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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일차] 10월 7일, AZOFRA -SANTO DOMINGO DE CALZADA-  GRANON 24km

이 지도는 한 외국인 순례자가 길 안내로 인터넷에 올린 것을 옮겼음
▲ 제10 코스 지도 이 지도는 한 외국인 순례자가 길 안내로 인터넷에 올린 것을 옮겼음
ⓒ 문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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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진 천장 지붕 유리창 바로 아래가 내 자리이고, 비록 단 하룻밤만 자고 떠나는 곳이었지만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던 달빛과 별빛에 마음이 설레 잠을 쉬 이룰 수가 없었다.  

그라농 마을의 오래 된 성당의 수도원 숙소인데 이곳은 아무리 많은 사람이 와도 다 재워 주는 곳으로 유명하다. 기독교도도 아니고 그렇다고 성당에 다니는 가톨릭 신자도 아닌 사람이 난생 처음 '아멘'이라고 기도를 했던 곳이다.

규모도 별로 크지 않고 아주 오래된 성당인데 낡아서 보수공사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라농 수도원의 다락방 숙소
▲ 수도원 알베르게 그라농 수도원의 다락방 숙소
ⓒ 문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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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2층으로 올라가면 다락이 있는데 부엌이 있고 내부는 상당히 넓으며, 어른 키를 훌쩍 넘을 만큼 천장도 높아서 잠을 자는 데는 아무런 문제는 없었다.

처음엔 침대도 없고 매트리스 한 장만 깔고 남녀 구분 없이 다닥다닥 붙어서 자야 하기 때문에 한국여성들은 불편해 했지만 주로 성당에 다니는 분들인지라 곧 종교를 갖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편안해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의 신부님과 호스피탈레로(순례자를 위해 봉사하는 사람인데 산티아고를 다 걸은 사람만이 할 수 있음)가 가족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저녁과 아침을 주시는데 그 음식 또한 너무도 훌륭했기 때문이다. 온화한 미소에 전혀 가식 없는 친절에 기부한 금액이 적어서 그라농을 떠날 때까지 계속 죄송한 마음이었다.

길가의 순례자 공원 발 마사지 돌 의자
▲ 순례자들의 휴식처 길가의 순례자 공원 발 마사지 돌 의자
ⓒ 문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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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 곳곳에 휴식공원과 식수가 마련되어 있다. 비록 돌로 만든 딱딱한 의자이긴 하지만 순례자들이 햇살 바른 곳에 앉아서 맨발에 자갈로 지압을 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산티아고 길은 그래서 길을 걷는 사람들을 대접하는 걷는 사람들의 천국이라고 할만하다.

마을을 들어서는 길가에 예술품처럼 조각들이 많아서 길을 걷는데도 한국에서처럼 아스팔트에서 운전하는 차량의 기사들 눈치 볼 일도, 달려오는 차량에 겁을 먹을 일도 산티아고에서는 전혀 없으니 어찌 걷는 사람들의 천국이라 않으랴.

수도원 식당의 벽난로
▲ 벽난로 수도원 식당의 벽난로
ⓒ 문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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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농 수도원 알베르게의 벽난로. 이곳에서 세계 각국에서 찾아 온 수많은 순례자들이 모여 함께 음식을 만들고 와인을 곁들여 행복한 경험의 저녁식사 자리를 갖는다.

비록 그것이 훌륭한 레스토랑의 고급 만찬음식 같은 것은 아니지만 한국인인 나로서는 좀처럼 경험할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의 자리로 기억 될 것이다. 한국에 가서도 잊지 못할, 행복한 하루였다.

성당의 종탑에 올라
▲ 성당 꼭대기 성당의 종탑에 올라
ⓒ 문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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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라서 특별한 경험을 하라고 그랬던 것인지 호스피탈레로가 내게 종루로 올라가는 길을 알려주면서 가보라고 권한다. 그는 꽁지머리를 했는데 외국 영화배우처럼 훤칠한 키와 온화한 미소를 가진 멋있게 생긴 남성이었다.

산사의 절집 외에는 종교적인 건물에 들어가 본 적이 없던 내가 전혀 뜻밖의 경험으로 성당의 제일 높은 곳인 종루에 올라갔다. 비둘기들의 배설물이 군데군데 흩어져 있어 엉망이었으나, 그래도 햇살 바르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이었다.  

