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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불 10년'.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년간 사회적 갈등을 무릅쓰고 한반도 시계를 거꾸로 돌리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촛불 탄압, 언론 장악, 좌파 적출, 우파교과서 만들기 등. 이 때문에 독재 회귀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곳곳에서 튀어나왔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오마이뉴스>는 그 전장을 진두지휘한 'MB의 남자들'을 집중 조명한다.   <편집자말>

둘은 같은 조직에 있었다. 사실 좀 억지스럽긴 하다. 한 명은 조직의 수장이었고, 다른 한 명은 말단 중의 말단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같은 조직이었어도 둘의 역할은 판이하게 달랐다. 조직의 수장은 근엄한 목소리로 '폭력시민'들을 나무라며 마이크 앞에서 법질서 확립을 '강조'해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말단 중의 말단은 '닭장차'에서 대기하다 이것이 무슨 상황인지도 모른 채 달려가서 막으라면 막아야 했다.

 

그렇게 막고 진압하다 보니 이게 아니다 싶었다. 그 중요한 '법질서 확립'을 하다 보니 시민들이 피 흘리며 길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자신의 손에 들려 있던 방패와 곤봉이 치욕스러웠다. 말단 중의 말단이었던 그 의경은 더 이상 진압의 도구가 될 수 없다고 양심선언을 했고, 농성을 했으며, 지금은 감옥에서 이 시린 겨울을 견디고 있다.

 

"사람들을 위한 도구인 법과 공권력은 스스로 신분을 망각한 채 그 위에 군림하며 사람들을 옭아매고, 짓밟고, 원하지 않는 길로 내몰고 있습니다. 그렇게까지 지켜내야 할 가치란 대체 무엇입니까? (...) 저는 제가 원하는 평화로운 삶을 위해선 그것을 위협하는 폭력에 저항하고 그 도구가 되길 거부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할 수 있는 걸 했습니다. (...) 저는 이미 제가 해온 일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양심에 따라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했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저와 제 삶을 보았습니다. (...) 전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이길준이다. 그가 지난 10월 31일 서울 북부지방법원에서 읽었던 최후진술문이다. 의경으로서 촛불집회의 진압에 참여한 그는 그 과정에서 자신의 인간성이 하얗게 타버린 것 같았다고 했다. 헬멧 속에서 남모르게 울었다고 했다. 그리고 폭력의 도구가 되길 거부하는 양심선언을 했다. 그 대가는 1년 6월의 실형. 검찰은 형량이 너무 적다며 항소했고, 지금 이길준은 항소심을 기다리며 안양교도소에 있다.

 

말단 중의 말단은 시킨 일을 도저히 할 수 없다며 양심선언을 했다. 사람들을 옭아매고, 짓밟으면서 지켜야 할 가치란 도대체 무엇이냐고 외쳤다. 그리고 감옥에 갔다. 그렇다면 그 폭력, 그 진압을 지시했던 조직의 수장은 어떻게 되었을까?

 

어청수 경찰청장님, 대단하십니다

 

어청수 경찰청장. 대단하시다. 책임은 무슨 책임. 그 흔한 사과 한마디 없이 지금까지 경찰청장이시다. 게다가 '대한민국 존경받는 CEO'란다. 수상절차에 잡음이 있었다는 것을 고려하더라도 참 극적인 명칭이다. 존경받는 CEO. 이것만큼 현재 대한민국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또 있을까? 자신의 신념을 지킨 이들은 감옥에 가야 하고, 저 위에서 눈 막고 귀 막으며 자기 자리 깔아뭉개고 있는 이들은 '소나기‘만 피하고 나면 다시 떵떵거리게 된다.

 

경찰청장이란 자리가 법적으로 임기가 보장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임기 보장된 그 숫한 자리들 추한 꼴 다 보여 가며 갈아엎지 않았나. 촛불의 거대한 파도가 경찰청으로 향하고, 성난 불심의 목소리가 '어청수 경찰청장 퇴진'으로 모이고,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까지 어청수 청장의 사퇴를 요구했었지만 그는 여전히 경찰청장이다.

 

어청수 경찰청장은 어떻게 자리를 보존했을까? 누가 봐도 당시의 여러 고비에서 경찰청장이 사과하고, 책임지는 자세로 사퇴하는 것이 '정치'의 기본이었다. 아무리 '묻지 마 경제대통령'으로 당선된 이명박 정권이라지만, 이는 기본 중의 기본 아닌가. 게다가 종교 편향에 대한 불교계의 항의과정에서는 핵심 요구조건으로 '청장 퇴진'을 명시하기까지 했다. 이 정도면 '대통령과 맺은 오랜 인연'이라는 수사만으로는 그가 자리를 보존하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 부족하다.

 

그러나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말했다. "어청수 자르면 누가 MB에게 충성하겠나?" 역시 정확한 홍준표다.

 

 

충성하라! 그러면 지켜준다, 국민들이 뭐라 하든

 

2008년 3월, 이명박 정권 초기에 나온 정책기조 중에 이런 것이 있었다. '떼법 문화 청산'. 무슨 소리냐면 노동자들의 파업과 시민들의 집회시위와 같은 집단행동이 '떼법'이며 이러한 '떼법'에는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참 천박한 인식수준이라고 생각만 했는데, 지금 와서 돌아보니 1년 내내 무섭게 그 정책기조를 실천했다는 생각이 든다.

