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용대리. 내설악이 만든 용대리 마을 풍경. 천변으로 덕장이 있고 멀리 설악산이 보인다.

설악산은, 금강산을 만들어낸 백두대간이 숨도 고르지 못하고 빚어낸 산이다.

 

제 아무리 빼어난 경치를 지닌 금강산도 홀로라면 외로운 법.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까. 백두산에서 출발한 백두대간은 한반도 허리춤에 금강산과 어깨동무할 수 있는 설악산을 만들었다.

 

설악의 품에서는 명태의 화려한 변신도 무죄

 

한국전쟁 발발 전까지 금강산과 설악산은 한 체제(북한) 안에서 호형호제 하며 살았다. 3년간의 긴 전쟁이 끝난 후 금강산과 설악산 사이엔 군사분계선이 그어졌고, 남과 북은 각자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철조망을 쳤다. 잠시라고 생각했던 이별. 그렇게 갈라진 지도 반세기가 훌쩍 넘었다. 

 

설악산이 긴 손 뻗어 금강산을 손짓하는 진부령과 미시령. 진부령을 넘으면 분단 군(郡)인 고성 땅이 나오고 미시령을 넘으면 속초 땅이 나온다. 진부령과 미시령을 넘기 전의 마을은 인제군 북면 용대리. 내설악 골짜기를 적신 계곡물이 작은 내를 이루는 마을 용대리는 쌍룡의 전설이 흐르고, 눈이 하얗게 깔린 겨울날엔 식탁 위의 진객인 황태가 만들어지고 있다.

 

2009년 새해 들어 처음 맞이한 휴일은 소한을 하루 앞둔 날이기도 했다. 일찍 떠나야 밀리지 않는다는 여행객들의 마음이 통했던 때문일까. 겨우 정오를 넘겼을 뿐인데 서울로 가는 46번 국도는 차량으로 가득 찼다. 긴 연휴를 끝내고 돌아가는 도시인들의 더딘 걸음들 양편으론 황태 해장국집과 황태 덕장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인제군 용대리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여행객들은 밀리는 도로를 빠져나와 해장국을 먹거나 동태 냄새 궁궁하게 나는 덕장을 구경하지 않았다. 집까지 갈 길이 걱정이고, 월요일 출근길이 걱정인 탓이다.

 

아무려나 여행객들의 시선이 무심하게 스치는 그 시간에도 황태 덕장엔 동태가 걸리고 햇살을 받은 동태가 황태로 변신을 꿈꾸고 있다.

 

요즘 용대리 황태 덕장에 걸리는 동태들은 북태평양 먼 바다에서 '명'태라는 이름으로 잡힌 것들이다. 명태는 원양어선을 타고 속초항이나 거진항으로 들어와 할복장에서 인간들에게 자신의 알과 내장을 다 내어준 후에야 '동태'라는 이름을 얻는다.

 

명태의 알과 내장이 입맛 까다로운 사람의 혀까지 녹여내는 명란과 창란으로 변신하는 사이, 명태는 동태가 되어 진부령이나 미시령을 넘어와 용대리 덕대에 걸린다. 동태가 된 명태는 덕대에 걸려 겨울을 보낸 후 황태로 거듭난다.

 

황태를 만드는 것은 바람. 인제 용대리에 가면 황태가 익어가는 향을 맡을 수 있다.

덕대에 걸린 황태 하늘조차 보이지 않는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이름으로 불리는 생선도 있다니

 

용대리는 명태가 황태로 변신하는 데 최적의 조건을 지녔다. 설악에서 불어주는 바람과 밤이면 곤두박질치는 영하의 날씨가 맛 좋은 황태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노랑태'라고도 불리는 황태는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물에 불린 듯 통통해진다. 속이 푸슬푸슬 부풀어 올라야 최상품으로 치는 황태 농사는 여느 농사와 같이 하늘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적당한 바람과 영하의 날씨가 없다면 황태는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용대리 사람들은 황태를 '하늘이 내린 선물'이라고 한다.

 

조선조 함경도 명천군의 태씨 성을 가진 어부가 잡아온 생선이라 하여 '명태'가 된 명태는 잡히는 순간부터 여러 가지 이름으로 살아간다. 명태는 잡는 과정과 방법·시기에 따라 그 이름이 달라진다. 명태는 선태·왜태·생태·동태·북어·코다리·노가리·은어바지 등 다양하게 불리지만, 황태로 만들어지는 과정에 생기는 이름도 여럿이다.

