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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게 뭐야? 이 옹성 복원한 지 겨우 4~5년밖에 안 됐을 텐데…."

"이거 곧 무너져 내리는 것 아냐?"

"완전히 날림공사를 했구먼, 이대로 방치하면 정말 곧 무너질 것 같은데."

 

지난 24일 설 연휴 첫날, 혹한 속에 오른 청량산 산행길에서였다. 남한산성으로 들어갔다가 북문으로 나와 연주봉 옹성 안으로 들어가 걷던 길이었다.

 

연주봉 옹성이 저만큼 바라보이는 곳에서부터 감탄을 금치 못했다. 남한산성 성벽이 휘돌아가다가 능선에서 불쑥 뻗어 연주봉으로 이어진 옹성은 멀리서 보기에도 여간 멋진 모습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옹성은 복원공사를 마친 지 몇 년 지나지 않았는데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여기저기 틈새가 벌어져 있고 떨어져 나간 곳에서는 흙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한두 군데가 아니라 수십 곳, 아니 수백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었다.

 

"귀중한 문화재 복원을 이렇게 허술하게 할 수 있나? 설계 잘못이건 날림공사건 이건 용서할 수 없는 문제인 걸."

 

일행들이 분통을 터뜨리고 있었다. 거의 모든 부분에 손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손상된 모습을 살펴보니 모두 허술하게 시공했거나 아니면 근본적인 설계 잘못으로 빚어진 듯했다. 사람의 손길에 의해 파손된 것들이 아니었다.

 

아름답고 멋진 문화재 남한산성과 연주봉 옹성

 

경기도 광주시와 하남시, 성남시, 서울 송파구의 경계지역인 청량산에 있는 남한산성은 조선 병자호란 때 청나라의 침공으로 피신하여 항전하던 인조가 삼전도에서 항복하여 수모를 당했던 유명한 산성이다.

 

남한산성의 역사는 멀리 삼국시대의 백제로 거슬러 올라간다. 백제가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정한 이후 남한산성은 백제에 있어서 성스러운 대상이자 진산이었다. 그래서 남한산성 안에는 백제의 시조 온조왕을 모신 숭열전이라는 사당이 있다.

 

조선시대에도 선조에서 순조에 이르기까지 남한산성은 국방의 보루로 매우 중요한 요충지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16대 임금인 인조는 남한산성의 축성과 몽진, 항전이라는 역사의 회오리를 몸소 겪었다.

 

산성은 삼국시대 때 토성으로 쌓았던 것을 조선 광해군 13년에 석성을 쌓기 시작하여 완공하지 못한 것을 인조 2년에 다시 시작해 4년만에 완공되었다. 산성의 길이는 7545미터, 옹성을 포함한 길이는 8888미터나 된다.

 

옹성은 대개 성문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만든 구조물이다. 그렇지만 남한산성은 특이하게 5개의 옹성을 거느리고 있는데, 적으로부터 산성을 방어하기 위해 지형을 적절히 이용한 특수한 산성 형태다. 옹성들은 모두 능선으로 연결되어 방어에 취약한 지점에 축조되어 있다.

 

옹성은 치성과 달리 모두 본성과 직접 연결하지 않고 본성 성벽의 맨 아래를 옹성의 상단으로 해 축조했다. 본성 암문을 통하여 드나들 수 있도록 했고 옹성의 말단부에 포루를 설치한 것이 특징이다.

 

이 옹성 대부분은 병자호란 이후 축조했는데 연주봉 옹성만 원래부터 쌓은 것이다. 연주봉 옹성은 둘레가 315미터에 73개의 여담이 있었다. 심하게 무너지고 훼손되어 자취만 남아있던 옹성을 발굴해 2000년 9월부터 2003년 7월까지 4억원의 공사비를 들여 복원했다. 따라서 현재의 옹성은 복원한 지 이제 겨우 5년 조금 지난 것이다.

 

복원과정에서 발생한 시행착오라고?

 

심한 손상을 입고 있는 연주봉 옹성의 상태는 남한산성 관리소와 복원공사를 담당했던 경기문화재단 남한산성 추진기획단에서도 알고 있었다. 경기문화재단의 담당자는 "금년 하반기부터 보수 공사를 시작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나 "하자 보수기간이 2년이기 때문에 5년이 지난 연주봉 옹성의 보수공사는 자체예산으로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연주봉 옹성도 문화재냐고 물었더니 "당연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렇다면 시공업체의 날림공사나 잘못된 설계 때문에 완공된 지 5년밖에 안된 귀중한 문화재의 손상이 너무 심한 것 아니냐고 다시 물었다.

 

"그런 것은 아니다. 설계나 시공은 문화재 전문가들의 자문회의에서 자문을 받아 시행한다. 그런데 본래 옹성의 구조를 정확한 고증에 의하여 복원해야 하는데 옹성축조에 대한 정확한 자료가 없어 옛 성곽 그대로 복원하는 것이 어려웠다. 현재 손상이 많은 부분은 여담(담장)의 강회(미장)가 많이 탈락한 것인데 정확한 고증의 부족 때문에 복원과정에서 발생한 시행착오라고 보면 좋을 것 같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복원된 지 5년 남짓한 문화재가 다시 손상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관리소에서 손상된 상태를 파악하고 보수 계획을 세우고 있다니 다행이기는 하다. 그러나 자랑스러운 우리의 반만년 역사가 언제까지 '시행착오'의 희생양이 되어야 하는지 답답하다.


태그:#연주봉 옹성, #남한산성, #문화재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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