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한홍구 교수를 지난 12월 31일 오전 종로구 견지동 평화박물관에서 만나 지난 한해를 되짚어보고 2009년을 고민해봤다.
 한홍구 교수를 지난 12월 31일 오전 종로구 견지동 평화박물관에서 만나 지난 한해를 되짚어보고 2009년을 고민해봤다.
ⓒ 이경태

관련사진보기


2008년 한 해는 그야말로 다사다난했다. 지난해 뉴스를 몇 개만 열거해도 아찔해진다. 미국산 쇠고기 전면수입으로 촉발된 대규모 촛불집회, 교과서 수정과 현대사 특강의 역사 왜곡, 국제중 및 일제고사 관련 교사 집단 징계 등 교육문제부터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시작된 세계적인 경제 위기까지. 하나같이 숨 가쁘지 않은 것이 없다.

성공회대학교 한홍구 교수도 누구보다 동분서주했다. 미국산 쇠고기 전면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집회에 참여해 유치장 신세를 졌으며, 촛불 진압을 거부하고 평화박물관으로 몸을 피한 이길준 이경을 위해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의 책은 불온서적으로 지정됐다.

일제고사와 관련해 파면·해직당한 교사 7명의 복직을 위해 1인 시위에 직접 나서기도 했다. 요새는 징계 교사들의 사진이 반 아이들의 졸업앨범에서 빠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국 최고의 사진작가'를 섭외해 파격적인 졸업앨범을 만드는 중이다.

2008년을 누구 못지않게 바삐 살았던 그를 지난 12월 31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견지동 평화박물관에서 만나 지난 한해를 되짚어보고 2009년을 고민해봤다. 한홍구 교수는 1시간이 좀 넘는 인터뷰 동안 2008년에 대한 분노와 좌절 그리고 희망을 솔직담백하게 풀었다.

다음은 한 교수와의 일문일답이다.

"촛불은 지금도 현재진행형, 밥을 지을 순 없어도"

지난해 6월 1일 밤샘 시위에 참가했다 경찰에 붙잡힌 한홍구 교수는 당시 <오마이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국민 엠티(MT)였다"고 말했다. 사진은 '경제파탄 이명박 OUT'이 적힌 종이와 촛불을 들고 있는 한 시민.
 지난해 6월 1일 밤샘 시위에 참가했다 경찰에 붙잡힌 한홍구 교수는 당시 <오마이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국민 엠티(MT)였다"고 말했다. 사진은 '경제파탄 이명박 OUT'이 적힌 종이와 촛불을 들고 있는 한 시민.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 2008년, 다사다난한 가운데 미국산 쇠고기 전면수입으로 촉발된 촛불집회는 빠질 수 없는 것 같다. 교수님도 서대문경찰서 유치장에 하룻밤 기거(?)하셨는데?

"(웃음) 수업듣는 대학원 학생들, 가족들과 촛불집회 많이 나갔다. 그날도 그 팀들이랑 같이 잡혀갔고. 최종 결정된 건 아니지만 검찰이 벌금형을 구형했다. 세 명은 200만원, 전과 있던 이들은 250만원. 벌금은 낼 수 없고 정식 재판을 청구할 거다. 정식재판에서 벌금형이 떨어져도 낼 생각은 없다. 노역장 유치가 떨어져도 할 수 없다."

- <오마이뉴스>와 전화통화에서 "국민MT"라고 표현한 게 촛불집회를 정의하는 명언이 됐다.
"우연찮게 불쑥 나왔던 말인데 어떻게 그렇게 됐다. 그날 길바닥에 있으면서, 과연 한국전쟁 때 빼고 이렇게 많은 이들이 길에서 새벽을 맞이한 적이 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것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다. 국민들이 민주주의에 대해 정치에 대해 엄청나게 많은 것들을 깨달아가는 과정이 눈에 보이더라."

- '국민MT'라는 명언도 있지만, 이후 강연에서 촛불집회를 일러 "민주화운동이 곗돈을 탄 것"이라고 말씀하신 적도 있다. 2008년이 저물어가는 지금 느끼시는 바는 어떠신가.
"곗돈은 탔지만 돈은 항상 부족하달까(웃음)? 촛불집회가 기대하지 못했던, 민주화운동의 저력 혹은 결과로서 나올 수 있는 부분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되지 않았다면 그런 반응은 절대 나올 수 없었다. 정작 목이 터져라 민주주의를 외쳤던 우리는 민주화운동의 성과에 대해 냉소적이었다. 그런데 민주화의 공기 안에서 살아온 이들은 우리와 달리 침탈당하자 온 몸으로 반응했다. 그 때 '아, 이런 것이었구나' 하는 기분이 들었다."

