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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팬에 살살 볶아 만드는 어묵볶음은 아이들 도시락 반찬으로 그만이다
▲ 어묵볶음 프라이팬에 살살 볶아 만드는 어묵볶음은 아이들 도시락 반찬으로 그만이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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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툼한 옷자락을 거침없이 여미는 매서운 바늘바람이 휘이잉 맴도는 겨울철. 길거리에 나서면 가장 눈에 먼저 띠는 것이 포장마차나 허름한 구멍가게에서 팔고 있는 따끈따끈한 어묵이다. 무와 다시마, 멸치 혹은 명태 대가리 등으로 오래 우려낸 뽀얀 국물에 퐁당퐁당 빠져 김을 모락모락 피워 올리고 있는 어묵은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입에 군침이 절로 맴돈다.

일본 말로 '가마보코' 혹은 '오뎅'으로 불리는 어묵. 어묵은 겨울철 아이들에게 빼 놓을 수 없는 참이자 군것질거리이다. 특히 입안 부드럽게 훑는 쫄깃한 어묵과 뜨끈한 어묵국물은 어른들 술안주거리이자 속풀이에도 아주 좋다. 어디 그 뿐이랴. 어묵을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프라이팬에 살살 볶아 만드는 어묵볶음은 아이들 도시락 반찬으로 그만이다.

어묵은 생선살과 뼈를 으깨 잘게 채 썬 당근과 소금, 설탕, 녹말, 맛술 등을 넣어 조물조물 반죽해 여러 가지 모양으로 빚어내 '찌거나' '굽거나' '튀겨낸 것'을 말한다. <네이버 백과사전>에 따르면 어묵을 만들 때 쓰는 생선은 빛깔이 흰 조기나 오징어 등이 많이 쓰이며, 기름기가 많은 생선은 좋지 않다.

어묵에 아로새겨진 역사도 꽤 깊다. 어묵은 일본 무로마치시대(1336~1573) 허리춤께 처음 만들어졌다. 일본말로 '가마보코'라 불리는 어묵이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것은 1700년  대다. 역관 이표(李杓)가 쓴 조리책 <소문사설>에 어묵은 "일본 음을 그대로 따서 '가마보곶'이라고 표기"했으나 만드는 법은 달랐다.

일본에서 만드는 가마보코는 생선살을 얇게 저민 뒤 돼지고기와 쇠고기, 버섯, 해삼, 파, 고추 등을 다져 만든 속을 3~4켜 높이로 쌓아올려 둥글게 말아 삶아낸 것을 말한다. 1938년 조자호(趙慈鎬)가 쓴 <조선요리법>에는 어묵이 '태극선'이란 이름으로 나온다. 하지만 오래 전부터 우리가 먹어온 어묵은 가마보코와는 전혀 다른 우리 전통음식이다.

설 연휴를 코앞에 두고 있어서 그런지 시장 골목 곳곳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다
▲ 동원시장 설 연휴를 코앞에 두고 있어서 그런지 시장 골목 곳곳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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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 길거리에 나서면 가장 눈에 먼저 띠는 것이 포장마차나 허름한 구멍가게에서 팔고 있는 따끈따끈한 어묵이다
▲ 어묵볶음 겨울철 길거리에 나서면 가장 눈에 먼저 띠는 것이 포장마차나 허름한 구멍가게에서 팔고 있는 따끈따끈한 어묵이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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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으뜸 도시락 반찬은 '달걀 프라이'와 '가마보꾸 볶음'

"옴마, 내 도시락에도 가마보꾸 좀 넣어도라."
"갑자기 와 또 도시락 반찬타령이고. 달걀 후라이(프라이)와 볶은 콩조림이 가장 맛있고 안 질릴 것 같다고 난리를 피울 때는 언제고, 인자 가마보꾸 타령이가?"
"어제 동무가 싸온 가마보꾸 반찬을 쪼매 얻어 묵었는데, 세상에서 그렇게 고소하고 맛있는 반찬은 처음 먹어 봤다카이."

1960년대 막바지께. 나그네가 초등학교 4~5학년 때였을까. 그때 우리 마을 사람들은 누구나 어묵을 '가마보꾸'라 불렀다. '가마보꾸'는 일본 말 '가마보코'를 부르는 경상도 말이었다. 하지만 우리 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가난했던 탓에 마을 들머리 구멍가게에서 팔던 그 쫄깃하면서도 뒷맛이 구수한 '가마보꾸'를 자주 사먹지 못했다.   

