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동산형

 

참 오랜만입니다.

살다 보니 형의 이름을 신문에서 보게 되는 날도 있군요.

 

어제(20일) 밤 물대포를 맞고서 덜덜 떨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저께 사자후TV를 밤새 맘졸이며 보다가 여러 명이 죽는 것을 보고서는 답답한 심정으로 나갔던 것이죠. 인터넷으로 기사를 보다가 형의 이름과 사진을 대하는 순간, '살다 보니 이렇게 드라마 같은 관계로 만나기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대포를 쏘는 사람과 물대포를 맞는 사람으로 말입니다.

 

뭐 그렇다고 형을 원망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보다는 기사를 읽는 순간 슬픔이 울컥 밀려오더군요.

 

언론 보도에 따르면 김수정 서울지방경찰청 차장은 사고가 있던 20일 오후 용산경찰서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19일 낮 12시 30분부터 13시 10분까지 차장, 기동본부장, 정보부장, 경비부장, 용산서장이 참석한 가운데 1차 대책회의가 열렸고 여기서 백동산 용산서장이 특공대를 요청했다"며 "이어 오후 7시에 열린 2차 대책회의에서 김석기 서울청장에게 건의해 최종 승인 받았다"고 말했다더군요.

 

북한산과 설악산을 넘나든 삼십년 전 기억나시지요? 형은 그때 궂은 일엔 먼저 나서곤 했었지요. 동기면서도 여러 살 많았던 형은 어떤 선배보다 든든한 존재였습니다. 만학이면서도 학업에 전념하시는 모습도 보기 좋았구요.

 

그런 형이 특공대를 요청했다는 말을 처음에는 믿을 수 없었습니다. 형은 어려운 동기나 후배의 친구들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결국, 세월이 그만큼 흘렀다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동산형. 경찰특공대는 테러에 투입되는 부대 아닙니까? 협상마저도 단절된 상태에서 막바지에 몰린 철거민들에게 꼭 특공대를 투입해야 했나요? 아니, 꼭 그렇게 강경한 의견을 내놔야 했나요? 제가 슬픈 것은 왜 그 사람이 형이었냐 이겁니다.

 

형이 아니었으면 누군가가 그런 의견을 냈을 수도 있겠죠. 이놈의 사회는 어찌 돌아가는 건지, 강경한 의견일수록 모범답안으로 여기고 있으니까요. 그게 슬픈 겁니다. 그 속에 묻혀버린 형의 모습과, 그렇게 만들어가는 정권과, 그 틈바구니에서 상처받고 죽는 사람들의 모습이 슬픈 겁니다.

 

오늘은 슬픔이 분노를 대신하네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수년간의 우정이 인터넷 기사를 대신할 수 없기에, 저는 형을 미워할 수 없습니다. 그냥... 슬플 뿐입니다.

 

형, 언제 한번 만나서 소주 한잔 하죠? 오늘의 일은 말하지 말고, 단지 삼십년 전 설악을 넘나들던 우정만 술잔에 담아 마십시다. 형, 그때 참 좋았죠? 하지만 오늘은 아름다운 추억마저도 불타 죽은 분들의 고통을 생각하면 묻혀버리게 되는군요. 안녕히 계십시오.

덧붙이는 글 | * 용산경찰서장 백동산씨는 저와 같은 동국대 76학번이었으며, 산행을 통해 심신을 단련하는 서클 동기였습니다.


태그:#백동산, #용산참사, #철거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