- 지금에 와서 봤을 때 촛불집회가 기대했던 것 이상 나아가지 못한 부분도 있지 않나. 예를 들어 비정규직 문제 등으로 확산된 촛불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나도 동력이 거의 못 옮겨갔다고 본다. 그러나 지금 벌써 촛불의 성공 여부를 평가하기엔 이르다. 지금도 촛불은 현재진행형이고 잠복기다. 예를 들어 우리가 3·1운동이나 광주 민주화 항쟁을 지금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 광주 민주화 항쟁만 하더라도 사실 그 자체로 볼 때 진압된 운동이다. 그런데 그렇게만 이야기할 순 없다. 광주가 80년대를 살아간 힘이고 6월 항쟁을 만든 밑거름이었기에 '살아있는 운동'이다. 촛불만 하더라도 참가했던 수십만의 경험이 다 다른데 쉽게 이야기할 수는 없다고 본다.

현상적으로 분명한 것은 엄청나게 많은 이들이 참여했다는 거다. 역사상 이 정도로 동원되지 않은 인원이 모인 적이 있던가 싶다. 그러나 전 국민이 참여한 것은 아니다. 1백만명으로 대략 계산해도 전 국민 중 약 2%? 예전 정통성이 없었던 정부와 싸울 땐 2%만으로 충분했는데 선거라는 절차적 정당성을 가진 이명박 정부에게 2%는 부족했다. 어떤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촛불은 참 멋있는데 그걸로 밥을 지을 수 없진 않냐'고."

- 생업을 포기하고 계속 촛불을 들고 있는 이들도 있다. 촛불집회의 기억이 인생에 변화를 줄 정도로 강력한 경험이 된 셈이다. 정부 역시 이후 내놓은 대책들만 보더라도 굉장히 놀랐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정부가 굉장히 데었다. 집권 초기에 500만표 차이로 이겼다고 기고만장하다가…. 지금 와서 생각하면 수구의 수준이 그 정도밖에 안 된다고 생각된다. 한미 쇠고기 협상이 그렇게 된 것도 이명박정권의 수준이 그 정도였기 때문이다.

촛불집회 이후 대응을 보더라도 지금 이 정권의 행동은 일제보다 못하다. 그 흉악한 일본 놈들도 3·1운동 이후 유연하고 능란하게 대응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만들어졌고, 조선 사람들에게 여유를 줬다. 해외로 망명했던 3·1운동 주도자들이 1·2년 뒤 돌아왔을 땐 종로서에서 반나절 정도 형식적으로 어물어물한 뒤에 수사를 종결해 버렸다. 그렇게 조선사람들 숨막히지 않게 풀어주는 '문화정치'를 했기 때문에 몇십년을 더 끌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문화정치는커녕 유모차 끌고나온 엄마들한테 '아동학대죄'라고 막말을 해댄다. 이거 말하다 보니 일본 놈들을 칭찬하는 것처럼 돼 버렸다(웃음)."

"새해엔 역사·교육 이념공세 더 세질 것"

촛불집회 이후 대응을 보더라도 지금 이 정권의 행동은 일제보다 못하다. 문화정치는커녕 유모차 끌고 나온 엄마들한테 '아동학대죄'라고 막말을 해댄다. 지난 9월 22일 '유모차 부대' 카페의 한 주부가 서울경찰청 앞에서 경찰의 불공정 표적수사에 대한 피해 사례를 발표하다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촛불집회 이후 대응을 보더라도 지금 이 정권의 행동은 일제보다 못하다. 문화정치는커녕 유모차 끌고 나온 엄마들한테 '아동학대죄'라고 막말을 해댄다. 지난 9월 22일 '유모차 부대' 카페의 한 주부가 서울경찰청 앞에서 경찰의 불공정 표적수사에 대한 피해 사례를 발표하다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 역사에 대한 접근방식도 주목된다. 현대사를 가르치는 입장에서 교과서 수정이나 현대사 특강 등을 봤을 때 어떤가.

