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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밤 새해 보신각 타종식이 열리는 서울 종각 네거리에 모인 시민들이 '이명박 퇴진' '아듀 2008 아듀 MB!' '언론관계법 개악 철회하라' 등의 구호가 적힌 종이피켓과 '선생님을 돌려주세요'가 적힌 노란풍선을 들고 있다.
 31일 밤 새해 보신각 타종식이 열리는 서울 종각 네거리에 모인 시민들이 '이명박 퇴진' '아듀 2008 아듀 MB!' '언론관계법 개악 철회하라' 등의 구호가 적힌 종이피켓과 '선생님을 돌려주세요'가 적힌 노란풍선을 들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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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신각 타종 현장의 왜곡 중계를 놓고 '국민의 방송' KBS의 항변이 무척 당당하다. 그래서 KBS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잘못했는가, 다시 한번 곰곰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제야의 종소리 현장에서의 시위도 타종 현장 왜곡 중계에 대한 비판도 큰 잘못이 없다는 판단이 든다.

KBS 예능국장이 하는 항변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예능방송, 즉 쇼와 다르지 않아서 얼마든지 연출을 할 수 있다는 주장, 우리 국민이 2008년을 보내고 2009년 새해를 맞으면서 안녕을 기원하는 행사라서 시위를 한다는 것은 모순"이라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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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이 나온 정치적 타종... 축하공연 있다고 예능인가

그러나 이 두 주장은 전혀 설득력 있게 느껴지지 않는다.

우선 이 방송이 예능 방송이라는 첫번째 주장. 이날 행사는 서울시장이 새해를 어떻게 보내자고 하는 진지한 이야기가 있었고 새해에 함께 힘을 모아 같이 잘 해보자고 하는 매우 정치적인 행위인 타종을 하는 자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하 공연이 있었다는 이유로 이 모든 것을 예능행사로 분류했다는 자체가 벌써 문제이다.

대통령의 취임행사에 축하 공연이 있다고 예능행사로 보고 마음대로 그 자리를 왜곡하고 조작해도 좋을까? 그렇지 않다. 취임행사는 국가적 중대사로서 국민들이 그대로 낱낱이 알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예능국이 행사를 모두 도맡는 것도 적절한 발상이 아니다. 또한 불가피하게 예능국이 맡았더라도 다른 쇼 오락과는 다른 태도로 접근해야 옳다.

게다가 이 행사는 오세훈 서울시장이라는 정치인이 나와서 시민·국민들의 삶을 어떻게 꾸려나갈지 포부를 밝히기까지 하는 자리였다. 이날 시장의 발언과 이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국민들이 앞으로의 자기 결정을 위해 잘 알아두어야 할 대목이다.

그럼에도 그렇게 안한 이유는 뭘까. KBS 예능국장의 두번째 주장이 잘 설명해주고 있다. "우리 국민이 새해를 맞이하면서 안녕을 기원하는 행사"에 시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가치관이 중계방송을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그렇게 끌고 가게 했던 것이다.

조금 다른 말로 하면 KBS에게 타종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국민이 아니었다. 남의 나라 사람이거나 조금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없어져야 할, 없었으면 좋을 사람이었다. 그래서 "시위를 하려면 다른 장소에 가서 시위를 해야지…" "행사에 와서 시위를 한다는 것은 행사 자체를 방해하는 행위 아니냐"는 말까지 자연스럽게 나왔을 것이다.

언제부터 보신각 타종 행사가 허락을 받은 일부 사람들의 행사였던가? 그리고 그런 허락은 누가 할 수 있으며, 어떻게 권한이 부여되었는가? 아무도 권한을 부여하지 않았다. 타종행사가 일부 사람들의 것이 되어야 한다고도 국민적 합의를 도출한 적이 없다.

시위 장면 함께 담겼다면 민주주의의 화려한 장관

1일 새벽 서울 종로 보신각에서 2009년 새해를 알리는 타종식이 열리는 가운데, 촛불을 든 한 시민이 '아듀 2008, 아웃 2MB!'가 적힌 종이피켓을 들고 있다.
 1일 새벽 서울 종로 보신각에서 2009년 새해를 알리는 타종식이 열리는 가운데, 촛불을 든 한 시민이 '아듀 2008, 아웃 2MB!'가 적힌 종이피켓을 들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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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행사에 모여서 정부의 졸속 입법 추진과 민주주의를 말살하는 정책을 비판하는 사람들 모두는 대한민국의 당당한 국민이다.

일부 부자들과는 달리 대부분 유리지갑이어서 꼬박꼬박 세금을 내고, 나라의 안녕과 국민의 안위를 위해 국토방위의 의무를 다했으며, 월드컵 때 '대~한민국'을 누구보다 소리높여 불러 댔으며,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손을 내밀어 공동체의 와해를 막으려 했다.

독도를 근거 없이 내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에 맞서 당당한 대한민국 주권자로서의 권리를 외치는 데 동참했으며, 한국 사회가 한 걸음 더 발전하는 데 기여하기 위해 자신의 일터에서 일하고 고민하고 연구하고 사랑했던 사람들이다.

이들이 왜 국민의 행사, 서울시민의 행사인 보신각 타종식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지 못해야 하는가? 왜 다른 곳에 가서 시위를 해야 하는가? 왜 보신각 타종에 맞춰 '새해엔 정말 민주주의가 후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열망을 염원할 수 없는가?

예능국의 또 다른 변명으로는 "시위 장면이나 목소리가 방송되었다면 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반발을 했을 것"이라는 대목도 있었다.

그게 무서워서 이들은 무시해도 좋다는 논리다. 현재 살아있는 권력을 가진 그들을 무서워하는 것은 일견 이해가 가는 측면이 있다.

그렇더라도 대표선수 격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나와서 종을 치고 대표 중 한 명이 입장을 이야기하는 자리가 마련된 만큼, 이에 대한 반발의 목소리가 일부 담긴다고 하더라도 무슨 문제가 될까? 문제가 되기는커녕 정치적 형평성을 잘 맞춘 멋진 자리라 해야 하지 않을까?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정치·사상의 자유가 잘 표현되는 훌륭한 자리가 펼쳐졌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서가 아니라 한 발 물러서 외부인의 시각에서 본다면 민주주의가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화려한 장관의 하나로 비춰졌을 수 있다.

이 자리를 빌어 '국민의 방송' KBS에 당부한다. 과거 조선조 당파정치의 폐단이 파벌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존재 자체를 제거해버린 데 있었다는 점을 상기하여,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여러 당파가 토론과 숙의를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바란다.

특히 새 사장이 들어서고 나서 뉴스 프로그램이 민주주의를 만들어 나가는 데 매우 중요한 의제를 외면하거나 심도있게 다루지 않는다거나 정치적으로 어느 일방을 표시나게 두둔하는 모습을 보여서, 그런 부탁을 더욱 강하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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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정연구 기자는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입니다.



태그:#KBS, #정연구, #민언련, #언론악법, #제야의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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