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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초, 극단미추의 <마당놀이 심청>을 봤다. 집에서 지하철로 네 정거장밖에 안 되는, 지난 일 년 넘는 시간 동안 오로지 이랜드 집회에 참여하려고 다녔던 월드컵경기장역. 이랜드 투쟁이 끝났기에 이제 더는 그런 목적으로 가지 않아도 되는 그 곳에 '공연'을 보기 위해 발걸음을 하는 마음이 애틋하기만 했다.

자전거로 자주 내달렸던 월드컵 경기장 한 쪽 넓은 마당에 커다란 돔이 보인다. 말로만 듣던 마당놀이 전용 극장이다. 천장도 그리 높지 않고, 좌석 수도 마당놀이만 바라보기에 딱 적당해 보였다. 다른 관객들 움직임도 눈에 잘 들어온다. 이렇게 마당놀이 전용극장은 마치 소극장에라도 온 것처럼 무대와 객석을 하나로 묶어주는 기운이 쏠쏠했다. 

심청이 젖 주는 장면을 홈쇼핑처럼 풀어내고

월드컵경기장 북쪽 마당에 세운, 극단미추의 마당놀이 전용극장. 돔 모양 극장 안으로 들어가면 소박하지만 아늑한 카페가 보인다.
▲ 마당놀이 전용극장 월드컵경기장 북쪽 마당에 세운, 극단미추의 마당놀이 전용극장. 돔 모양 극장 안으로 들어가면 소박하지만 아늑한 카페가 보인다.
ⓒ 조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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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마당놀이의 큰 장점 중 하나! 관객과 함께 공연을 시작하는 고사 시간이다.  주저주저하다가 무대 앞으로 살금살금 걸어 나오는 모습들, 절을 하고 흥겨워하는 몸짓들, 막걸리 한 사발 받아 마시고 한바탕 웃어대는 얼굴들. 모두 살아있는, 신명 넘치는 공연 아니겠는가. 바라보는 사람도, 참여한 사람도 모두 유쾌해지니 말이다.

본 공연 시작은 언제나처럼 꼭두쇠 김종엽 선생님이 열어 주신다. 구수한 목소리와 입담은 언제 들어도 정겨움이 넘친다. 이어서 나타난 뺑덕 어멈 김성녀 선생님. "나야말로 근거 없는 비방, 악플의 피해자"라는 첫 마디에서 <마당놀이 심청>이 여느 심청전 공연과는(판소리든 창극이든) 다를 것임을 암시해 준다.

그 암시가 준 해답은 바로 뺑덕 어멈이 주인공이 되어 풀어내는 <심청전> '다시 보기'이자 '비틀기'다. 책 <심청전>에 나오는 뺑덕어멈 묘사는 짧은 편이다. 못생기고 못돼먹었으며, 남자나 밝히는 얄미운 여편네. 두 번 본 창극 <심청전>에서는 비록 성격 사납긴 해도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는, 미워할 수 없는 뺑덕어멈을 만났다. 하지만 <마당놀이 심청>은 책과도, 창극과도 다르다. 뺑덕어멈은 극을 이끄는 주인공이자 심청전을 재해석하는 몫까지 톡톡히 해낸다.

사회 풍자도 쏟아진다. 인터넷 댓글 문화, 멜라민, 쌀 직불금, 광우병, 국정감사, 노건평에 이르기까지. 급기야 '특별 조사권'을 가졌다며 이것저것 지나치게 묻던 뺑덕어멈을 물대포 운운하며 잡아가기까지 한다. 소품으로 과거가 아닌 지금, 오늘을 보여주는 독특한 장면들도 많았다. 특히 동네 사람들이 심청이 젖 주는 장면을 홈쇼핑처럼 풀어낸 장면은 기가 막히게 재미있었다. 심봉사가 공양미 삼백석 시주한다는 이야기를 스님이 노트북에 입력하는 장면도 그렇고.

급 애드립, "엠비씨에서 일당 받고 온 사람이지?"