 

황태로 건조시킬 때 날씨가 너무 추워서 색깔이 하얗게 된 것을 것은 '백태'이고, 백태와 반대로 겨울 날씨가 따뜻해서 색깔이 검게 된 것은 '먹태' 또는 '찐태'라고 한다. 작업을 할 때 머리나 몸통에 흠집이 생기거나 일부가 잘려나간 것은 '파태'이고, 머리를 잘라내고 몸통만이 걸어 건조시킨 것은 '무두태'라 한다.

 

또 작업 중에 실수로 내장이 제거되지 않고 건조된 것은 '통태'라고 하고, 덕대에 걸어 건조하던 중 바람에 의해 땅바닥으로 떨어진 것은 '낙태'라고 한다. 수분이 다 빠져버려 딱딱하게 마른 것은 '깡태'라고 한다. 깡태는 방망이로 두들겨야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주로 제수용으로 쓰인다.

 

잡히는 순간 다른 이름이 생기는 명태는 지칭되는 이름이 알려진 것만 해도 35가지에 이른다. 어느 생선이 이렇게 다양한 이름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버릴 것 하나 없다는 명태를 활용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이 눈물겹다.

 

이 겨울 내설악의 깊은 계곡물이 만들어낸 북천강은 눈과 얼음으로 덮여있다. 보름 전 내린 폭설이 그대로 남아있는 용대리는 지금도 눈천지다. 그런 이유로 만해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어색한 만남이 이루어졌던 인근의 백담사도 차량 출입이 금지되었다.

 

백담사 가는 길이 뚫리려면 3월은 되어야 가능할 터. 백담사에서 동안거 중인 스님들이 고립무원의 땅에서 긴 겨울을 보내는 동안 용대리에선 칼바람을 정면으로 맞고 있는 동태가 황태로 화려한 옷을 갈아입는다.

 

누구시죠? 명태가 아니라 황태라 불러 주세요...

눈밭의 황태. 용대리 강변 덕장에 황태가 가득 걸렸다.

 

동태 한 마리 덕대에 걸고 받는 돈은 100원

 

눈이 발목까지 빠지는 길을 걸어 황태 덕장으로 갔다. 영하의 날씨였지만 햇살은 좋았다. 덕대에 걸린 동태들이 햇살을 받아 낙숫물을 떨구고 있었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황태 덕장은 흡사 마른하늘에 비가 내리는 듯했다. 

 

동태를 가득 실은 트럭이 쉴 새 없이 덕장을 드나들었다. 트럭에 실려온 상자엔 동태가 가득 들어 있고, 덕장에 들어서자 생선 냄새가 진동했다. 덕장을 기웃거리다가 덕대에 올라가 작업을 하고 있는 이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꽁지 머리에 귀고리까지 한 사내는 한계리에 사는 김일영(45)씨였다. 그에게 일이 힘들지 않냐고 물었다.

 

"먹고사는데 이 정도 힘들지 않은 일이 있나요?"

 

그는 질문을 던진 내게 되물었다. 나는 풀쩍 웃고 말았다. 일거리가 없는 겨울이라는 걸 생각하면 힘이 들고 안 들고는 문제도 되지 않았다.

 

"일당은 얼마인가요?"

"덕장 일은 일당제로 하지 않아요. 일한 만큼 벌어가는 거죠. 열심히 하면 많이 버는 거고 그렇지 않으면 적게 받는 거죠."

"동태 마리당 계산을 한다는 건가요?"

"예, 동태 한 마리 거는데 100원꼴로 받아요."

"그럼 1000마리만 걸어도 10만원인데 그 정도는 몇 시간이면 하지 않나요?"

"그렇지도 않아요. 도급제라서 자질구레한 일이 많아요. 종일 쉬지 않고 일해야 7만원 정도 받거든요."

 

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자 김일영씨가 그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덕장 일은 혼자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팀을 짜서 움직이죠. 우리 팀만 해도 7명인데 하루 일한 걸 합하고 그 금액을 나누면 그 정도밖에 돌아가지 않습니다."

 

빈 덕장에 나무를 걸치고 동태를 거는 일이 단순해 보이지는 않았다.

 

덕장의 덕대는 2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위의 것을 '상덕'이라 하고 아래에 있는 것은 '하덕'이라 한단다. 상덕에 먼저 동태를 걸어야 하덕 작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상덕 작업은 숙련된 일꾼이 맡아서 하는 거란다.  

 

그러고 보니 상덕은 김일영씨과 그의 후배가 맡았고, 하덕은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들과 아주머니들이 맡았다. 상덕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동태 상자를 올려야 하는데 그 일만도 힘 없이는 할 수 없는 작업이었다.

