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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제가 중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곳은 세계 각 국에서 온 친구들이 있습니다. 러시아,태국,몽고,호주,말라위,잠비아,우간다... 중국은 당연하구요. 전 이런 환경이 무척 마음에 듭니다. 위에 열거한 나라들을 보시면 알겠지만, 소위 선진국보다는 후진국에서 온 친구들이 더 많거든요. 특히 제 생애 처음으로 많은 아프리카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습니다.

 

어쨌든, 제가 듣고 있는 수업에서 한 미국인 교수님이 내 준 과제는 취임식을 맞은 오바마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다른 한 중국인 교수님이 내 준 과제는 자국의 대통령에게 신년을 맞아 공개 편지를 쓰는 것이었습니다.

 

공개 편지로 썼기에 오바마의 취임식을 맞아 부끄럽지만 두 공개편지 모두 올려봅니다. 올리고 보니 제 얼굴에 침뱉기 한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대통령보다 타국의 대통령에게 더 큰 희망을 걸다니요. 얹짢으신 분이 있으시다면 죄송합니다만, 저도 답답합니다. 이런 현실이.

 

아래 편지에서도 밝혔듯이 전 물리적 경계든 심리적 경계든 허물고 살고 싶기에, 어느 나라 대통령이든 저의 소소한 일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사람, 그 누구든 더 잘할 것 같은 사람에게 기대를 걸어보렵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님께

 

안녕하세요?

 

저는 북경 칭화대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한 학생입니다. 북경에 살고, 중국 학교를 다니긴 하지만 전 중국인이 아니라 한국인입니다. 여러 세계 시민들이 그러하듯, 저 또한 국경과 경계를 넘어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국경과 경계를 넘는다는 것이 물리적으론 그리 쉬운 일이지만, 심리적으로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항상 느낍니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제 나라를 떠나 타지를 여행할 때 마다 새로운 경험들로 조금씩 제 머리속 고정관념이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또한, 수없이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보고 나면 더 이상 그들의 삶을 모른 척 하기가 힘들어 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아마도 제가 2008년 11월 4일 선거 결과에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당신이 살아 온 길을 보면 적어도 당신은 수많은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으려 노력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의 큰 기대일 뿐일지도 모르지만요.

 

아마 저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당신에게 기대를 걸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기대가 당신에게 큰 장애가 되지 않을까 무척이나 걱정이 됩니다. 전 일년 전쯤 저에게 크나큰 실망감을 안겨준 한 선거결과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새롭게 당선된 그 대통령에게 아주 큰 기대를 품고 있었답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경제를 살려주세요"라고 간곡히 부탁하는 심정을 60퍼센트가 넘는 지지율로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난 오늘, 그 사회의 균열은 어느 때보다 심해졌고, 사람들은 이제 "경제가 아닌 사람을 먼저 살려주세요" 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슬플 따름이지요.

 

지나친 기대는 반드시 큰 실망감을 가져다 준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전 진심으로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랍니다. 만약 당신이 그런 실망감을 가지고 오는 일을 한다면, 이 나라의 국민들보다 수백 배는 많은 사람들이 허탈감과 상실감을 얻게 될 것이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박탈감, 허탈감을 경험할 때 그것이 얼마나 큰 비극을 가지고 오는지 저는 지난 짧은 일년 동안 경험했기에, 더 이상 경험하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이 일단 정권을 잡고 국정운영을 시작하는 날부터는 당신의 나라의 많은 정치인들과 함께 일해야 하기 때문에, 또 당신은 그들의 다양한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려 노력할 것이기에 당신의 담대한 희망은 전세계의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렇더라고 전 당신을 이해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적어도 당신이 세계의 많은 사람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보여준다면은요. 당신 주변에는 훌륭한 조언자들이 무척이나 많을테니, 온 세계가 고통받고 있는 경제위기를 비롯해 많은 국제적인 과제들을 슬기롭게 헤쳐나가리라 믿습니다. 다만, 경제를 살리느라 사람들을 죽이는 일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대학 때, 정치학을 공부해 미국의 대통령이 가지는 권력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가슴으로는 한번도 인정한 적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조심스럽게 당신의 담대한 희망에 기대를 걸어보고 싶습니다.

 

-북경에서 한 학생이-

 

 

이명박 대통령님께

 

편지 앞머리부터 죄송한 말씀이지만, 전 당신의 지지자가 아닙니다. 한번도 당신을 지지한 적 없고, 아마 앞으로도 없을 듯 합니다. 하지만 당신께서 60퍼센트가 넘는 득표율로 대통령으로 당선된 직 후에는 잠시 동안이지만, 당신을 지지하려고 마음을 먹었었습니다. 당신에 대한 저의 판단이 틀리고, 60퍼센트가 넘는 사람들의 판단이 맞기를 바랐습니다. 60퍼센트가 넘는 국민들을 미워하기보단 당신 한 명을 미워하는 것이 더 쉬워져 당신을 미워했나 보다 생각하기도 했었지요.

