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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을 보내더라도 편하게 지내고 싶죠."
"다들 스케줄이 빡빡하니깐 시간 맞추기 힘들잖아요."

대학교 3학년인 이우진(23)씨는 겨울 방학이지만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 여름 대외활동으로 자원봉사를 하다가 친해진 친구들과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어 금요일 저녁 바쁜 시간을 쪼개기로 했다. 그가 향한 곳은 '레지던스'.

우리는 레지던스로 엠티 간다

이씨는 방학 때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학교에서 계절학기 수업을 듣고, 오후 6시까지 아르바이트로 과외를 한다. 친구들에겐 강남의 한 레지던스로 저녁 7시까지 간다고 약속해 놓았다.

레지던스에서 1박을 묵는 일정이지만 가방이 가볍다. 이씨는 "따로 준비할 것이 없다, 심지어 수건까지 레지던스에 다 있다, 필요하면 프론트에 문의하거나 밑에 있는 편의점에서 사면 된다"고 말했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친구들에게서 전화가 온다. 음료수가 모자라니 오는 길에 사오라는 것이다. 이씨는 레지던스 건물 1층에 있는 편의점에서 음료수 몇 개를 사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18층으로 올라간다.

먼저 도착한 4명의 친구들이 근처 마트에서 장을 봐온 음식 재료로 요리를 하고 있었다. 신던 양말을 다음날도 신을 수는 없어서 양말과 빨랫감을 모아 객실마다 한 대씩 있는 드럼 세탁기에 넣고 빨았다.

이씨는 TV도 보고 친구들과 수다도 떨면서, 인터넷으로 계절학기 수업자료를 다운로드 받았다. 새벽에는 술도 한 잔 하면서 객실 창문으로 도심의 야경을 감상했다.

이씨는 다음날 오후 1시에 있는 어학원 수업을 위해 레지던스에서 제공해준 아침을 챙겨먹고 다시 지하철을 탔다. 이씨는 교내 동아리·대외 학술 동아리 MT와 친한 친구들과 함께한 크리스마스 파티로 작년 한 해 레지던스를 네 번이나 갔다.

3~4인실 33평형. 베드룸이 따로 있어서 거실에서 밤을 새우기도 하고 방에서 잠을 따로 잘 수도 있어서 선호한다고 한다.
▲ 레지던스3~4인실 3~4인실 33평형. 베드룸이 따로 있어서 거실에서 밤을 새우기도 하고 방에서 잠을 따로 잘 수도 있어서 선호한다고 한다.
ⓒ 이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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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주 고객층은 장기 투숙 외국인

레지던스는 주로 서울 강남·종로·신촌 등지의 중심가에 위치하고 있다. 보통 외국인들이 중·장기 비즈니스 방문으로 체류할 때 호텔보다 저렴하면서도 취사나 세탁 등 주거 공간으로서 역할도 하기 때문에 많이 찾는 곳이었다. 최근에는 높아진 인기 탓에 레지던스가 많이 생기면서 서울에만 약 50여 개가 있다고 한다.

종로에 위치한 바비엥스위트의 박상형 지배인은 "코스타리카나 도미니카 공화국 등 대사들도 2년째 장기 투숙하고 있다, 서울에 관저가 없는 경우도 있고 아파트식보다는 호텔과 같은 서비스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애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박씨는 "장기 투숙하는 고객들과는 가족 같은 분위기로 지낸다, 연말 파티에 초대되어 장관이나 기업 CEO 등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사람도 만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요즘은 대학과도 연계해서 외국인 유학생들의 기숙사 형식으로 쓰이기도 한다. 대학가 주변의 한 레지던스 관계자는 "외국 교수들과 외국 학생들이 투숙도 하고 학회를 하기도 한다, 입소문을 타고 한국 학생들도 많이 찾는다"고 전했다.

깔끔하고 현대적인 인테리어로 젊은 층에서 각광받고 있다.
▲ 레지던스 침실 깔끔하고 현대적인 인테리어로 젊은 층에서 각광받고 있다.
ⓒ 이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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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절약과 주방시설 완비가 장점

최근 레지던스는 원래 주 타깃층인 외국인 중·장기 투숙객뿐만 아니라 한국의 젊은 층에서 1박 2일로 모임을 열기에 적합한 장소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특히 크리스마스나 연말 파티 또는 대학생들이나 동호회의 MT 장소로 각광 받고 있다.

요즘 레지던스를 젊은 층이 선호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 그중 가장 큰 이유는 버스나 지하철로 이동이 가능해서 접근성이 뛰어나 시간이 절약된다는 점이다. 주로 MT를 가던 대성리나 강촌 등지는 청량리까지 가서 기차를 타고 1~2시간을 더 가야 한다. 못해도 왕복 5~6시간은 걸린다.

