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출산 후 닥치는 육아 문제는 부모들에게 큰 부담입니다.
 출산 후 닥치는 육아 문제는 부모들에게 큰 부담입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태어나자마자 제가 받아 돌보기 시작한 조카 주석이가 내년이면 벌써 초등학교에 입학을 합니다. 엄마 뱃속에서 나와 붉은 탯줄을 자르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었으니 시간은 참 잘도 가는 것 같습니다.

동생과 같은 직장맘이 마음 놓고 일을 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남편의 전폭적인 외조도, 자신의 뛰어난 능력도 아닌 아이를 마음 편히 맡길 수 있는 든든한 육아도우미입니다.

영리한 직장 여성들은 그래서 결혼을 해도 친정과 멀지 않은 곳에 신혼집을 얻는다고 하지요. 동생은 친정 근처에 집을 구하는 대신 언니인 제집 근처로 이사를 왔습니다. 관절염으로 고생하시는 연로한 친정엄마보다는 젊고 건강한 언니가 편했던 것이지요.       

7년 전 동생은 출산을 앞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언니, 유치원 까지만 키워줘. 아기가 학교에 가게 될 때쯤이면 나도 직장 그만두고 애만 키울 수 있겠지. 그러니까 그때까지만 우리 아기 잘 키워줘. 부탁할게."

그때의 계획대로라면 동생은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주부의 삶으로 돌아와야 할 시기입니다. 하지만 예상치 않던 복병을 만난 것입니다. 2008년 들어 느닷없이 닥친 부동산가격 하락, 금융불안, 구조조정 등의 영향이 동생의 가계에도 적지 않은 타격을 미치게 된 것이지요. 

"언니, 주석이 취학통지서 나왔는데... 내가 어떻게든 내년 2월 전까지 사람을 구해 볼게. 은행 융자에 애 교육비에 여기 저기 들어 갈 돈은 많은데 애 때문에 회사를 그만 둘 수도 없고…."

겨울이 오기 전, 저는 동생에게 미리 말을 해두었습니다.

"난 너와 약속한 대로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만 돌보아 줄 테니까 그 이후에 돌볼 사람을 구해봐. 내가 하기에는 솔직히 너무 버거워서 그래. 나도 나름대로 계획한 일도 있고…."

동생의 어두워진 표정이 마음 아팠지만 저도 더 늙기 전에(혹은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은  일들이 있기에 조카의 육아 대신 제 삶을 택하는 매정한 언니, 냉정한 이모가 되기로 했던 것입니다.

"약속한 대로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만 돌볼 테니..."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조카 주석이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조카 주석이
ⓒ 김혜원

관련사진보기


그 후 동생과 저는 조카를 맡아 돌보아 줄 사람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사람 찾는 일이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이것저것 하는 일도, 해야 할 일도 많은 초등학교 1학년의 육아조건이 그리 녹록치 않았기 때문이지요.

초등학교 1학의 경우 초반 몇 개월간은 점심 급식도 하지 않기 때문에 11시 30분이면 수업을 마치게 됩니다. 학년 초 아직은 혼자 귀가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을 것이니 당분간은 귀가시간에 학교 앞에서 아이를 기다렸다가 집으로 데려와야 하겠지요.

귀가 후엔 점심을 먹이고, 학원 시간을 체크해 학원을 보내거나 집으로 오시는 선생님께 학습지도를 받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도 요일별, 시간별, 과목별로 모두 다르니 일일히 체크를 해서 늦거나 빠지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합니다.  

학원과 개인지도를 마치면 그날그날 학교에서 공부한 것에 대해 반복학습을 시키고 숙제와 준비물을 챙겨야 합니다. 제 두 아들 때도 그랬지만 초등학교 1학년의 과제물은 대부분 엄마 숙제인 경우가 많아 늦은 밤까지 과제물을 만드는 일도 감수해야 하지요.

