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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집에 온 아들 내외와 손자를 데리고 낙정으로 나들이를 했다. 낙정은 경북 상주와 의성을 오가는 나루로 꽤나 알려진 곳이다. 차를 타고 한참 달리는데 손자 놈이 답답한 듯 칭얼댄다.

 

"할아버지, 강은 언제 나와?"

 

강줄기를 따라 카페·모텔·음식점·노래방·보트대여소·골프연습장·승마장 따위만 보이니 궁금할 수밖에.

 

내 나이 마흔 일곱이었던 2009년, 이 길을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과 함께 내려왔었다. 차창 밖으로 시원하게 펼쳐진 강물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던 정경은 이제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추억이 되었다.

 

차가 커브를 틀자 '낙동 운하 낙정레저타운'이란 화려한 입간판이 막아선다. 당당했던 관수루(觀水樓)는 주눅든 행색으로 어정쩡하게 한 모퉁이로 밀려났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나서야 음식점 건물 사이로 언뜻 언뜻 강이 보인다.

 

 

"할아버지! 강이다. 가까이 가서 봐요!"

 

손자를 위해 '낙정레저타운 낙타 고기 전문점'이란 식당으로 서둘러 들어섰다. 고기를 주문하면 강으로 연결된 샛길을 통해 강 가까이까지 가볼 수 있다. 아니면 보트를 이용하거나 말을 타야 강에 갈 수 있다. 강 구경도 돈 내고 봐야 하는 세상이다. 일하는 젊은이에게 강가에 붙은 전망 좋은 방을 부탁했더니 바로 타박이다.

 

"강 구경하려면 돈 내야"

                                    

"할배요, 강가에 붙은 방은 찾는 사람이 하도 많아서 인터넷으로만 예약 하니더."

 

금세 풀이 죽은 손자를 본 그 청년, "사실 그 방에 가도 별 꺼 없습니더, 냄새가 마이 나이 창문을 열 수 있나, 그 방이나 다른 방이나 거서 거씨더"라며 억센 사투리로 위로(?)한다.     

 

'낙동 운하 낙정레저타운'에 있는 음식점들은 운하가 완공되고 몇 해 동안은 찾는 손님으로 들끓었다고 한다. 하지만 콘크리트 보에 둘러싸여 눈으로 볼 수 없는 강, 녹조가 뿜는 악취로 뒤덮인 강이 되자, 하나둘씩 발길을 끊더니 지금은 오늘처럼 명절이 되어야 겨우 방이 찬다고 한다.

 

강가에 사람들 모습은 별로 띄지 않는다. 강물은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기분 나쁜 녹색이다. 레저타운에서 흘러든 오염물질에 섞여있는 질소와 인이 번식시킨 물 이끼가 물빛을 녹색으로 만든 녹조현상 때문이다.

 

녹조가 아니더라도 강가에는 서있을 만한 곳이 없다. 강줄기를 곧게 만들고 강바닥을 훑으면서 굽이치며 흐르는 푸른 강물을 감싼 너른 모래밭도 함께 사라졌기 때문이다. 손자 놈은 모래가 강에서 나는지조차 모른다. 작년인가? 손자 사회책에서 이런 문제를 본 적이 있었다. 

 

다음 중 강에서 나는 것이 아닌 것은? ①붕어 ②모래 ③물 ④모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볼 수없는 것이 모래요, 눈만 뜨면 올라가는 것이 모텔이니 손자 놈 답은 당연히(?) ②번 모래였다. 강은 이래저래 우리 눈과 몸 그리고 삶터에서 멀어졌다.

 

눈으로 볼 수 없는 강, 맨발로 들어갈 수 없는 강

 

리만 부자(LeeMan millionaires)

 

2030년 웹스터사전 풀이: 2008년 이명박 대통령과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종부세를 면제해주고, 서민들 재산을 몰아준 덕에 탄생하게 된 대한민국 1% 부자귀족계급을 일컫는 말로 '이'와 '만' 이름을 따서 지음

'리만 부자'들은 강원도 골짜기에 있는 강이나, 섬에서 오염 안된 개울을 사서 바지를 걷고 물에도 들어가고, 반두로 고기잡이 전통체험도 한단다. 소수의 삶일 뿐 대다수 서민들은 강에 들어갈 일이 없다.

 

횃불을 밝히고 휘휘 굽은 강줄기를 따라가며 잡은 밤고기를 구워먹은 이야기며, 땡볕을 이고 첨벙첨벙 물을 튀기며 반두로 물고기를 훑던 여름날 그림은 '전설의 고향'에서나 보는 풍경일 뿐이다. 한국에만 살았다던 '흰수마자'나 '얼룩새코미꾸리'는 운하가 들어서자 일찌감치 지구별을 떠났다.

 

손자가 저렇게 강을 좋아하는데 마음놓고 들어가보지도 못한 채 '녹조 제거' '보 유지' '강바닥 고르기' 따위 이름으로 해마다 오르는 운하 유지세만 또박또박 바쳐야 하다니! 할아비로서 손자놈 얼굴보기 참으로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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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그래!숲, #4대강 정비, #대운하, #고루살이, #낙동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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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숲 그리고 조경일을 배웁니다. 1인가구 외로움 청소업체 '편지'를 준비 중이고요. 한 사람 삶을 기록하는 일과 청소노동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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