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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마지막날 종로구 견지동 평화박물관에서 만난 한홍구 교수는 "새해에는 조중동이 시키는 대로 살 게 아니라 자기 입장 중심에서 살아보자"고 제안했다.
 2008년 마지막날 종로구 견지동 평화박물관에서 만난 한홍구 교수는 "새해에는 조중동이 시키는 대로 살 게 아니라 자기 입장 중심에서 살아보자"고 제안했다.
ⓒ 이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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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8년을 누구보다 동분서주했던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지난 12월 31일 인터뷰에서 지난 한해 MB정권에서 보낸 소감에 대해 분노와 좌절의 마음을 담아 독설을 퍼부었다. 그리고 현재 막막하다고 했다.

하지만 한 교수는 2009년을 살아갈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고 했다. 그 희망을 어떻게 만들어 가야 하는지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분노가 느껴진다.
"한국에는 보수가 없다. 노무현 대통령이 '포괄적 과거사 청산'을 주장했을 때 뉴라이트가 치고 나와서 예쁨을 받기 시작했는데, 이게 보통국가론을 주장하는 일본 우익보다 못하다. 일본 우익들은 그래도 전쟁 책임은 인정하고 보통 국가로 가자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뉴라이트들은 친일파까지 미화한다. 군사독재 정권 때도 그렇게 안 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는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바로 그거다.

진보도 아마추어지만 지금 정권도 아마추어다. 참여정부는 그래도 자신들이 아마추어라는 것을 인정했다. 그래서 가치중립적 매뉴얼과 시스템만 만들다가 끝난 것 아니냐. 공무원 하고 정치해서 자기 지지세력도 다 파괴했다. 그런데 애들은 시스템을 만들 생각도 안 하고 자신들이 '프로'라고 주장한다.

예전에 떠돌던 '솥단지론'이라고 알고 있나? 박정희가 밥솥 사고 밥이 다 될 무렵 죽어서, 전두환·노태우가 밥 싹 긁어먹고, 김영삼이 빈 솥 붙들고 박박 긁다가 솥 깨먹고, 김대중이 IMF에 돈 빌려다 전기밥솥 샀는데 노무현이 전기코드를 붙들고 110v에 꽂을지 220v에 꽂을지 고민하다 끝났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지금 이명박은 내가 안다고 나서선 전기밥솥을 불 위에도 올려놨다.

염치도 없는 것은 그렇다고 치자. 애초 도덕성 보고 뽑은 건 아니니깐. 그런데 실력도 없다. 심각한 문제다. 이 난국을 타개 못하니깐 이념 논쟁으로 넘어가려 한다. 지금이 냉전 시대인가."

"참여정부는 '아마추어' 인정했는데... 전기밥솥 불 위에 올리는 이명박"

- 추진 중인 국정원법·통신비밀보호법 등을 보면 냉전시대 회귀가 빈 말은 아닌 것 같다.
"국정원 과거사위원회 끝내고 보니, 얘네들이 왜 실력이 없는지 알 수 있다. 말 안 듣는 녀석 데려다가 때리고 언론 입 다물게 하고 해서 정권을 유지했다. 짹 소리도 못하게 했다. 한 줌밖에 안 되는 저항세력이 있었지만, 이 사람들이 점거농성하거나 안기부가 공안사건을 만들지 않으면 우표 크기 만큼도 보도가 안 된다. 그렇게 정권을 유지했다.

그런 '공포의 정치' 축에다 부동산 투기 등 '욕망의 정치'. 양 축으로 지배를 해왔다. 김영삼 정권 들어서면서 '공포' 축이 흔들리고 '욕망' 축이 강화됐다. 그런데 '욕망' 축마저 이번에 뉴타운까지 와서 뻥 터진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욕망'를 채워줄 재간이 없다. 그러니 '공포'를 되살리려고 하는 것이다.

양 축을 작동시키는 보조 축이 언론과 교육이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설 수 있었던 것도 방송 민주화가 됐기 때문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미디어포커스><PD수첩> 등 좋은 프로그램도 나오고 땡전뉴스 안 하니까 진실을 알리게 된 것이다. 또 하나가 전교조다.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지만, 전교조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 덕분에 교육이 정권의 선전도구로 전락하는 것은 면했다.