"현대사 전공자로서 모욕감을 느낀다. 차라리 '시국특강' '안보특강'이라고 이름 붙이고 안보관을 교육하겠다고 하면 말을 않겠다. 현대사 특강이라니…. <오마이뉴스>에서 국민감사 운동을 벌여야 하지 않겠나? 자격 미달의 강사들한테 그 많은 돈을 주고 특강을 하다니. 현대사 전공자가 없어서 할 수 없이 이 사람들을 끌어당겼다면 다른 이야기겠지만 현대사를 전공한 교수가 수십 명이 있는데 지금 특강 강연자 중 전공자는 딱 한 사람 밖에 없다. 강사들 경력이 가관 아닌가."

-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임시정부의 법통을 무시한 책자를 내놓고 버티는 것도 같은 맥락 아닌가.
"알고도 저런 이야기를 할 정도로 오만방자해진 것 같다. 이명박 대통령이 교과서 문제에 관심이 많고 밀어붙이니, 교과부가 나서고, 문화부에 지식경제부까지 나서는 꼴이다.

나는 이게 촛불과 밀접하게 결합이 돼 있다고 생각한다. 도대체 아이들이 왜 촛불을 들고 나왔는지 자신의 머리로는 이해가 안 되는 거다. 그러다 보니 '누가 배후냐'는 식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전교조 빨갱이들이 새빨간 교과서를 가지고 애들을 가르쳤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얻는다. 그래서 대책이 전교조를 비틀고 교과서를 찢어버리는 게다.

이같은 현상이 세계적 경제 위기와 겹쳐있다는 게 더 심각하다. 내가 경제전문가는 아니지만 뉴스를 볼 때마다 '으악' 한다. 내놓는 정책이란 게 모두 전 세계와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강부자 중심의, 입이 쩍쩍 벌어지게 되는 정책들이다. 이 정부는 경제난을 극복할 능력도 의지도 없는 것 같다. 그 상태에서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반대파 때리기'를 한다.

촛불이 한창일 때 이명박 대통령 지지율이 7.9%까지 떨어지지 않았나. 그런데 지금은 20%의 지지율로 반등했다. 이게 다 보수층을 결집해서 얻어낸 결과다. 이명박이 밉다고 박근혜 지지세력 등이 같이 촛불 들다가, 이러다간 정권이 무너지겠다 싶어 울며 겨자먹기로 지지한 것이지. 원래 지지층을 결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공동의 적을 만드는 거다.

대다수 국민들의 지지를 받으려면 경제를 회복시켜야 하는데 지금 하는 걸로 되겠나? 게다가 전 세계적으로 난이 닥쳐서 한 국가가 잘 해도 헤쳐나가기 힘든 시절인데. 단지 20% 지지만 쥐고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고 같은 편의 이익과 세력을 신장시키면 정권재창출도 가능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반대세력을 깨고 같은 편의 세력을 신장시키기 위해 교육개혁에 대운하, 미디어 관련법까지 밀어붙이는 것이다."

- 이념 공세로 상황 반전을 노린다?
"그러나 이 이념공세는 이들이 사상적으로 철저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단지 수구세력 결집이라는 정치적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경제난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시장에서부터 외면을 받았다. 자신들도 대책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 정국을 돌파하기 위한 유일한 길로 그를 선택한 것이다. 새해에는 역사문제·교육문제 등 이념공세가 더 강화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개성공단 같은 것을 깨는 것도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안 그러고서야 저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해직교사 탄원서 못 받게 하려는 하교지도... 소름 끼치더라"

'일제고사'때 학생들의 야외체험학습을 허락한 뒤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해임통보를 받은 설은주 교사가 근무하는 서울 강북구 수유동 유현초등학교 앞에서 지난해 12월 15일 한 학부모가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일제고사'때 학생들의 야외체험학습을 허락한 뒤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해임통보를 받은 설은주 교사가 근무하는 서울 강북구 수유동 유현초등학교 앞에서 지난해 12월 15일 한 학부모가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 걱정하시는 만큼 현장에서도 왕성하게 활동하시는 것 같다. 예전 촛불집회 진압을 거부했던 이길준 이경 때도 그렇고 일제고사와 관련해 해직 파면당한 전교조 교사들의 복직을 위해서 1인시위도 나가시는 것으로 안다.

"해직당한 설은주 선생님이 이번 학기에 내 수업을 듣고 있다. 이번에 일제고사 거부했고 징계에 회부됐다는 말을 들어서 힘내라고 했는데…. 일곱 분 선생님들이 해직되기 전 날도 특강을 하면서 '전교조 해직교사가 나올 것'이라고 했지만, 일제고사 문제 때문에 해직교사가 나올 줄은 몰랐다.