가마보꾸는 손님이 찾아왔을 때나 마을에 잔치가 벌어져야 맛볼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 그때 우리 마을 사람들이 먹었던 가마보꾸는 볶음조리이거나, 잡채에 넣는 것이 다였다. 요즈음 길거리에서 파는 국물 어묵, 뽀오얀 맛국물에 담가놓았다가 간장에 찍어 '심심풀이'(?)로 먹는 그런 어묵이 아니라 손님맞이를 하는 귀한 음식이었다는 그 말이다.

나그네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까지만 하더라도 도시락 반찬으로 달걀 프라이와 '가마보꾸 볶음'을 으뜸으로 쳤다. 하지만 나그네 또한 한 번도 가마보꾸 볶음을 도시락 반찬으로 싸가지 못했다. 그랬으니, 툭 하면 어머니에게 가마보꾸 볶음을 도시락 반찬으로 넣어달라고 징징 울면서 생떼를 쓰곤 했을 수밖에.

어묵을 적당한 크기로 썬다
▲ 어묵볶음 어묵을 적당한 크기로 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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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묵을 팔팔 끓는 물에 2~30초 쯤 살짝 데친 뒤 찬물에 담갔다 재빨리 건져 물기를 뺀다
▲ 어묵볶음 어묵을 팔팔 끓는 물에 2~30초 쯤 살짝 데친 뒤 찬물에 담갔다 재빨리 건져 물기를 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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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이번 설도 거꾸로 쇠야 될 것 같다"

"아빠! 어묵볶음 좀 해줘."
"왜? 갑자기 어묵이 먹고 싶어졌어?"
"아빠! 언니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어묵볶음이야. 창원 집에 있을 땐 엄마가 어묵볶음을 참 자주 해줬는데…"
"그래. 그거 만드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보다 더 쉽지. 오늘 저녁 당장 만들어 줄게."
"ㅋㅋㅋ~ 역시 우리 아빠 최고!"

18일(일) 저녁 7시께. 겨울방학을 맞아 서울로 올라온 두 딸을 데리고 중랑구에서 꽤 큰 재래시장인 동원시장(중랑구 면목동)으로 갔다. 설 연휴를 코앞에 두고 있어서 그런지 시장 골목 곳곳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생필품을 팔고 있는 상인들 얼굴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았다.

길거리에서 '1켤레 무조건 1만 원'에 신발을 팔고 있는 천아무개 씨는 "손님들이 싼 맛에 이 신발 저 신발 들어보기는 하지만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작은 고등어 한 마리에 1천 원에 팔고 있는 생선가게 50대 아주머니는 "지난 추석 때도 그랬는데, 아무래도 이번 설도 거꾸로 쇠야 될 것 같다"며, 입맛을 쩝쩝 다셨다.

생선가게 아주머니의 씁쓸한 얼굴이 안쓰러워 큰 맘 먹고 고등어 3마리를 3천 원 주고 산 뒤 가까운 할인마트에 들어가 어묵을 살폈다. 어묵 600g(12장)에 1천9백 원. 국내산 밀감 15개에 2천 원이니 생각보다 쌌다. 고등어와 어묵을 사들고 동원시장을 마악 빠져 나오려는데 두 딸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어묵가게 앞에서 발걸음을 딱 멈췄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팬이 뜨거워지면 빻은 마늘과 채썰기 한 양파를 볶는다
▲ 어묵볶음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팬이 뜨거워지면 빻은 마늘과 채썰기 한 양파를 볶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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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다 IMF에 '이명박 보릿고개' 때문 아니겠습니까"

"왜 여기 서?"        
"아빠, 어묵 딱 2개씩만 먹을게."
"오늘 저녁 어묵볶음을 만들어 먹을 건데 웬 또 어묵타령? 아주머니, 여기 어묵 1개 얼마씩 해요?"
"500원씩 해요. 국물은 아무리 많이 마셔도 공짜로 줍니다."
"그럼 어묵을 먹지 않고 국물만 마셔도 되겠네요?^^"

동원시장 한 귀퉁이에 서서 어묵을 팔고 있는 6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씨익 웃으며 한 마디 툭 던진다. "그렇잖아도 장사가 안 돼 죽겠는데, 그렇게 팔다가 나더러 굶어죽으라고? 딸들이 참 예쁜데, 오늘 딸들에게 값싼 어묵이라도 팍팍 좀 쏴 봐. 딸들은 먹고 싶은 거 먹어서 좋고 나는 장사 잘해서 좋고, 일거양득 아냐?".  