지금 이명박 정부가 노리는 것은 그를 되돌리는 것이다. '욕망의 정치' 축을 되살리기 위해 대운하를 만지작거리고, '공포의 정치' 축을 되살리기 위해 국정원법 등 공안 통치를 되살리고 언론을 장악하고 전교조를 몰아내려고 하는 것이다.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꼭 필요한 것을 되살리려고 하고 있다. 이 싸움이 간단한 것은 아니다. 철저한 분석을 기초한 것은 아니겠지만 자기 나름대로의 반성과 타고난 동물적 감각으로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촛불시즌2를 넘어 횃불이 왔을 때, 진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15일 개최된 '제100회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시민들이 무차별 강제연행에 나선 경찰에 ?겨다니다 자정무렵 탑골공원앞 네거리에 모여 신문지를 말아서 불을 붙여 들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촛불처럼 얌전하리라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촛불이 될 지 횃불이 될지 모른다. 그 때 민주개혁진영이든, 진보진영이든 대안이 못 될 가능성이 높다. 사진은 지난해 8월 15일 제100회 촛불문화제에서 신문지를 말아 불을 붙여 든 시민.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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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 안 상황도 그렇지만, 모든 사안이 굉장히 급박하고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것이다. 물론 길게 보면 이길 게 분명하지만 촛불이 끝났을 때 우려했던 것보다 상황이 더 심각하다. 누군가 이명박 정부가 파시즘이라고 하는데, 독재임은 분명하나 파시즘은 아니다. 정말 심각한 것은 이명박이 실패를 피할 수 없을 것이란 점이다. 지금 저들이 경제를 살리겠나? 국민 통합을 이루겠나? 대책이 없다. 저들이 실패하고 나면 누가 대신하게 될까. 촛불이나 민주당이 그 대안이 될 수 있겠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촛불을 신뢰하지 않았다. 이랜드의 김경욱 위원장이 '자신들에게 촛불은 생활이었다, 파업이 길어지면서 생활비가 없어 전기가 끊긴 방 안에서 아이들이 숙제를 하려면 촛불을 켜야 했다, 그 촛불이 생각이 나서 도저히 촛불을 들 수 없었다'고 절절하게 표현한 적 있다. 기가 막히지 않나. 미국산 쇠고기 안 들어온다고 해서, 촛불이 이 정부를 대신한다고 해서 비정규직 처지가 바뀌는 것은 아닐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촛불처럼 얌전하리라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촛불이 될 지 횃불이 될지 모른다. 그 때 민주개혁진영이든 진보진영이든 대안이 못 될 가능성이 높다. 그때 파시즘이 올 수 있다. 이명박의 실패 이후 상황, 분노한 대중들을 누가 감당할 수 있을까?"

- 그렇다면 지금 진보진영이 준비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진보진영이 설득력을 가져야 한다. 우선 자기 언어를 버려야 한다. 이 바닥에서 30년을 구른 내가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선전물을 봐도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다.

파시즘의 징후는 벌써 보이고 있다. 벌써 인터넷 등에서 보이고 있는 이주노동자 추방운동 같은 것도 내년 이후면 본격화될 것이다. 경제 상황이 더 어려워지면 소수자들에 대한 공격은 더 노골화될 것이다. 사실 지금의 경제 위기도 시작에 불과하지 않았나. 이 정부는 촛불도 수습하지 못했다. 결국 검찰이 나서서 수사하겠다고 엄포 놓으면서 수습 비슷하게 했지만 '밖에서 굶은 것보다 나와서 싸우는 것이 낫다'는 사람들이 등장하면 검찰이나 경찰도 수습 못한다.

촛불 때 방향 지도나 상황 통제는커녕, 심부름 역할 밖에 하지 못했던 진보진영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촛불시즌 2를 넘어 횃불이 왔을 때 그 상황에서 진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요 몇 달 사이에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나도 답답하다."

- 말씀을 듣다 보니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나도 막막하다.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침묵) 지금 정부가 하는 말을 들어보면 기절할 것 같다. 잃어버린 10년 되찾겠다고 나설 때 10년 정도 뒤로 돌아가는 것은 각오했다. 그런데 '전 국토에 망치소리가 들려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나 하고, 속도전으로 밀어붙이는 모양새를 보면 딱 40·50년 전 북한이다. 옛날 김일성이 하던 이야기다."

