KBS는 3600만원의 배상 판결을 받았다.

경찰이 2005년 10월 "피의자와 피해자의 신원을 추정할 수 있거나 신분이 노출될 우려가 있는 장면이 촬영되지 않도록 해야 된다"는 직무수칙을 마련한 후에는 이 같은 경향이 더욱 강화됐다. 법원이 재판정에서의 사진 촬영을 금지하는 것도 피의자의 초상권을 보호하기 위한 측면이 강하다.

연초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미네르바' 박씨가 체포됐을 때 언론사들이 박씨의 실물 사진을 보도하지 못하고 모자이크 처리를 한 것도 박씨가 '초상권 침해' 소송을 제기하면 언론사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법률적인 판단을 감안한 것이었다.

2일 경찰이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MBC>가 사진을 입수해 보도하는데 어떻게 뒷감당을 하려는지 모르겠다. 큰일 날 수 있다. 계속 피의자 얼굴을 공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이명균 경기경찰청 강력계장)고 우려를 표시한 것도 언론이 법을 어기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에 바탕을 둔 것이다.

1991년 화성 연쇄살인 수사 과정에서 언론이 경찰의 무리한 강압 수사에 '악용'당한 일도 있었다.

91년 1월 4일 경기도 안양경찰서는 20대 회사원 박모씨를 화성 사건의 2번째와 7번째 살인범으로 지목한 뒤 그에게 방송사 카메라 앞에서 "두 건 모두 다 했다"는 자백을 하도록 했는데, 박씨는 3일 뒤 "경찰의 강압적 분위기 때문에 허위로 얘기했다"고 진술을 번복했다.

박씨는 결국 살인 혐의를 벗게 됐지만, 경찰 얘기만 믿고 그의 실명을 보도하고 얼굴을 그대로 노출시킨 신문·방송사들은 낭패를 겪었다. 당시 박씨의 변론을 맡았던 김칠준 변호사는 "범인을 빨리 잡으라는 여론의 질타에 초조해진 경찰이 그를 압박하기 위한 방편으로 언론사를 이용했고, 며칠 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잔 박씨는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엉터리 답변을 했다"고 회고했다.

피의자에 대한 인권보호 의식이 박약했던 20세기에 일어난 일이지만, 언론이 왜 '알 권리'보다는 무죄 추정 원칙을 고수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2000년 8월에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소대장 김훈 중위 사망사건과 관련해 일부 언론이 정황상 범인으로 몰렸던 김모 중사의 실명과 얼굴 사진을 공개했다가 서울중앙지법으로부터 각각 수천만원의 배상 판결을 받은 예도 있다.

얼굴 노출에 당황 일부 언론에 의해 얼굴이 공개된 경기 서남부지역 연쇄살인범 강모씨가 얼굴공개 사실을 알기전인 1일 오전 상록경찰서를 나설 때는 모자만 쓰고 있었으나, 이후 현장검증 때는 손을 들어 적극적으로 얼굴을 가렸다.
▲ 얼굴 노출에 당황 일부 언론에 의해 얼굴이 공개된 경기 서남부지역 연쇄살인범 강모씨가 얼굴공개 사실을 알기전인 1일 오전 상록경찰서를 나설 때는 모자만 쓰고 있었으나, 이후 현장검증 때는 손을 들어 적극적으로 얼굴을 가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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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언론, 법 어기는 것 이상으로 큰 이익 있으리라 판단"

피의자의 유무죄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생활이 낱낱이 공개되는 것을 처벌로 인식하는 것은 우리의 인권 의식이 여전히 전근대성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피의자 신원 공개로 유족들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불분명한 반면, 구성원의 잘못으로 인해 '살인마 가족'의 낙인이 찍히게 된 가족들이 겪을 고통도 짚어봐야 할 대목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 송호창 변호사는 "아무리 큰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라고 해도 언론사가 초상권까지 침해할 권리는 없다"며 "이번 사건의 경우 초상권 침해가 분명하므로 당사자가 소송을 걸면 언론사들이 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강력범죄 피의자가 언론사 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예는 흔치 않다.

2005년 6월 GP 내무반에서 총기를 난사해 동료 8명의 목숨을 빼앗은 김모 일병의 경우 미니 홈페이지 사진이 일부 언론에 소개된 것에 대한 명예훼손 소송을 검토했지만, 이로 인해 사건이 재론될 것을 우려한 가족들의 만류로 소송을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인권센터의 한 변호사는 "경기 연쇄살인 사건에서 일부 언론사들은 법을 어기는 것 이상으로 큰 이익이 있으리라는 판단에 따라 강모씨의 사진을 공개한 셈"이라며 "소송 요건은 갖추고 있지만, 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는 모른다"고 유보적인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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