마을과 멀리 산들과 길들이 훤히 다 내려다보인다. 햇살과 바람이 너무 좋기에 재빨리 내려가서 빨래를 가져와 널었다. 하늘 저 높은 곳에 계시는 분도 내가 순례자로 와서 팬티 같은 것을 성당 종루에 널었다고 나무라진 않으리라 믿으면서...

세계 각국의 순례자들과 함께 한 저녁식사
▲ 저녁 식사 세계 각국의 순례자들과 함께 한 저녁식사
ⓒ 문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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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옆에 앉아서 손을 흔드는 녹색 티셔츠를 입은 사람이  프랑스 아가씨인 케푸씬이다.

그 맞은편에 앉은 사람들이 한국 여성 등이었는데 다들 길에서 만나면 아주 반가워 해주던 케푸씬과는 사이가 참 좋았다.  

맨 앞줄의 흰 턱수염 아저씨는 내가 숀 코네리 라고 별명을 붙여준 프랑스 아저씨 알랑이다. 그는 한국인에게 화사한 미소로 답해주는 넉넉한 인상인데 숀 코네리 같이 생겼다. 그 옆이 스페인 청년과 독일 아가씨이고, 꽁지머리에  모자를 쓴 제이티의 모습이 보인다. 

어둡고 허름한 마구간 같은 곳에서 세계 각국에서 모인 사람들이 촛불 한 개씩을 들고 빙 둘러 앉아 제각기 제 나라의 언어로 기도를 하는데 종교가 없는 내가 난생 처음 "아멘"이라고 기도를 하게 됐다. 모인 사람들과 언어도 종교관도 다른 내가 알 수 없는 감동으로 인해 가슴이 미어지고 콧등이 시큰해졌던 경험을 하게 되었다.

지금도 그게 어떤 것이었는지 알 수 없으나 산티아고 길에 내가 서 있지 않았으면 느낄 수 없는 감동이었다. 종교의 벽도 없고 그냥 있는 보이는 그대로 가슴을 열어 따뜻하게 맞아주는 분들에게 늘 행복한 충만함이 가득하시기를...

AZOFRA--9.3km--Ciruna --6km--Santo Domingo de la Calzada

전에는 기부제로 운영되던 공립 알베르게들도 거의 다 숙박비가 5~7유로 정도로 변경되었다. 성당이나 수도원 숙소는 기부제로 운영된다.  

이곳엔 가스레인지도 있고 마당과 전설이 유명한 곳인데 산토 도밍고라는 성인의 이름으로 지어진 듯하다. 

아나톨 프랑스가 지은 성모님의 곡예사(바르나 베). 닭 두 마리로 유명한 대성당의 전설이 내려오는데 옮기자면 이렇다. 

중세시대 순례를 떠난 어느 가족이 산토 도밍고에서 며칠 지내게 되는데 숙소의 하녀가 이 가족의 아들인 청년에게 사랑을 품게 되어 구애를 하지만 거절을 당했다. 남자에게 거절당한 하녀는 수치심을 느끼고, 은촛대를 훔쳐 이 청년의 가방에 넣어 도둑으로 몰리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 청년은 성당 앞 광장에서 교수형에 처하게 되는데, 졸지에 아들을 잃은 가족은 어쩔 수 없이 순례를 계속하여 산티아고 대성당을 방문한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다시 산토 도밍고에 도착하게 되는데 그들은 아들이 교수대에 매달린 채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도밍고 성인인 산토 도밍고가 두 손으로 아들을 받치고 있었다는 것이다. 가족들은 수도원장을 찾아가 아들이 살아 있으니 당장 내려달라고 애원을 했다. 식사 중이던 수도원장은 코웃음을 치면서 아들이 살아 있다면 여기 식탁에 있는 구운 닭 두 마리도 살아 있을 거라고 비웃는다. 수도원장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식탁의 닭 두 마리가 살아서 날아가 버렸다고 한다.

이후부터 산토 도밍고 성당에서는 날마다 살아 있는 닭 두 마리를 보관하게 되었다고 한다. 순례하는 중에 이 닭 울음소리를 들으면 행운이 함께 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순례자들에게 인기가 높은 곳이기도 하다.

우체국과 잔디공원이 있고 좌측길이 가깝고 우측 길은 다소 돌아가는 길이다.


태그:#수도원, #산티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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