대학생 하누리(25)씨는 "1박 2일이라고 해도 레지던스로 갔을 때 실제로 투자한 시간은 8~9시간 정도였다, 다른 건 제외하고 시간만 놓고 보더라도 기회비용을 따졌을 때 훨씬 더 이익"이라고 말했다.

기본적인 요리를 해먹는 데 필요한 주방기기들이 다 갖추어져 있는 것도 장점이다. 도심이지만 펜션에 온 듯한 특별함을 느끼게 한다.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으면서 더 친해지고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다.

학술단체 방송국원 모임을 레지던스에서 열었다는 윤선구(25)씨는 "같이 저녁을 준비하면서 어색함도 풀고 좋은 분위기를 만들 수 있었다, 귀찮으면 그냥 시켜 먹어도 되고 주변이 번화가이다 보니 내려가서 맛있는 것을 따로 사먹고 올라와도 돼서 편하다"고 전했다.

자신들만의 독립적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점도 젊은 층이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다. 얼마 전 친구들과 파자마 파티를 한 직장인 이경미(28)씨는 "특별한 파티라 우리만의 공간이 필요했다, 집 같은 아늑함이 있으면서도 낯선 공간이라 새롭다, 현대적이고 세련된 인테리어가 젊은 감각과 잘 맞는다"고 밝혔다.

같은 도심에 위치한 호텔이나 모텔과 다른 레지던스만의 강점이다. 주방기기들이 다 갖추어져 있어서 요리를 직접 해먹을 수 있다.
▲ 레지던스주방 같은 도심에 위치한 호텔이나 모텔과 다른 레지던스만의 강점이다. 주방기기들이 다 갖추어져 있어서 요리를 직접 해먹을 수 있다.
ⓒ 이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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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게 노는 것도 좋지만 2인실에 17명까지 들어가기도

이렇게 모임이나 파티를 하게 되면 한 객실에 많은 인원이 들어간다. 최대 6인이 들어가려면 원래 64평 객실을 예약해야 한다. 하지만 가격대가 부담스러워 가장 많이 찾는 것은 10만~15만원대의 13~14평 2인실이다. 레지던스마다 조금씩은 차이가 있지만 보통 공간이 넓어서 최대 17명까지도 들어간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객실이 손상되거나 다른 객실에 소음 피해를 주기도 한다. 친한 친구들과 함께 레지던스를 간 이유진(21)씨는 "2인실 룸에 2~3명씩 나누어서 들어오는 식으로 11명이 놀았다, 일부러 공간이 넓은 레지던스를 정해서 갔다, 돈을 나눠서 내면 부담이 덜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바비엥의 박상형 지배인은 "세 달 이상 머무는 장기 고객은 10% 정도다, 단기 고객이 90%를 차지하고 그중 60%가 3~7일 정도 머무는 비즈니스 고객이나 여행자들이다, 나머지 30%가 젊은 층의 1박 2일 모임이다, 객실이 더 넓은 다른 레지던스는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들었다. 이와 같은 수요를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기념일에는 규정사항을 지킨다는 것을 전제로 많은 인원이 들어올 수 있도록 오픈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박씨는 "젊은 고객들은 블로그나 미니홈피 등에 다녀왔던 곳 사진을 올려놓고 비교하고 댓글도 단다, 입소문을 타서 간접 홍보가 된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양날의 칼이다"라고 난감해 했다.

유명 레지던스는 주말 예약이 항상 꽉 찬다. 크리스마스부터 1월 1일까지는 1.5배 정도 비싸게 받았는데도 방이 없어서 못 내놓을 정도였다. 이번 밸런타인데이도 주말과 맞물려서 벌써부터 만실이다.

서대문 일대에만 유명 레지던스가 5개나 된다. 와인을 제공하는 것은 기본이고, 유명 드라마 촬영소 입장권을 주거나 교통카드를 충전해서 주는 이색 이벤트도 벌였다. 원하는 사진과 디자인으로 캘린더를 만들어 주는 등 여행업체와 연계한 패키지 상품도 많이 나왔다.

레지던스와 호텔 모두 근무한 경험이 있는 이건섭 지배인(31)은 "보편적으로 가격이 호텔보다 싸다, 호텔처럼 가격에 대한 특별한 규정이 없어서 가격에 유연하게 대처해 경쟁력이 있는 것이다, 파티 문화가 보편화됐고 1박을 묵더라도 직접 요리를 해먹고 세탁까지 가능한 편안함을 추구한다, 여전히 호텔의 브랜드 네임 밸류를 따지는 사람도 있지만 호텔 수요가 많이 준 것이 사실이다, 같은 중심가에 위치하다 보니 호텔의 경쟁상대로까지 생각할 정도다"고 밝혔다.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선호하는 2인실. 거실이 넓어서 최대 17명까지 들어간다고 한다
▲ 레지던스2인실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선호하는 2인실. 거실이 넓어서 최대 17명까지 들어간다고 한다
ⓒ 이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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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레지던스, #대학생, #직장인, #M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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