뺑덕어멈은 극을 이끄는 주인공이자 심청전을 재해석하는 몫까지 톡톡히 해낸다.
▲ 뺑덕어멈의 심청전 비틀기 뺑덕어멈은 극을 이끄는 주인공이자 심청전을 재해석하는 몫까지 톡톡히 해낸다.
ⓒ 극단미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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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근육이 아파올 만큼 마음껏 웃으며, 손바닥 아프게 박수 쳐가며, 발도 동동 구르며, 애절하고도 신나게 흘러나오는 생생한 국악 반주에 몸을 이리저리 흔들어 가며 마당놀이와 함께 한 두 시간. 함께 간 열 네 살 난 아이도 처음 보는 이 마당놀이가 너무 재밌었단다.

'의도적으로' 슬쩍, 친구들이랑 다시 또 오고 싶은지 물어보니, 친구들도 다 재밌게 볼 것 같다는 '바라던' 대답을 해준다. 배우 중에는 '하정우'가 제일 좋고, 가수 중에는 '빅뱅'이 제일 좋다는 이 아이가 다시 보고 싶은 정도라면, 어른 아이는 물론이고 마당놀이 관객에서 가장 적은 수를 차지하는 이삼십 대 젊은 층한테도 충분히 다가설 수 있다는 방증일 테지?     

'사방이 열린 공간이지만 배우들 연기가 대사나 노래가 사방으로 흩어지지 않고 한 데로 모아지며 확 집중시키는 기운. 관객과 배우가 같은 공간, 나아가 같은 무대에 있는 것 같은 그런 기운.'

월드컵경기장에 펼쳐진 '마당놀이 전용극장'에서 온몸으로 느낀 저 기운을 다시금 느끼고 싶어서 26일, 이 공연을 한 번 더 보러갔다. 두 번째 관람에서 가장 나를 시원하게 웃게 한건, 윤문식 선생님의 (아마도) 급 애드립! 배우가 던진 한 질문에 모두가 '예'하는 가운데, 관중석 어디선가 한 사람이 "아니오!"하고 외쳤을 때, "엠비씨에서 일당 받고 온 사람이지?"하고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같이 보러 간 친구랑 웃겨서 거의 뒤집어지는 줄 알았는데, 손뼉 치며 깔깔대던 우리는 갑자기 몸을 사렸다. 우리처럼 크게 웃는 사람이 없는 거였다.

하긴, 극단미추와 엠비씨가 결별한 걸 알고 있는 사람이 저 자리에 얼마나 되겠는가. 문득  '저 애드립 혹시 실수 아닐까? 괜찮을까?'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풍자'라는 껍질을 벗겨내면, 그 안엔 '비판'이라는 칼날이 도사리는 법. 때론 '비판'이 '비난'으로 잘 못 들릴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이거야 지나친 걱정일 테고. 어쨌건 윤문식 선생님의 저 말씀이, 두 번째 공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다.

더 나아가, '아! 풍자란 이런 거구나!'하는 깨달음마저 얻었다. '풍자'는 그 '대상'이 정확할 때, 더불어 지금 나와 우리를 가장 아프게 하는 '내용'을 두고 '제대로 씹을' 때 가장 짜릿하다는 것. 윤문식 선생님의 그 '풍자'는 어쩌면 엠비씨와 결별하면서 극단미추가 가장 아팠던 자욱이 그대로 드러났기에, 그리고 그 자욱을 조금이라도 공유하고 있는 나와 내 친구였기에 그렇게 크고 시원하게 웃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이건 얼마 전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열린 '부당징계 철회! 일제고사 반대! 공정택 아웃!'을 외친 촛불문화제에서 느낀 감정이랑 비슷하다. 몇 분 선생님들이 풀어낸 짧은 풍자극. 공정택 교육감과 이명박 정부를 제대로 '씹는' 그 내용들은 짧고 조금은 어수룩했던 그 풍자극을 그 문화제에서 가장 멋진 공연으로 이끌었다. 다른 어떤 노래나 공연보다 가장 힘찬 박수와 웃음을 이끌어 낸 것을 온몸으로 확인했다.