사실 1인 시위하고 있을 때 교사들한테 질렸다. 보통은 1· 2학년 저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건널목을 함께 건너는 등의 하교지도를 하는데, 이번에는 1인 시위자나 학부모들이 나눠주는 복직 요구 탄원서를 못 받게 하려고 하교지도를 하더라. 일부러 애들을 후문으로 하교시키고 정문으로 못 가게 하는 거다. 정문으로 나오는 학급도 더러 있는데 그런 경우에는 선생님들이 눈길도 안 주고 그냥 가더라. 소름이 쫙 끼쳤다. 며칠 전까지 생각은 다를지라도 같은 교무실과 학교에서 일했던 교사가 '너 거기 있구나' '힘들지 않니'하고 인사라도 할 법한데 보지도 않는다.

쫓아가서 '선생님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같은 반 친구를 걱정하는 아이들한테 '그건 네 문제가 아니니깐 외면하고 가' 라고 가르치나, 아니면 위로의 말이라도 건네주라고 가르치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학교 현장이라는 게 참 어렵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 활동하셨던 과거사위원회 등의 문제는 어떤가. 각종 과거사위도 2008년 상당히 진통을 겪었다.
"정부를 뺏겼으니깐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위원회를 굳이 지켜야 할까 라는 생각도 한다. 군의문사위원회의 경우에도 연장은 했지만 저쪽 편인 제성호 교수가 위원장으로 오지 않나. 개인 생각이긴 하지만 차라리 지금 단계에서는 어머님들에게 죄송하다고 말하고 '좋은 세상 왔을 때 다시 해보자'고 하는 게 나았다는 생각까지 한다. 지금은 과거사위원회를 지키거나 살리기 위해 싸우는 것보다는 그동안 밝혀낸 성과들을 바탕으로 시민사회가 무엇을 할 것인가 새로운 과제를 제기하는 것도 중요하다.

과거사위원회와 관련해서는 한국의 수구본색이랄까 그런 것을 알게 된다. 위원회를 하면서 '한국 사회에는 정말 진짜 보수가 없구나'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내가 지금 말하는 것의 99%는 보수세력이 할 이야기다. 멀쩡한 사람을 붙잡아 안기부 지하실에서 고문하고 조작 간첩을 만들어놓은 것을 반성하자는 게 왜 진보세력만이 할 이야긴가. 그것은 인간의 도리다. 좌우를 물을 수 없는 문제다.

대한민국에선 오히려 보수가 과거사 청산에 앞장서야 한다. 제헌헌법도 보수파가 만든 것 아닌가. 보수파의 한 분파인 친일파가 집권하면서 그 약속을 죽여버린 것이다. 진보가 대한민국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웃기지 말라. '정체성'과 '헌법적 가치' 떠드는 종자, 뉴라이트들이 제헌헌법이나 읽어보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악을 쓰고 싶을 정도다.

과거 청산, 이 문제만으로도 내가 수구 세력을 경멸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똥 누고 밑도 안 닦은 XX다. 그렇게 냄새가 풀풀 나는데 좀 닦고 오라고 해도, 자신들이 싼 똥 치우려고 해도 좌익이니 빨갱이니…. 이런 게 어디 있나. 수구세력은 이 과거사 문제를 인정하지 않고선 절대 한국 사회에서 도덕성이나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다.

불행한 일들은 바로잡고 사실관계를 정리하는 일들이 중요한데 '대한민국 영광'만 부르짖으면 되겠나. 자신들의 아버지가 죽임을 당한 이들 역시 대한민국 국민이다. 그들도 자신들 아버지의 역사를 살려낼 것을 요구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나? 사실 나는 살아온 환경도 굉장히 보수적이고 지금도 그 가치에서 별로 벗어나지 않게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새해 인터뷰②] '이명박 실패 후 파시즘 올 수도 있다'

[최근 주요기사]
☞ [동영상] KBS 타종행사 방송에 '가상의 박수 소리'가
☞ 송강호나 설경구도 신인상 받을 수 있나
☞ 나라님! 우리집 매운맛 좀 보실래요?
☞ 숙식 제공한다더니 두메산골 막노동
☞ [엄지뉴스] 경찰 배경으로 기념사진 찍는 외국인
☞ [편집노트] DJ.DOC "이 노래를 한나라당에 바칩니다"


태그:#한홍구, #2008년, #송구영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