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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2일 낮, 서울 견지동 조계사 경내에 전시된 종교차별 관련 전시물중에서 '스님들 빨리 예수 믿어라' '불교는 만들면 안되는 것' '불교 들어간 나라 다 못살아' 등의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장경동 목사의 사례가 인쇄된 현수막 2개에서 장 목사의 눈 부위가 훼손되어 있다.
 지난해 9월2일 낮, 서울 견지동 조계사 경내에 전시된 종교차별 관련 전시물중에서 '스님들 빨리 예수 믿어라' '불교는 만들면 안되는 것' '불교 들어간 나라 다 못살아' 등의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장경동 목사의 사례가 인쇄된 현수막 2개에서 장 목사의 눈 부위가 훼손되어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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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장경동 목사(대전 중문교회)의 불교 비하 발언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가 석가모니와 불교를 기독교와 단순히 비교하고 비판한 것이 아니라, 아예 그 근원 자체를 깡그리 뭉뚱그려 쓰레기통에 처넣어 버린 탓이다. 이런 일은 예전부터 줄곧 있어왔다. 사회고발 프로그램을 통해 알게 된 교회, 목사의 비리 사건과 더불어 이런 편향적인 발언은 기독교의 이미지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인터넷은 이미 '개독교' 풍자의 놀이터가 되었고, 사람들은 점점 특정 종교에 대한 믿음을 잃어가고 있다. 죽으나 사나 하나님을 외치는 신도와 신뢰를 잃은 일반 사람들 사이의 간격은 한없이 아득하다. 누구 하나 서로의 말을 제대로 듣거나 믿지 않는다. 이전투구의 축제는 현 정권이 들어서부터 더욱 심화되었다. 소망교회와 관련된 이들의 중용, 서울을 봉헌하겠다는 서울시장 출신 후보자의 당선. 그 이후로 모든 것이 바뀌었다. 권력 쥔 이들은 저마다 '아멘'을 외치며 밑도 끝도 없는 종교 발언을 거침없이 내놓고 있다.

언젠가 한 유명 코미디언 미니홈피에 들어가 인상적인 글귀를 본 기억이 떠오른다. 사원에서 절을 하는 예쁘장한 한 중동 소녀의 사진, 그 밑에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소녀가 불쌍하고 애처롭다'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신은 하나일 수 없다는 말, 그러니 모두가 짝퉁이고 오로지 자신들의 신만이 최고라는 이 우쭐한 자만심. 그 이기적인 발언으로 인해 이름 모를 소녀는 졸지에 뭘 모르는 희생양이 되어버렸다.

종교인이 믿음 때문에 어느 정도의 편향성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우린 애써 그 점을 나무라진 않는다. 문제는 그것이 다른 믿음을 갖는 사람들을 향한 칼날이 되어 돌아올 때다. 단지 같은 선상에서 그들과는 다른 신을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재단되고 비판당하기 일쑤.

그렇지 않아도 마녀사냥과 파괴에 가까운 믿음 사이에서 그동안 인간 문명은 많은 이를 희생시켜왔다. 아직도 땅 아래에서, 하늘 위에서 숨죽인 눈물을 삼키며 이곳을 바라보고 있겠지만. 그들에게 사랑은 무엇일까.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인가, 아니면 특정 종교의 신을 믿는 사람에 한정된 것인가.

평탄치 않은 할매와 고모에게 기독교란

할매와 막내 고모의 삶은 평탄치 못했다. 25년 전에 남편과 사별한 할매는 오랫동안 독수공방하면서 깊은 골방의 고독과 외로움을 스스로 깨우쳤다. 그건 깊은 시간의 골이 자연스럽게 만들어낸 일종의 마법이었다. 어두침침한 눈과 말을 듣지 않는 팔과 다리, 잠시만 걸어도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그 순간이 할매에게는 견딜 수 없을 만큼 괴로웠을 것이다.