 

'떼법'이라는 규정 하에서는 헌법에 보장된 집회결사의 자유는 사라진다. 자신들의 권리와 이익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행위는 모두 경제성장을 방해하는 '떼쓰는 철없는 짓'일 뿐이다. 무관용은 그 철없는 짓을 하는 사람들을 모조리 잡아넣겠다는 것이다. 이 정책기조, 참 일관성 있게 지켜져 왔다.

 

그 기조의 정점에 어청수 경찰청장이 있다. 인간사냥을 하듯 연행자에게 포상금을 걸었고, 물대포와 소화기, 색소물총으로 거리를 뒤덮었다. 백골단이 부활하고 표적수사와 보복수사는 일상이 되었다. 가수 신해철이 MBC <100분 토론>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정부에 대해서 비판적인 말 한마디라도 하려면 몸조심부터 해야 하는 사회를 만든 것이다. 1년도 채 안 걸렸다.

 

이렇게 고생한 어청수를 지켜주어야 하지 않겠나. 이게 이명박 정권이다. 국민이 뭐라든지, 여론이 어떻든지. '어청수를 자르면 누가 충성하겠냐'는 말은 달리하면 '어청수 같은 상황에서도 MB 뜻대로만 밀어붙여준다면 반드시 지켜준다'는 말이다.

 

 

'어청수를 자르면 누가 MB에게 충성하겠냐'

 

하지만 경찰청장이 충성해야 할 대상은 누구인가? 또한 경찰이 지켜야 할 원칙은 무엇인가? 백번 양보해서 장관 같은 자리는 사실상 정치적 계산 속에서 그 배치와 역할이 결정되기에 이명박 대통령에게 충성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경찰은 공권력이라는 이름의 '폭력' 기관이다. 법적인 절차에 의해서 그 집행이 정당화될 뿐이지 그것이 폭력이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그렇기에 그 폭력을 사회적으로 관리하고 제어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민감하며 중요한 문제이다. 그것이 폭주했을 때, 민주적 감시와 절차를 벗어나 권력자의 사리사욕을 위한 '몽둥이'로 전락하게 된다. 2008년 한국의 경찰은 과연 민중의 지팡이였나, 이명박의 몽둥이였나. '각하는 곧 국가'라는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의 가치와  2008년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가치 사이에서 경찰은 어디에 있었나.

 

촛불집회에서 도망가는 시민의 뒤통수를 가격하는 곤봉과 여대생의 머리를 짓밟는 군홧발은 공권력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정치 깡패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경찰은 이런 경찰 폭력의 정당성을 촛불집회의 변질에서 끌어오기도 한다. 초창기의 촛불은 순수했지만 이후 변질되었고, 그 과정에서 불법폭력행위를 엄단한 것이라는 이야기다. 물론 후반으로 갈수록 그런 물리적 대립이 커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왜 그랬을까? 프로 시위꾼 때문에? 아니다. 이미 수많은 사회운동 관련 논문에서 증명한 것을 왜 모른 척하는지. 시위대를 폭력적으로 만드는 것은 대부분 정부의 폭력적인 진압과 대응이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공권력은 철저하게 방어주위의 진압원칙을 지켜야 한다.

 

어청수 청장은 15만 경찰의 사기와 관련된 문제라며 자신의 사퇴는 불가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 청장만큼 15만 경찰의 사기를 떨어뜨린 이가 있을까? 불교계의 문전박대 앞에서도 꿋꿋하게 '지나가다 잠깐 들른 것'이라고 하면서 자리 보전에 최선을 다했던 모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분위기 파악 못하고 존경받는 CEO 어쩌구에 이름 올린 건 차라리 애교에 가깝다. 이길준의 최후진술문을 다시 보자. "사람들을 위한 도구인 법과 공권력은 스스로 신분을 망각한 채 그 위에 군림하며 사람들을 옭아매고, 짓밟고, 원하지 않는 길로 내몰고 있습니다." 지금 이 상황이 바로 15만 경찰의 사기를, 아니 수많은 시민들의 자존심을 바닥까지 떨어지게 한 것이다.

 

비극의 반복, 또 다른 이길준들

 

지금 거리에는 또 다른 이길준이 있다. 시민들을 항해 방패를 들 수 없다고 선언했던 이길준과 아이들을 무한 경쟁에 내모는 일제고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교사들의 모습은 너무나 닮았다. 백년지대계라고 하는 교육이 정권의 입김에 좌지우지되는 모습 역시 권력의 시녀가 된 경찰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비극은 또 이렇게 반복되는가. 언제까지 이명박 대통령을 지키는 남자들, 이명박 대통령이 감싸주는 남자들이 연출하는 이 비극을 지켜봐야 하는가. 자신의 신념을 지키면 감옥에 가고 직장에서 쫓겨난다. 권력에 충성하면 누가 뭐라고 해도 잘 먹고 잘산다. 그야말로 비극적인 상황이며, 매우 사실적인 교훈이다. 하지만 결코 더 이상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기억해야 한다. 이 부조리에 저항했던 이들의 용기와 고통을. 결국 사회가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은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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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어청수,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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