"김수영 시인이 말했듯 풀은 먼저 눕지만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

 1일 새벽 서울 종로 보신각에서 2009년 새해를 알리는 타종식이 열리는 가운데, 보신각 주변에 모여 있는 시민들이 한나라당의 'MB악법' 강행처리 시도를 규탄하며 '근조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있다.
 1일 새벽 서울 종로 보신각 주변에 모인 시민들이 한나라당의 'MB악법' 강행처리 시도를 규탄하며 '근조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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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을 맞이하는 이들이 힘든 이야기만 듣게 된 것 같다.
"(웃음) 내가 너무 독한 이야기만 했나 보다. 그러나 나는 한국 역사가 희망의 역사라고 생각한다.

고은 시인의 시 중에서 '나 같은 게 살아서 오일장 국밥을 먹는다'는 구절이 있다. 한국전쟁 당시 시인이 그렇게 노래할 만큼 많이 학살당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7년 뒤 4·19 혁명이 일어났다. 그리고 광주. 얼마나 처절하게 깨졌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란 말까지 나왔다. 그러나 7년 뒤 6월 민주화 항쟁이 일어났다. 당시 박종철군이 죽기 이틀 전 실내에도 100명이 모인 곳이 없을 정도로 탄압이 심했다. 그런데 불과 그로부터 5달 만에 6월 항쟁이 일어난 것이다.

지금까지 설명한 것은 7년의 주기가 있었지만 민주주의를 복원한 이후 이 폭과 시기는 점차 짧아지고 있다. 암담해 보여도 역사는 계속 발전해간다. 김수영 시인이 말했듯 풀은 먼저 눕지만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 2008년을 겪으며 학습했던 대중들이 희망인가?

"3·1운동 때도 좌절한 이들이 굉장히 많았다. 그러나 그 정신은 계속 간직했다. 사회주의 운동사를 연구할 때 운동가들의 이력을 다 조사해봤는데 한 명도 빠짐없이 3·1운동이 그 출발점이다. 촛불을 들었던 100만명 중 촛불의 기억과 경험을 간직하고 새롭게 만들어내려고 도전하는 이들도 나올 것이다. 문제는 이들이 그 가운데 절대 다수의 비정규직 대중들과 어떻게 만나고 연대할 것인가다.

과거 민주화운동은 대의를 내세웠다. 그를 위해 일신의 이익은 버려야 했다. 그 때 당시는 민주화만 해도 작은 담론이었다. 선배들의 '우리가 운동해야 할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민주화'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통일은? 민족의 해방은?'이라는 핀잔을 들었다. 그런 거대 담론의 수행을 위해 자신을 버릴 것을 요구받다 보면 탈이 난다. 나는 지금의 뉴라이트가 그런 요구를 강요받고 강요했던 이들이 탈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공동선과 결부가 되면 된다. 예를 들어 청년실업자들이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잘못된 것일까? 사회의 공동선과도 일치하는 문제다. 자기 이익과 공동선을 끊임없이 비춰보고 분별력을 갖게 하는 것. 연대를 고민하게 하는 것. 그런 힘을 키워나가야 한다."

- 새해 소망이 있다면?
"정말 새해에는 모든 이들이 자기 입장에서 자기중심적으로 사고했으면 한다. 조·중·동이 시키는 대로 하지 말고 자신의 계급적 입장을 반영해서 투표를 했으면 한다. 자신의 계급적 이익에 따라서 투표하고 행동하는 세상. 그것이 진짜 민주주의 사회다.

보수세력 중에서도 파시즘의 대두를 우려하는 이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런 이들이 책임감을 느끼고 이 사회에서 해야 할 일들을 했으면 한다. '일제고사 안본 거 견책이나 감봉이면 충분하지 목숨 줄을 끊어놓으면 어떻게 하냐', '아무리 이념교육이 필요하지만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안기부 떨거지들 데려다 놓고… 창피하다'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보수가 있어야 한다. 그런 기본은 해야 진보와 보수 간의 대화가 이뤄진다. 개인적인 새해 소망은 그런 기본은 하는 보수 인사 몇 명을 만나는 거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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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한홍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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