 

전 중국에서 언론을 공부하고 있는 중입니다만, 언론인으로서 이 편지를 쓰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이 편지가 감정적이 되어 버릴 수 있다는 점을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비록 미쳐가는 환율 때문에 금전적인 고통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정치적인 선택과 국민의 건강을 바꿔버린 그 결정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고,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에 대운하를 건설하겠다는 계획, 종부세 폐지 등등... 수 많은 정책에 반대하지만,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저에게 있어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는 당신의 언론장악 노력이기 때문입니다. 

 

네. 전 당신이 자유시장과 경쟁의 큰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답니다. 그래서 당신이 계획하고 추진하는 많은 계획들이 그 선상에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딱 하나만 자유경쟁이니 시장경제니 하는 매카니즘을 피해야 하는 것이 언론이라고 생각합니다. 백 번 양보해서 적어도 지금은 그언론이 보이지 않는 손 아래 들어가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합니다.(당신이 대통령이 되자마자 KBC,YTN,MBC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만 봐도 그 이유는 충분하겠지요.) 우리나라가 독재정권에서 벗어난 것이 몇 년이 되었던가요? 독재에서 벗어난 이후, 짧은 시간이지만 한국의 언론은 나름대로 잘해왔다고 생각합니다만, 아직 갈 길은 멀다고 생각합니다. 완전한 성숙에 단계에는 이르지 않았단 말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시장논리를 들이대려 하십니까?

 

게다가, 지금 이 시점에서는 당신이 몇 언론단체들을 시장경쟁을 신봉하기에 사기업으로 만들고 싶은 건지 아니면 그들의 입을 막고 싶은 건지 잘 모르겠단 말씀입니다.

 

취임한지 6개월 만에 당신은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KBS사장을 바꿔버렸습니다. 사실 누가 KBS의 사장인지 관심없었습니다만, 제가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인 시사투나잇을 비롯해 당신을 견제할 만한 프로그램을 폐지해버렸죠. (아, 네 이름만 바꿨다고 말하고 싶으시겠죠?) 게다가 YTN에도 같은 짓을 하셨죠. 분명 비판을 듣기 싫으시겠죠. ‘불도저’인 당신이 비판 따위 용납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미래의 언론인을 바로고 있는 저로서는 당신이 추구하는 언론의 모습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언론사를 사유화해서 많은 언론인들이 이익을 위해 뛰어야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도 않고요, 당신의 말에 휘둘리는 언론계는 더더욱 싫습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언론장악을 멈춰주세요.

 

대통령님, 인터넷상에서 유행하는 표현 아십니까? 누가 살인 좀 하면 어때? 경제만 살리면 되지! 누가 강간 좀 하면 어때? 경제만 살리면 되지! 환경 파괴좀 하면 어때? 경제만 살리면 되지! 언론 좀 죽이면 어때? 경제만 살리면 되지? 당신이 만들어버린 우리 사회의 모습이고, 전 이런 사회에서 살기는 죽어도 싫습니다.

 

참, 프랑스의 여왕 마리 앙뚜아네뜨 아시나요? 왜 갑자기 그녀의 얘기를 하냐구요? 왜냐면 얼마 전, 당신의 내각에서 앙뚜아네뜨가 200년 전 한 "빵이 없으면 케익을 먹으면 되지"라고 말한 것과 비슷한 것을 말해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일으킨 사람이 있다고 하네요. 한 대학의 특강에서 "등록금 좀 줄어달라"는 한 학생의 호소에, "장학금을 타라"고 응수한 사람이 있었다고 하네요. 장학금이 짜디 짠 나라에서 '니가 능력있으면 되지 않으냐'는 식의 말로 많은 대학생들을 허탈하게 만든 그가 당신에 내각에 있다고 하니, 입 단속 좀 부탁드립니다.  당신이 그 사람에게 충고를 좀 할 수 있게 지금 당장 인터넷으로 검색 해 보겠습니다.

 

앗, 대통령님. 정말 죄송합니다. 정말 몰랐는데요. 그 말을 한 분이 바로 대통령님이 후보시절 하신 말씀이라고 하는군요. 민망해서 더 이상 편지를 쓸 수 없겠습니다. 뭐, 괜찮겠지요. 남의 말이라곤 잘 안 들으시는 분이 일개 대학원생의 편지라곤 읽으시겠습니까.

 

-절망스러운 한 학생이-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오바마, #취임식, #이명박, #대통령, #공개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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