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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극 바다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떨리죠?
ⓒ 유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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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07년 남극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본 경험이 있어 눈길을 달리는 게 힘들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시각장애인인 송경태씨와 함께 달리려니, 역시나 힘들었다. 처음에는 스틱 없이, 그 다음에는 스틱 1개, 그리고 세 번째 구간인 피터만 아일랜드에서부터는 2개의 스틱을 사용했다.

 

코스 2개를 거치며 수없이 눈에서 구르고 빠지다 보니 어느덧 눈길 달리기가 적응이 되어 호흡이 척척 맞아간다. 더욱이 스틱 2개를 사용하니 서로간 균형을 잡기가 좋았다. 코스도 이전에 비해 평지 구간이 많아서 넘어지는 일이 확실히 줄어 들었다.

 

[남극 브리자드] 날도 어둡고 눈도 날리고... 뵈는 게 없네

 

 

하지만 세 번째 구간인 피터만 아일랜드에서는 눈과 바람이 휘몰아치는 남극의 '브리자드'를 만났다. 이전 코스에서도 수시로 선글라스와 고글을 벗어 길을 확인했지만, 이번에는 날이 어둡고 눈발이 강해 시야가 너무 안 좋았다.

 

고글을 벗고 길을 확인하는 데 더욱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앞을 보고 달린 일반 참가자들에 비해 길을 확인하느라 수시로 고글을 벗어야만 했던 나에겐 설맹증이 찾아 온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그 당시에는 왜 눈이 잘 안 보이는지 인식을 못했다. 배 안에서 한 번이라도 거울을 봤으면 알 수 있었을 텐데 그럴 만한 정신적인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결국 대회 종료 후 '우수아이아'에 도착해서는 이틀간 눈이 안 보일 정도로 악화되어 큰 고생을 했다.

 

'잘 먹고 잘 살자' 레이스... 펭귄과 나눠 마실 물까지 완비

 

레이스 중에는 누구든지 제한된 물과 음식만을 가지고 달려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경우 일단 꼴찌가 될 확률이 높기에 '잘 먹고 잘 살자' 버전으로 준비했다. 배낭을 온갖 먹을거리로 채웠고 물도 펭귄과 나눠 마실 정도로 많이 준비했다. 물론 처음에는 무거웠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참가자들의 안락한 휴게소와 안식처가 됐다.

 

레이스가 후반부로 넘어갈 때쯤, 적당한 시간을 맞춰 우리의 간식을 풀었다. 물이 없어 눈을 녹여 먹던 참가자들에게는 입안 가득 생명의 물을 채워줬다. 추위와 허기에 지쳐 갈짓자 걸음을 걷는 이들에게는 따뜻한 핫팩과 부드러운 꿀이 발라져 있는 약과를 입에 쑤셔 넣어주었다.

 

어차피 우리는 1등을 못하니 먹을 것을 많이 준비해서 인심이나 쓰고 모두를 즐겁게 만들자는 작전이었다. 작전은 맞아 들어 코스에서 우리를 만나면 모두가 기뻐하며 환호를 보냈다. 실력이 안되면 인간성이라도 좋아 보여야 하는 건 한국이나 외국이나 마찬가지다. 어쨌든 우리는 '남극의 신사'로 다시 태어났다.

 

 

[도리안 베이] 솜사탕 같이 포근한 눈, 넘어져도 다치지 않아

 

 
결과적으로 마지막 구간이 된 '도리안 베이'는 이제까지 거쳐본 코스 중에서 최고의 코스였다. 부드러운 여성의 라인을 연상시키는 코스와 솜사탕 같이 포근하고 달콤한 눈발은 아무리 넘어져도 절대로 다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주었다.

 

그래서 송경태씨에게 자유로운 달리기의 기회를 주고 싶어졌다. 송경태씨를 앞세우고 나는 뒤에서 배낭을 잡고 방향을 알려주면서 달렸다. 안전한 직선 코스에서는 손을 놓고 방향만 알려주면서 혼자 달릴 수 있도록 했다. 그간의 굴레에서 벗어나 즐거운 노래를 부르며 혼자 눈 속을 달려가는 송경태씨의 모습을 보니 쌓였던 피로가 한 방에 날아가며 내가 더 즐거워진다.