분노와 체념을 끊임없이 오고가다 그녀가 손 내민 곳은 다름 아닌 교회였다. 젊은 한 때, 순복음교회를 다니는 열혈 신도였던 할매는 오랜 기간 신과 떨어져 지내다 생의 막바지에 다시금 그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제 그녀는 매일 교회에 가 기도를 드린다. 가족을 위해, 죽은 누군가를 위해, 실은 자기 자신의 찬란했던 과거와 찬란해야 할 남은 생을 위해.

막내 고모는 공부 잘 하는 모범생이었지만 가난한 형편 때문에 대학에 가지 못하고 호텔리어가 됐다. 외국계 호텔에서 미모를 뽐내는 미녀 직원은 누구에게나 많은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같은 호텔에서 일하던 한 사내와 결혼하면서 그녀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다.

사내는 여러 번 사업을 말아먹었고, 몸까지 허약해 제대로 직장을 다닐 수도 없었다. 심지어 착하고 순박하기까지 해 욕심을 부리거나 자존심을 굽힐 줄도 몰랐던 그는 끝내 가족을 가난의 싸늘한 단칸방에 몰아넣었다. 고모는 그 세월과 함께 나이를 먹었고 뽀얀 피부와 아름다운 미모를 잃었다. 그녀에게 남은 것은 살아야 한다는 오기뿐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정신지체장애 판정까지 받은 아들을 이끌고 힘겹게 살아야 했던 그녀는 주변 사람의 도움이 아닌 스스로의 선택으로 종교에 귀의했다.

그게 고모에게 남은 마지막 동아줄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그로 인해 그녀의 삶이 완전히 뒤바뀌었다는 점이다. 조카에게 때마다 '하나님 믿는 자녀'가 되라는 덕담을 보내는 그녀는 이제 현실의 고통을 종교의 굳건한 따스함으로 이겨내고 있다. 한층 밝아진 표정, 지나간 세월이 결코 고통스럽지만은 않았다는 그 한 마디가 아직도 내 마음 속에는 깊은 화석처럼 새겨져 있다.

그들이 믿는 신과 내 할매의 신은 얼마나 다른가

장경동 목사와 현 정권 세력들이 믿는 신과 내 할매, 고모가 믿는 신은 얼마나 다른가. 두 하나님 사이의 거리는 한없이 아득하고, 아찔하다. 뿌연 안개가 사이를 가로막아 놓고 있는 듯 보인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렇게도 머나먼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일까.

지나친 믿음은 도리어 해가 되기도 하는 법. 장경동 목사의 불교 비하 발언은 기독교 신자들을 더욱 두터운 믿음의 세계로 인도하지 못했다. 문제의 '개독' 발언을 더욱 부추기고 있을 따름이다. 믿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분명 다르다. 차마 기독교 신자라거나 교회에 다닌다는 거짓말은 하지 못하겠다. 나 또한 누군가를 '개독'이라고 비난한 적이 있다. 때로는 철이 없었고, 때로는 격렬했다. 하지만 할매와 고모가 넘어온 질곡의 세월, 그 너머에 있는 그녀들의 신을 나는 믿고 있다. 실은 믿고 싶다. 내 할매와 고모, 그리고 일상 속 평범한 이들의 신을 모독하지 않길 바란다.

얼마 전, <오마이뉴스>에 개재된 장경동 목사 관련 기사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나는 예수를 좋아한다. 하지만 나는 기독교인을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면 그들은 예수를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간디가 한 말이라고 한다. 그 아찔한 거리감, 예수를 같이 쫓아가면서도 누군가는 한없이 가까워지고, 다른 누군가는 한없이 멀어져 간다. 도대체 언제부터 그들은 서로에게서 그토록 멀어져야 했을까. 지금도 기도하고 있을 내 할매와 고모의 거친 손등이, 그 간절한 마음이,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리는 그 따뜻한 눈빛이 떠오른다.


태그:#장경동목사, #불교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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