배우들 연기가 대사나 노래가 사방으로 흩어지지 않고 한 데로 모아지며 확 집중시키는 기운, 관객가 배우가 하나되는 즐거움을 잔뜩 심어 준 마당놀이 전용극장.
▲ 마당놀이 전용극장이 주는 맛 배우들 연기가 대사나 노래가 사방으로 흩어지지 않고 한 데로 모아지며 확 집중시키는 기운, 관객가 배우가 하나되는 즐거움을 잔뜩 심어 준 마당놀이 전용극장.
ⓒ 극단미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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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로 시작하는 처음도 흥겹고, 꽃가루 날리는 뒤풀이로 마무리하는 끝도 흥겹고, 마당놀이는 정말 흥겨운 한바탕 놀음이다. 다른 관객들이 얼마나 신나게 이 공연을 즐기는지, 띄엄띄엄 주위를 둘러 봐도 정말 잘 보이고 느껴진다. 무대와 관객 사이에 경계 없음. 마음껏 웃고, 간단한 음식거리도 먹을 수 있고, 옆 사람이랑 속닥속닥 거려도 전혀 눈치 보이지 않는 이 편안함. 몇 번을 경험해도, 정말 기분 좋다.

학교에서 대동제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할 때, 나도 그런 '마당'을 느껴보았다.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사람이나, 무대 아래에서 옆에서 어깨 걸고 덩실대며 춤추고 노래하는 사람이나, 서로 같은 마음으로 어우러진 그 충만함과 행복감. 노래패 활동 덕에, 여러 번 '무대'라 불리는(안이건 바깥이건) 자리에서 노래해 봤지만, 그 때 느낀 충만감과 행복감을 뛰어넘는 추억은 아직 만들지 못했다. 앞으로도 아마 그럴 것 같다.

지난해 2월, 극단미추 마당놀이를 부천 어느 체육관에서 맨 처음으로 만났을 때 느꼈던 그 설렘의 바탕은 아마도 내가 무대에서 겪었던 그 행복했던 시간들 덕일 것이다. 낯설지 않은, 그 익숙한 향기를 바로 맡을 수 있었던 것도. 

십년도 전에 느꼈던 그 설렘을, 이렇게 잘 만든 프로 공연에서도 느낄 수 있다는 거, 나한텐 '행운'에 가깝다. 겪지 못해서 나와 같은 설렘을 미리 알지 못하는 사람들일지라도 극단미추의 마당놀이를 만난다면 몸 속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을, 그 설렘들이 알아서 뛰쳐나올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렇게 되는 것은 마당놀이라는 장르를 넘어, 우리네 삶을 풍요롭게 하는 커다란 문화 줄기가 시작되는 밑거름이 되지 않을까. 

현직 대통령, 종부세 비껴간 것은 아쉬워

고사로 시작하는 처음도 흥겹고. 꽃가루 날리는 뒤풀이로 마무리하는 끝도 흥겹고. 마당놀이는 정말 흥겨운 한바탕 놀음이다.
▲ 흥겨움의 최고조, 마당놀이 뒤풀이 고사로 시작하는 처음도 흥겹고. 꽃가루 날리는 뒤풀이로 마무리하는 끝도 흥겹고. 마당놀이는 정말 흥겨운 한바탕 놀음이다.
ⓒ 조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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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미추의 마당놀이가 '효도공연'을 넘어 남녀노소 두루 즐길 수 있는 '국민 공연'이 되는 길. 내가 알고 있는, 마당이 주는 그 설렘을 사람들, 특히 젊은 사람들한테 어떻게든 맛보게 하는 일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러자면 가장 먼저 '마당'을 근간으로 하는 공연들이 많아져야 할 테지. 마당놀이, 마당극이 대표 주자가 되겠고. 그물이 촘촘하고 넓어야 조금이라도 걸리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 아니겠는가. 

다음으로는 '마당'이라는 형식에서 벌어질 내용이 더 현대성을 담보해야 한다. 더 날카롭게 풍자해야 한다. '고전'을 현대성 있게 재해석 하는 것만으로는 젊은 층을 끌어들일 '힘'이 모자랄 것 같다는 게 솔직한 내 판단이다.