 

트럭에 실려온 동태 상자를 옮기는 일부터 덕대를 걸쳐놓고 동태를 거는 일과 마지막으로 빈 상자를 정리하는 일까지 해야 하니 동태 한 마리 거는 데 받는 비용인 100원이 후한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쉬워 보이나요? 동태란 녀석이 얼어서 그런지 무거워 힘들어요.

삶은 황태 같은 것 상덕에서 동태를 걸고 있는 김일영씨 "일은 손이 하지 입이 하나요?"

 

"여기 일은 언제 시작했나요?"

"어제부터 했는데 며칠은 할 것 같아요."

"여기 끝내면 다른 덕장으로 가시겠군요?"

"그럼요. 덕장 일이라는 게 늘 있는 게 아니라 한철이거든요."

 

덕장엔 김일영씨 팀만 작업하는 게 아니었다. 워낙 큰 덕장이라 어제만도 4개 팀이 곳곳에 흩어져 작업하고 있었다. 한계리의 예술인촌에 살고 있다는 김일영씨는 평소 목공예를 한다고 했다. 그러다 돈이 필요하면 용접하는 일도 하고 목수 일도 한다고 했다.

 

술로 생긴 숙취? 황태해장국으로 한방에 날린다

 

경기도 마석 지나 수동골짜기에서 태어난 그는 애초 촌사람으로 살았기에 도시 생활은 적성에 맞지 않았다고 했다. 하여 가족을 이끌고 인제로 왔다. 넓은 땅에 비해 사람이 적고 설악산 같은 명산이 있으니 삶이 넉넉해진다는 그는 함께 일하는 대학생들을 '아들'이라고 불렀다.

 

"자제분들인가요?"

"아뇨, 아들 나이와 비슷하니 그렇게 부르는 거지요."

 

대학교 2학년 올라가는 아들을 두고 있는 김일영씨. 촌사람으로 살아서 그런지 얼굴 표정 하나는 맑아 보였다. 1시간 정도 작업을 하던 김일영씨가 잠시 쉬었다 하자며 담배를 찾아 물었다. 그 시간 아주머니들은 어디가 아픈지 자꾸만 손목을 만졌다.

 

"아주머니께서 어디가 아프신가 보네요?"

"종일 같은 동작을 반복하니 손목이 많이 아파요. 남자인 우리도 아침이면 손목이 시큰거릴 정돈 걸요. 보기엔 편하다 싶지만 직접 해보면 이 일이 막일을 하는 거보다 힘들어요."

 

일을 쉽게 하는 듯 보였지만 역시 몸을 움직여 돈을 버는 일에서 '육체적 편함'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담배 한 대를 피운 김일영씨가 다시 일을 시작했다. 겨우 5분 정도의 휴식이라니. 김일영씨의 팀을 두어 시간 넘게 따라다니며 이것저것 묻는데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돈인데 공연히 시간만 빼았았네요."

"괜찮아요. 손이 일하지 입이 일하나요. 쉬는 입 놀리게 해준 게 더 고맙지요."

 

김일영씨의 말에 모두 한바탕 웃었다. 그러나 정작 눈밭에 빠진 내 발이 점점 얼어가고 있어 나는 그들과 인사를 나눌 수밖에 없었다.  

 

명의 허준이 쓴 <동의보감>에 따르면 '명태는 몸 속에 찌든 독을 해독하고 과음으로 피곤해진 간을 보호해 주며, 피로회복과 혈압조절에 큰 효과가 있다'고 적혀 있다. 알고 보면 황태가 해장국으로 유명한 이유가 따로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명태에는 아미노산인 리신과 뇌 영양소 트립토판이 들어 있어 아이들의 성장발육에도 큰 도움이 되는 식품이다.

 

연말과 연시를 보내며 술독에 빠진 이들의 간은 피곤하다. 하루라도 편히 쉬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사람들이 태반인 세상. 그들에게 설악의 바람이 만들어낸 황태를 강력 추천한다. 식성에 따라 드시라. 찜도 좋고 구이도 좋고 해장국도 좋다. 이미 400년 전 허준이 그걸 증명해 내지 않았던가. 

 

끝없이 펼쳐진 덕장. 덕대에 걸려 있는 황태들의 합창 "오 마이 갓~"

황태로의 변신은 무죄. 햇살을 받은 동태의 몸이 녹아 내리고 있다.
황태 덕장 황태로의 화려한 변신을 꿈꾸는 명태. 이렇게 겨울을 보내면 귀한 대접을 받는다.
 
 

좋은기사 후원하고 응원글 남겨주세요!

좋은기사 원고료주기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입니다.더보기

시민기자 가입하기

© 2017 OhmyNews오탈자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