"더 먹을래? 몇 개 더 먹어야 아주머니가 더 예뻐하실 것 같은데?" 
"아니, 딱 1개만 더 먹고 그만 먹을래."
"아빠, 나는 그만 먹을래. 좀 있다 아빠가 만들어주는 맛있는 어묵볶음 먹어야지이~"
"아저씨는 집에서 요리도 잘하시는가 봐? 우리 아저씨는 작년 가을 공장에서 짤린 뒤부터  집에 있으면서도 밥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데…"

"그게 다 IMF에 '이명박 보릿고개' 때문 아니겠습니까. 가족들 먹여 살리기 위해 이 곳 저 곳 혼자 떠돌아다니다 보니 음식 만드는 선수가 거의 다 되었지요. 5개 먹었으니까 2천5백 원 맞죠?"
"2천 원만 줘요. 1개는 특별 서비스할 테니 시장 나올 때 모른 척이나 하지 마세요."

기름과 잘 어우러지게 볶다가 집 간장, 물엿, 물을 약간 붓는다
▲ 어묵볶음 기름과 잘 어우러지게 볶다가 집 간장, 물엿, 물을 약간 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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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불에서 한소끔 볶다가 소금으로 간을 맞춘 뒤 깨소금을 살짝 뿌리면 끝
▲ 어묵볶음 약한 불에서 한소끔 볶다가 소금으로 간을 맞춘 뒤 깨소금을 살짝 뿌리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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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들은 밑반찬 하나에도 작은 행복을 느낄 줄 안다

어묵가게 아주머니를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와 쌀을 씻어 밥솥에 안친 뒤 어묵볶음을 만들기 시작했다. 어묵볶음을 만드는 방법은 보기보다 훨씬 쉽다. 먼저 어묵을 팔팔 끓는 물에 2~30초 쯤 살짝 데친 뒤 찬물에 담갔다 재빨리 건져 물기를 뺀다. 이렇게 해야 어묵에 묻어 있는 기름기가 쪼옥 빠지고, 쫄깃한 깊은 맛까지 나기 때문이다.

그 다음,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팬이 뜨거워지면 빻은 마늘과 채썰기 한 양파, 고춧가루를 넣어 기름과 잘 어우러지게 볶다가 집 간장, 물엿, 물을 약간 붓는다. 이어 먹기 좋은 크기로 토막 낸 어묵과 송송 썬 고추를 넣어 약한 불에서 한소끔 볶다가 소금으로 간을 맞춘 뒤 깨소금을 살짝 뿌리면 끝.       

"아빠! 배 고파."
"금방 시장에서 어묵을 사먹었는데 뭐가 그리 배가 고파?"
"몰라. 서울에 온 뒤부터 배에 거지가 들어앉았나 봐. 이상하게 배가 자주 고파."
"창원보다 서울이 날씨가 훨씬 더 추워서 그럴 거야. 자~ 밥상 앞으로 모여!"

"맛이 어때?"
"이거 어떻게 만들었어. 엄마가 만들어 주시는 거보다 훨씬 더 맛이 좋은데?"
"작은 딸은?"
"아빠가 만들어 주시는 음식은 뭐든 다 맛있어."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이처럼 자잘한 밑반찬 하나에서도 작은 행복을 느낄 줄 안다. 이 점 이명박 정부가 깊이 새기길.
▲ 어묵볶음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이처럼 자잘한 밑반찬 하나에서도 작은 행복을 느낄 줄 안다. 이 점 이명박 정부가 깊이 새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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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원짜리 어묵 한 봉지로 차려내는 쫄깃쫄깃 달콤하고도 구수한 저녁 밥상. 어떤 사람들은 하찮은 어묵볶음 하나 가지고 웬 호들갑을 떨고 있느냐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그네처럼 돈가뭄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1900원으로 차릴 수 있는 밥상이 눈물겹도록 고맙고 즐겁다. 여기에 맛나게 먹어주는 두 딸까지 있으니,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가진 사람들은 오늘도 끼니 때마다 상다리 부러지게 떡 벌여놓고 갖가지 맛난 음식을 먹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그 음식조차도 입에 물려 더 맛좋고 건강까지 챙겨주는 음식이 어디 없나 도깨비 눈을 뜨고 살피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이처럼 자잘한 밑반찬 하나에서도 작은 행복을 느낄 줄 안다. 이 점 이명박 정부가 깊이 새기길.

덧붙이는 글 | <유포터>에도 보냅니다



태그:#어묵볶음, #동원시장, #가마보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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