이런 조건을 들려주며 육아 도우미를 구한다고 하니 친구들이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차라리 개인 매니저를 구하지. 난 백만 원을 줘도 못하겠다. 하루 종일 오로지 애한테만 매달려 아무 일도 못하는 거잖아. 우리 애들도 그렇게 키웠지만 다시 하라 그러면 못할 거 같아. 내 새끼니까 했지 남의 새끼한테는 그렇게 못 할 것 같아."

"애 보느니 밭일 한다고, 나 같아도 동네 마트 생선코너에 나가서 생선을 쌀지언정 애는 못 볼 것 같아. 초등학교 1학년이 제일 손이 많이 가는 때잖아."

나름대로 이리저리 사람을 찾아보겠다던 동생도 적당한 사람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는지  저만 보면 한숨을 폭폭 쉽니다.

목에 열쇠를 걸고 다니며 점심은커녕 간식 하나 재대로 챙겨 먹지 못하고 엄마가 퇴근할 때까지 이 학원 저 학원을 전전하는 직장맘의 아이들을 볼 때, 가장 가슴 아프다는 동생. 정 안 되면 사표내고 집에 들어 앉는 수밖에 없다면서 세상 고민을 다 떠 안은 표정으로 저를 압박해 왔지요.

"안 되면 사표 내야지"... 저만 보면 한숨 쉬는 동생의 압박

저런 아기가 벌써 자라 초등학교에 간다네요
 저런 아기가 벌써 자라 초등학교에 간다네요
ⓒ 김혜원

관련사진보기


동생과 신경전을 벌여가며 육아도우미를 찾은 지도 두 달여. 육아와 관련된 이야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것이라 여겨왔던 조카 녀석이 어디서 무슨 소릴들었는지 며칠 전엔 드디어 저에게 다가와 항의를 하는 겁니다.

"이모, 주석이 학교 가면 안 봐 줄 꺼야?"
"응? 그러니까 이모가 이모 대신 더 좋은 아줌마한테 주석이를 봐달라고 하려구 그러지."
"싫어, 싫어. 난 이모가 좋단 말야. 이모는 이제 주석이가 싫어졌어?"
"아니 그건 아니고. 주석이가 왜 싫어. 너무 사랑하는데."
"거짓말. 이모 거짓말이야. 주석이 사랑하는데 왜 안 돌봐주는데? 다른 아줌마 싫어. 이모가 좋단 말야."

눈물이 그렁그렁한 조카 녀석을 보니 문득 못할 짓을 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잠시 내 사정에 급급해 어린 마음이 다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못했던 것이 미안했습니다. 결국 녀석의 눈물에 더 이상 조카의 육아를 책임지지 않겠다던 제 결심은 깨지고 말았습니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이리 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퇴근하고 온 동생에게 조카 녀석의 이야기를 하며 결국 내가 지고 말았다고 하니 역시 자기 아들이 최고라며 좋아했지요.

"일단 1년만이야. 로드매니저, 방과 후 교사, 유모는 하겠지만 급식 날이라고 밥 푸러가라거나 녹색어머니를 대신 가라거나, 청소, 소풍, 운동회, 학부모 모임 같은 날 대신 나가라는 소린 하지 마라. 넌 왜 내 인생에 끼어들어서 날 이렇게 힘들게 하냐. 동생이 아니라 웬수라니까…."

알겠다면서 미안한 지 입을 삐죽이 내미는 동생 곁에서 주석이가 해맑게 웃고 있습니다. 

[최근 주요기사]
☞ [널 기다릴께] 강기갑 산타, 119번째 고양이가 되다
☞ "또 애 맡기려고? 동생이 아니라 웬수군"
☞ "나라 말아먹지 마!" 한나라당사에 '김밥 투척'
☞ [블로그] "대통령님, 아드님부터 중소기업 보내시죠"
☞ [엄지뉴스] 비싼 승용차는 이렇게 대도 됩니까?
☞ [E노트] '부시에게 신발 던지기' 패러디 게임 총정리


태그:#직장맘, #육아도우미, #초등학교1학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