마당놀이 심청을 보면서 느꼈던 아쉬움이 그런 생각을 더 하게 만든다. 전 임금이랄 수 있는 노무현은 건드리면서 당대의 임금인 이명박 대통령 이야기는 조금도 나오지 않았으니까. 초등 학생도 다 아는 2MB를 언급조차 하지 않은 건, 관객들이 가장 큰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중요한 '풍자 대상'을 지나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서민, 중산층, 부자들 할 것 없이 모두의 관심사인 종부세를 비껴간 것도 그렇고.

영화 <왕의 남자>에서 보았던 장면들. 저잣거리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늘같은' 임금을 비꼬며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더 나아가 바로 임금 앞에서까지 오줌 질질 싸가면서도 그 임금을 풍자할 수 있던 그 정신들. 마당놀이가 가져야 할 내용미의 핵심이라고 생각하기에.

갈 때마다 머리 희끗한 분들로 꽉 찬 마당놀이 관객석을 바라보는 거, 많이 속상하고 안타깝다. 아련한 추억으로 '마당'이라는 느낌을 공유할 수 있는 어르신들이 사라지고, 나처럼  삶에서 운 좋게 '마당'이 주는 힘을 맛본 많지 않은 사람들마저 사라지고, 우리식 '마당 문화'는커녕 온통 서양말, 서양 문화에만 길들여진 나보다 조금 젊은 층들이 나이든 뒤에는, 과연 누가 마당을, 마당극을, 마당놀이를 봐 줄 것인가. 하물며 만들겠는가.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이지만, 28년 동안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극단미추의 마당놀이가 전통연희나 고전들을 지키는 몫을 뛰어 넘어, 우리식 문화를 지키느냐 아니냐는 갈림길을 가장 먼저 보여줄 리트머스 종이가 될 것만 같다.

비록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관객층 대부분을 차지할지라도 지금으로선 가장 넓고 깊이 있게 우리 문화를 사람들한테 알려내는, 가장 인지도 높은 대상이니까. 그 리트머스 종이를 함께 적셔가고 싶은 사람으로서, 마당놀이를 '효도 공연'으로만 생각하는 분들께 마지막 말씀을 드리고 싶다. 내가 쓴 글은 아니지만, 내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어느 분의 글을 빌려서.  

전통에 대해 애정 어린 비판이 무관심한 지지보다 절실하다고 생각하는 입장으로 볼 때, '우리 것은 소중하니까 무조건 좋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극단미추의 마당놀이 심청을 아끼는 이유는 이 작품이 전통 문화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현대적이고 세련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전통'이라는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면 전통을 스스로에게 강요하는 것만큼이나 많은 것을 놓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전통, 전통문화에 완전히 일치되어 비판적 발전을 저해하거나 지나친 거리두기로 무관심과 편견만을 앞세우는 것, 어느 것도 주체적 문화향유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창조적 발전을 위해 전통에 대한 섬세한 거리두기가 필요하다면, 극단미추의 마당놀이는 전통에 대한 편견을 가진 젊은 세대들에 그 섬세한 '거리'를 제시해주는 공연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 남궁경 자유기고가, 마당놀이 심청 프로그램에서 

보이지만 보이지 않게, 마당놀이의 처음과 끝을 지켜주고 이어주는 중앙관현악단의 흥겨우면서도 아련한 음악 연주. 나를 마당놀이에 빠지게 만든 일등 공신이다.
▲ 서양 뮤지컬은 도저히 흉내낼 수 없다 보이지만 보이지 않게, 마당놀이의 처음과 끝을 지켜주고 이어주는 중앙관현악단의 흥겨우면서도 아련한 음악 연주. 나를 마당놀이에 빠지게 만든 일등 공신이다.
ⓒ 조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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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마당놀이, #극단미추, #전통,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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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기타 치며 노래하기를 좋아해요. 자연, 문화, 예술, 여성, 노동에 관심이 있습니다. 산골살이 작은 행복을 담은 책 <이렇게 웃고 살아도 되나>를 펴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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