 

송경태씨가 앞장서서 골인을 하니 외국 참가자들과 운영요원들이 놀라면서 농담으로 우리에게 사기친다고 한다. "오마이갓! 믿을 수 없어, 없어!"를 연신 내뱉는다. 그래서 '썩소'를 날리며 한마디 했다.

 

"자식들아, 그냥 믿어!"

 

[남극탈출] "좌로 굴러 우로 굴러"... 남극에서 맞본 리얼 공중부양

 

 

'디셉션 아일랜드', '하프문 베이'. 우리는 남아있는 2개 구간을 포기하고 남극을 탈출했다. 바다부터 하늘까지 온천지가 하얗게 변해버린 12월 1일 아침. 우리가 탄 여객선의 선장은 상륙을 포기했다. 그리고 방향키를 '우수아이아'에 맞춘 뒤 남극 탈출을 강행했다.

 

하루 아침에 급변한 판타스틱한 풍경에 취해 밖에서 공중부양 놀이를 즐기던 우리들은 안내 방송에 이끌려 객실로 대피했다. 얼마 후 모든 출입구는 폐쇄되고 배 안에서는 좌로 굴러 우로 굴러, 점프 뛰기 등 생존이 걸린 리얼 공중부양의 절정을 맞이한다. 심각한 뱃멀미와 싸우는 이틀 동안 방안은 도둑이 든 집안처럼 난장에 난장판을 거듭했다. 거기다 밥 냄새는 안 그래도 울렁울렁한 속을 뒤집어 위 속 내용물을 확인, 또 확인하게 만들었다.

 

귀에 붙이는 약, 먹는 약… 모두 소용이 없었다. 파도는 이리저리로 내 몸을 날려 버렸다. 자다가 침대에서 네 번이나 떨어져 엉덩이가 아팠지만, 막판 2일치 배멀미 약을 한꺼번에 먹는 극단적 선택으로 멀미의 고통에서는 해방됐다. 그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마지막 구간을 못 달린 아쉬움은 모두의 가슴을 답답하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슬픔이자 스트레스가 됐다. 그래서 위험 지역을 벗어난 뒤 조촐한 선상 완주 파티가 열렸다. 배 갑판에서 모든 참가자에게 완주 메달을 주는 수여식이 벌어졌는데 마지막으로 송경태씨와 내가 완주 메달을 받았다. 그리고 주최측에서 송경태씨의 그랜드슬램(고비, 사하라, 아타카마사막, 남극) 달성 축하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소주'로 전체 참가자들의 입안을 불 태우고 레이스를 마감했다.

 

 

[뒷이야기] 작년에 탔던 배가 조난 당하다

 

우수아이아에 도착 후 알게 된 사실 하나. 우리가 남극을 탈출할 때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조금 늦게 출발하여 뒤따라 오던 배가 있었다. 그런데 그 배는 선체에 손상을 입고 조난을 당했다고. 다행히 암초에 걸려 침몰은 안 당하고 있다가 아르헨티나 해군 군함이 출동하여 승객들과 선원들만 구출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조난 당한 배가 내가 작년에 탔던 '안타르틱 드림호'라는 말이 있었다. 믿거나 말거나….

 

대회 참가에 도움을 준 제일은행의 한혜정 팀장, 생과 사를 함께 넘은 MBC 최병한 차장, 박태규 기자,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김효정씨, 그리고 끝까지 믿고 포기하지 않은 송경태씨에게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송경태씨의 그랜드슬램 달성에 함께 도우미로 고생을 하신 분들께 고개 숙여 깊은 감사를 드린다.

 

 
내가 걸어온 길

2005년 사하라 사막 레이스

이무웅, 김성관, 창용찬, 김인백, 정혜경, 유지성

 

 

2007년 고비사막 레이스

박미란, 송기석, 강수동, 유지성

 

 

 

2008년 아타카마사막 레이스

안희철, 창용찬, 이윤희, 송원

 

 

 

2008년 남극 레이스

유지성

 

덧붙이는 글 | 사막의아들 유지성 / www.runxrun.com 

사막, 트레일 레이스 및 오지 레이스 전문가. 칼럼니스트, 사하라, 고비, 아타카마 사막, 남극 레이스, 히말라야, 아마존 정글 마라톤, Rock and Ice 울트라 등의 한국 에이전트이며, 국내 유일의 어드벤처 레이스 기획자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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