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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 형이 미포조선 100m 굴뚝에 올라갔답니다."

 

12월 24일 수요일 밤 9시, 회사에 출근해 일하고 있는데 아는 사람으로부터 문자가 왔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울산노동뉴스>에서 보라고 해서 들어가 보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사이트를 열어보니 오전 6시경 100m나 되는 높이의 굴뚝에 올라갔다는 내용이 상세히 보도되어 있었습니다.

 

이영도 형은 17년 전 예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만난 노동자였습니다. 예전 회사에서 노조위원장도 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참 멋지고 마음 착한 사람이라 많은 사람들로부터 호응도가 높았던 선배였습니다. 오늘날까지 민주노동운동에 몸담고 있으며 현재는 민주노총 울산본부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참 친하게 지냈던 터라 그 소식을 접하고는 밤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매서운 밤바람에 얼마나 그 위는 추웠을까를 생각하니 가슴 한쪽이 시려 왔습니다.

 

더구나 어제 어떤 날입니까? 영어로 '크리스마스 이브'고 우리말로는 '성탄절 전야'이지 않습니까. 교회마다 오색 불빛이 영롱하게 반짝이고 '기쁘다 구주 오셨네' 노래가 울려 퍼지는, 흥겨움이 넘치는 날 아닙니까. 그런데 한쪽에서는 노동자가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서 그 높은 곳으로 올라가 있습니다.

 

 

오전 8시 일마치고 퇴근하면서 사내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냥 집으로 직행하려니 차마 발이 떨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상황이나 한번 살펴보고자 고공 농성 현장에 갔습니다.

 

고공 농성장은 미포조선이 아닌 현대중공업에서 소각장으로 쓰이는 장소였고 높이 100m나 되는 높은 굴뚝의 끝이었습니다. 보기만 해도 아득했습니다. 주변엔 노동자와 지역 대책위 사람들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고 경찰차 두세 대가 상황을 감시하는 듯 서있었습니다. 텐트를 치려했으나 경찰의 저지로 치지 못했다고 합니다.

 

"언제 위에 올라갔고 올라가 있는 분들이 누구누구 입니까?"

 

마침 그곳엔 지난 8년 넘게 부당해고 법정 투쟁을 벌여 끝내 대법원 승소를 받아낸 김석진씨가 있어 물어 보았습니다. 김석진씨는 미포조선 현장노동자투쟁위원회 의장으로 현장 활동 중입니다.

 

"미포조선 현장의 소리 의장 김순진, 민주노총 울산본부장 직무대행 이영도 이렇게 두 명이 올라갔습니다. 어제 오전 6시경 올라 간 거 같습니다."

 

"대책위는 꾸려져 있나요?"

 

"현재 미포조선 현장조직 대책위, 울산지역 대책위, 민주노총 대책위가 꾸려져 같이 힘을 모으고 있습니다."

 

"저 두 분이 왜 저 높은 곳에 올라가게 되었나요?"

 

"아시다시피 지난달 14일 이홍우 동지 투신 후 미포조선노조의 기만적인 합의안이 나오고 게다가 동구청과 동부 경찰서가 합동으로 농성장을 침탈한 사건도 있잖습니까. 아마도 그런 이유가 다분히 있지 않나 봅니다."

 

"대책위 요구안이 있나요?"

 

"현장탄압 중단, 이홍우 조합원 투신 관련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부당징계 철회, 용인기업 해고 노동자 복직 수용, 강제철거에 대한 동구청과 경찰의 사과, 미포조선의 부당노동행위 및 이홍우 조합원 투신 당시 회사의 잘못된 조치에 대한 노동부와 경찰의 조사와 처벌, 용인기업에 대한 부산고법의 심리 종결과 조속한 판결, 미포조선의 실질적인 소유주인 정몽준 의원이 직접 사태해결에 나설 것 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대화를 하면서 주변을 살펴보았습니다. 주변엔 그물망이 설치되어 있었고 바닥엔 두터운 에어 매트가 깔려 있었습니다. 경찰은 차를 타고 수시로 주변을 오가며 어디론가 상황보고를 하고 있었습니다.

 

오전 9시가 넘으면서 대책위 측에서 음식물 반입과 방한 옷가지를 올려 주려고 시도를 했으나 경찰은 서장이 와야 한다면서 보류 시켰습니다. 10시가 다 돼서야 동부경찰서 간부로 보이는 사람들이 여럿이 오더니 대책위와 함께 굴뚝으로 접근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중공업 경비대의 반대에 부딪혀 대책위의 물품 전달은 보류되고 있었습니다. 그곳은 현대중공업 소유이므로 소유자의 허락을 득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배고플 텐데, 추울 텐데 이를 어찌해야 할까요?

 

"영도 형, 창기 왔다 갑니다. 어제 소식 듣고 일이 손에 안 잡힙디다. 성탄절이라 누구는 축제 분위기인데 노동자는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100m 고공 탑 위에 올라야 하는 현실이 가슴 아픕니다. 영도 형, 부디 건강히 뵙기를 기도 합니다. 같이 있는 분도요"

 

그렇게 속으로 안부를 전하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 높은 굴뚝 위에 올라가 생존권 사수 농성을 하는 것을 보니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 이때가 되면 어린이들은 동화 속으로 빠져 듭니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착한 어린이에게 밤에 몰래 굴뚝 속으로 들어와 양말 속에 선물을 넣어놓고 간다는 내용이지요. 아직도 어린이들 중 상당수는 그 동화를 믿고 있을 정도입니다.

 

또한, 교회에서는 예수라는 인물의 탄생을 축하한다며 형형색색 꽃 전구를 달아 불을 밝힙니다. 축복의 메시지를 전하며 기뻐하고 자축합니다. 오늘(크리스마스) 오전 11시에는 일제히 축복 예배를 드립니다. 완전 잔치 분위기입니다. 이렇듯 기독교와 굴뚝은 축복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성탄절 날 한 노동자에게 굴뚝은 생존권을 지켜내기 위한 몸부림의 장소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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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미포조선, #굴뚝, #성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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